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2대 임금 남해 차차웅때였다.
가야국 해안에 배가 한척 멈춰섰다.
가야를 세운 수로왕은 나라에 큰복이 들어욌다고 생각하여
백성과 함께 해안가로 나가 북을 두드리며 배를 맞이했다.
하지만 배는 가야해안에 멈추는듯 하더니 쏜살같이 달아나서
신라땅인 아진포앞 바다에 멈취었다.
아진포에는 아진 의신(왕에게 해산물을 바치는 사람)이라는 할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까치들이 잔뜩 모여있는 이상한 배가 포구 앞바다에서
흔들거리는것을 보고
이를 기이하게 여겨 배로 올라가 봤다.
배안의 이곳 저곳을 살피던 할머니는 간판에서 큰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상자안이 궁금했지만
그곳에서 무엇이 나올지 몰라 선뜻 열수가 없었다.
고심하던 할머니는 하늘에 기도를 올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상자안에는 아주 잘 생긴 남자가 종들의 시중을 받으며
금은보화속에 앉아있었다.
할머니는 남자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디에서 온 사람인가?"
할머니가 물어도 남자는 묵묵무답이더니
7일이 된 날에 입을 열었다.
나는 일본 동북 천리되는 다파니국의 왕이 여인국의 왕녀를 아내로 맞아
임신 7년만에 큰 알을 낳으니
왕이 불길하다하여 버리게 하였으나 왕녀는 비단으로 싸서
궤짝에 넣어 물에 띄우니 .....
신라국 아진포앞 바다에 까지 오게되었고,
그때 까치들이 많이 모여
울었다고 해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까지 작(鵲)에서 새조(鳥)자를 떼어내고
석 (昔)씨로 옛석로 사용되었다
할머니가 그 남자아이를 길렀는데
다른애들과 다르게 자랐으며,
많은 지식과 지혜가 점점 많이 싸여
남해 차차웅의 사위가 되었다.
유리 이사금의 유언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신라 4대 왕이며 석씨 시조가 된 석탈해왕에
대한 신화는 삼국유사 1권 제4편 탈해왕과 신라본기 제 1의 탈해이사금조
그리고 삼국유사 2권의 가락국기에 조금 기록된 신화에 의하면
남해왕 때에 아진포에서 혁거세왕에게 해산물을 바치던 아전 의선이라는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문득 바다에서 까치들이 떼지어 날며 우짖고 있음을 보았다.
이상히 여긴 노파가 살펴 보았더니
거기에 배 한척이 있었고 배안에 큰 궤짝이 있었다
궤짝을 열어젖히니 그 속에 단정하게 생긴 한 사내아이와
그밖에 여러 보물, 노비들이 들어있었다.
그 사내아이를 7일동안 보살펴주자, 스스로 입을 열어 말하기를
"나는 본디 용성국 사람이다. 그나라의 왕비에게서 알로 태어났으므로
버림을 받아 이곳에 닿았다"고 하였다.
그아이는 말을 마치자 지팡이를 끌고 두사람의 종과 더불어
토함산에 올라가 거기다 돌무덤을 파고 7일 동안 머물렀다.
그런뒤에 산에서 내려와 성안을 살펴 살만한 곳을 물색하던중
호공의 집에 다다랐다.
그는 호공의 집 곁에 남몰래 숫돌과 숯을 묻고서,
이튼날 아침 관가에다 그집은 자신의 조상이
대대로 살았던 집이었는데 자신이 잠시 집을 비운사이
호공이 들어와 차지한것이라고 송사를 제기하였다.
그는 숫돌과 숯을 증거물로 제시 하여 드디어
그집을 차지하게 되고 그 소문이 나자
남해왕은 그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맏공주와 배필이 되게 하였다.
탈해가 남해왕의 사위가 된것이
뒷날 그가 왕위에 오를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은 말할 나위없다.
(출처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민족대백과)
읍천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