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요절 :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기도 : 성령님!!! 이 시간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제목 : 십사만 사천(3)
지난 시간 우리는 십사만 사천이 휴거 성도들임을 배웠다. 오늘은 십사만 사천에 대한 성경적 표현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십사만 사천은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는 성도들임을 살펴보았다.
왜 이분들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만국에 들어가는가? 도대체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는 성도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요한계시록 2:7을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마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낙원은 크게 에덴낙원, 천상낙원, 천년왕국, 신천지 네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 천년왕국에만 생명나무가 없다. 그러나 생명과는 다 있다.
에덴낙원에서 먹지 못한 생명과에 대한 이야기가 드디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나오고 있다.
생명과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가리켜 말한다. 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요한복음 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생명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을 사랑하사 아브라함 때부터 믿음과 은총으로 구원받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낙원 즉 생명과를 먹을 수 있는 천국의 모형으로 정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도록 하셨다가 모세의 인도를 받아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과정을,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모형으로 정하셨다.
성도들은 광야를 통과하면서 성령의 도움으로 심령과 행실이 정결하게 되어 가나안 땅 즉 하나님의 낙원에 들어가 에덴낙원에서 잃어버렸던 생명과를 먹게 된다.
그러면 실제로 생명과를 먹은 경험은 어떤 것인가? 로마서 7장과 8장을 통하여 생명과를 먹은 성도와 먹지 못한 성도의 경험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다.
출애굽한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죄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초보적 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자범죄를 한꺼번에 통회자복하고 용서를 받았을지라도 죄에 대한 문제가 온전하게 해결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출애굽한 성도들은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점진적으로 선과 악에 대하여 넓고 깊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에 대하여 경험적으로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빛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만 로마서 7장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가나안 정탐 이후 표면적인 죄 때문이 아니고 마음속에 나타난 내면적인 죄 때문에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빛 된 말씀을 실천하고자 할 때 범죄할 기회가 주어지면 순간적으로 마음 속에 죄의 법이 나타나는 경험들을 통해 영 속에 뿌리 박힌 죄성을 발견하고 절망하며 탄식하다가 이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제가 거룩한 것 같지만 오늘 새벽 강남에서 울산까지 일반 버스를 타고 오면서 옆 자리에 여자 분이 앉아 있는데 자리가 좁으니까 몸이 맞닿게 되다 보니 오는 내내 잠도 못 이루고 탄식이 되었다. 살이 맞닿으면서 전해지는 순간적인 쾌감 앞에 절망적일 수 밖에 없다.
개발사 영업 사원이 있는데 저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데 거의 대화할 때마다 큰 소리치며 화를 낸다. 또한 약속을 했는데 제때 해주지 않으면서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다. 두 업체에 납품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중간에 낚아 챘으면서도 전혀 미안한 마음이 없다. 순간 분노가 마음에 앉을라치면 밝은 빛이 있기 때문에 생각의 화제를 돌려 버린다. 그러나 순간 떠오르는 분노 앞에 절망적일 수 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죄의 법 때문에 고민하다가 생명과를 먹게 된다. 로마서 8:1-2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다.
전에는 죄의 법이 마음 속에 나타나 정죄를 했는데 이제는 생명의 성령의 법칙이 마음 속에 나타나므로 죄의 법에서 해방되어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 같이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간 성도들은 교회 시대에 마음 속에 생명의 성령의 법칙이 나타나는 분들이다. 즉 마음 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에서 해방되신 분들이다. 따라서 정죄 받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생명과를 먹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초능력이 나타나서 약점도 없고 죄도 짓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이분들이 생명과를 먹었다 하더라도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요셉은 겉으로는 깨끗한 사람 같지만 마음속에는 정욕이 순간순간 나타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모세도 아말렉 군대와 싸우게 될 때도 양쪽 팔이 내려오게 되면 백성들이 자꾸 죽게 되는 고통을 받았지만 끝까지 팔을 들고 있지 못했다. 하나님이 초능력으로 도와주셨다면 끝까지 들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은 얼마든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십계명을 기록해주신 돌판을 들고 내려오다가 금송아지 섬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돌판을 집어 던져서 깨뜨려버린 사건도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돌멩이 던지고 반역을 하고 있는 백성들을 생각하면서 답답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린다. “내가 이 백성들을 낳기를 했습니까. 도대체 왜 저한테 이 일을 맡기셔서 이런 어려움을 겪게 하십니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돌봐주신다. 그런 것도 역시 하나의 약점, 즉 부족한 점으로 보자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신(神)과 같이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다윗이 지붕에서 마귀의 공격을 받고 실패했던 것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엘리야가 로뎀나무 밑에서 죽기를 청하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천로역정의 기독도가 오죽하면 절망옥에서 허리띠를 풀어서 목을 졸라 죽으려고 했다.
공용복 선생님도 마귀가 주는 고통을 극심하게 받다가 가족들은 잘 모르는 가운데 울부짖으면서 하나님께“이렇게 큰 고통을 당하면서 덕을 세우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보이게 될 바에는 차라리 제 영혼을 거두어주십시오.”이런 기도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대천에 살 때도 있었고, 1년에 몇 차례씩은 마귀한테 큰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담이 결린다든가, 누워서 사는 생활조차도 제대로 하기 어렵도록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극적으로 풀어지고, 또 풀어지고 그랬다고 한다. 대천에서 올라올 때도 K목사님과 사모님이 결혼을 약속하고서 선생님께 오셨다가 선생님 형편이 너무 어려우니까 링거(Ringer)를 사다 꽂아주셨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는 태연하다고 한다.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웃고 담대히 증거도 하고 별로 거기에 매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혼자 극심하게 고통 받는 밤시간에는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 경우가 이따금씩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것도 하나의 약점으로 생각한다면 할 수 있다. 한 번은 너무너무 견디기 어려워서 하마터면 “하나님, 차라리 제 영혼을 거두어주십시오.”라고 할 뻔했다고 한다. 다행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밤에 잠도 못 자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첫째, 십사만 사천은 생명에 들어간 성도들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7:13-14을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분석해 보면 좁은 문과 좁은 길을 다 통과해야만 생명을 얻는 장소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역자들과 성도들은 처음 믿을 때부터 생명을 받은 것으로 즉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 내주합일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로마서 8:2의 경험에 들어간 줄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출애굽할 때 생명과를 먹고 광야의 길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다. 모형적 진리 가나안 7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성도들이 생명과를 먹을 수 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좁고 협착한 길 즉 광야의 길에서 마귀와 세상과 역경을 싸워 이겨야만 되는 것이다.
부자 청년이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질문한 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계명들을 지키고 소유를 팔라고 하셨다. 그러면 온전해 지고 보화 즉 생명을 얻는다고 하셨다.
유아들에게 말씀 먹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하여 데이비드 차가 어떤 집회에 가서 유아들에게 집회를 위해 기도하자고 하니까 모두 가 무릎 끊고 방언으로 눈물을 흘리며 대성 통곡하며 기도하더라는 것이다. 이 유아들의 부모님들은 말씀으로 자녀들을 양육했는데 유아들 모두 말씀을 500장 외운다고 한다. 우리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다음 세대를 교육해야 하는데 말씀 암송 면에서는 배워야 하지 않는지 생각하게 된다.
가족에게 남긴 고 한경직 목사의 육성 유언을 들어 보면‘나는 솔직히 우리 자손들에게 남길 유산이 하나도 없다. 나는 내게 속한 집 한 칸 땅 한 평도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이미 너희들도 다 알 줄 생각한다. 무슨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부끄럽게 생각이 된 까닭이다.
고 한경직 목사님은 양벌 몇 벌, 낡은 침대, 성경책과 안경이 소유의 전부였다고 한다.
그런데 큰믿음 교회 변승우 목사님은 4~50평 정도 사시면서 명성 교회, 사랑의 교회를 본인의 교회와 비교하면서 은근히 소유를 자랑한다. 일부 목사님들은 아멘하며 그런 소유를 부러워하신다.
이것은 목표가 잘못된 신앙이며 가르침이다. 고 한경직 목사님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따라서 인생이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할 때에 그저 점점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은 인생으로서의 최고 목표를 잊지 말고 언제든지 그대로 살 때에 인간의 삶은 헛되지 아니하고 허무하지 아니하고 의미가 있다고 나는 지금도 꼭 생각한다.’고 하셨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도 사업을 내려 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디모데후서 2:4“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열심히 목회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겨우 외적인 소유들을 내려 놓은 것 같다.
둘째, 십사만 사천은 신의 성품에 참예한 성도들이다. 베드로후서 1:4을 보면“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썪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분석해 보면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축복 가운데 가장 보배롭고 큰 축복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도들이 신의 성품에 참예하기 위하여 준비해야 될 조건은 세상에서 썪어질 것 즉 정욕적인 것들을 철저히 버리고 마음과 행실이 정결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귀의 성질이 마귀의 영 속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생명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 있으므로 성도들의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되면 신의 성품은 자동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된 경험을 가리켜 신의 성품에 참예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크게 네 종류로 분류해서 살펴볼 수 있다. 우주, 만물, 사람의 육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성격이다. 십사만 사천은 교회 시대에 이 땅에서 거룩한 성품으로 바뀌신 분들이다.
셋째, 십사만 사천은 큰 은사 즉 사랑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다. 고린도전서
바울 사도께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하신 후에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말씀을 기록한 것을 볼 때 더욱 큰 은사는 사랑의 은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랑의 은사는 오래 참고 온유하고 투기하지 아니하고 자랑하지 아니하고 교만하거나 성내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등 완전한 덕행의 열매를 맺게 하는 은사이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랑의 은사는 베드로후서
또한 로마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된 경험을 하게 됨으로써 천국에 대하여 완전한 소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큰 은사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사랑이 마음에 부어지는 경험을 가리켜 말한다.
넷째, 십사만 사천은 전신갑주를 입은 성도들이다. 에베소서 6:11을 보면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다. 이분들은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성도들이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 내주합일되면 온 몸에 신비로운 생명의 감각이 계속적으로 나타난다고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꿈에 전신갑주를 입었어도 온 몸에 신비로운 생명의 감각이 계속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생명과를 먹은 성도가 아니다.
다섯째, 십사만 사천은 인맞은 종들이다. 요한계시록 7:1-4을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라고 하였다.
교회시대에 하나님께서 144,000명의 인맞은 종들을 만드시는 계획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다. 여기에서‘하나님의 인침을 받았다’는 것은 온전하게 구속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가장 충성스럽고 착한 사역자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증표이다.
여섯째, 십사만 사천은 처음 익은 열매들이다. 요한계시록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익은 열매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계시록 14장을 보면 두 번째 익은 열매로 순교자들을 추수하시고 계시록
일곱째, 십사만 사천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들이다. 로마서 8:23을 보면“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하였다.
성도들이 광야의 길을 통과하면서 신앙이 성장할 때 즉 익어갈 때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과 행실을 점진적으로 깊고 넓고 온전하게 지배하시면서 정결케 하시는데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가리켜 성령이 익어간다고 표현한 것이다.
여덟째, 십사만 사천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처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실천하면서 마음과 행실이 정결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주합일되는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다. 요한복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20에서“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신 것이다. 여기서‘그날’은 오순절 성령강림하신 날을 가리켜 말하며 그때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주합일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또한 요한복음 15:3-4을 보면“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다.
‘내가 너에게 불 세례를 주노라’의 저자 김용두 목사님이 시무하는 서인천 주님의 교회에서 신년 30일 저녁 9시부터 다음날 7시가 넘도록 말씀과 찬양과 기도를 했더니 성령의 불세례와 함께 방언, 예언, 신유, 영분별, 마귀 쫓음의 은사와 권능이 임했다고 한다. 지금 6권 집필중이며 해외에서도 강의 요청이 빈번이 오고 있었다.
광명과 강남의 생수기도원 원장이신 윤석덕 목사는 전에 광명생수기도원에서 매일 밤 11:30~새벽 4시까지 예배를 드렸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방방 뛰면서 온 힘을 다해 예배를 드린다.
연합철야가 새벽 1시에 끝났는데 본당 장의자에서 자면서 기도하는 자매님들을 보았다.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귀하게 여겨졌다.
결론의 말씀으로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다.
총회 주관 연합철야를 하는데 이안드레 목사님께 환상이 보였다. 예수님과 공용복 선생님이 대화를 하시는데 이 자리에 1,000명이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적은 무리가 모였기 때문에 남은 분들이 그 몫을 대신 채워야 하는데 어렵다는 것이다. 찬송가 365장 ‘내 주의 지신 십자가’ 2절에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라고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성복교회가 이대로는 안되고 예배가 이대로는 안되고 모임과 집회가 이대로는 안되고 신앙 생활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갖고 한 주간 새롭게 변화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기도: “주님!!! 생명에 들어간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