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발자취를 흔적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남기려고 애를 씁니다. 생전에 큰 일을 한 사람들의 기념관을 짓고 책을 만들고 그 발자취를 후대에 널리 알리려고 하는 노력도 알고보면 그 사람의 흔적을 잊지 않으려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에서이지요.
그러나 어디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만 흔적을 남기려고 하나요. 이름없는 필부도, 죽으면 곧 잊혀져버릴 평범한 사람들도 흔적을 남기려고 애를 씁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을 만한 산골짜기의 바위에 이름을 파 새겨놓기도 하고 돈을 조금 벌어온 사람들 가운데는 돈을 주고 작가를 고용해서 자서전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흔적을 각인 시키려고 합니다.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정의롭게 살다간 사람들에게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기도 하지만 불의하게 정직하지 못하게 동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을 괴롭히고 간 자에게는 악몽으로 남게 되지요. 범죄자의 흔적을 통해서 범인을 잡고 그 행적을 뒷바침하는 물증을 찾는 것은 수사관들의 몫이지요.
우리들은 매일을 살면서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흔적을 남기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르지요. 가능하면 좋은 흔적을 남겨야할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 인간세상의 일이지요. 유명한 문화재에는 언제나 먼저 왔다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돌지요. 도굴꾼들이 그들입니다. 문화재의 주인공들은 좋은 흔적을 남기고 갔지만 이어서 찾아온 도굴꾼들은 나쁜 흔적을 남기지요. 1920년 이집트의 "왕들의 계곡"이란 곳에서 발굴이 된 "투탕카멘" 즉 이집트의 소년왕의 미이라 얼굴에 덮어 놓은 황금가면을 발굴한 "카터"라는 미국인도 먼저 무덤을 도굴했던 흔적을 발견하고 실망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흔적들은 금방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만 눈에 뜨이지 않고 우리에게 삶의 수수께끼를 던져주는 흔적은 얼마나 많은가요. 그래서 일찍이 만해 한용운 선생은 그 흔적에 대한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만해 한용운의 "알수 없어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알고보면 조상의 윗대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온 흔적의 한 뿌리 이지요. 우리는 그 흔적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흔적이 얼마나 위대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눈 그친 새벽에 바깥을 나서면 벌써 어느 누구의 발자국이 직혀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고단하게 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웃, 미화원, 신문배달원, 새벽부터 일해야만하는 우리들의 선량한 이웃들이 남긴 흔적들이지요. 정치인들은 좋은 제도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혜택을 주고, 경제인들은 취득한 부를 병들고 배우지 못해 소외되고 그래서 어렵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생활의 기쁨을 선사해주고 예술가들은 그림과 글과 음악을 통해서 삶의 정신적 영역을 넓혀주고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것들은 많은 흔적으로 남아서 우리들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흔적들이 아픔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나쁜 생각을 갖고 나쁜 일을 하면서 일생을 보낸 사기꾼과 도척(盜拓)들의 흔적은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만들어주기도 하지요.
좋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보는 이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글을 통해서 삶의 진실을 가르쳐주고, 좋은 음악을 만들거나 부르는 사람들은 소리를 통해서 헐벗고 황폐한 영혼을 한층 더 숭고하게 만들지요. 김신자 화백의 비구상 흔적(痕跡)은 그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시도이기도 하지요. 작가가 그린 발자국 무뉘는 살아온 날들의 흔적이자 살아갈 날들을 더 아름답게 창조하려는 예술가 로서의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