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보편화… 사람을 동물처럼 전시한 끔찍한 역사 있죠
박 제
서울대공원에서 2019년 자연사한 시베리아 호랑이가 최근 박제(剝製·사진)로 재탄생했어요. 박제는 죽은 동물의 부패를 막고 생전 모습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미라(mirra)와도 비슷한 점이 있어요. 고대 이집트에서는 동물의 미라를 만들어 사람의 미라와 함께 묻기도 했어요. 미라는 장기를 꺼내고 피부 표면에 방부제를 발라 말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요. 가죽을 손질한 뒤 내부에 솜·진흙 등을 넣어 근육이나 뼈대를 재현하는 박제와는 다르죠.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동물 미라는 동물 박제의 원조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의 살아생전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둔 박제 기술은 18세기 보편화됐어요. 대표적인 사례로는 스웨덴의 왕이었던 프레드리크 1세(1676~1751)의 반려동물인 사자를 들 수 있어요. 이 사자가 죽자 프레드리크는 사자를 박제로 보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명을 받은 박제사는 사자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의 증언과 사자의 옆모습을 묘사한 조각 등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사자의 모습을 복원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박제 사자의 앞모습은 사자보다 개와 흡사했대요. 표정마저 우스꽝스러웠죠. 결국 박제사는 왕실 모독죄로 반년간 감옥에 갇히게 됐다고 해요.
19세기는 박제술의 황금기로 불릴 정도로 많은 동물이 박제됐어요. 그 모양 역시 실제와 흡사했습니다. 특히 이 시기 영국에서는 유명한 박제사가 다수 등장했어요. '현대 박제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류학자 존 행콕(1808~1890)은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위해 다양한 새를 박제했어요. 이를 계기로 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당시 중산층 가정에서는 장식품으로 박제로 만들어진 새 한 마리씩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동물을 의인화해 박제하기도 했어요. 영국의 박제사 윌터 포터(1835~1918)는 박제한 토끼들이 학교에 모여 수업을 듣는 모습이나, 박제한 고양이가 차 마시는 예절을 표현하고 있는 모습 등의 작품을 만들었어요.
끔찍하지만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람을 박제로 만든 사례도 있어요. 일부 백인이 유색인종을 '사람처럼 생긴 동물'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사키 바트만 사례가 있습니다. 사키는 15세 때 영국으로 끌려가 동물원의 동물처럼 알몸으로 전시를 당했어요. 이후 프랑스로 팔려가 병을 얻어 죽게 됩니다. 그런데 사키가 죽은 뒤 프랑스 학자들은 그를 동물처럼 취급했어요. 시체를 해부하고, 박제로 전시했죠. 이 박제는 1974년까지 전시되다가, 2002년이 돼서야 사키의 고향인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보내져 매장됐어요. 북극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1856~1920)도 북극 원주민을 미국으로 데려가 동물원에 전시하고, 죽은 후 박제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