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어휘, 유선경, 앤의서재, 2022
마음이 길을 잃고는 한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나아가 이런 생각으로 괴로운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지?", "나는 왜 행복하지 않지?“
우리가 살면서 몇 번쯤이고 자문하는 앞서의 질문들은 사실상 '감정'에 대한 물음이다. "네 마음이 어때?"라는 질문보다 "네 감정이 어때?"라고 묻는다면 희미하게나마 가닥을 잡는다.
그러나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당연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감정'을 깊숙이 파묻고 '이성'이라는 널빤지로 못을 쳐놓고 살았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버려야 한다고까지 세뇌 받았다. 감정은 숨기고 다스리고 제어해야 할 작은 악마 같은 취급을 받았다.
이러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자기 삶의 나침반이다. 자신의 감정을 '좋다', '싫다', '나쁘다' 정도로 뭉뚱그리지 않고 기쁨, 슬픔, 분노, 증오, 불안, 기대, 신뢰, 놀람 등으로 구별하고 그에 알맞은 어휘를 붙여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후련해진다. 나아가 나침반이 되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각각의 감정은 내 인생의 징후이며 각기 다른 해석과 해결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가렵다'와 '간지럽다'를 구분하지 못하겠노라 했던 지인이 있었다. '간지럼'이 뭔지 모르냐고 물었더니 아는데 그게 '가려움'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긁고 싶으면 가려움이고 웃기지도 않은데 웃음이 나면 간지럼이라고 답했던 것 같다. 간지럼을 타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딱히 맞는 답은 아니었다. 그런데 만약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간지럼을 타는 사람을 박박 긁어주면 어떻게 될까. 반대로 가렵다는 사람한테 간지럼을 태우면 어떻게 될까. 감정에 있어 대표적으로 '슬픔'과 '분노'가 그러하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부지불식간에 스스로 속이고 왜곡한다. 여기에서 크고 작은 고통이 생겨나고 마음이 갈 길을 잃어버린다.
감정에는 선도 악도 없다. 옳고 그름 역시 없으며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에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마음의 고통은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생생하게 느끼는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고 부정하는 데서 생겨난다. 인간의 감정은 복잡해서 같은 일을 겪는다고 모든 이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일에 여러 가지 다양한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나침반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감정을 구분하고 그에 적절한 어휘를 붙이는 것에 대한 글이다. 감정을 이해하고 인지하기 위해 '감각'을 활용하기로 했다.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했는데 1장은 감정에 대한 개요, 나머지 네 개의 장은 온도, 통각(아픔), 촉감, 빛이라는 감각을 활용해 감정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리고 2장부터 5장까지 각 장의 말미에는 각각의 감정에 따른 감정 어휘를 분류 정리했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확신하는 것이 있다면 인간은 결국 “감정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은 당장은 시그널이나 기호일 뿐이라 해독이 필요하다. 나는 '행복'을 감정이라기보다 '태도'에 가깝다고 여기는 편인데 감정 어휘를 알맞게 표현하는 방식이 행복이라는 태도를 지니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기쁨, 슬픔, 분노, 증오, 불안, 기대, 신뢰, 놀람 등을 느끼는지, 또 어떻게 흘러가는지 인지하고 올바르게 표현한다면 우리는 삶의 파도를 예측할 수 있고 믿을 수 없게도 가뿐하게 올라 타 즐길 수 있다.
감정은 '꽃'과 같다.
꽃이 없으면 열매가 없고 열매가 없으면 씨앗도 없다.
우리의 꿈과 희망, 말과 행동, 계획과 목표, 관계를 비롯해
삶에서 중요한 대부분이 감정에서 시작된다.
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세밀하게 표현해야 하는 이유는
'나'라는 개별성과 주체성, 고유성을 만들어
나의 삶을 살게 해주기 때문이다.
저자 유선경
세상과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에 "왜?"라고 묻고 그 근원과 영향에 대해 독자적으로 사유하고 음미하고 추론하기를 즐기며 책 읽기와 글쓰기, 음악 감상을 숨결로 삼고 있다.
『감정 어휘』는 세상과 사람에게 일어나는 거의 모든 현상에 '감정'이 결정적이며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해 세밀한 '어휘'로 표현할 때 마음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는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집필이 시작되었다. 나아가 스스로의 영혼을 후련하게 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며 비로소 행복이라는 태도를 지니는 데 디딤돌이 되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30여 년간 매일 음악, 문화, 시사 등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썼고 2014년부터 단행본을 집필, 출간하고 있다. 최근작으로 『어른의 어휘력』, 『나를 위한 신화력』이 있고 『감정 어휘』가 아홉 번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