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삶을 보며
이 진 숙
아,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주방에서 설거지하다가 남편이 켜 놓은 TV 화면에 눈이 꽂혔다. 광주 어느 전통시장에서 천 원 백반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보였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이라 한다. 육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유언을 남기셨다. 어머니는 꼭 식당을 이어받아 배고픈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갈 수 있도록 하라며 간곡히 부탁하셨다 한다. 그때 막내딸인 그 여사장은 밥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어머니인 초대 사장은 무남독녀 외딸로 태어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성공한 사업가로 남부러울 게 없었다. 금은방과 슈퍼마켓도 운영하며 그 당시 2층 양옥집에 살면서 땅도 몇만 평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 하지만 사업 실패로 애써 이룬 사업과 수십억 재산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부잣집 사모님에서 순식간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었다. 명절에도 돈이 없어 아이들 밥을 굶길 정도로 궁핍해졌다. 밥 한 끼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때 처음 알았다. 쌀 한 톨의 귀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앞으로 좋은 일 하며 살기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젊다는 패기 하나만으로 단돈 십만 원을 들고 시골로 내려갔다. 주위에서 사정을 알고 보험회사 소장을 해 보라고 권했다. 다행히 외국계 보험회사에 소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영업소를 두 개나 늘릴 정도로 인정도 받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노후를 꿈꾸며 퇴직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지금껏 받기만 하는 삶을 살았기에 편안한 노후를 포기하고 남을 위해 살아보겠노라 마음먹었다. 주변에서는 한사코 말렸다. 사업만 했지 살림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으니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깨달은 그녀는 그때부터 천 원 백반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남은 인생은 따뜻한 밥을 지어 어려운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살고 싶었다. 밥과 반찬은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이 오면 올수록 적자는 컸다. 자식들이 준 용돈과 조금씩 번 돈은 어느새 바닥이 나버렸다.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아파 동네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얼른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종합 병원에서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도 받았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간과 폐에까지 전이되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1년이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병원 신세를 지며 일 년이나 식당 문을 닫아야 했다. 할머니 사장은 내가 죽더라도 이 식당은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하다 시장 상인회에 알렸다. 그 사연이 알려지면서 방송국에서도 연락이 오고, 신문에도 기사가 실렸다. 취재진은 할머니 사장님께 왜 밥값을 천 원만 받느냐고 물었다. 그냥 주고 싶지만 먹는 사람이 자존심 상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먹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따뜻하고 깊은 배려가 느껴진다.
어느 단체에서는 가게 문을 다시 열 수 있도록 내부 수리를 해 새 단장을 해주었다. 시장 상인들로 구성된 봉사자들의 손길로 밥집 운영을 다시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쌀이며 반찬이며 온정의 손길을 보낸다.
할머니 사장님은 항암치료를 받으며 다리에 마비가 와서 서 있기조차 힘들어도 식당에 대한 애착을 놓지 못하고 매일 가게에 나가셨다. 한때 수십억 원의 재산을 가져도 봤고, 또 돈이 없어 밥을 굶어도 봤다며, 그들에게 밥심은 삶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굶어 본 사람은 안다고 하셨다. 할머니 사장님은 이제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고통보다 더 큰 걱정이 있다고 하셨다.
시장에서 손수레를 끌며 좀약을 파는 할머니가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유일하게 그곳뿐이라 한다. 또 노점상을 하시며 생계를 이어가는 구십 넘은 할아버지는 여관에서 생활하시면서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 그분은 삼시 세끼를 다 그곳에서 드시고, 점심에 와서는 저녁거리까지 챙겨 간다고 했다. 그런 분들의 끼니 걱정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고 하셨다.
할머니 사장님은 병원에서 퇴원하고 식당을 이어받아 줄 후계자를 구하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후보자들이 찾아와 제각기 아픈 사연들을 쏟아내며 봉사하겠노라 하였다. 할머니는 단순히 봉사하겠다는 마음만으로는 힘든 일이라고 했다. 삶을 온통 바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할머니 사장님은 그토록 애착을 가지시던 식당을 남겨 둔 채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딸은 어머니의 뜻을 저버릴 수 없어 마음을 굳혔다. 언젠가는 막내딸이 식당을 받아 이어가 주기를 간곡히 바라던 할머니의 소원이자 유언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되었다. 어머니가 그러하셨듯이 딸 또한 살림을 해 본 적이 없어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처음엔 주방 직원을 두고 배워가면서 운영했다. 월급을 맞추기가 힘들어 어려움이 많았다. 매일 적자를 메꾸다 결국 사는 집 전세 보증금까지 빼야 했다.
월세를 내기 힘들어 가게를 접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 딸이 식당을 어렵게 유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에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역 신문사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아름답고, 딱한 사정이 세상에 또 한 번 알려지면서 각계각층에서 후원자들이 생겨났다. 구사일생으로 식당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지역에 기부자 모임에서도 후원을 해주기로 했다. 여기저기서 봉사자들도 몰려들었다. 도시가스 회사 사장님은 사비로 가스를 제공해 준다고 했다. 시장 곳곳에 얼굴 없는 천사들도 숨어 있었다. 생닭 다섯 마리를 두고 달아나는 분, 쌀 두 가마를 다른 사람을 시켜 보낸 분, 팔던 시래기를 문 앞에 두고 가는 분 등 시장 상인들의 크고 작은 온정의 손길이 줄을 이었다.
이대 째 식당을 운영하는 막내딸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녀가 다정히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리며 눈시울을 적신다. 오늘도 그녀는 소박한 밥 한 끼로 세상을 따뜻하게 물들이며 어머니가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모녀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참으로 고귀하고도 아름답다. 소박한 밥상에서 어머니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 어머니의 향기를 이어받아 꽃을 피우는 딸의 향기. 그 두 마음에서 핀 꽃의 향기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로 전해진다. 두 모녀의 향기는 진정 꽃보다 아름다웠다. 그 어떤 명품의 향수도 흉내 낼 수 없는 고귀한 향기, 따뜻하고, 달금하고, 향긋한 마음의 꽃향기를 품은 그 모녀의 향기가 행복의 밥상 위로 풍겨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