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한지 3년만에 드디어 새집을 짓습니다.
서울서 사업망하고 귀향. 귀향 5년만에 이혼하고 5년을 더 알콜로 방황. 어느날 정신차리고 농사짓는데 우울증 돋아 베트남 여행다녔었는데 갑자기 코로나.
그냥 핑계삼아 코로나 청정국 베트남에서 2년을 머무르면서 이리저리 인생 최고의 경험을 하고 빚만 잔뜩 짊어지고 2021년 말 귀국. 다시 농사4년째.
베트남 전국일주 오토바이로 두번하고 호치민에서 만난 필리핀 세자매와 식당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모를 소개받기로 함. 1년후 필리핀 방문. 지금의 마눌을 만나 연애 5개월만에 결혼약속하고 속전속결 2개월만에 결혼식,영어인터뷰 다 통과하고 F6비자 쉽게 내는듯 했는데 결핵소견서에서 이상이 생겨 잠시 현타옴. 약먹고 3개월후 이상없어서 다행이 비자 발급되고 바로 한국에 입국. 농사일 이미 시작이라 입국 다음날부터 일터에 따라다니는 마눌. 쉬라고 해도 하루종일 따라다님. 의외로 수준급 일솜씨. 기존의 5동비닐하우스가 8동이되고 12동 되는데 정말 순식간. 언니 3명 조카 2명 사촌2명 계절근로자로 초청하니 나이드신 분들이 비닐하우스를 갖다 주신다. 올해 24동으로 따블되고 내년부터 비닐 하우스 28동을 짓기로 했습니다.
길이 100 미터짜리 3중비닐하우스가 18개 , 2중비닐하우스 10개. 모두 고소득 작물을 할 수 있는 좋은 비닐하우스. 처가 식구들 많으니 최고의 소득을 연달아 달성.
드디어 착공식을 했습니다. 그 많은 빚 거의 갚고 ,부채 하나 없는 40평 2층 전원주택. 마눌과 처가 식구들 없이 불가능했으니 완전히 고마울 뿐입니다. 경량목조 2층으로 씨스템에어컨등 최고로 짓고 싶은데 그러려면 요즘 한창 수정중인 수박 10동꺼리가 잘 팔려야 할텐데요.
2008 년 금융사태때 일산에 54평 펜트하우스 강제처분 당한지 17년 만에 내 집이 생겨서 꿈만 같습니다.
옆에는 작은 찜질방에 야외식당도 작게 만들려고 합니다. 기회되면 코필식구들 초대해서 작은 잔치도 하고 싶네요. 보령에서 잠시 살 때는 죽고싶도록 힘들어 바다에 뛰어들은 적도 있었어요. 세놈 자식들과 노모가 어른거려 울면서 집까지 걸어온 기억도 엇그제 같은데.... ..
今我異昨我(금아이작아)
오늘 마눌이 입었던 옷의 등짝에 적혀있는 문구입니다. 깜짝 놀랐어요. 요즘 제가 살아가는 중심 철학? 혹은 심도있게 받아들이고 있는 인생관과 비슷한 문구거든요. 단순한 뜻은 "어제의 나와 지금은 나는 다르다". 문구에 나오는 사전적 의미 이외에 많은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을 해봤어요.
제 개인적인 삶을 곰곰히 돌아다 보면 어쩌면 이런 모든 고통과 부조리함도 사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뭣하러 일일이 반응하고 뭐가 옳고 그른지 따지려고 했더라고요.
무릇 세상에 희고 검은것이 애초에 있었나 하는 무상함에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하는게 숙명이고 나를 제외한 타인의 생각을 평가하고 바꾸려는 모든 노력들이 무의미한 행위는 아닌지 생각을 많이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다가오는 모든 오늘의 현실이 결국 나의 참된 자아이고 받아들여야 할 것들임을 자각합니다."
이것의 의미는 어제의 나를 집착하거나 내일의 나를 너무 기대하는 것도 경계해야겠다. 오늘도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단 하루라도 나의 의지대로 살아가게 하게 도와주십시요. 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눌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저리 주저리.
착공식 술한잔 마시고 취중에 글을 올려봅니다.
내년에는 처가에 2층집 짓자고 했더니 마눌은 절대 싫답니다. 부모님 위해 집 지어놓으면 전국에서 형제들 몰려와 산다네요. 돈으로 주면 평생 부모님 위해 파출부를 고용하고 싶답니다.
수박도 잘 크고있고.
마늘도 겨우내 잘 견뎌주었고.
애호박은 여전히 잘 수확하고 있고.
평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