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 가을여행
경춘선을 따라 달리는 시간여행, 지나간 젊음에 응답하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부는 복고 열풍은 잊고 지내온 젊음을 불러내 다시 한 번 그 시절을 아름답게 그려볼 수 있다는 데 인기의 비결이 있다. 리포터 또한 이런 영상매체의 영향으로 예전 추억에 푹 빠져있던 중 모처럼 아이들과 떠난 당일치기 여행에서 영화 ‘건축학 개론’과 케이블 TV의 프로그램 ‘응답하라 1997’에 이어 나의 젊음과 조우하는 셀프 드라마 한 편을 찍었다.
옛 경춘선길을 레일바이크로 달리며 떠난 시간여행은 엄마 아빠에게는 지나가버린 청춘을 떠올리는 잔잔한 그리움을, 아이들에게는 바로 코앞에서 기차레일을 따라 달려보는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준 시간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집에 있기 아깝고 짧게 지나가버려 더욱 아쉬운 이 가을, 경춘선을 달려보는 건 어떨까.
추억 속으로 떠나는 레일바이크
경춘선 길에는 누구에게나 아련하고 그리운 기억이 담겨있다. 청량리역 시계탑에 모여 '369'나 ‘007 빵’게임을 하며 강촌행 기차를 기다리던 MT, 덜컹덜컹 기차달리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아무 말 없이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던 첫사랑과의 데이트 같은 기억 말이다.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으로 사라졌던 그 추억의 길이 레일바이크 길로 다시 돌아왔다.
강촌 레일바이크는 각각 강촌역, 김유정역, 경강역에서 출발하는 3가지 코스가 있다. 김유정역에서 출발, 강촌역에 도착하는 코스(8km)와 강촌역에서 김유정역으로 가는 코스(8km), 그리고 강촌역 인근의 경강역에서 출발해 백양리역을 돌아오는 코스(6.2km) 등이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김유정역에서 출발하는 코스라고 한다. 출발점부터 내리막길로 이어지며 비교적 힘을 덜 들이고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고, 강촌역에 도착해 다양한 먹을거리와 즐길거리까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유정역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이용하려면 사전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이른 아침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김유정역. 도착해서 제일 먼저 눈에 띠는 조형물은 단연 강원도를 연고로 한 소설가 29명의 소설집 등을 배경으로 꾸민 북 스테이션이다. 김유정의 『동백꽃』, 『‘노다지』를 비롯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박경리의 『토지』, 이외수의 『칼』등 주옥같은 소설집들을 보며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북 스테이션에는 김유정의 소설 제목을 딴 ‘봄봄마트’와 카페테리아 등 편의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북 스테이션에서 향긋한 모닝커피를 마시며 문학의 정취에 빠져보았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레일바이크를 탈 시간.
김유정역~강촌역 구간은 주변의 경치가 일품이다. 험난한 산을 끼고 시원한 강줄기를 바라보며 달리는 북한강변은 드라이브 코스로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그 길을 레일바이크를 타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직접 느껴보는 것 또한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게다가 ‘춘천 가는 기차’라는 제목의 노래가 나올 정도로 우리에게 향수와 로망을 함께 주는 여행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특히 총 4개의 터널을 지나는데, 그 컴컴한 터널로 들어서면 지금의 나는 이곳에 남겨두고 마치 10여 년 전 풋풋했던 나로 돌아가는 타임슬립이 일어날 것만 같다.
어느덧 강촌에 도착하면 아까 느꼈던 타임슬립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10여 년, 20여 년 전 모습 그대로의 강촌역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청춘들이 남기고 간 강촌역 플랫폼을 가득 채운 낙서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10여 분 셔틀버스를 타고 레일바이크 출발지였던 김유정역으로 돌아오면서 오늘의 시간여행은 끝났다. 깊은 곳에 묻혀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 다시 음미하기에 딱 알맞은 정도의 짧고 강렬한 추억 여행, 강추한다!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
김유정역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사람이름을 역 이름으로 사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역명에서 알 수 있듯 이곳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은 『동백꽃』의 작가인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이다. 이곳에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지어 1930년대 우리 문학의 꽃을 피웠던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기념하고 있다.
김유정은 연희전문에 다니다 자퇴를 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금병의숙을 만들어 야학을 운영했다. 농촌계몽운동을 펼치며 소설을 쓰는데, 바로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았을 『봄봄』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김유정이 남긴 30여 편의 단편소설은 탁월한 언어감각에 의한 독특한 체취로 오늘날까지도 그 재미와 감동을 잃지 않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유정 문학촌’에 들어서면 『동백꽃』의 한 장면을 재현한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나’에게 사심을 갖고 닭싸움을 걸던 ‘점순이’와 닭 두 마리, 그리고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 이 장면을 시작으로 김유정의 생애와 작품집 등을 둘러볼 수 있는 김유정 기념전시관, 그리고 고증을 거쳐 새로 지어진 김유정 생가 등 작지만 알차게 꾸며져 있다. 학창 시절 읽었던, 드문드문 기억나는 그의 맛깔 나는 소설들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실레 이야기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김유정 작품 12편의 배경이 된 실레마을은 마을 전체가 김유정 문학이라 할 수 있다. 김유정은 실레마을에서 목격한 일을 처녀작 『산골나그네』의 소재로 삼았고 이곳에서 여러 작품을 구상하였으며, 마을의 실존 인물들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실레마을의 ‘실레’라는 이름은 마을의 지형이 떡시루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시루의 사투리이다. 이곳에 김유정의 이야기를 따라 도는 ‘실레 이야기길’이 조성되어 있다.
김유정역에서 김유정 문학촌을 거쳐 금병산 허리를 따라 걷는 5.2km 거리의 ‘실레 이야기길’은 고즈넉한 시골길과 경사가 급하지 않은 산속 숲길 등으로 이루어져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코스 중간 중간에는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등 김유정 문학작품의 배경이 된 곳들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다.
꼭 김유정 문학을 음미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밤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 온갖 나무로 둘러싸인 조용한 산골길을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면서 다람쥐도 보고, 작은 늪에 사는 청개구리도 만나고, 밤도 줍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다보면 한층 깊어진 가을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하이킹코스가 된다.
중간제목: 담백한 막국수와 향긋한 한방차로 즐기는 가을미각
당일치기 짧은 여행이라고 해서 맛있는 음식을 취하며 느끼는 만족감을 간과할 수는 없는 법. 김유정역 인근 괜찮은 맛집은 어디가 있을까 찾아보았다. 우선 옛 김유정역 맞은편에 있는 ‘시골장터 막국수’. 이름처럼 식당도, 맛도 시골스러운, 그래서 오히려 정감 있는 맛집이다. 가옥을 개조해 만들어서 좁고 불편하고, 그리고 다소 허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막국수와 편육, 메밀전병, 감자전까지 어느 하나 빠뜨릴 수 없을 만큼 다 맛있다. 레일바이크를 열심히 타고 나서 찾아갔기에 시장이 반찬이라고 더 맛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첫째, 셋째 일요일은 쉬니 참조하시길.
마지막으로 ‘실레 이야기길’ 산책을 마치고 찾아간 곳은 ‘시루’. 담장도 없이 ‘차와 식사 시루’라는 자그마한 간판으로만 이곳의 정체를 알리고 있는 모습에 눈길이 가서 들어섰다. 이곳 또한 가정집을 개조했는데, 집 안으로 들어서니 깔끔하고 정갈한 분위기가 음식점이 아니고 마치 고향친구 집을 방문한 듯 편안하다. 코다리정식, 오삼두루치기 등의 식사 메뉴와 함께 쌍화차, 생강차, 대추차 등의 한방차가 준비되어 있다. 창밖으로 비치는 가을 오후의 따스하고도 선선한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의 짧은 여행을 마무리했다.
박혜준 리포터 jennap@naver.com
<여행정보>
강촌레일파크
1일 5회 운행(9, 11, 13, 15, 17시 출발)
*동절기(11월~2월)에는 17시 운행안함
2인승 25,000원 4인승 35,000원
예약: 홈페이지(www.railpark.co.kr) 혹은 전화(033-245-1000~2)
김유정문학촌
문의: www.kimyoujeong.org (033)261-4650
위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 868-1
개관시간: 9:00~18:00(동절기 9:30~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신정, 설날, 추석 당일 휴관
시골장터 막국수
위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 861-14
문의: (033)262-8714
차와 식사 시루
위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 871-1
문의: (033)262-5889
출처:강남서초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