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빛고을입니다!
여러분께서는 혹시 '호남선 영산포역'을 기억하시는지요? 한때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호남선 강경역/익산역/목포역과 함께 내로라하는 손꼽히는 큰 역이었던 영산포역...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남도 나주시'에 속해있으면서도 그 비중이나 역활이 나주역보다 더 커서 나주역에 무궁화가 간간히 정차할때에도 당당하게 새마을을 세웠던 그 영산포역... 잠시 그 추억속으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註 : 사진은 지난 2001년 호남선 복선화공사 개통직전, 영산포역 영업종료를 얼마두지 않은 시점에 직접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일반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현상/스캔한 파일이라서 화질이 양호하지 못함을 미리 양해드립니다.)
영산포역 광장에서 본 영산포 역사입니다. 지금도 썩 내공이 좋은건 아니지만, 사진을 막 시작했던 그땐 더더욱 내공이 형편없었죠~ @@; 흔들림이 장난이 아니죠?
호남선 '송정리-임성리'구간 복선화공사 완료에 따라서 나주역과 영산포역이 통합되어 '(新)나주역'으로 통합되고, 나주시 관내에 있던 노안역도 단선시절의 역사위치에서 벗어나 새 위치로 옮겨 영업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습니다.
영산포역 역사 내부입니다. 매표창구는 이 2개가 전부였죠~ 그리고, 매표창구 앞으로는 맞이방과 홍익회 매점이 자리잡고 있는, 여느 시골역사와 별반 다를바 없는 규모였습니다. 이처럼 결코 크지않은 규모의 영산포역의 비중이 높았던 것은 전남 중남부지역(영암/장흥/강진/해남 등)으로 이어지는 육상교통의 요충지이자 영산강 하구둑 건설 이전까지 영산강을 통해 드나들었던 각종 상선의 종착점이 바로 영산포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문사회지리적 배경으로 인해서 영산포지역은 현재의 나주지역과는 다른 문화적 환경을 가지게 된거죠~ 똑같은 '나주시'라는 행정구역 내에 살면서도 오늘날까지도 '나주사람' / '영산포사람'으로 나눠지는 원인이 된 겁니다.
영산포역 플랫폼입니다. 형광/야광 폰트가 일반화된 오늘날의 폴싸인과 달리 그냥 파란 철판위에 '영 산 포'라고 씌여있는 예전의 폴싸인이 인상적이죠? 또, 플랫폼에서 비바람을 막기 위해 가건물(?) 형태로 지어진 승객 대기실이 인상적입니다. (이 구간이 복선화되면서 이런 형태의 대기실은 모두 사라졌죠~ --;)
플랫폼에서 바라본 영산포 역사입니다. 왠만한 읍/면단위의 역사가 단층 슬레이트 구조로 되어있는것에 비해 영산포 역사는 이층 슬라브 구조로 되어있으면서, 전/후면을 유리로 마무리지어서 개방감을 극대화했습니다. 과거 영산포역의 영화와 규모를 짐작케 하는 역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영산포역은 2001년 7월 23일 목포발 서울행 무궁화호 428 열차를 마지막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영산포역 폐지와 더불어 소속된 직원들은 규모가 커진 나주역으로 옮겨 그 임무를 계속 담당하고 있죠~
한편, 폐지된 舊 나주역과 영산포역 부지는 각각 '광주학생독립운동 시발점 기념공원(=나주역)'과 '철도박물관(=영산포역)'으로 꾸민다는 말이 있었지만 나주역은 호남선 전철화와 더불어 소리없이 사라졌고, 영산포역은 현재 방치된채로 있죠~
어떠신지요? 잠시 추억속으로 빠져드는 여행...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로부터 3년 반 남짓 지난 오늘의 나주역과 영산포역의 모습을 찍어올리겠습니다. ^^
이상 빛고을이었습니다!
첫댓글 영산포역 단말번호가 038인데 이게 아직도 주인 잃은채로 있다죠!?
제가 처음 철도를 이용하고 내린역이 영산포역이라 정겹습니다.(당시 서울발 목포행 통일호이용)
현재의 나주역에서 영산포역까지는 걸어서 약15~20분정도면 갈 수 있으며,영산포역 코드번호 038번은 망상해수욕장역으로 변경된걸로 알고있습니다... 제작년쯤 ATM인가 STM으로 청량리->망상해수욕장 승차권을 발권하면 청량리->영산포로 인쇄되는 오류가 있었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지금의 승부역 코드인 161도 옛날엔 경북선 가동역 코드였다는군요... 청량리에서 영산포 가려면 경원선->용산삼각선->경부선 이래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