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지위, 사회적 지위로 이어진다

노벨상은 개인에게는 엄청난 명예와 금전적 보상을 안겨준다. 이 때문에 노벨상을 마다할 사람은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노벨상 수상에 유감을 표시한 경제학자도 있었다. 바로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스웨덴의 군나르 뮈르달이다. 노벨경제학상의 제정은 경제학자들에게 절실한 희망사항이었다. 이는 경제학이 과학으로 엄연히 인정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뮈르달은 항상 경제학의 과학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으며, 자신의 수상이 결정되자 곧바로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
그의 수상은 또 다른 면에서도 흥미롭다. 바로 열렬한 시장경제주의자였던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와 공동수상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가 시장에 대한 모든 유형의 정부개입을 반대한 극단적 자유주의자였다면 뮈르달은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도 국가에 의한 계획경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하이에크가 철저히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학자로서 위치를 고수했다면 뮈르달은 적극적으로 현실정치에 참여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도 유명하다. 이 둘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그들이 단순한 경제학자라기보다 사상가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경제학에 정치, 사회, 제도 등을 훌륭히 연결시켰다.
뮈르달이 설명하는 ‘누적적 인과관계’라는 개념은 한국의 경제적 계층 형성과 갈등문제에 대한 설명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스웨덴의 군나르 뮈르달.
경제는 계속 움직여가는 과정
그는 학위논문에서 장래 상황변화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예상이라는 게 어떻게 현재의 가격결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그는 ‘다른 조건이 불변인 한’이라는 정태적 개념을 배척한다. 그에게 있어 정태적 균형 상태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경제는 계속 움직이는 과정일 뿐이다.
그는 순수이론가로 연구를 시작했지만, 곧 현실과 고립된 이론적 추리과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그는 경제학 분석에 사회적, 인구학적, 정치적 요소들을 포함시키려는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즉, 그에게 경제문제는 단순한 경제문제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의 이런 연구방향이 집약돼 나타난 게 <경제이론의 발전에 있어서의 정치적 요소>라는 저서다. 그는 이 저서에서 정치적 가치관이라는 게 경제분석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경제이론이라는 건 가치와 전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가치관이라는 건 경제이론 속에 내재한다고 주장했다.
뮈르달의 저작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1944년 간행된 <미국의 딜레마: 흑인문제와 현대 민주주의>라는 저서다. 이는 미국 흑인문제를 연구한 결과를 정리한 것으로 미국의 흑인문제에 대한 최초의 분석서이면서, 노벨경제학상 수상결정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 저작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슬로건과도 같은 기회균등과 흑인에 대한 현실적인 대우와의 간극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는 경제적 지위라는 건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요인과 관련 있다고 보았다. 이런 인식하에 역사,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등을 경제적 분석에 접목시키려 시도했다. 경제문제를 경제학 이상의 것으로 보려는 시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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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르달은 미국의 흑인문제를 다룰 때 ‘누적적 인과관계’를 주요기제로 봤다. 미국의 흑인문제는 경제, 지식, 교육, 생활, 도덕 등의 수준과 백인차별이라는 요소의 상호작용 결과로 보고, 이는 누적적 인과관계를 통해 전개된다고 봤다. 예를 들면 백인의 흑인에 대한 차별증가는 흑인소득을 감소시키고, 이는 건강, 교육수준, 생활수준 악화로 이어진다. 이는 다시 흑인에 대한 차별 확대로 이어지며, 다시 흑인의 건강, 교육, 생활수준을 재차 악화시키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뮈르달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개도국의 발전과 경제구조에 관한 연구다. 이 방향의 저서가 <아시아의 드라마>로 주로 남아시아 각국을 대상으로 한 정치, 경제적 구조에 대한 분석서로 유명하다.
여기서도 그는 “빈곤이 빈곤을 낳는다”는 누적과정 이론을 전개했다. 이 견해는 개발경제학에 관한 그의 저서들 속에 주요한 기조로 자리 잡는다. 그는 부유한 나라와 빈곤한 나라의 경제발전 격차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확대되며 결국 부유한 나라는 규모의 경제로 이익을 누리는 반면 빈곤한 나라는 제1차 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시경제 분석에서뿐 아니라 사회체계 전반에 대한 분석에서도 이를 확장·이용했다. 이 개념은 균형에서 벗어났을 때 사태가 누적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적당한 기폭제가 될 만한 요인으로 통제한다면 다시 상황을 개선시킬 여지가 있음 또한 내포하고 있다.
뮈르달의 누적적 인과관계 모형은 현대의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데 어느 정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예전엔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속담이 많았지만, 요즘엔 ‘개천에선 절대 용이 날 수있다’는 말로 역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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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뮈르달식 접근방법의 타당성을 말해준다.
예를 들어 경제적 지위, 교육, 사회적 지위라는 연관관계를 생각해보자. 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보다 교육투자를 더 많이 할 것이다. 교육투자는 더 좋은 학교에 자식들을 더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인적자본의 질은 교육투자의 양과 질에 비례하고, 그리고 양질의 인적자본은 양질의 취업기회를 의미한다. 이는 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자녀들이 학교를 졸업했을 때 남들보다 더 좋은 직장, 즉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장에 취업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경제적 지위의 보장, 자녀의 교육투자라는 식으로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이런 순환구조 아래 개천에서 용이 날 확률은 시간이 갈수록 적어지게 마련이다.
경제적 지위가 교육투자, 직장의 지위, 또 다시 다음 세대의 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주는 연계고리를 감안할 때, 누적적 인과관계는 한국사회의 경제적 계층의 고착화와 단절화, 더 나아가 경제적 계층 간 대립과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결고리와 누적적 인과관계를 완화 내지 단절시키는 데,
정부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아닌지 짚어보아야 한다. 경쟁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고 시장주의 경제의 미덕이지만, 시작부터 다른 출발선에서 출발함으로써 생기는 기회의 불균형, 박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짚어보지 않으면 사회의 통합은 저해되기 마련이다. 공정한 출발선을 보장함으로써 자유시장경쟁의 미덕을 배가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바로 뮈르달의 누적적 인과관계 모형이 설명하려는 것일 게다.
안기정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 · 경제학 석 사 팀 ㅡ
첫댓글 인식하에 역사,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등을 경제적 분석에 접목시키려 시도했다. 경제문제를 경제학 이상의 것으로 보려는 시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나이대로 지위 직함 대로 서열순의 우 대 대 접이 격 파 흐트러버리면서 지식 두뇌력 지능재능 역량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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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르달은 미국의 흑인문제를 다룰 때 ‘누적적 인과관계’를 주요기제로 봤다. 미국의 흑인문제는 경제, 지식, 교육, 생활, 도덕 등의 수준과 백인차별이라는 요소의 상호작용 결과로 보고, 이는 누적적 인과관계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