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아픔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많은 상실을 겪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일 수도 있고, 가까웠던 관계가 멀어지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실의 경험은 큰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째는 “물질적인 상실"인데 손때가 묻고, 추억이 서리고, 애정이 깃든 물건을 잃었을 때 애착한 만큼 상실감도 커지게 됩니다. 특별이 대체품이 없는 물질은 더욱 상실감이 깊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된 외적 가치를 지닌 물건을 잃었을 때는 극심한 고통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관계의 상실"인데, 무엇을 잃었다고 반드시 강한 고통이나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나와 관계가 있는 것일수록 상실의 고통이 큽니다. 인간은 모태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관계를 맺으며 살다 관계를 상실하게 됩니다. 죽음이나, 병, 은퇴, 실직, 이민, 이혼, 버림받음. 실연 등과 같은 관계 상실로 큰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는 “내적 심리적 상실"인데, 이것은 "기대와 꿈의 상실"입니다. 기대와 꿈의 상실은 청소년기나 성인기에 많이 일어납니다. 이때 사람들은 기쁨이나 자신감, 사랑, 만족도 함께 잃어버리게 됩니다. 넷째는 "기능적 상실"인데 노화나 질병, 혹은 사고로 몸의 일부분이나 신경계의 어떤 기능을 잃고 큰 슬픔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잠시 빌려온 것에 불과합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그들의 주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현실은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유권 역시 영원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영원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으며 모든 것을 언제까지나 소유하고 있으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누군가 산다는 것은 잃어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말이 옳다면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상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상실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상실의 아픔을 잊기 위해 일에 몰두하고, 누군가는 사람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갈 가고, 누군가는 술에 의존할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곧 상실이고, 상실이 곳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생 상실과 싸우고 그것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상실 없이 살면 변할 수 없고 우리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어 정신을 놓고 이리저리 헤매던 고타미에게 부처님은 아이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조건은 겨자씨 하나를 구해 오는 거였는데 단,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에서 구해 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에 이집 저집 돌아다니던 고타미는 그런 집이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죽음은 괴로운 것이지만 그것을 피해 갈 수는 없다. 피해 갈 수 없다면 '직면'해야 한다.
고통에 직면하게 되면 우선 만나게 되는 것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입니다. 모두가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들입니다. 그것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목격자로 함께 서 있는 것입니다. 이 목격은 주의 깊은 알아차림. 연민의 마음을 담은 알아차림입니다. 이렇게 직면했다면 그 다음은 소멸입니다. 불교 경전에서는 흔히 '고(苦)의 소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은 집착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많이 알았을수록 괴로움을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실은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어려운 배움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 보다 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상실로 인해 고통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결국 더 강해지고 더 완전한 존재가 됩니다. 상실의 감정이 복잡하든 단순하든 우리는 자신만의 시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취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볼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상실의 아픔은 하루아침을 무디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틈에 난 상처가 회복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듯, 마음의 슬픔과 상처도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상의 눈물은 사람이 무뎌진다해도 그 기억은 가슴 한곳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머리로 가슴의 슬픔을 잊으려고 애를 쓸 수는 있지만, 결국은 시간이 기억을 지우면서 천천히 슬픔을 지워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인간이 겪는 가장 큰 슬픔과 고통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한몸처럼 살았던 배우자와 사별했을 때 그 상실감은 극복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많은 경우 죽음을 부정하며 현실을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의 감정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서 상실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거나 반대로 모든 일에 무감각해지게 됩니다. 사별의 슬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뎌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별 초기라면 충분히 슬퍼하고 지금 당장 슬픔에서 벗어나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어떤 상황에도 또 적응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떠난 사람을 언제까지 안고 슬퍼할 수는 없습니다. 그 흔적들을 가까이 두면서 슬픔을 붙들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피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려면 '놓아주는 것'입니다. 붙잡고 있으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놓아준다는 것은 그 상황에 대해 감정적으로 집착하지 않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소소한 일상의 기쁨들로 덮으며 사는 게 인생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게 됩니다. 불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마음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쓰고, 그 마음의 주인이 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 불교입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 우리 불교에 처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참선이나 염을 독경입니다. 열심히 참선을 하거나 염불이나 독경을 통해서 마음의 평정을 찾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