啐啄同時(졸탁동시)
어제 에버그린 모임 에서 우연히 한 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에버그린 아카데미는 워낙 소통의 공간이다 보니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한 두 번 마주치다 보면 친해져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 분은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셨다. 젊었을 때 영어
선생님도 하셨고 여러 분야의 학문을 공부하셨다고 하니 나름의 내공과 식견이 높아 보였다. 그 분이 하신
말씀은 졸탁동시(啐啄同時)에 대한 것이었다. 어미 닭이 알을 품은지 21일 정도가 되면 알 속의 새끼가 알 껍질을
톡톡 쪼는 데 이것을 “졸(啐)”이라고 하며 그 소리를
듣고 어미 닭이 밖에 알 껍질을 쪼아 주는데 이를 “탁(啄)이라고 한다. 이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건강한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새끼와 어미가 동시에 알을 쪼지만, 그렇다고 어미가 새끼를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미는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데 작은 도움만 줄 뿐, 결국 알을깨고 나오는 것은 새끼 자신이다. 만약 어미 닭이 껍질은
깨어주게 되면 병아리는 건강을 잃고 얼마 후 죽게 된다.
이는 인간 소통의 문제로도 풀이된다. 내 안의 소리는 “졸”을 외치는데, 상대방이
그 소릴 듣지 못하거나 못 들은 척 하면 건강한 소통이 이루어 질 수 없고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졸”하는데 내가 “탁”하지
못하면 이 또한 건강한 소통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안과 밖, 너와
내가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타이밍은 맞출 때만이 건강한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껍질을 경계로 두 존재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이 비유는 결국 이 세상은 혼자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타인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것이 사물과 사물, 인간과 인간사이든 또는 서로 섞여있는 관계이든 간에 "줄(啐)"하고 "탁(啄)"할
상대방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연인, 부부,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 기업과 고객, 정치와 국민, 국제간의 관계 등등----. 이 모든 개체들이 상호 어떤 관계 하에서
같은 마음가짐으로 서로에게 다가설 때 비로소 어떤 일이 성사되고 그 일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啐啄同時(줄탁동시)의 묘는 기다림에 있다. 서로가
필요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만들기 위해 늘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생각하고 행동함을 뜻하는 "啐卒同時(줄탁동시)"의 결과로 나타나는 어떤 하나의 완성, 그 완성이야 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졸탁동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전혀 없고 단순한 정글의 법칙만이
만연한 경쟁사회에 내몰려 자신의 “졸”만 외치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졸탁동시”라는 사자성어가 정말 절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같은 정치판에서는 ….
내가 줄(啐)하고 싶을 때, 탁(啄) 해 주실 분은
바로 그대 뿐입니다! *^.^*
Sandy
첫댓글 누군가가 '줄'을 외칠 때 '탁'으로 응답할 수 있다면 예수님의 가르침 중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요,
내가 '줄'을 외칠 때 '탁으로 답해줄 이가 있다면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이겠네요.
그리 살아가겠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