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정몽준 의원 부인 김영명씨
“뜻 있으면 가게 하는게 아내 도리”
“남편 화 낼 때도 있지만 뒤끝 없어”
서울 삼청동 입구 ‘더 레스토랑’ 1층 카페.
대통령선거 출마선언을 앞둔 정몽준(鄭夢準ㆍ51) 의원의
부인 김영명(金寧明ㆍ46)씨는 인터뷰 장소를 이 카페로 정했다.
지난 8월 28일 오전 10시, 비 내린 다음날이라 날씨가 청명(淸明)한
가운데 카페 유리창 밖으로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청와대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김씨는 수려한 외모, 유창한 영어 실력, 세련된 매너 등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준비된 퍼스트레이디’라는 평(評)을 하기도 한다.
김씨가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최근 들어 주간조선이 처음이다.
- 지난 8월 16일 지리산 산행(山行)에서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취재진들 앞에 섰는데요.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사진 기자분들이 편안하게 하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피할려고 해도 카메라를 피할 수 없다면서요.”
- 정 의원은 여러 차례
‘부인이 반대하고 있다’ ‘중립이 되었다’
등의 얘기를 했습니다. 대선 출마를 놓고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고갔나요.
“부부라는 관계는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는 해서는 안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개인의 소신이나 신념을 쉽게 굽혀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빠가 뜻이 있으면 그 길을 가게 하는 게 아내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 남편의 대통령 출마에 대해 처음에 왜 반대했습니까.
“그런 자리를 목표로 간다는 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쉽게 오를 수 있는 자리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반대했죠. 물론 저는
따라가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볼 게 많았죠. 아이들 생각,
가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생각 안해볼 수 없지요. 사실 그 자리가
제일 높은 자리이기 때문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공직(公職)의 책임감에
충실하려면 가족에 대한 희생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 만일 정 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부인이 더 행복질 것으로 생각합니까.
“(웃음)그건 참 어려운 질문 같아요.
언젠가 아빠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행복이 최고의 인생 목표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자기만 좋고 자기만 행복한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 친정 아버지(김동조 전 외무장관)는
사위의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이 어떻습니까.
“항상 격려해주시는 입장이세요.
어떤 길로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늘 격려하세요.”
- 만일 대선에 나가게 되면 기자들이 평창동 자택에 찾아올텐데,
각오가 되어 있나요.
“매일 공개를 해야 하나요? 한번만 오시면 안되나요?(웃음)
매일 하는 건 무리 같아요. 생활에 지장을 주잖아요.”
“연애 너무 짧아? 별 기억 없어”
- 미국 웰즐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정 의원과 만나
연애결혼을 했는데, 어떤 점을 보고 결혼하기로 결심했나요.
“연애가 너무 짧아서 특별한 기억이 없어요.
만난 지 1년만에 결혼했거든요. 어떻게 프로포즈를 했는지도 기억이 안나요.
조금 억울해요.”
- 정 의원은 대선 주자 중 ‘첫사랑은 현재의 부인이 아니다’라고 말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아십니까.
“어머 그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했어요? (웃음)
알아요. 첫사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생 때 어떤 여학생을 만나
좋아했는데, 결혼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 만일 정 의원을 만나지 않았다면 웰즐리대학을 졸업한 뒤
어떤 일을 하고 싶어했습니까.
“잘 모르겠지만 공부를 더했을 겁니다. 그리고 직장을 잡았겠지요.”
- 하고 싶어하는 일을 못한데 대한 아쉬움이 있을 텐데요.
“아이들 다 크고나면 시골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잘은 못 그리지만?”
- 자녀가 대학 2학년 아들, 대학 1학년 딸, 고 3 딸,
초등학교 1학년 아들 넷입니다. 어떻게 서른아홉살에 늦둥이를 낳게 되었나요.
“가족계획 의식이 부족해서 (말을 더듬거리며) 그냥 그렇게 됐어요.
사실 넷째를 가졌을 때 굉장히 무안한 경험이 많아요. 병원에 가면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의사가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라고
묻기도 했어요.”
- 어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저하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자녀를 네명 난 사람으로서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그동안 아이를 너무 많이 낳아서 국가정책에 역(逆)으로 가는 게
아닌가 미안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애국하는 입장이 된 것 같네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네요.(웃음)”
- 배운 여성들의 출산 기피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를 낳으면 엄마가 더 힘들어요. 애가 엄마만 의지하잖아요.
아이가 둘이 되면 아이들 생활이 생기니까 엄마가 독립될 수 있어요.
자녀를 몇명을 낳는 지는 각자의 형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대학 1학년생인 딸은 자기는 결혼해도 아이를 안 낳겠다고 말하더군요.
좀더 성숙해져서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인생이란 것이 조금씩 경험의 폭(幅)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혼도 해보고 아이도 낳아서 부모 역할도 해보며 성숙해져가는 거죠.”
- 1996년 정 의원은 늦둥이를 낳고보니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다 이쁘지요. 다만 20대에 아이를 낳은 것과 40대에 아이를 얻은
느낌이 다를 뿐이지요. 늦게 태어난 아이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게 있나 봐요.”
“퍼블릭 서비스보다 가족이 더 중요”
- ‘퍼블릭 서비스’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가족이 더 중요하죠. 가족원이 모여 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빠는 바깥 일을 하고 가정은 엄마가 맡잖아요.
그런데 어느 게 중요하냐고 묻는 것은 참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 같아요.”
- 미국,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장관, 정치인들이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공직을 포기하곤 합니다. 더 이상 가족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솔직히 (남편이 가족과) 많은 시간을 못 보낸 것은 사실이지요.
어떤 분은 양(量)보다는 질(質)이라는 말도 하더군요. 아이들이 아빠가 집에서
오손도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배우기도 하지만 아빠가 밖에서 하는 것을
보면서 배우기도 합니다. 간접적으로 삶을 통해서 가르치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그걸 이해를 못해요.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고서 비로소
그걸 이해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 정 의원이 자녀교육에서 강조하는 점은 뭡니까.
“아빠는 늘 그랬어요. 공부 너무 많이 시키지 말고 멍하니 천장 쳐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구요. 저도 다른 엄마들처럼 학원에 보내고 그랬죠.
아빠는 아이들에게 건강이 중요하니까 운동은 많이 시키라고 강조했어요.
막내아들이 일곱살인데 키가 또래에 비해 커서 일찍 동네 초등학교에
보냈는데 1학기 때 보니까 코피를 줄줄 흘리더군요.
유치원 때처럼 수영 보내고
축구교실 보냈는데 그게 힘들었나봐요.”
- 초등학교 3학년 때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외국에 나가 대학까지 마쳤습니다.
또 부유한 집안에 시집을 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잘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도 있을 겁니다. 너무나 한계가 있는 생활을 했으니까요.
미국 생활이 오래되다보니 여러가지 모르는 게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빠는 늘 저보고 세상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라고 말합니다.”
-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어느 분의 모습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합니까.
“육영수 여사께서 훌륭하셨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을 자주 들으니 실제로 그런 것 같던데요. 다른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주변에서 육여사님 말씀을 많이하세요.”
- 남편에 대해서 가장 불만인 점이 뭐가 있습니까.
“많죠. 하나를 꼽기가 힘드네요. (웃음) 무슨 흉을 골라야 될지?.”
- 밖에서는 가끔 불 같이 화를 낸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화를 많이 낼 때도 있지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니까 화를 내는 건 당연하다고 봐요.
하지만 아빠가 좋은 점은 그게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뒷끝이 없어요.
그때 뿐이어요.
또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금방 사과도 해요.(웃음)”
- 여섯식구가 일주일에 한번은 함께 식사를 합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가능했는데, 애들이 커서 둘이나 대학생이 되니까
현실적으로 어렵데요. 이런 걸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님(고 정주영씨)이
왜 이른 아침에 함께 모여서 식사하는 것을 고집하셨는지 이해가 되요.
룰(rule)이 없으면 함께 식사하는 게 불가능해요. 저마다 스케줄이 다르니까요.”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map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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