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행사마다 '비둘기떼 축하 비행'…
聖火에 타 죽고… 길 잃어 難民 되고
대한민국 출범의 기쁨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49년 10월 10일. 서울운동장(옛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전국 학도체육대회에서 각별한 볼거리 하나가 새로 선보였다. 개막식 클라이맥스에서 비둘기 200마리가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며 '이 땅의 내일을 쌍견(두 어깨)에 걸머진 씩씩한 젊은이들의 앞길을 축복'해 감탄을 자아냈다. 행사장의 비둘기 날리기가 보도된 건 건국 이후 처음이었다(1949년 10월 11일자). 그때부터 비둘기는 점점 바빠졌다. 대통령 취임식은 물론이고, 외국 대통령 방한, 3·1절, 광복절, 개천절 등 국경일, 전국체전 개막일 때마다 적을 땐 수백, 많을 땐 몇천마리씩 동원됐다.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의 세 번째 취임식 때 날린 비둘기는 100마리였는데, 대통령마다 자꾸 마릿수를 늘려 갔다. 1978년 9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땐 3000마리까지 동원했다. 전두환 대통령 때 500마리로 줄어든 듯했더니,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 때는 1000마리로 다시 늘었다. YS가 취임식 때 '제14대' 대통령이라며 1400마리를 날리자, 15대 대통령에 취임한 DJ는 1500마리를 날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선서 때도 1500마리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행사장 관중이야 '평화의 비상(飛翔)'이니 뭐니 하며 박수 치고 탄성을 질렀지만, 동물 보호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많았다. 서울시 등에서 행사용으로 3000여마리를 훈련시키고 길러 왔는데, 이 새들에게 행사장 동원처럼 끔찍한 '악몽'은 없었다. 출동 전 비둘기를 붙잡아 '박스 포장'하는 데만 10일쯤 걸렸다. 개막 전날 행사장으로 옮겨져 하룻밤을 보내고 날아올랐지만, 일부는 집으로 제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미아'가 됐다. 하늘을 스스로 날아 이동한 게 아니라 트럭에 갇혀 운반됐기에 방향 감각을 잃은 것이다. 축포 소리와 함께 오랜 감금에서 석방되며 날아오른 비둘기들은 "대체 여기는 어디이며, 나의 집은 어디인가" 하고 황망해했을 것이다. 밤에 열리는 올림픽 개막식에 동원된 비둘기는 성화(聖火)에 타 죽기도 했다. 서울올림픽 때도 그랬다. 동물애호단체의 비판이 계속되자 1996년 7월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때부터 비둘기의 올림픽 개막 비행은 사라졌다.
비둘기 강제 동원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행사에 불려나갔다가 집 잃은 비둘기는 여기저기 눌러앉아 살고 있다. 수십년간 쌓여온 '난민' 비둘기는 서울 도심에만 5만, 수도권 전체엔 100만마리쯤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에 이 새들은 평화의 상징이라며 사랑만 받았다. 1965년 2월 엄동설한에 남산 비둘기 사육장이 철거되자 소녀들이 "불쌍하다"며 세뱃돈을 털어 신문사로 줄지어 성금을 들고 찾아왔을 정도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곳곳에 배설하고 세균 묻은 몸으로 날아다녀 '하늘을 나는 쥐'라고 손가락질 받는 처지가 됐다.
몇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 의회는 약 8만5000마리의 시내 비둘기에게 피임약을 먹이기로 결정했었다. 서울시도 '비둘기에게 먹이 주지 말기' '둥지 없애기' 등의 캠페인을 벌이며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도심의 비둘기란 지난 시절 국민 마음을 주물러 보려던 대형 이벤트 유행이 남긴 부산물인 셈이다. 화려한 겉치레를 중시하던 일부 '나으리'의 행태가 애꿎은 새들을 도시의 애물단지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