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상황은 ‘예정된 코스’로 가고 있었다.
박정희는 10월 27일 헌법개정안을 공포했다. 김대중이 그토록 우려하던 대통령 1인 독재체제 즉 사실상 총통제를 내용으로 하는 유신헌법안이었다. 이날 김대중은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개헌에 대해
1. 이번 개헌안은 한마디로 말해서 독재적 군림과 영구집권의 야망으로 불탄 박 대통령의 목적을 달성시키고, 직접선거로는 도저히 승리할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진 그의 완벽한 당선을 노린 일종의 총통제 개헌이다. 이에 따라 그가 작년 대통령 선거 당시 자신의 3선을 국민에게 호소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한 국민과 세계에 대한 공약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나는 선거 당시 “만약 이번에 평화적으로 정권교체가 되지 않으면, 박 정권의 교체 가능성은 완전히 말살되며 가공할만한 총통제 시대가 온다”라고 되풀이 경고했는데 불행하게도 이 예언이 적중했다.
2. 그동안 박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공산체제에 비해 민주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경쟁적 공존에서의 승리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번 개헌안은 민주주의의 생명인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을 부정했으며 북에 있어서의 공산 획일체제에 대한 대폭적인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종래의 그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일 뿐 아니라 27년간이나 조국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쓰라림을 견디면서 자유를 위해 싸워온 한국민의 투쟁 명분과 신념을 상실케 하는 것이다.
3. 박 대통령은 통일을 위한 개헌 운운해 왔지만 결과는 통일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의 권력의 영속화와 강화를 위한 개헌으로 집중시켰다. 나는 국민과의 공약을 깨고 민주주의적 건국이념과 헌법을 짓밟은 박 대통령의 행위에 대해 계속 투쟁해 나갈 결의를 명백히 다짐하는 동시에 자유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반드시 내려질 것을 확신한다. (주석 5)
유신헌법에 대한 김대중의 반대 성명은 국내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비상계엄으로 언론이 통제되었고, 특히 김대중에 관한 보도는 일체 금기시되었다. 국회가 해산되고 정당의 활동이 금지된 상태에서 개헌안은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 속에서 국민투표에 붙여지게 되었다.
김대중은 11월 21일 워싱턴에서 이번에는 국민투표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주일 전에 일본에서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던 터였다. 한국의 유신통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일본보다 미국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민투표에 대해
1. 어제 한국에서는 박 정권의 각본대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완전히 불법이며 무효라고 선언하는 바이다. 그 이유는 첫째, 개헌안이 현행 한국 헌법 규정대로 국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국민투표에 부친 점, 둘째, 개정안의 내용이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을 부정하고, 대통령 1인 총통적 독재체제를 규정하는 것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한 점. 셋째, 개헌안에 대한 모든 반대를 금지하고, 계엄령하의 박 정권과 그 지지세력에 의한 찬성의 자유만이 보장된 반민주적 방법에 따른 점. 넷째, 부정을 감시하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야당 대표가 제외됨으로써 얼마든지 날조될 수 있었던 것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나는 민주주의적 자유를 열망하고 또한 이 때문에 27년간이나 피나는 투쟁을 해온 한국민이 박 정권의 이같은 불법적인 조치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동시에 머지않아 민주헌법을 회복하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 국민 선두에 서서 최후까지 그들과 함께 싸움으로써 우리의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결의를 밝히는 바이다. (주석 6)
주석
5) 앞의 책, 297~298쪽.
6) <행동하는 양심으로>, 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