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군 전투부대가 월남에 처음 상륙하여 몇번인가 베트콩과 쟝글에서 전투를 치루고 난뒤 병사들의 입에선 이런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가난한 나라의 군대이기 때문에 부자집 미국애들이 받는 것만큼 월급을 요구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과 싸우는데 있어서 장비의 차별을 둔다는 것은 너무하지 않는가?"
이것은 당시로 보면 국군병사들의 불평이나 불만일수 만은 없었다. 자그만치 60KG나 되는 군장을 짊어지고 거기에다 구식 M1 총을 들고 섭씨45도의 쟝글 속에서 베트콩과 싸우는 우리 병사들의 고생이란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에 비해 미군들은 어떤가?
M16 자동소총을 무장하고 허리에 탄환과 수통만 차면 그만이다. 그외의 무거운 장비나 식량, 탄환, 물탱크등 일체의 필요한 것은 전투지역까지 헬리콥터로 운반 투하하여 주기 마련이다. 이러한 미군과 한국군을 비교해 본다면 그야말로 언어도단이 아닐수 없다 하겠다. 지금은 우리국군들도 모두 성능이 좋은 M16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때는 기자도 그들 병사 못지 않게 분노를 느꼈었다.
기자가 여기서 이러한 장비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은 월남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 국군들의 처우 문제를 그대로 지나칠수 없기 때문이다.
1966년, 월남 전선에서의 우리 국군장병들의 봉급은 다음과 같았다.
▲ 일병 : 33불 ▲ 하사 : 45불 ▲ 중사 : 60불 ▲ 상사 : 75불
그리고 소위가 120불, 대위가 150불, 소령이 165불 대게 이런 월급(30일 기준)이다.
이러한 파월장병들의 봉급의 액수는 한국에 있어서의 보수에 비하면 약간 많은 금액이라 할지 모르나 월남 전선이라는 같은 환경에서 싸우는 미국이나 딴나라 병사에 비하면 그 차이가 엄청난 것이다. 같은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할때 보수가 미군 병사의 1/10도 못된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월남 전선을 방문하는 국회의 여,야 의원들도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모두가 크게 놀람을 표시하였는데 월남전에 파견되고 있는 한국군의 보수가 딴 나라 군대에 비하여 너무나 큰차이가 있음은 병사들의 심리에도 크나큰 악 영향을 미치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파월 용사들의 과중한 전투 임무에 비하여 병사들의 하루 보수가 겨우 1불 남짓 밖에 안된다면 그들의 사기는 고사하고 십리적인 위축과 열등 의식때문에 전투임무 수행에도 많은 지장을 초래할 것이며 국가적인 위신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군 병사들의 생명이라해서 미국이나 딴 나라 병사들의 생명보다 값이 쌀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생명의 귀중함은 미국군이나 한국군이나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월 한국군 병사들의 월급날은 매월 25일이다.
이날이면 우리병사들은 적은 봉급이지만 즐거운 한때는 가질수 있다. 값비싼 술은 마실수 없지만 진로나 도라지 위스키에 오징어를 뜯으며 잠시나마 고국에의 향수를 달래기도 한다.
기자는 디안 기지에서 그들의 월급날을 맞은 적이 있다. 기자는 아마도 이날 일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그날 주보 사병식당에서 어떤 젋은 사병이 4홉들이 진로병과 비닐봉투에 든 오징어 한마리를 들고 기자 앞으로 다가 왔다.
"기자선생님, 제가 술을 한잔 살테니 같이 드십시다. 오늘 제 주머니에 소주쯤은 마음껏 마실만큼 돈이 있습니다."
그 병사는 이미 취해 있었다.
"좀 취한 것 같은데 왜 술을 마셔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돈을 쓸때가 없어서 그래요. 그래서 술을 마시자는 것이죠."
이렇게 말하는 그 병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돈이 쓸때가 없다니요?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요?"
기자는 그 젋은 병사가 따라 주는 진로 소주잔을 받아 앞에다 놓으며 이렇게 물었다. 그 젋은 병사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젋은 병사의 출신지는 강원도 K군 가난한 집안에서 홀어머니를 도와 살다 군에 입대 한 것은 2년전 이었으며, 그리고 월남 전선에 온것은 3개월 밖에 안되었다고 했다. 첫달과 그 다음달 월급을 절약해서 20불을 어머니께 보냈더니 몇일 전에 다음과 같은 편지와 함께 그 돈이 되 돌아 왔더란 것이다.
-[네가 보내준 돈은 고맙게 받았다만, 너의 월급이 하루에 몇백원도 채 안된다는데 먼 나라에서 병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겠느냐? 너가 보낸 돈을 도로 보내니 이곳의 애미 걱정은 말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마음껏 사먹고 몸 건강히 잘 싸워 나라에 충성하고 돌아오기 바란다. 여긴 너가 좋아하는 옥수수가 한창이다만은 거기에도 옥수수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젋은 병사는 기자에게 내 보여 주었던 노란 봉투의 편지를 군복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이 전장터에서 돈 타령을 할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에게 월급이라도 많이 받는다는 자랑이라도 하고 싶군요."
그날 기자는 그 젋은 병사와 진로를 주고 받으며 아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월남 전선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국군 병사들의 노고는 참으로 이루 헤아릴수 없는 것이다. 우리 병사들이 전투에 임할때의 적은 베트콩이나 월맹군뿐이 아니다.
열대성 말라리아와 싸워 이겨야 하며 쟝글속에서 독충과 독사를 경계하여야하며 섭씨 45도의 더위 속에서 갈증을 참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충들은 말로는 하기 쉬우나 모두가 생명을 걸어야할 일들이다. 하지만 우리 병사들은 이러한 피눈물나는 곤경 속에서도 언제나 불굴의 투지로 말없이 용감하다.
딴나라 군대들의 손 한번 못댄 베트콩들의 20년 아성을 무너트리고 베트콩들을 생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우리 국군병사들에게 보수 문제로 하여 열등 의식을 느끼게 하면 되겠는가?
준 전시하에 처해있는 우리나라로써 미국과의 관계등을 참고할때 파월장병들의 처우개선 문제가 쉽게 해결될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어떤 난국을 무릅쓰고라도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토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