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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뱀과 십자가
(사탄의 묵주에 대한 단상)
성경의 세계에서 뱀은 교활한 짐승이면서 지혜를 상징한다. 허물을 벗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뱀이 교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다 독을 품은 뱀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 때문에 악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뱀을 악의 화신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신교 사회에서는 뱀을 신으로 숭배했다. 이집트인들은 뱀의 여신인 '부토'를 파라오를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했고, 가나안 지방의 대표적 신인 '바알'의 상징도 뱀이었다. 그러나 구약의 모세로 하여금 파라오의 뱀을 집어 삼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뱀이었고(탈출 7, 12), 독사에게 물린 백성을 구하게 한 것 또한 구리 뱀이었다.(민수 21장) 그리고 ‘뱀처럼 슬기롭게, 비둘기처럼 순박하게’(마태 10, 16)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것을 보면 고대 중동 사람들은 뱀을 이중적으로 해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경의 부정적인 뱀에 대한 인상에 영향을 받은 유럽인들은 여전히 뱀을 사탄을 상징하는 짐승으로 이해한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은 교활한 속임수로 인간을 파멸의 길로 이끈다. 뱀의 혀를 보라. 두 가닥이다. 뱀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감언이설의 대명사이다. 그리고 창세기는 뱀이 결국 하와의 후손들에게 원수 취급 받을 것이라 예언한다. 그래서 두 번 째 하와인 성모 마리아는 레지오 성모상에서 보듯이 항상 뱀을 짓밟고 있다.
그러나 뱀은 꼭 나쁜 이미지만 있는 게 아니다. 요즘도 병원이나 구급차의 로고는 지팡이를 감고 있는 뱀 두 마리이다. 뱀이 결국 생명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인데, 다음의 그리스 신화가 이를 말해 준다. 아폴로의 아들 아스클레피우스는 의학의 신으로 유명하다. 그는 꿀 독에 빠져 죽은 사람까지도 살렸다. 요는 그 항아리의 시체로 뱀이 들어가는 것을 본 아스클레피우스가 카두세우스라는 자신의 지팡이로 내려 쳐 뱀을 죽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른 동료 뱀이 입에 약초를 물고 와 죽은 뱀을 살리더라는 것이다. 이를 본 아스클레피우스는 얼른 그 약초를 찾아 죽은 사람에게 먹인다. 결과는 놀랍게도 죽은 자의 소생이다.
한편 동양의 중국 신화를 보면 뱀은 풍요다산과 영혼불멸의 상징이다. 인수사신(人首巳身)의 여와와 복희가 서로 뱀의 형상으로 뒤 엉켜 있는 벽화가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세상 창조를 이 둘의 결합과 조화라고 믿었다. 게다가 이들은 중동 지역과 달리 뱀의 탈피를 재생으로 이해했고, 따라서 이를 영혼불멸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나 암각화를 보면 유독 뱀이 서로의 꼬리를 무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지동설을 믿었던 샤먼들의 우주관을 표현한 상징기호라고 볼 수 있다. 천체의 변화를 고대 샤먼들은 우주 뱀의 형상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최근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탄의 묵주’는 누군가가 천주교 신자들로 하여금 아직 교회의 공식적인 금지 발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에 빠뜨리고 정령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획책하는 악의 고단수 같다. 요는 묵주의 십자가인데, 예수님을 뱀이 휘 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횡 각 끝부분 오각형 안에 태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뱀은 사탄이고, 오각형은 악의 상징인 염소를 나타내며, 태양은 고대 이집트의 ‘라’ 신과 로마의 ‘미트라’ 신, 즉 태양신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설사 실체도 불분명한 사탄 숭배 무리들이 의도적으로 이런 묵주를 만들고 배포했다고 치자.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분명히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려 계시고, 묵주 알의 구성이 공인된 묵주의 그것과 같은데, 대체 로사리오를 바치는 데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기도의 효과가 악한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혹자는 이 묵주 때문에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참, 어이가 없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의 실체를 확인할 길도 없지만, 실제 있다고 해도 그렇게 믿는 것이 전통 가톨릭 신앙에 위배되는 미신이기 때문에 그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가톨릭은 정령주의를 배격한다. 정령주의란 물질과 사물에 영이 깃들여 있다는 발상이다. 예를 들면 원시시대의 사람들은 큰 나무나 바위를 보고 거기에 신이 머물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고대 로마에서 꽃을 피우는 데 만신전이 그 예이다. 로마인들은 심지어 집안의 숟가락에도 신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범신론적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정령주의는 결국 성모상을 신주단지로 둔갑시킨다. 그 자체에 신비한 힘이 있기 때문에 절대 파손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일 실수로 깨지면 하느님께 벌 받을 것이라 두려워한다. 그러나 모든 성물은 그저 거룩한 신앙생활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물론 그 도구를 일반 물건 다루듯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가령 파손된 성상이나 묵주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독성죄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성물을 중시하여 집안을 성물로 도배하고, 그것도 부족해 성지순례 가는 곳마다 특별한 성모상과 묵주라면서 광적으로 수집하고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것은 왜곡된 신심이다. 중요한 것은 성물을 통해 거룩해지고 열심해 지는 우리의 신심과 신앙이다. 묵주기도를 자주 그리고 제대로 바치지 않으면서 차에 매달고 다녀야 자신을 사고로부터 지켜준다고 믿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건강하지 못한 신심이다. 그러한 용도의 스카풀라와 묵주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부적과 다름없다. 사제는 신자들이 묵주를 들고 와서 청하는 준성사에 축복 외에 다른 것을 기도하지 않는다. 축복을 받는 것은 물건 자체보다도 그 물건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의 인격체이다.
더 나아가 뉴에이지나 프리메이슨 같은 것을 지나치게 의식해서는 안 된다. 물론 교회는 이들의 반그리스도교적 요소를 배격한다. 가령 뉴에이지 사상 중에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물고기자리에서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뜻하는 물병자리로 세상의 중심축이 옮겨졌다는 논리는 이단이다. 또한 그들은 개인과 집단의 영적인 자각을 추구하며 유일신이 아니라 범신론적인 사상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2세기 교회를 위협했던 영지주의의 또 다른 부활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이것을 너무 의식해서 ‘야니’가 지휘하는 교향악단이 마귀 떼라는 둥 ‘시크릿 가든’ 음반을 듣는 것도 이단이라는 둥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미군 사령부인 펜타곤이 악마의 도형이니 그 배후에는 사탄 숭배자들이 있다는 둥 미 1달러 뒷면에 피라밋 정상의 눈은 프리메이슨이 사주한 악마 숭배자들의 도상이라는 둥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그리스도교는 악과 세속으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고 있지만 결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거짓 프레임에 끌려 다니지 말고 보편적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좋겠다. 우리가 지내는 파스카 성삼일은 원래 유대인의 파스카(=과월절) 축제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의 파스카 축제도 따지고 보면 가나안 원주민의 농경 축제를 빌려 거기에 종교적 색채를 가미한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가 성탄절로 지내는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을 정확히 추산해서 제정한 대축일이 아니라 당시 로마인들이 믿었던 태양신, 즉 미트라 축제일에 우리의 새로운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대체한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미트라 축제는 동지를 기점으로 날이 길어지니 당시 로마인들은 새해를 맞아 축제를 지낸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교는 이방인들의 미신적 요소는 배제하고 그리스도교를 장려하고자 의도적으로 그 날에 크리스마스를 지내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빛이기 때문이다.
이러게 보자면 가톨릭교회는 이단을 흡수한 혼합종교가 아니라 이방인들의 문화를 재료 삼아 이교도들에게까지 하느님을 전한 보편종교임이 틀림없다. 그런 측면에서 사탄의 묵주를 둘러싼 논박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이설에 현혹되어 묵주를 가위로 잘라 쓰레기통에 버리는 독성죄를 더 이상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에서 만든 플라스틱 묵주면 어떠한가? 그리고 태양 문양이 박혀 있으면 어떠한가? 또 뱀이 예수님을 휘감고 있으면 어떠한가? 세상에 저렴한 물건들 치고 ‘메드 인 차이나’ 아닌 것이 있는가? 또한 태양은 오히려 우리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한편 뱀은 민수기에 등장하는 모세의 구리 뱀이 아닌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 3, 14) 또 십자가의 끝이 오각형이면 어떻고 사각형이면 어떻고 하트 모양이면 어떠랴? 예수님만 있으면 십자가가 아닌가? 아래의 그림을 참조하라.
(성전 벽화 중 구리뱀과 십자가)
(일명 사탄의 묵주)
(성물방의 오각형 십자가)
첫댓글 amen
우리의 믿음든든만 있으면 악마의 유혹도 거뜬히 물리칠 수 있을것 입니다.
미처 몰랐던 사탄의 묵주... 믿음으로 저 산도 옮긴다고 안했습뎌?
아마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메주고리예성모님을 음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 ~믿음으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