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성우(鏡虛 惺牛)선사-第七十五 / 1849~1912
전법게(傳法偈) / 대원 문재현 선사 해석 - 제75조 경허 성우 선사 전함 / 제76조 만공 월면 선사 받음 -
雲月溪山處處同 운월계산처처동 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대가풍 慇懃分付無文印 은근분부무문인 一段機權活眼中 일단기권활안중
구름과 달, 산과 계곡이라, 곳곳에서 같음이여 선가의 나의 제자 수산의 큰 가풍일세 은근히 무문인을 그대에게 분부하니 이 기틀의 방편이 활안 중에 있노라
[註} 수(叟) : 늙은이 수, 쌀 씻는 소리 수, 촉(蜀)의 별칭
● 오도송(悟道頌)
忽聞人語無鼻孔 홀문인어무비공 頓覺三千是我家 돈각삼천시아가 六月燕岩山下路 유월연암산하로 野人無事太平歌 야인무사태평가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 뚫을 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깨달아 보니 삼천대천 세계가 다 나의 집 일세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 일이 없어 태평가를 부르네.
● 열반송(涅槃頌)
心月孤圓 심월고원 光呑萬像 광탄만상 光境俱忘 광경구망 復是何物 부시하물
마음 달이 홀로 둥그니 그 빛이 만 가지 형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 무슨 물건이리오.
♣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9~1912) 선사의 본관은 여산. 본명은 송동욱(宋東旭),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1849년(헌종 15)에 전주 자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 어머니를 따라 경기도 의왕시 청계사에 들어갔다. 청계사 주지 계허(桂虛)를 은사로 삼아 출가하였고, 1862년(철종 13)부터 한학을 배워 불교경론(佛敎經論)과 사서삼경 등을 익혔다. 계허가 환속하면서 경허는 계룡산 동학사의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맡겨졌다.
이때부터 경허는 본격적으로 한학을 공부하여 불교의 일대시교(一代時敎)뿐만 아니라 『논어(論語)』·『맹자(孟子)』·『시경(詩經)』·『서경(書經)』 같은 유학 경서와 노장사상까지 두루 섭렵하였다. 1871년(고종 8) 동학사의 강사로 추대되어 불교 경전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1879년(고종 16) 어느 날 옛 은사 계허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가던 중 심한 폭우를 만나 민가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하였다. 하지만 마을에 돌림병이 들어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경허는 밤새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생사불이(生死不二)’의 이치가 문장 속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경허는 그길로 동학사로 돌아가 학인들을 돌려보내고, 3개월 동안 참선과 정진을 하던 중 동학사 밑에 살고 있던 진사인, 이처사(李處士)의 한 마디,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 이 한마디를 전해듣고는, 바로 깨달았다.
콧구멍 없는 소(牛無鼻孔處: 우무비공처)는 중국 법안종의 종주 법안(法眼) 선사의 어록에 실려 있는 선어다. 당시 경허의 시봉을 받들던 사미승 원규는 경허의 사제인 학명의 제자였고, 이처사는 사미승 원규의 속가 아버지였다.
얼마 후 거처를 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 있는 천장암으로 옮겨 수행을 계속하면서 만공(滿空)·혜월(慧月)·수월(水月) 등을 지도하였다.
1886년(고종 23)에는 옷과 발우, 주장자 등을 불태우고 무애행(無礙行)을 나섰다. 이때부터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와 부석면의 부석사를 오가며 후학을 양성하고 선풍을 크게 떨쳤다. 1899년에는 합천 해인사에 머물며 「해인사 수선사 방함인(海印寺修禪社蒡啣印)」과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 수선사 창건기(陜川郡伽倻山海印寺修禪社創建記)」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1904년 천장암으로 돌아간 경허는 만공에게 마지막 법문을 전하고 종적을 감추었다.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박난주(朴蘭州)로 개명한 뒤 갑산(甲山)·강계(江界) 등지에서 머리를 기르고 유관을 쓰고 다녔으며, 서당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다고도 한다. 1912년 4월 새벽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하니 그의 나이 64세였다.
경허는 선(禪)의 생활화와 일상화를 강조하며 대중 속에서 선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경허의 이러한 노력으로 새로이 선풍이 일어나 많은 선사가 배출되고, 선원이 생겨났다. 경허는 무생(無生)의 경지를 이상으로 삼고 무상(無常)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선에 있다고 보았다. 또 선(禪)과 교(敎)는 하나라고 주장하였고, 간화선(看話禪)과 염불선(念佛禪) 역시 하나로 보았다. 저서로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출처 : 디지털서산문화대전, 위키백과 참고 : 전법게 해석의 문제 : 불교저널, 청계산 청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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