김소월과 삭주구성(朔州龜城) 육천리(六千里)
1.
김소월은 평안도 구성(龜城)출신으로 1902-1934년을 살다간 조선의 천재시인이다.
그의 연보를 보면 1923년 도쿄상과대학에 입학하고 당해 9월 관동대지진으로 중퇴,귀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즉 1923년에 반도로 강제이주해 들어온 것이다.
따라서 그의 1923년 작품인 삭주구성을 보면 1922년까지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서정성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완전한 주지주의(主知主義)적 시풍으로 돌아서게 된다. 특히나 삭주구성은 완벽히 평안도 구성이라는 강역의 최북단에 대해 거리까지 알려주며 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처절함을 노래하고 있다.
김소월이 1923년 반도북쪽의 구성(龜城)으로 옮겨와 그의 고향에서 그의 고향이 6천리 떨어져 있다고 읊었다면, 이것을 어찌 해석하는 것이 정확한 분석일 것인가?
우리는 그동안 이러한 시에 대한 주지주의적 분석에 대해 모조리 서정주의로 강변하는 시대 상황에 매몰되었던 것임을 이제는 깨달을수 있다.
2.
대륙 한복판 복우산(伏牛山)자락에 있었던 한양에서 대륙 평안도 구성(龜城)까지는 직선거리 2,600km의 먼 거리이고, 강제이주된 현 반도의 구성에서는 직선거리 3,100km의 아득한 거리다. 6천리 거리가 된다.
구한말 조선을 다녀간 러시아인들은 조선의 거리개념인 리(里)가 자신들의 거리단위인 베르스타(верста)와 비슷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1베르스타는 1.0668km로 이를 환산하면 10리는 5.33km가 된다. 또한 다른 서양인들도 조선의 1리를 대략 530m로 산정하고 있다.
따라서, 반도로 강제이주당한 김소월은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진달래꽃>이나 <엄마야 누나야><산유화><금잔디>와 같은 서정시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이 시들은 모두 대륙 현 알타이산의 남쪽 기슭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고, 위의 시 <삭주구성>처럼 직접적인 거리를 표현함으로써 그의 고향 삭주구성이 무려 3천킬로미터(6천리)의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현 반도의 서울에서 구성까지는 직선거리 300km를 보여주고 있다. 600리 길이다.
김소월이 그 당시 서울에 온 것도 아니고 지명이동된 현 반도의 평양 위쪽 구성에서 시를 쓴 것인데, 어찌 시인이 자기 고향에서 고향이 6천리나 떨어져 있다는 모순된 시어를 쓸 것인가?
이 시가 교열되지 않고 살아있기에 우리는 김소월이 노래한 삭주구성을 통해 그의 고향 구성이, 강감찬이 거란의 대군(大軍)을 격파한 귀주대첩의 격전지가 명확히 조선사 오천년의 백두산인 현 알타이산의 남쪽 기슭에 있었음을 고증할수 있게 되었다.
소월이 강제이주당해 와 있던 반도 평양의 북쪽 구성(龜城)에서 명확히 6천리길-3,000km-의 거리에 우리 역사상의 귀주(龜州-구성)가 있었던 것이다.
삭주(朔州)구성(龜城) 1923년 작품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리(三千里)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
삭주(朔州)구성(龜城)은 산을 넘는 육천리(六千里)요.
물 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리(六千里)
가끔 가끔 꿈에는 사오천리(四五千里)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南北)으로 오며가며 아니합디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반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 텐고
삭주(朔州)구성(龜城)은 산 넘어
먼 육천리(六千里)
3.
이를 지도로 고찰해 보면 아래와 같이 볼수 있으며, 또한 이를 통해 우리 대륙조선사연구회가 고증한 조선의 평안도 구성(龜城)이 명확히 대륙 알타이산(백두산)의 남쪽 기슭에 존재했다는 주장이 정확했음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소월은 그의 시 <삭주구성>을 통해 진실의 역사를 노래한 것이리라.
2020.11.06.송계(松溪)
첫댓글 좋은 글과 연구에 감사드리며
늘 한 길만 보고 가시는 열정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카페 회원님들께서 올려주신 글을 열독하는 독자 입니다.
늘 좋은글과 연구에 감사 드리며
김소월과 삭주구성(朔州龜城) 육천리(六千里)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애국가 가사 중 후렴구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어디를 의미 하는 것 일까요?
이 반도땅도 3천리와는 어떤 연관도 없거니와 대륙조선의 강역도 3천리와는 연관이 없습니다. 단지 반도를 1200km로 규정하고 천리를 400km로 규정하여 3천리라고 한다면, 이 1리를 400m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일제였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애국가의 가사에 나온 3천리라는 가사는 일제 및 친일파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일제와 친일파들의 반도조선 고착화는 아주 악랄했음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