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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Out of Africa >
시드니 폴락의 1985년 연출작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는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아다지오' 를 배경으로, 주인공 카렌의 내레이션과
함께 프롤로그 격인 그 첫 장을 열어가죠.
"그는 아프리카 탐험에 축음기도 가져갔다.
총 세 자루와 한 달 분 식량에 모차르트 음악까지...
우리의 우정은 선물로 시작되었다. 그는 싸보로
떠나기 얼마 전에 최고의 선물을 주고 갔다.
'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그제서야 나는 보았다.
'진정한 신의 창조물' 을.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기록하려고 했다.
그 기억이 너무도 선명했다. 그는 거기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 순서가 엉망인데... 데니스가 알면 몹시
싫어 할 것이다. 그는 잘 정도된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럼 다시...
'
나는 아프리카 느공 언덕 아래에 농장을 갖고
있었다.' 사실 이야기의 시작은 이게 아니다. 우선
덴마크로 돌아가야 한다."
귀족 부인이 되어 사교계에서 화려하게 살아가길
꿈꾸었던 카렌(메릴 스트립 분)...
남부럽지 않은 가문 출신의 카렌은 결혼을 코앞에
두고서야 약혼자 한스 브릭슨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떠났다는 걸 깨닫죠.
한데 파혼한 그녀는 또다시 하지 말아야 할 충동적인
선택을 저지르고 맙니다.
한스의 쌍둥이 동생이자 오랜 친구였던 브로 브릭슨
(카를로스 마리아 브렌다우어 분)과 사랑도 없는
결혼을 약속해버린 것이죠.
그리고 비로소 오프닝 크레딧이 열리며 존 베리의
장중한 오리지널 스코어 'I had a farm in Africa' 를
배경으로,
1913년 영국령의 동아프리카 케냐 인도양 연안의
항구 몸바사를 출발해 나이로비로 향하는 열차를
조명합니다.
- 오프닝 크레딧
https://youtu.be/vyqsDcMYxf0
나이로비에 위치한 농장을 향해 가던 카렌은,
벌판에서 기차를 세워 상아를 싣던 데니스 핀치
해튼(로버트 레드포드 분)과 짧지만, 강렬한
첫 만남을 나누죠.
하지만 이미 케냐에 와 있던 브로는, 상실감을
털어내려는 듯 자신과 재빨리 결혼해버린 카렌에게
온전히 다가서지 못합니다.
덴마크를 떠나 케냐의 나이로비 농장에서 시작한
그들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삐걱대죠.
남작이라는 작위 말고는 경제적 능력이 없던
빈털털이 브로는 그녀의 돈으로 벌인 40만 평의
커피 농장 사업마저 팽개친 채 집을 떠나 사냥과 술,
또 여자로 시간을 보냅니다.
카렌은 낯선 대륙에서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디며
힘든 농장 관리까지 떠맡게 되죠.
간절하진 않았어도 손에 쥘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오기와 집착이 생기는 터... 그녀는 잠시 돌아온
브로에게 아이를 갖자고 설득합니다.
그러자, 브로는 영국과 독일 간 전쟁에 참전하겠다며
그녀에게서 더 멀리 도망치듯 달아나버리죠.
그렇게 지쳐가고 있을 무렵, 카렌은 웅혼(雄渾)한
아프리카 대륙을 바람처럼 떠도는 풍운아, 데니스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카렌은 말을 타고 초원에
나갔다가 사자의 공격을 받는 위험에 처하는데
마침 현장에 있던 데니스의 구조를 받게 되죠.
카렌은 데니스와 그의 친구 버클리 콜(마이클 키친
분)을 저녁식사에 초대합니다.
이야기에는 소질이 있다고 자신하는 카렌에게
데니스는 “쳉 후안이라는 방황하는 중국인이
있었다네” 라고 첫 화두를 건네죠.
카렌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데 처럼,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솜씨를 발휘하며 몽환적인
로맨스의 서사를 직조해갑니다.
“쳉 후안은 포모사 거리의 청사등 불빛 위로
나 있는 조그만 방에 홀로 살았지. 그 창가에
앉으면 고향집의 맥박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고...”
거칠 것 없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그의
자유로운 영혼은 카렌을 한껏 끌어당기죠.
그녀의 내면 깊숙이 갇혀 있는 열정을, 문을
열어주기만 하면 하늘 높이 날 수 있을 자유에 대한
열망을 데니스는 알아봅니다.
만남이 반복되면서 두 사람은 우정보다는 진하고
사랑이라 부르기엔 아쉬운 감정을 오롯이 쌓아가죠.
그러나 그때까지도 카렌이 원한 건 남편이 머무는
따뜻한 가정으로... 그녀는 전선에서 필요하다는
물품들을 싣고 브로를 만나기 위해 멀고 위험한
길을 힘들게 달려갑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남편을 재회하고 돌아온 카렌은
그에게서 악성 매독이 전염된 걸 알게 되죠.
아픈 몸을 이끌고 치료를 위해 덴마크에 갔던
카렌은 결국 불임의 몸이 되어 돌아옵니다.
상처 말고는 아무 것도 나눌 수 없는 관계가 된
브로와 카렌은 별거에 이르죠.
카렌은 일에 몰두하며 원주민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커피 농장에도 열성을 보입니다.
그나마 한줄기 위안이 있다면 브로가 떠난 집에
데니스가 자주 찾아온 것이죠.
아프리카의 원시적 대자연, 그리고 아프리카인을
사랑하는 데니스는 여러모로 남편 브로와는
대조적인 남자입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즐겨 듣는 그는 경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의 드넓은 하늘을 날으며, 삶과 예술에
대해 얘기할 줄 아는 인물이죠.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데니스는 그녀를 위한
선물이라며 축음기로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D장조, K.136' 의 1악장 '알레그로' 를 들려줍니다.
데니스는 카렌에게 지프를 타고 야생의 '마사이 마라'
사파리를 함께 탐험할 것을 제안하죠 .
하여, 아프리카의 광대무구한 신천지가 온전히
두 사람의 것이 되어 펼쳐집니다만... 며칠이 지나자
제대로 씻지 못한 그녀의 머리는 엉망이 됩니다.
그때 데니스가 다가와 카렌을 의자에 앉히고 머리를
감겨주죠.
다감한 그가 하얀 물병에 담긴 물로 머리를
헹구어주자 카렌의 얼굴은 황홀하게 빛납니다.
그녀 앞에 서서 '훨씬 낫네' 라며 환하게 미소 짓는
데니스의 얼굴 뒤로 아프리카의 찬란한 태양이
넘실거리죠.
데니스는 새뮤얼 콜리지의 산문시 '늙은 선원의
노래' 한 구절을 정감있게 암송합니다.
"하하 웃으며 그는 말했지. 모든 게 잘 보이는군.
악마는 노를 저을 줄 알지...
잘 있어요, 안녕히. 하지만 당신 축하객들에겐
말하겠소. 사랑을 잘하는 사람이 기도도 잘 한다고.
그건 사람이나 새나 동물들도 마찬가지이지.”
- 'Shampoo by the river'
https://youtu.be/d8sDpSZeDBE
그러던 어느날, 데니스는 경비행기를 몰고 와
아프리카를 함께 날자고 권합니다.
“자, 우리 쓸데없이 목숨 걸러 가요. 우리 목숨이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게 바로 우리 목숨이 지닌
가치니까요. '죽을 수 있는 자, 자유로이 산다'(Frei
lebt wer sterben kann)..."
존 베리의 장중한 사랑의 테마 'Flying over
Africa' 를 배경으로 두 사람을 태운 노란 날개의
쌍발 비행기는, 열차처럼 더이상 규칙의 길이 아닌,
자유로운 하늘길을 한마리 새처럼 유유히 날으죠.
석양에 붉게 물든 지평선, 우거진 녹음 사이로 흐르는
강, 장엄한 폭포와 광활한 대평원의 협곡, 검은
물소들의 무리, 홍학(플라밍고)떼들의 날개짓,
그리고 하이얀 구름바다가 끝없이 펼쳐집니다.
마치 두 사람의 사랑을 축하라도 하는 듯...
수만마리 플라밍고 떼가 현란한 군무를 추는 가운데,
비행기 앞좌석에 앉아 있던 카렌이 자신의 오른손을
뒤로 내밀고, 뒷 운전석의 데니스가 왼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아주죠
서로 '한 손' 을 내밀어 '두 손' 을 잡음으로써
사랑의 징검다리가 완성되고, 두 사람의 영혼은
충일한 합일을 이룹니다.
- 'Africa from above -That plane scene'
: 'Flying over Africa' / 존 베리
https://youtu.be/Pzo3m3tOkdM
카렌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짓고, 다듬어 꾸민
작은 세상에 데니스가 평생토록 머물러주길 간절히
원하죠.
하지만 카렌의 이야기를 반짝이는 눈빛으로 들으며
더 큰 세상을 꿈꾸는 데니스는 그동안 보고 듣고,
또 경험한 세상을 그녀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카렌은 더 멋진 세계를 창조할
텐데' 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카렌은 말합니다. “세상에는 소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나 그것엔 가격이 따르죠.
난 그중 하나가 되고파요.”
이에 데니스는 철학적으로 답합니다. "우린 누구도
무엇도 소유할 수 없어요. 단지 스쳐 갈 뿐이지..."
"나침반이 항상 북쪽을 가리키듯 나의 마음은 항상
당신을 향하고 있소"
카렌을 이토록 사랑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적
굴레에는 얽매이고 싶지 않는 데니스를 향해
그녀는 부르짖습니다. "왜 당신 자유가 내 것보다
소중하죠?"
소유되길 거부하는... 길들여지지 않는 영혼을 가진
남자 데니스는 답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난 당신
자유에 간섭한 적 없소!"
그는 세상이 정해준 길을 걷는 것도, 누군가의
소유가 되어 한곳에 머물러 사는 것도 바라지
않았던 겁니다.
원주민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려 하는 카렌에게
데니스는 충고해주죠.
"마사이족들은 감옥에 가두어 두면 서서히
죽어갑니다. 그들은 갇혀 있는 채로 살 수 없기
때문이지요. 미래에 석방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오늘만 존재할 뿐이에요."
그는 아프리카의 문화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카렌을 설득합니다.
결국 가치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카렌의
곁을 떠나는 연인 데니스... 그녀는 처연히 말하죠.
"작별은 이상한 감정이다. 남자는 용기를 시험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우리 여자의 시험은 상실에 대한
인내심이다. 얼마나 그 외로움을 견딜 수 있을까?"
이후 원주민들과 오랜 동안 함께 생활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카렌의 생각도 변해갑니다만... 예기치
못한 카피 농장의 대화재가 그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죠.
아프리카는 문명에 포장되어진 인간의 소유를
거부한 걸까요,
파산한 카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차압당한
땅에서 원주민들이 쫓겨나지 않도록 총독 앞에
무릎을 꿇고 부탁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고향 덴마크 룽스테드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위해 데니스는 경비행기로 항구 몸바사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하죠.
그러나 바로 그 날... 도착한 사람은 데니스의 사망
소식을 전하러 온 전 남편 브로였습니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그녀보다 더 먼저, 더 멀리,
떠나버린 것이죠.
검은 상복의 카렌은 통곡을 삼키며 알프레드 E.
하우스만의 명시 '너무 일찍 죽은 운동선수를
위하여(To an athlete dying young)’ 를 낭송합니다.
"마을 경주에서 이겼을 때 우리는 광장에서 당신을
축하했고, 어른 아이 모두 환호하며 당신을
어깨에 매고 다녔다네.
이젠 사람들의 함성도 사라지고 승리한 주자의
이름은 그의 죽음보다 더 빨리 사그라졌다네.
색바랜 월계관을 다시 쓴 그대 앞에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만이 그대를 지켜주지만, 화환은
소녀의 꽃다발보다 빨리 시드는구나."
카렌은 데니스를 영원한 안식처로 보내는 헌사를
남깁니다.
"이제 데니스 조지 핀치 해튼의 영혼을 데려
가세요. 우리에게 보내주신 그는 우리의 기쁨이었고,
우린 그런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가 우리의 소유가 아니었듯 저도 그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 ' He was not ours, He was not mine '
https://youtu.be/j91DsC7XvdQ
그렇게... 데니스를 마음에 묻은 카렌은 속절없이
되뇌죠.
"내가 아프리카의 노래를 안다면 기린과
아프리카의 달, 농부들의 땀과 초원의 노래일
것이다.
아프리카는 내 노래를 알까? 들녘 너머로 나만의
색깔이 펼쳐질까? 아이들 게임에 내 이름이 있을까?
보름달이 자갈밭에 그림자를 만들면 내 마음처럼
느공 언덕의 독수리들이 나를 찾을까? "
바람처럼 스쳐간 연인 데니스... 그는 세상이 말하는
사랑도, 카렌이 원하는 사랑도 주지 않았죠. 대신
몇 가지 소중한 선물을 남겼습니다.
카렌의 소설적 재능을 알아보고 글로 써보라며
'만년필' 을 건넸고, 어디에 가든 길을 잃지 말라며
'나침반' 을 주었죠.
또한 그녀에게 소유를 넘어 영혼의 풍요로움을
알도록 깨우쳐준 자유로운 영혼의 데니스... 바로
그의 화신으로 기억되는 모차르트를 들을 수 있는
'축음기' 도 헌정했습니다.
그리고, 경비행기에 카렌을 태우고 하늘을 날며
아프리카의 광활한 대지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을 보여줌으로써 ‘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도 나눠줬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카렌이 연인과 농장, 모두를
잃었음에도 덴마크 고향으로 돌아가 그 모든 것을
추억하며 '글을 쓸 수 있게 한 힘' 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선물이었을 겁니다 .
17 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을 청산하는 날, 원주민을
위한 카렌의 용기있는 헌신에 감동한 영국 남자들은
여성 출입 금지 구역인 '마운트 케냐 사교 클럽' 에
그녀를 초대하지요.
카렌은 위스키를 청해 그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장미빛 입술의 소녀와 발빠른 소년들을 위해' 라는
건배사를 남깁니다.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 기차에 오르기 전, 카렌은
언제나 충실했던 하인 파라 아덴(말릭 보웬즈 분)의
손에 그녀가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했던 '나침반' 을
쥐어주죠.
그러곤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 고 부탁합니다.
파라는 늘 그랬듯이 성심껏 화답하죠. "마님 이름은
카렌이십니다!"
조그만 가방 하나만 가진 채 아프리카를 떠났던
카렌은 훗날 회고하죠.
"내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편지 내용은 어떤
마사이가 얘기하길 해가 뜨고 질 무렵에 핀치 해튼의
무덤가에서 사자들을 보았다는 것이다.
암사자와 숫사자가 와서 오랫동안 그곳을 지키듯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내가 떠난 뒤로 무덤 둘레의
땅이 평평해 지면서 아마 그게 사자들한테 좋은
자리가 된 거라고...
거기서 사자들은 초원을 바라보며 먹이감을 찾을
것이다. 데니스가 좋아할 이야기다. 그를 기억할
것이다."
이어 엔딩 자막엔 그녀가 남긴 발자취가 적요히
새겨지죠.
"카렌 블릭센은 1934년에 첫 작품을
'아이작 디네센' 이라는 필명으로 출판했다.
그녀는 다시 아프리카에 가진 않았다..."
1.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Out of Africa >
트레일러 https://youtu.be/2EW2kNCmZZ0
암묵적인 프롤로그 격의 오프닝 크레딧을 영화
전편에 대한 암시를 품은 일종의 이미지즘적인
비주얼의 시(詩)로 활용한 시드니 폴락 감독.
그는 이른바 '영화 구문론상의 고전적인 초기
5분 효과' 를 이 오프닝 크레딧을 통해 절묘하게
충족시켜 주면서,
런닝 타임 160 여분에 이르는 대서사시를
펼쳐나갈 권리를 초기의 시간에 지나치게
압박받지 않을 수 있도록 했죠.
하여, 카렌 블릭센의 내레이션과 함께 풀어지는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의 오프닝 크레딧은
관객을 현실의 세계에서 영화 속의 세계로 이끄는
인도자이자 터널로,
또한 관객이 영화에 대해 품는 기대를 확장하고
증폭시켜 주는 재간둥이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원작이자 영화 표제인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는
로마시대 작가 플리니우스의 글 ‘Out of Africa
always something' 에서 따온 것으로,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는 뜻이라고 하죠.
시드니 폴락 감독은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에
대해 얘기합니다.
" 아프리카의 모습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일출과 사랑하는 남자의 실루엣으로요.
나이든 여자(카렌)가 꿈 꾸면서 기억을 더듬어
가는데... 그녀는 실루엣의 남자(데니스)가
누구였는지 알아보죠.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한 여성에 감탄하고
사로잡히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녀에겐 용기와
호소력과 지혜가 있어요. 아프리카를 장엄하고
시적인 곳으로 만들었죠.
케냐의 아름답고 신비하며 장엄한 대지... 압도돼
버리죠. 정말 압도적이어서 이 말이 절로 나옵니다.
'에덴 동산이 정말 있다면 여기 일거야' 라고요."
2. 영화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Out of Africa >
사운드 트랙 - 존 베리
https://youtu.be/eWZ2adCaKo4
카0렌이 기차를 타고 가는 오프닝 크레딧에서
데니스를 처음으로 만나는 시퀀스,
또 그와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서 아프리카의
광휘(光輝)로운 자연 풍광을 즐기는 창공의 데이트 장면,
그리고 아프리카를 떠날 때 흐르는 이 ‘사랑의
테마' 곡은,
'I had a farm in Africa, 'Flying over Africa',
'You are Karen' 등의 사운드 트랙으로 정결하게
변용되지요.
한편, I'm better at hello, ‘I had a compass
from Denys’, 'If I know a song of Africa' 등의
부제가 붙은 ‘카렌의 테마(Karen's Theme)’ 역시
우아하고 정감어린 클래식컬한 색조로 화면을
감싸안습니다.
영화음악가 존 베리는 본인이 작곡한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의 사운드 트랙에 대해 설명합니다.
"웅장한 주요 선율은 어떤 동경을 담고 있어요.
하강되는 부선율은 원래 비올라로만 연주됐는데
비올라와 제2 바이올린으로 바꿨죠.
이 부선율들은 거의 주 선율보다 더 중요해요.
상실감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시작 무렵엔 그걸
모르죠.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극적인 단계를
찾아갑니다.
기차 오프닝 신과 카렌 역의 메릴이 열차 뒤에 탄
장면이 출발점이었어요. 작곡가로서 기댈 만한
주제를 찾았습니다.
단순한 기차 장면이었다면 풍경에 맞는 음악을
넣었겠죠. 하지만 그녀의 등장은 강한 발상을
주는데 기쁨과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강렬한 감정은 기차 여행의 끝까지 계속
전개돼 그녀의 눈에 비친 동아프리카 케냐의
아름다움을 연주했죠."
2-1. 오프닝 메인타이틀 'I had a farm in Africa'
https://youtu.be/ecPJxghJteg
2-2. 'I'm better at hello(Karen's Theme I)'
https://youtu.be/chYuDBpuff4
2-3. 'Have you got a story for me?'
https://youtu.be/BN3eBtYWeq0
2-4.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2악장 '아다지오'(Adagio)
- https://youtu.be/Rjzf_cWzlp8?list=RDRjzf_cWzlp8
- https://youtu.be/3y0esQe2BnI
2-5. 'Safari'
https://youtu.be/AlAVt1xzkXY
2-6. 'Karen's Journey / Siyawe'
https://youtu.be/4FdRQuIZlEo
2-7. 'Flying over Africa'
https://youtu.be/bd7NvSZhNoY
2-8. 'I had a compass from Denys
(Karen's Theme II)'
https://youtu.be/jH9fUP4lg60
2-9. 'Alone on the farm'
https://youtu.be/iXq9hmaLiwI
2-10. 'Let the rest of the world go by'
https://youtu.be/C9aGXoaiAYo
2-11. 'If I know a song of Africa
(Karen Theme III)'
https://youtu.be/R0OZ16WsSU4
2-12. 엔딩 타이틀 'You are Karen'
https://youtu.be/YdG9JRVVJso
3. 영화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Out of Africa >
속 모차르트 음악
모차르트 음악은 오프닝 신부터 등장하는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를 비롯하여,
'피아노 소나타 A장조, K.331',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b 장조, K.364' ,
'세개의 디베르티멘토 K.136, K.137, K.138' 등이
영화 전편에 흐르지요.
데니스가 들고온 축음기에서 장중내내 펼쳐지는
모짜르트의 음악은 아프리카 대륙을, 또 두 사람의
영혼을 고요하고도 청아한 울림으로 흔들어댑니다.
3-1.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중
2악장 아다지오(Adagio)
아프리카의 오지로 정처없이 떠나며 세 자루의 총,
한 달 치의 식량, 그리고 축음기와 함께 데니스가
선택한 음악은 바로 '모차르트' 였죠.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인 1791년
10월에 작곡했다는 그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인 'A장조, K.622' 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미완성으로 남긴 < 레퀴엠 > 과 짧은 소품 하나를
제외하면 이 곡이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으로
'백조의 노래' 격이라 할 수 있죠.
관현악의 웅장함에 대비되는 독주악기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평소 친분이 깊었고 많은
도움을 받았던 클라리넷 연주가 안톤 슈타들러를
위해서 작곡한 클라리넷 협주곡이죠.
그런데 이 아름다운 음악은 모차르트가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에 작곡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나면서 죽었으며 아내는 병들고,
가계는 쪼들려 빚만 늘어났죠.
그리고 모차르트도 날로 쇠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죠.
이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와 독주악기간의 절묘한
조화와 독주악기의 절제가 특징입니다.
2악장 아다지오는 현의 반주에 의해 클라리넷이
조용히 주선율을 연주하는데,.협주곡이라기보다는
실내악의 분위기를 띠며 독주악기에 의한 독백과도
같은 부분으로 울려옵니다.
일체의 군더더기도 배제하고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듬은 선율선이 매우 탁월하죠.
이처럼 생의 마지막 힘겨움 속에서 완성한 작품이지만
음악 어디에서도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석양 녘에 부는 목동의 피리처럼 투명하고
아련하며 평온하기까지 하지요.
영화는 특히 2악장 '아다지오' 의 유장하고 느린
호흡의 선율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죠.
오케스트라와 클라리넷이 만들어내는 서정적
아름다움의 하모니는 영화의 이미지를 섬세하게
반영해줍니다.
서두르지 않고 웅장하게 풀어지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을 상징하며, 그와
대비되는 클라리넷의 목가적인 소리는 아마도
데니스일 것이죠.
아프리카와 데니스는 그렇게 오케스트라와
클라리넷처럼 정결한 조화를 이룹니다.
오케스트라의 넉넉한 품 안에서 클라리넷은
우아하게 노래하며 작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그려내죠.
데니스는 거대한 아프리카에서 뛰놀아야 마땅한
3차원의 영혼입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죠.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소리는 부드럽고 청아하며,
목가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무쌍합니다.
저음에서 고음으로 옮겨가며 음색과 표현의 폭이
달라지죠.
데니스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독서하고, 시를 읽으며,
또 음악을 듣고, 꿈을 꿉니다.
클라리넷은 결코 오케스트라의 음향과 맞서거나
자신의 소리를 과장하지 않지요.
자유를 구가하지만, 데니스의 삶에 배인 쓸쓸함과
그 비감미까지 군더더기 없이 품어냅니다.
클라리넷의 우수는 만년의 모차르트와 그의 요절,
자유로운 영혼 데니스의 죽음까지도 암시하는
듯하죠.
슬픔은 딱 거기까지, 더 지나침이 없지만... 클라리넷
소리는 아프리카를 향한 노스텔지어를 남김없이
전해주고 마음 아리게 합니다.
모차르트가 세상에 남긴 최후의 메시지, 그의 음악적
유언인 셈으로... 그래서인지 곡에는 이별의 노래와
같은 애틋한 아련함이 짙게 배어 있죠.
- 자비네 마이어 클라리넷
: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커
https://youtu.be/J4ocVFqn7CY
이 곡에 가사를 붙인 노래 'Love is a melody' 를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부릅니다.
https://youtu.be/krom6bffwuk
- 배경 화면 클로드 모네의 회화
- 다나 윈너는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이란 제목의 노래로 변용했지요.
https://youtu.be/-zOrK2eR0AQ
3-2. 피아노 소나타 A장조, K.331
- 1악장 'Tema con variazioni : Andante
grazioso : 졸탄 코크시스 피아노
https://youtu.be/sPM2r5emH_w?list=OLAK5uy_n1AfgyYbmwvpeyhSdDL8nDy8i6he0eZC4
- 3악장 'Rondò alla Turca' : 예노 얀도 피아노
https://youtu.be/I0dYoifSqhQ
3-3.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b 장조, K.364
- https://youtu.be/czEZD2KgaAc
- 1악장 : 김봄소리 바이올린,
카타르치나 부드니크 갈라츠카야 비올라,
아그나츠카 두크즈말 지휘 폴리시 라디오 챔버
https://youtu.be/uH2wC8OCOG4
3-4. 현을 위한 디베르티멘토 D장조, K.136
- 바르샤바 필하모닉 챔버 오케스트라(2019)
https://youtu.be/ONS7R8pdR3c
- 李 忠 植 -
첫댓글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아다지오' 를 비롯한
모차르트 음악만이 < Out of Africa > 의 화면을
채우는 전부는 아닙니다.
영화음악계의 거장 존 베리의 음악이 다른 주연
혹은 조연들처럼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의 영상을
감싸안죠.
그의 메인 테마를 듣고 있노라면 끝없이 펼쳐진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초원이 떠오릅니다.
존 베리는 장엄한 대륙의 이미지를 견고하고
웅혼하게 묘사하죠.
이 음악 속에서 카렌이나 데니스는 거대한 자연의
일부가 됩니다. 아프리카의 위대한 자연 속에서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카렌의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듯하죠.
존 베리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통해서
카렌의 감정을 절묘하게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는 원작자인 카렌 블릭센(필명 이자크 디네센)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프리카이죠.
영화도 음악도 이 이야기는 그녀의 경험이자
삶의 서사임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또다른 스코어 '카렌의 주제'(Karen’s
Them)는 그녀의 감정 변화를 담아내며 다양하게
변주되죠.
카렌에게 사자가 다가올 때 데니스는 총을 함부로
쏘지 않았죠.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던 카렌은 살아났다는
사실조차도 믿기 어려웠습니다. 존 베리의
사운드 트랙은 그런 카렌을 따라가죠.
그리고 두 사람은 비행기를 탑니다. 온 세상이
눈 아래 펼쳐지죠.
'Flying over Africa' 의 부제로 흐르는 사랑의
테마에는 데니스와 함께 아프리카의 창공을
날면서 대륙을 내려다보는 경이로운 느낌이
잘 살아 있습니다.
카렌의 아프리카는 이렇게 존 베리의 음악을
통해서 위대하지만 낭만적인 공간, 또
데니스와의 기억으로 충만한 공간이 되죠.
카렌은 사랑했던 남자 데니스를 회상하면서
가슴 아파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를 소유하지
못했음을 인정하죠.
그가 마사이 족에 대해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데니스 자신에 대한 이야기나 다름없었습니다.
“마사이는 절대 길들여질 수 없어요. 만약 감옥에
가둔다면 곧 죽고 말 거예요. 현실에만 충실하기
때문이죠. 미래라는 개념이 없어요.”
데니스의 방에 가득 꽂힌 책들,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던 데니스의 모습,
나침반을 건네주던 그의 다정함이 카렌의
기억을 통해서 오롯이 드러납니다.
아프리카의 초원에까지 축음기를 가져가
모차르트를 감상하던 남자 데니스...
시와 자연, 그리고 자유를 사랑했던 그의 삶이
카렌의 눈을 통해 이토록 아름다우면서
애잔하게 펼쳐지죠.
데니스에게 카렌은 깊이 빠져들며 결혼을 원합니다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데니스는 그런
카렌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데니스는 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해 갖게 될 증서가
서로에게 어떤 믿음과 사랑을 더하게 되느냐고
묻지요.
그러자 카렌은 "당신에게는 삶이 그렇게
단순해요?" 고 물어봅니다.
이에 데니스는 "아마 난 당신보다 적은 걸 원하나
보오" 라고 답하죠.
그러곤, 그는 그런 건 믿지 않는다는 카렌에게
결혼이라는... 거추장스럽고 더 좋은 결과를
약속하지 못하는 것을 왜 해야 하느냐고 오히려
반문합니다.
'사랑은 왜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일까'...
카렌은 마음이 아프죠.
덴마크 고향으로 돌아간 카렌은 아프리카 생활을
회상의 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통해 정리하죠.
비록 결혼과 농장 경영에서는 실패하지만 평생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는 데니스에 대한 추억과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는 여성의 모습 등을 그린
이 작품은 바로 카렌 블릭센의 인생이자,
문학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죠.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혹은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딜 수가 있다(All sorrows can be borne
if you can put them into a story or
tell a story about them).”
제방을 쌓아 농장 근처의 강물을 막아서 저수지를
만들겠다는 카렌에게 하인 파렌은 "이 물은
몸바사로 가는 겁니다" 라며 말리죠.
'나중에 가도 된다' 는 주인마님의 말에 파렌은
계속해서 굴하지 않습니다.
"이 물은 몸바사의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물은 식민지에 정착한 백인들의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아프리카인의
공동재산이라는 뜻이죠.
"당신은 참 많은 것을 가졌네요."
"나는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돈을 주고 산 것
뿐이에요."
"우리는 이 땅에 있는 것을 소유할 자격이 없어요.
우리는 여기의 주인이 아니라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죠."
"내 키쿠유족들이 읽을 줄 알면 좋겠어요."
"난 그들이 작은 영국인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데니스가 연인 카렌과 나눈 대화입니다.
글을 통해서 원주민을 계몽하고 깨우쳐 주려는
카렌을 향해 데니스는 "글은 몰라도 문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라며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답게
봐야 한다고 역설하죠.
야생동물들의 포효 소리, 새들의 푸드득 날개짓과
함께 깨어나는 원시의 새벽 아프리카.
그 아프리카를 너무도 사랑했던 데니스는 연인
카렌에게 세가지의 소중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방향을 잃지 말고 자신의 인생길을 안내하도록
하는 '나침반',
집착과 소유 대신 보이지 않는 영혼의 풍요로움을
알도록 하는 '축음기',
그리고 이야기꾼 카렌에게 글을 쓰도록 한
'만년필' 이 그러하지요.
사파리에서, '남의 아내라는 게 부담스럽지 않냐' 는
카렌에게 데니스는 털어놓습니다.
"내가 부담스러운 것은 당신이 너무 열심히
살고... 무엇보다도 이제 혼자라는 거요."
그렇게 말했던... 데니스의 장례식에서 카렌이
읊는 시는 알프레드 E. 하우스먼의 시집
< 슈롭셔의 젊은이 > 에 실려 있는 '젊어서 죽은
운동선수에게' 입니다.
아프리카 자체가 마치 썰물처럼 서서히
장중하게 카렌에게게서 물러나는 듯...
본인은 떠나고 싶지 않으나 아프리카가 자신을
놓아버리는 듯한 묵직한 이별의 슬픔이 휘몰아쳐
오죠.
카렌 블릭센의 소설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는
아프리카에서 지낸 경험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는
회고록이죠.
아프리카의 광활한 자연 풍광, 다양한 작물 심기,
농사짓기의 어려움, 자신을 보살폈던 일꾼들,
그리고 키쿠유족이나 마사이족 등 원주민들과
유대관계, 토속문화 소개, 사자를 비롯한 동물
사냥 등 작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모든 사건을
이야기하듯 전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작가로서 섬세하고 짜임새 있는 그녀의
필력이 더해져 읽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죠.
마치 천일야화를 들려주던 세헤라자데처럼
독자를 아프리카 속으로 끌어들여 거기서
호흡하고 있는 듯 벅찬 느낌마저 갖게 합니다.
" 그곳의 풍경과 삶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바로 공기였다.
아프리카 고원지대에서 체류하던 시절을
회고하면 자신이 한때 높은 공중에서 살았다는
감회에 젖는다.
하늘은 연푸른색이나 보랏빛을 벗어날 때가
거의 없었으며, 강력하고 무게가 없고, 끝없이
변화하는 무수한 구름 떼가 하늘 높이 솟아
유유히 흘러갔다.
그러나 하늘은 푸른 활력을 품고 있어서
가까운 곳의 언덕과 숲을 산뜻한 짙푸른
색으로 그려 놓았다.
한낮에는 땅 위의 공기가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아 있었다. 흐르는 물처럼 섬광을
발하고 물결치고 빛났으며 모든 사물을
거울처럼 비추어 둘로 만들고 거대한
신기루를 만들어냈다.
이런 높은 곳의 공기 속에서 편안히 숨 쉬다
보면 어느새 기운찬 자신감과 상쾌한 기분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고원 지대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여기 내가 있다. 내가 있어야만
하는 곳에...)"
- 본문 중에서
책에서는 영화와 달리 애정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부분이 없죠.
다만 사냥에 나갔던 데니스가 오면 마치
먼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처럼 맞아 함께 보낸
시간을 묘사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현실에서 그들은 연인이었으며, 유산을
했지만 아기를 갖기도 했죠.
카렌 블릭센은 그와 결혼하기를 원했으나 영국
상류계급에 명문 이튼 학교 출신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탐험가 데니스 핀치 해튼은
끝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모험의 길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데니스가 카렌의 머리를 감겨주면서 암송하는
시는 새뮤얼 콜리지의 산문시 '늙은 선원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이죠.
어느 결혼식에 나타난 늙은 선원이 한 하객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주는 내용입니다.
암송하는 부분은 카렌의 말대로 시 전편 중
마지막 장의 극히 일부인데,
콜리지와 워즈워스가 함께 펴낸 시집
<서정가요집 - Lyrical Ballads > 에 실려 있죠.
1913년 동아프리카의 케냐는 문명화된
거주 지역이 전혀 없는, 자연의 곳이었습니다.
단기간에 여러 차례 결혼하는 게 성행했고
증기기관차의 간이 식당에서 늘 여자들은
이 유명한 질문을 받았죠.
"결혼했어요? 아니면 케냐에 살아요?"
카렌의 하인 우두머리이자 집사에다 단짝
친구였던 파라는 스스로를 '아라비안 나이트' 에
나오는 잘생기고 품위있는 인물로 소개하죠.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한 카렌은 좋아 죽죠.
상상했던 일들이 그대로 현실로 돼갔으니까요.
메릴 스트립은 파라 역의 맬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죠.
"맬릭의 강렬한 연기는 제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 캐릭터와 깊이 연결돼 있던 그는 촬영 내내
자신의 기품을 강렬하게 표현했습니다.
이 남자의 생각엔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사람이었던 게죠."
브로는 온갖 비열한 짓을 하고도 기묘하게도
끝까지 카렌의 친구로 남죠.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했듯이...
메릴 스트립은 브로 역의 배우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에 대해 얘기합니다.
"클라우스는 난해하고 아주 복잡한 남자죠.
불안감을 늘 지니고 있었어요. 그는 영화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그랬거든요. 호호"
영국의 상류층 백작의 아들로 명문 이튼 학교에서
수학한 데니스는 현대 미술과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인문주의자 였죠.
아주 핸섬하고 붙잡기 힘든 사람으로 요즘 말로
구속을 두려워한 인물이었습니다.
유머감각도 뛰어났고 반어적 표현도 잘했던 그는
카렌에게 결코 기죽지 않았습니다.
가히 '가질 수 없는 남자의 최고봉' 였지요.
카렌은 슬픔을 억누르며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데니스를 추모하는 시를 낭송하죠.
이 시는 알프레드 E. 하우스먼의 시집
< 슈롭셔의 젊은이 > 에 실려 있는 '젊어서 죽은
운동선수에게' 입니다.
재능 넘치는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자신의
인생을 꽃피우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죠.
하우스먼은 보어 전쟁에서 죽어나간
젊은이들을 안타까워하며 이 시를 썼습니다.
전쟁 때문은 아니지만, 데니스도 이른 나이에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죠.
아직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카렌은
하우스먼의 시를 읽으며, 낡은 시집을 가슴에
안고 슬픈 눈동자로 먼 곳을 바라봅니다.
데니스와 함께했던 자리, 아프리카 초원의
나무와 풍경은 그대로이죠.
그녀는 데니스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마사이족 카누티아가 언덕 너머에 오랫동안
서있는 환영을 마주합니다.
카렌은 데니스를 아프리카 초원에 묻고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흐느끼죠.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해요.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지..."
광대한 아프리카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여인이
겪은 인생여정을 그린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Out of Africa >.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자연과 원시적인 풍광을
한껏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죠.
새로운 삶을 찾아 부푼 꿈을 안고 미지의 세계로
주인공 카렌이 떠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꿈과는 달리 남편 브로와의 갈등
속에 파경을 맞게 되면서 모짜르트를 좋아하는
데니스와 사랑에 빠지죠.
그러나 그 둘이 서로 추구하는 삶이 다르다는 걸
느끼며 멀어지려 할 때 카렌은 커피농장에 대형
화재가 나 모든 걸 잿더미로 날리고 맙니다.
그토록 엄청난 불행을 계기로 그녀는 다시
데니스와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듯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데니스의 죽음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막을 내리죠.
데이비드 워킨 촬영감독은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과 목초지 풍경, 그리고 무리를 지어 뛰노는
야생동물의 모습을 스크린 가득히 담아냈습니다.
여기에 존 베리의 클래시컬한 오리지널 스코어와
화면 곳곳에 흐르는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은
영화의 풍미와 감동을 한껏 더해 주죠.
카렌이 아프리카를 떠나며 원주민들에게
농사지을 땅을 주려고 하자 영국 총독부 최고
책임자는 '원주민들의 몫은 없다. 영국 왕실의
땅이다' 라고 잘라 말합니다.
쾌적한 기후에 매료된 영국은 당시 케냐 중앙부의
비옥한 토지 450만 에이커를 아예 '백인전용
토지(화이트 하일랜드)' 로 지정해 아프리카인의
소유를 금지했기 때문이죠.
"우린에게 마사이족이 있어요. 그들은 투사들이죠."
역시 영화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에서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케냐에 있던 백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원주민들을 자신들의 전쟁에
투입하자는 주장이죠.
전쟁이 끝난 뒤 백인들의 전용 클럽인 '마운트 케냐
사교클럽'(The Mount Kenya Social Club) 이란
간판이 걸린 나이로비 거리에는,
아프리카 병사들과 인도병사들이 영국 국기를 든
백인병사 행렬을 뒤따라 개선행진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프리카인들이 거리에 나와 이들을 환영하죠.
"영국과 독일은 똑같아. 왜 국경이 생겼는지 알아?
영국 영토에는 산이 두 개 있는데, 독일 쪽은 없어.
그래서 킬리만자로를 독일 측에 준 것이야.
남의 땅에서 이게 무슨 짓이야!"
영국 출신인 데니스가 참전하자는 동료 버클리를
질책하는 대화입니다.
킬리만자로를 케냐 땅에서 탄자니아로 멋대로
넘겨준 것을 예로 들며 똑같은 제국주의인
영국과 독일의 싸움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주장인 게죠.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는 황홀하게 펼쳐지는
아프리카 대륙의 광휘로운 영상과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아름답게 흐르는 낭만적인
로맨스 영화로 각인되어 있죠.
하지만 이 안에는 뼈아픈 아프리카 식민지의
사회상이 투영되어 있어 화면과 음악, 스토리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수작으로 꼽힙니다.
이 영화는 1986년 제5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작곡상,
음향상, 미술상)을 수상했죠.
존 베리는 설명합니다.
"제가 악보에서 실제 수정한 부분은 카렌의
여행 장면 곡이었죠.
여행을 시작할 땐 아주 긍정적이고 당당하다가
그 후 여행이 진행될 수록 힘들어 하고 결국
극도로 지치는 그녀를 표현했습니다.
말하자면 '급커브' 였습니다. 웅장하게 시작했다가
바로 잠잠해지죠.
카렌의 사기(士氣 : morale)가 점점 소멸해가,
과연 그녀가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지를 극적으로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반면 시드니는 '점차 올라가는 사기' 를
음악에 담는 걸 원했죠.
영화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는 사랑을 뿌리로
상실과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식민지 개척 시대가 배경인 만큼 점령하고
소유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