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 텍스트 8장
2. 교과 과정의 방향
1
그대가
적이라고 지각하는 이들은
그대 평화의 일부이다.
그런데 그대는
그들을 공격함으로써
평화를 포기하고 있다.
그대가 어떻게
스스로 포기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대는
갖기 위해 공유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대가 평화를 포기할 때,
그대는 자신을 평화로부터
제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왕국과는
너무도 이질적인 상태라서
그대는
왕국의 보편적인 상태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과거에 배운 것이 그대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것은 그대에게
잘못된 가르침이었다는
것이 틀림없다.
단지
이 한 가지 근거만으로도,
그대가 배운 것의
가치를 의심해야 한다.
2
배움이
변화를 지향한다면,
-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항상 배움의 목적이다 -
그대는
그대의 배움이 가져다 준
변화에 만족하는가?
학습 결과에
대한 불만족은
학습 실패를 나타내는
신호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대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속죄의
교과 과정은
너희가
스스로 짠
교과 과정과
정반대이며,
그 결과도
마찬가지이다.
너희가 짠
교과 과정의 결과가
너희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면,
그리고 너희가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교과 과정의 변화가
명백히 필요하다.
3
가장 먼저
도입되어야 할 변화는
방향의 변화이다.
의미 있는 교과 과정은
일관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 교과 과정이
서로 정반대의 아이디어를 믿는
두 교사에 의해 편성된다면,
그것은
전혀 통합될 수 없다.
만약
그 교과 과정이
그런 두 교사에
의해 진행된다면,
각각의 교사는
단지 다른 교사를
방해할 뿐이다.
이것은
오락가락하게 만들 뿐,
변화로 이끌지는 못한다.
불안정한 자들은
아무런 방향도 없다.
그들은
다른 하나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하나를
선택하지 못한다.
심지어
다른 하나는
존재하지조차
않는 데도 말이다.
그들의
갈등하는 교과 과정은
그들에게 모든 방향이
존재한다고 가르치며,
따라서
선택을 위한
아무런 근거도
제공하지 못한다.
4
먼저
이런 교과 과정의
전적인 무의미함이
충분히 인식되어야만,
진정한 방향의
변화가 가능하다.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이
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두 교사에게서
동시에 배울 수는 없다.
그들이 함께
제공하는 교과 과정은
불가능한
학습 과제를 제시한다.
그들은 그대를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완전히 다른 것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두 교사가 모두,
그대에게 <그대 자신>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만 아니라면,
그것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대의 실재는
두 교사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두 교사의 말에 둘 다
귀를 기울인다면,
그대의 마음은
그대의 실재가
과연 무엇인가에
관해 분열될 것이다.
ㅡ 기적수업 밴드ㆍ텍스트 8장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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