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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샤츠슈나이더의 RPG RPG 공화국은 아직 죽지 않았다 - (0) 프롤로그 및 캐릭터메이킹
E.E.샤츠슈나이더 추천 0 조회 321 26.05.22 19:37 댓글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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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6:43 새글

    @dear0904 사실 오늘 약속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어서 그것도 좀 애매하긴 합니다(…)

    전체적으로 저는 보통 이른 낮시간에 대부분 가능하고, 저녁에는 누굴 만나거나 어딜 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대로라면 현실적으로 아마 주말까지는 미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 작성자 02:10 새글

    번외: ‘그들’은 어떻게 살다 갔는가?

    1. 자코모 카르노(Giacomo Carnot)

    자코모 카르노, 프랑스어로는 ‘자크’ 카르노는 급진적이고, 행동이 앞서고, 국제주의적인 직업 자코뱅이었습니다. 혁명 그 자체를 사랑한 그는 1815년 부르봉 왕정복고 이후 남프랑스와 스위스를 전전하다가 결국 이탈리아로 향했습니다. 1820-21년 피에몬테-나폴리 혁명에 참여했고, 이후에도 수많은 카르보나리당 음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기억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항상 어딘가 흔적이 남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직업적 혁명 용병처럼 삽니다. 돈은 없고, 조직력도 부족하고, 정치감각도 자주 부족하지만, 용기와 국제주의적 열정만큼은 진짜입니다. 그의 최후 역시 카르노적입니다. 1849년, 75세의 노인인 그는 1848년 혁명의 유산인 로마 공화국을 지키겠다고 총을 들고 모국인 프랑스 공화국군과 싸우다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대중역사서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주세페 마치니 평전에 5-6회 정도 언급될 뿐입니다.

  • 작성자 02:14 새글

    2. 시몽 아시에(Simon Aciér)

    시몽 아시에는 행정가였습니다. 나폴레옹 시기의 행정가였지만, 열성 보나파르트파는 아니었습니다. 왕정복고 정부도 그런 사람을 전부 내쫓을 수는 없었습니다. 프랑스 국가는 계속 굴러가야 했고, 행정능력이 있는 사람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1815년 이후 잠시 조사를 받지만, 낮은 직위로 복귀합니다. 지방 행정, 통상·재정 관련 실무를 맡습니다. 시몽은 내면적으로는 로베스피에르를 존경하는 공화주의자였지만, 일은 정확히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 과격한 선택을 잘 못하기에, 데카즈 같은 보수관료들은 그를 선호합니다.

    샤를 10세 시기에 그는 점점 불편해집니다. 극우왕정의 성직자 영향력, 검열, 귀족적 반동을 싫어하지만, 공개 투쟁에는 나서지 않습니다. 1830년 7월혁명 때 그는 루이 필리프를 지지합니다. 열광해서가 아니라, 그나마 왕정과 혁명 사이의 균형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2월혁명 이후 그는 급진혁명가들의 사회공화국 이념을 지지했지만,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지원하지는 않았습니다. 1856년 사망한 그의 이름은 파리 관공서의 서류보관소에서만 등장합니다.

  • 작성자 02:21 새글

    3. 샤를루이 피네(Charles-Louis Pinay)

    젊었을 적의 피네는 투철한 공화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부르봉 왕정은 그의 공화주의자 경력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왕족살해에 연루되기에는 너무 어렸고, 그의 외국어 능력과 국제감각은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의 전성기는 7월 왕정 시기였습니다. 중국 광동무역, 영국 동인도회사와의 거래 등 그는 통상 분야의 전문가였습니다. 제2공화국과 제2제정도 그는 살아남습니다. 그는 자신을 특정 정파에 묶지 않습니다. 공화국이 오면 공화국의 무역이익을 말하고, 제정이 오면 황제의 세계정책을 말합니다. 본인은 이것을 “국가의 연속성”이라고 부르지만, 남들은 기회주의라고 부릅니다.

    그의 이름은 대중역사서가 아닌, 그가 직접 집필한 교양서적에 등장합니다. 동양 문명을 과장되게 소개한 이 책은 그가 사망한 1867년 무렵 많은 화제를 모았고, 지금도 서점에서 팔립니다. 그는 딱히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찬양받지도 않습니다.

  • 작성자 02:24 새글

    4. 조제프 팡탈레옹 남작(Joseph, Baron de Pantaleon)

    나폴레옹 정부의 행정관이었던 그는 너무 열심히 일했습니다. 비슷한 결의 동료 시몽 아시에와 달리, 조제프는 법제개혁에서 공을 세워 귀족 작위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부르봉 왕정은 그를 공직에서 추방했습니다.

    그는 공개적 지하혁명가가 되지는 못합니다. 성격상 너무 망설입니다. 그러나 초기 사회주의와 평등주의 사상에는 끌립니다. 바뵈프주의, 필리포 부오나로티의 회고, 생시몽주의, 협동조합적 실험, 도시 빈민 문제를 따라갑니다.

    1820년대 후반 그는 작은 서클에 참여합니다. 노동자 교육, 구빈, 가격문제, 공공창고, 지방자치 재정 같은 문제를 다룹니다. 그는 늘 “인민에게 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권력을 잡기 위한 음모에는 마지막 순간 발을 뺍니다.

    1832년 콜레라가 파리를 덮쳤을 때, 그는 구호활동을 하다가 감염되어 죽습니다. 그를 죽인 것은 거창한 역사적 비극이 아니라 행정적 선의였습니다.

    조제프의 이름은 푸리에나 생시몽 연구서에서 가끔 등장하지만, 되뇌여지지는 않습니다.

  • 작성자 02:32 새글

    5. 프랑수아 마르셀(François Marcel)

    혁명기 ‘생계형 자코뱅’이자 국민위병 중간간부로 약탈, 후원, 협박, 횡령 등에 익숙했던 마르셀은 1815년 이후 파리로 돌아와 지하 공화파 네트워크에 참가합니다. 그는 온갖 종류의 범죄자들을 묶어 혁명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이는 데 능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행동은 보통 강도질이었습니다.

    문제는, 마르셀이 점점 자신의 행동을 진짜 혁명적 열정으로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실제 행적을 잘 모르면서 그의 이름만 기억하는 대부분의 이들 역시 마르셀을 낭만적이고 돈키호테같은 혁명가로 기억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는 1830년 7월, 바리케이드 앞에서 총을 맞고 사망합니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그의 생애(라고 알려진 무언가)에서 영감을 받아 <레 미제라블>의 후반부를 완성합니다.

    1934년, 역사적 프랑수아 마르셀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는 수많은 문학 매체 속 등장인물들의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1880년대 잠깐 유행했고, 지금도 가끔 쓰이는 ‘마르셀리즘(marcellisme)’이라는 단어는 “신념은 큰데 계획은 없고, 그러나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무언가“를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 작성자 02:37 새글

    6. 롤랑 비셸론(Roland M. G. Bichelonne)

    롤랑 비셸론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을 “혁명의 배신자”로 보는 부류였고, 크롬웰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영도하는 공화정을 선호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두 번째로 퇴위할 무렵 잠깐 공화정 지도자의 꿈을 꾸었던 조제프 푸셰의 측근이었고, 이후에는 탈레랑의 보좌관을 지냈습니다.

    1830년 알제리 침공 이후에는 그의 글이 잠시 주목받습니다. 그는 알제리를 단순한 군사점령지가 아니라 국가경제 재편의 실험장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논리는 기묘하게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 음모와 부패 스캔들에 휘말립니다. 1830년대 후반, 항만 투자 관련 문제로 공격받고, 사실상 퇴장합니다. 그리고 1842년 르아브르에서 사망합니다.

    1934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주로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정치와 경제를 묶어서 사고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극초기 제국주의자인 그를 긍정적으로 독해하진 않지만 말입니다.

  • 작성자 02:43 새글

    7. 잔 펠리시 드술리(Jeanne Felicie d’Sully)

    그녀의 이름은 불쾌한 저주와 같습니다.

    성별을 숨기고 나폴레옹 전쟁에 복무한 폴란드 출신의 경창기병 장교, 아우스터리츠의 마녀, 황제의 영광과 몰락을 목격한 증인. 왕정이 복고된 뒤에는 당연히 공화주의자들부터 원칙파, 보수파, 초왕당파까지 모두가 그녀를 불편해했습니다.

    루이 18세 왕정 당시 그녀는 남프랑스 지역의 비공식 반혁명-치안 조언자였습니다. 데카즈의 온건보수파 정권은 그녀를 싫어했지만, 그 군사적 식견과 정치음모 감각만은 신뢰했습니다.

    1820년 베리 공작 암살 이후 반동주의자들의 기세가 강해지자, 잔 드술리의 이름은 다시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백색테러를 주도하는 음모가가 아니라 논객에 더 가까웠습니다.

    <도시는 어떻게 국가를 배반하는가>
    <반혁명은 왕정만의 언어가 아니다>

    이 글들은 당대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너무 기묘했기 때문입니다. 왕당파가 보기에는 공화주의 냄새가 났고, 공화파가 보기에는 반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후대에는 바로 그 점 때문에 기억됩니다. 그녀는 왕당파가 아닌 반혁명, 공화주의 언어를 쓰는 반민주주의,

  • 작성자 02:49 새글

    농민, 병사, 질서의 이름으로 도시 좌파를 증오하는 정치감각을 너무 일찍 보여준 인물이 됩니다.

    1830년 7월혁명 때 그녀는 루이 필리프를 경멸합니다. 정통왕정도 아니고, 혁명도 아니고, 부르주아 타협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사실상 은거하지만, 1832년 6월 봉기와 1848년 2월혁명, 특히 1848년 6월 노동자 봉기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다시 글을 씁니다.

    그녀의 마지막 글은 1849년에 사적으로 배포된 <6월 이후의 공화국>입니다. 거기서 그녀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공화국이 살아남으려면, (그 공화국은) 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잔은 1853년 툴롱 근교에서 사망합니다. 공식적으로는 퇴역장교의 미망인도 아니고, 귀족 부인도 아니고, 작가도 아닌 “이상한 여자”로 죽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가족사와 정치적 소문 속에 남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다시 유명해지게 된 것은 드레퓌스 사건의 광풍이 프랑스를 강타한 뒤부터였습니다. 극우 반의회주의자들은 고서점에서 그녀의 낡은 저서들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라”, “파리는 프랑스의 족쇄이다”…

  • 작성자 02:56 새글

    악시옹 프랑세즈는 그녀를 가장 좋아합니다. 반의회, 반계몽, 반도시, 반좌파.. 드 메스트르의 반혁명 사상과 로베스피에르의 비상권력을 결합한 그녀의 사상은 샤를 모라스같은 인간 군상들에게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습니다.

    반면, 프랑수아 드 라로크는 잔 드술리를 혐오합니다. 그 끝갈 데 없는 냉혈함과 잔혹함, 내전적 사고는 라로크가 추구하는 희생과 질서, 가부장적 보호국가와 거의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는 라로크 추종자들은 “증오와 불안으로 농민을 끌어들이고 공포로 도시를 지배하라”는 드술리의 저서를 사탄의 예언서 취급합니다.

    그녀의 후손, 마르그리트 드술리에게 이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꺼내는 이는 이제 드뭅니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주지도 않고, 계속 귀찮게 하면 걸쭉한 욕설이나 때로는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 이 이상한 선조는 불편한 짐에 가깝습니다..

  • 02:58 새글

    @E.E.샤츠슈나이더 혈통 셀프 페널티의 결과물(...)

  • 11:49 새글

    @E.E.샤츠슈나이더 악시옹프랑세즈는 좋은 쪽인데 불의 십자단은 혐오 쪽이라..... 이거 어디서 본 읍읍......

  • 14:26 새글

    @dnjdss 저 RPG에서 농촌지지로 선거에서 이긴다음 계엄 선포하고 파리 포위해서 파괴해버렸단 말이죠(...)

  • 14:44 새글

    @렌지파일 그렇게 압도적 행보를 보여서 여기서도 다른 사람 설명의 3배죠 ㅋㅋㅋ

  • 작성자 14:45 새글

    @dear0904 그만큼 임팩트가 강렬했어서……

  • 14:52 새글

    @E.E.샤츠슈나이더 류메이란도 그렇고 렌파님 여캐들이 참 임팩트가 강했죠 ㅋㅋㅋㅋㅋ

  • 14:53 새글

    @E.E.샤츠슈나이더 그렇죠 ㅋㅋ 한명은 외유, 네명은 자폭, 한명은 버스라면(...)

  • 14:54 새글

    @E.E.샤츠슈나이더 제 캐릭터들은 임팩트가 부족했었나 보군요(?) 핵전쟁보다 더 충격적인 전개를 위해 정진하겠습니다(...)

  • 작성자 14:55 새글

    @로콘 가짜광기죠(…)

  • 14:57 새글

    @로콘 자국 수도 봉쇄하고 나오는 사람 다 죽이기 랑 자국 금,은 다 녹여버리고 도시 다 불태우기 가 나온 시점에서(...)

  • 14:58 새글

    @로콘 제캐들은 뒤통수를 너무 잘쳐서 그만..

  • 14:59 새글

    @dear0904 전 주로 정상적인 캐릭터를 많이 해서…

  • 작성자 17:22 새글

    이벤트 순서 조정 제안.

    - 모두가 참여하는 메인이벤트를 목요일 저녁(대략 7시경)에 진행
    - 루이앙리/미셸/마르셀의 팀이벤트를 토요일 낮(대략 1시경)에 진행

    요렇게 하면 다들 시간 괜찮으신가요?

  • 17:22 새글

    네 가능합니다

  • 17:39 새글

    가능합니다

  • 18:21 새글

    제가 보통 저녁 7시쯤에 저녁을 먹는지라 30분 정도 늦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 18:44 새글

    일단 가능합니다. 내일 개작살 나는 여파가 길지 않길 바라야겠네요 ㅋㅋ...

  • 20:12 새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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