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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7562]남호(南湖)鄭知常 (정지상)시모음
○ 鄭知常 (정지상) (西京人 仁宗時 爲知制誥 妙淸之亂 被誅 ;
서경 사람이다. 인종 때 지제고가 되었다. 묘청의 난에 주살되었다.)
정지상(鄭知常,?~1135, 인종 13)은 고려 예종, 인종 때의 문신이자 시인이다.
초명은 지원(之元)이고 호는 남호(南湖)이며 본관은 서경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1114년(예종 9)에 문과에 급제하여
1127년(인종 5)에 좌정언(左正言)이 되어 척준경(拓俊京)이 대궐을 범한 죄를 들어
탄핵하고 유배케 했다.
2년 후 좌사간(左司諫)으로 정치개혁을 논하는 소를 올렸다.
묘청(妙淸)과 백수한(白壽翰)의 음양비술(陰陽秘術)을 깊게 믿어
그들과 함께 삼성(三聖)이라는 칭호를 받고,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고
금나라를 정벌하여 황제로 칭하자는 서경 천도 운동을 주도했다.
1130년(인종 8)에 지제고(知制誥)로 왕명을 받아 곽여(郭輿)를 추모하는
‘동산재기(東山齋記)’를 지었고, 민간 신앙과 불교, 도교의 신을 합쳐
민족 수호의 정신적 상징을 만들자는 ‘팔성당제문(八聖堂祭文)’을 지었다.
그 후 기거랑(起居郞)이 되었으나 1135년(인종 13)에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개경에 머물다가 백수한 등과 함께 김부식에게 참살당하였다.
시와 그림에 재주가 뛰어났으며,
역학(易學)과 불전(佛典) 및 노장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西都 (서도 ; 평양에서)
紫陌春風細雨過 輕塵不動柳絲斜 綠窓朱戶笙歌咽 盡是梨園弟子家
자맥춘풍세우과 경진부동유사사 녹창주호생가열 진시이원제자가
평양의 거리 봄바람에 보슬비 지나가니
먼지는 일지 않고 버들가지 늘어졌네.
푸른 창 붉은 문에 흐느끼는 가락과 노래
이 모두가 노래 배우는 이원제자 집들이라네.
[감상] 이 시는 평양의 봄 경치와 그 뒤에 숨겨진 삶의 형편을 은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칠언절구 마(麻)운인데, 평측의 법칙을 어기고 구하는 요구(拗救)의 형식인 요체시(拗體詩)다. 이 시의 전구에서 본구자구(本句自救), 곧 앞에서 어긴 것을 뒤에서 구했다. (왕력 지음(송용준 옮김), 중국시율학 1, 소명출판, 2005, 174쪽, 200쪽 참조.) 이로 보건대 그는 한시의 변칙적 형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말의 기세를 웅건하고 빼어나게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그의 시풍은 말과 운율이 맑고 화사하며, 구절의 격식이 호방하고 빼어나서 상쾌하게 시야를 열어준다고 했다. (崔滋, 補閑集, 卷上. 語韻淸華 句格豪逸 讀之使煩襟昏眼 洒然醒悟.) 기구와 승구는 봄비 내린 평양 거리를 담담하게 묘사한 것이다. 기구에서 시상을 일으키고 승구에서 그것을 이어받는 절구의 전형적인 수법을 사용하였다. 전구에서 시상을 전환하여 놀라운 문제를 제기하는데, 화려한 저택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악기소리가 슬프게 흐느낀다는 것이다. 고려 전기는 개성을 중심으로 한 문신 귀족들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러므로 평양을 서경이라고 했지만, 옛 고구려의 도읍으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고, 설령 화려한 집이 있다고 해도 그런 집들은 대개 노랫가락이나 풍악을 연습하여 개성의 지배 세력에게 풍류를 제공하는데 이바지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결구는 이런 저택들이 모두 이원제자(梨園弟子)의 집이라고 하여, 당나라 현종(玄宗)이 속악을 익히게 한 이원(梨園)에 속한 사람들과 같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만이 번창하고 있다고 하여 평양의 쇠락한 형편을 드러내었다. 개성 세력이 지배하는 당시의 서경 사정에 대한 문제 제기인 셈이다. (‘한국 한시의 흐름’에서 인용)
醉後 (취후 ; 취한 뒤에)
桃花紅雨鳥喃喃 繞屋靑山間翠嵐 一頂烏紗慵不整 醉眠花塢夢江南.
도화홍우조남남 요옥청산간취람 일정오사용부정 취면화오몽강남
복사꽃 꽃비에 새들 지저귀고, 집을 두른 청산에 푸른 이내 아른거리네.
비스듬히 쓴 사모 바로잡기 귀찮아, 꽃동산에 취해 졸며 강남 꿈을 꾸었소.
[감상] 그의 낭만주의적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칠언절구로 담(覃)운이다. 기구는 봄날의 근경(近景)이다. 복사꽃이 피었다가 봄비에 꽃비로 지고, 새들은 그 사이에서 지저귄다고 했다.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를 엮어서 봄날의 경치를 제시했다. 승구는 조금 먼 경치다. 집을 두른 청산이 나오고 거기에 청산에 비친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아른거린다. 전구는 시인의 모습이다. 아마도 조금 취했는지 사모를 비스듬히 쓰고 바로잡기 귀찮다고 했다. 의관을 정제하는 것이 선비의 복장인데, 그는 그런 격식에서 약간 벗어나 비뚜름히 사모를 쓰고 졸고 있다. 파격의 멋을 부린다고 하겠다. 결구는 그가 꿈꾸는 세상이다. 봄날의 꽃동산 속에서 졸면서 아름답고 흥겨운 강남의 꿈을 꾸고 있다. 그는 묘청이 주장하는 서경 천도에 동조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의 이런 낭만적 취향도 거기에 참여한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大同江 (대동강)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우헐장제초색다 송군남포동비가 대동강수하시진 별루년년첨록파
비 그친 긴 둑에 풀빛이 푸른데
님 보내는 남포에서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언제 다할 것인고.
해마다 이별하는 눈물이 물결을 보탤 것이니.
[감상] 이 시는 칠언절구 가(歌)운으로, 전구에서 평측을 어기고 결구에서 구하는 대구상구(對句相救)의 요체시(拗體詩)다. 규범적 운율을 비트는 변칙적 형식이다.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는 제목이 ‘님을 보내며(送人)’로 되었다. 그의 시는 개성적 정서와 독창성을 존중하여 삶의 진정성을 보여준다고 지적되었다. 이 시도 슬프고 원통한 경험을 님과의 이별로 노래하여 절창으로 평가되었다. 정지상은 서경 천도를 주장하여 기존의 귀족 세력의 중심인 김부식과 대립했는데, 문학적 역량을 가지고도 서로 맞섰다고 하여 시화(詩話)에 오르내린다. 그의 향토적 정서와 절실한 표현 수법(李仁老, 破閑集, 卷下. 其語飄逸出塵 皆類此)은 귀족적 규범을 중시하는 김부식과는 사뭇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기구는 공간적 배경을 시각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끝없이 펼쳐질 푸른 꿈을 상징하는 듯하다. 승구는 이별의 현장을 청각적 이미지를 곁들여 표현하고 있다. 남포는 관습적 표현으로 한시에서 이별하는 장소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전구는 시상의 전환인데, 뜻밖의 질문을 던져서 감흥을 고조시키는 수법을 썼다. 결구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면서 시 전체의 결론이다. 이제현이 ‘작(作)’자를 ‘녹(綠)’자로 바꾸었다고 한다.(李齊賢, 櫟翁稗說. 予謂作漲二字 皆未圓 當時添綠波矣.) 남포는 이별하는 곳이니 해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별을 할 것이며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강물을 보태어서 물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이고, 님을 보내는 자신의 슬픔은 강물처럼 끝없이 흐를 것이라는 비통한 정서의 객관화이기도 하다. 이 시는 여러 시인의 시구를 활용하여(朴守川, 鄭知常論, 韓國漢詩作家論硏究1, 太學社, 1995, 54쪽.) 새로운 자신의 의경을 창조해 내었다. (‘한국 한시의 흐름’에서 인용)
團月驛 (단월역)
飮闌欹枕畫屛低 夢覺前村第一鷄 却憶夜深雲雨散 碧空孤月小樓西
음란의침화병저 몽각전촌제일계 각억야심운우산 벽공고월소루서
취토록 마시고 베개에 기대니 그림 병풍이 낮구나.
꿈을 깨자 앞마을에 첫닭이 우네.
문득 생각노니, 밤 깊어 운우(雲雨)가 흩어진 뒤,
벽공에 외로운 달이 작은 누각 서쪽에 걸렸던 것을.
[감상] 이 시는 구름과 비가 지나간 후에, 또는 운우(雲雨)의 밤을 보낸 뒤에 새벽의 달을 보는 느낌을 표현한 칠언절구로 제(齊)운이다. 단월역(團月驛)은 충주(忠州) 남쪽 10리에 있는 역참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단월역(丹月驛)이라 적혀있고, 그 뒤에 정지상의 이 시가 인용되어 있다. 기구는 술에 취한 상태다.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베개에 기대어 그림 병풍을 보고 있다. 승구는 상황 서술의 보충이다. 꿈을 깨니 앞마을에서 첫닭이 운다고 했다. 기구와 승구가 동일 시점을 말하는지 다른 시점을 말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거나 기구는 시각 이미지를, 승구는 청각 이미지를 일깨우고 있다. 전구는 회상이다. 지난밤에 구름과 비가 흩어진 뒤, 또는 남녀 관계가 끝난 뒤의 시점을 지금 생각하고 있다. 결구는 누각에 걸린 달의 심상이다. 하늘에 외로운 달이 작은 누각 서쪽에 걸렸던 것을 생각한다고 했다. 유미적(唯美的)인 감각을 환기하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送人 (송인 ; 님을 보내며)
庭前一葉落 床下百蟲悲 忽忽不可止 悠悠何所之 片心山盡處 孤夢月明時 南浦春波綠
정전일엽락 상하백충비 홀홀불가지 유유하소지 편심산진처 고몽월명시 남포춘파록
君休負後期
군휴부후기
뜰 앞에는 나뭇잎 떨어지고, 책상 밑에는 벌레 소리 슬프다.
홀홀히 걷잡을 수 없나니, 끝없이 멀리 어디로 가는가.
한 조각 마음은 산이 다한 곳이요, 외로운 꿈은 달이 밝은 때이다.
남포에 봄 물결 푸르거니, 그대는 다시 만날 기약을 어기지 말라.
[감상] 이 시는 오언율시로 지(支)운이다. 이 시에도 요구(拗救)를 사용했는데, 수련과 경련에는 대구상구(對句相救)를, 함련 출구에는 본구자구(本句自救)를 사용했다. 수련은 이별하는 계절이 가을임을 빌어 나뭇잎이 떨어지고 벌레 소리 슬프다고 하여 자신의 슬픔을 대신하게 했다. 슬프다고 감정을 직접 표출하지 않고, 객관적 상관물에 갖다 붙였으니 감정의 절제다. 함련은 떠나는 친구를 보내는 슬픔을 직서한 대구다. 세상만사가 만나면 헤어져야 한다는 섭리에 깊이 슬퍼하고 있다. 그는 불교적 진리에도 정통했다니 불교적 섭리를 체감하고서 하는 말일 것이다. 경련은 대구를 이루게 했다. 자신의 마음과 님을 그리워할 꿈을 은유로 처리했는데, 지금의 마음은 산이 다한 곳까지 함께 가고 싶은 심정이고, 그대를 보낸 뒤에 외로이 꾸는 꿈은 밝은 달빛이 빛나는 것처럼 기다림에 젖을 것이라는 말이겠다. 미련에서는 앞의 시와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남포에서 이별하니 그 정감이 강물처럼 넘친다고 하고, 헤어지는 사람에게 잊지 말고 다시 만나자고 기약하였다. 이 시에서 그는 모든 떠나는 것들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면서 다시 만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한국 한시의 흐름’에서 인용)
題登高寺 (제등고사 ; 등고사에서)
石逕崎嶇苔錦斑 錦苔行盡入禪關 地應碧落不多遠 僧與白雲相對閒 日暖燕飛來別殿
석경기구태금반 금태행진입선관 지응벽락부다원 승여백운상대한 일난연비래별전
月明猿嘯響空山 丈夫本有四方志 吾豈匏爪繫此間
월명원소향공산 장부본유사방지 오기포과계차간
돌길은 험하고 이끼는 비단 무늬인데, 이끼가 끝나니 절간에 들어오네.
땅은 푸른 하늘과 그다지 멀지 않고, 중은 흰 구름과 마주해 한가하네.
날이 따스해 제비는 별전으로 날아들고, 달이 밝고 원숭이 울어 빈산을 울리네.
대장부가 본디 장한 뜻을 품었거니, 내 어찌 박처럼 여기에 매여 있는가.
[감상] 절의 한가로운 정경과 자신의 숨은 뜻을 표현한 칠언율시로 산(刪)운이다. 이 시도 역시 요체시로 수련과 미련은 대구상구(對句相救)를, 함련과 경련은 구마다 본구자구(本句自救)를 사용했다. 수련은 절에 이르는 험하고 이끼 낀 돌길을 묘사한 것이다. 마음이 고요한 경지에 이르려면 이렇게 험한 산길을 거쳐 절간에 올라야만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함련은 절이 하늘 가까운 높은 곳에 있고 중은 흰 구름을 벗해 한가하다고 했는데, 속세의 번뇌를 떠나서 높은 정신적 깨우침의 세계에 머무는 스님의 정신적 세계를 그렇게 표현했다. 경련은 대구로 되었는데, 따뜻한 날 별전으로 날아드는 제비와 달밤에 우는 원숭이를 마주 보게 하여 불교에 기우는 자신의 마음과 산을 울리고 싶은 내면적 욕구를 암시하였다. 원숭이는 우리나라에 없는 짐승이지만, 한시에 흔히 등장하므로 관용적으로 끌어다 쓴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사실성을 들어내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한시의 관용을 따르면서 내면에 감춘 뜻을 함축하자는데 그런 표현을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련은 자신의 포부를 드러내어 장한 뜻, 곧 사방을 평정하고 싶은 원대한 포부가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여건에 얽매여서 마치 박이 덩굴에 얽매여 달려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한국 한시의 흐름’에서 인용)
開聖寺 (개성사)
百步九折登㠝岏 家在半空唯數間 靈泉澄淸寒水落 古壁暗淡蒼苔斑 石頭松老一片月
백보구절등찬완 가재반공유수간 영천징청한수락 고벽암담창태반 석두송로일편월
天末雲低千點山 紅塵萬事不可到 幽人獨得長年閒
천말운저천점산 홍진만사불가도 유인독득장년한
백 보에 아홉 번 굽이진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반공에 솟은 절집이 두어 칸이네.
맑디맑은 샘에서는 찬물이 떨어지고, 해묵은 어두운 벽엔 푸른 이끼 아롱져라.
바위 끝 늙은 솔에 한 조각달이 걸렸고, 하늘가 구름은 천 개의 산에 낮구나.
홍진 만사가 이르지 못하나니, 그윽한 사람은 한평생을 오직 한가롭게 보내네.
[감상] 이 시는 황해도 성거산에 있는 개성사를 찾아 그곳 풍경과 스님의 한가함을 읊은 칠언율시로 산(刪)운이다. <동문선(東文選)>에는 제목이 ‘개성사팔척방(開聖寺八尺房)’으로 되었고, 미련 끝 글자가 한(閑)으로 되었다. 수련은 가파른 산 위에 있는 절집에 오르는 과정이다.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반공에 두어 칸 절집이 있다고 했다. 함련은 주변과 절집 벽의 풍경이다. 샘물에서는 찬물이 떨어지고 절집 벽에는 푸른 이끼가 번져 있다고 했다. 경련은 절에서 바라본 원경이다. 늙은 소나무에 조각달이 걸렸고, 천 개의 산에 구름에 나직하게 깔렸다고 했다. 대체로 절 주변의 경치를 서술하였다. 미련에는 스님의 정신세계다. 이곳에는 세상의 번잡한 일이 이르지 못하니, 스님은 한평생 한가하게 살면서 참선에 들 것이라고 했다.
長源亭 (장원정에서)
岧嶢雙闕枕江濱 淸夜都無一點塵 風送客帆雲片片 露凝宮瓦玉鱗鱗 綠楊閉戶八九屋
초요쌍궐침강빈 청야도무일점진 풍송객범운편편 노응궁와옥린린 녹양폐호팔구옥
明月捲簾三四人 縹緲蓬萊在何許 夢闌黃鳥囀靑春
명월권렴삼사인 표묘봉래재하허 몽란황조전청춘
우뚝 솟은 두 궁궐이 강가를 베었는데, 맑은 밤이라 한 점 티끌도 없구나.
바람 탄 나룻배는 구름인양 날리는데, 이슬 맺힌 기와는 구슬처럼 반짝이네.
푸른 버들에 문 닫은 집이 여덟아홉이고, 밝은 달에 발 걷은 사람이 서넛이구나.
아득한 봉래산은 어디쯤 있는가. 꿈 깨니 꾀꼬리가 푸른 봄을 노래하네.
[감상] 장원정은 고려 문종 10년(1056)에 지금 개풍군 광덕면 영좌산 남쪽의 서강 가에 지은 이궁(離宮)이다. 이 시는 그가 지제고(知制誥)의 벼슬을 맡아 임금을 따라가서 지은 칠언율시로 진(眞)운이다. 경련에 요구(拗救)가 쓰여서 대구상구(對句相救)를 한 요체시이고, 이 구절이 아주 잘 되었다고 지적되었다.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는 관주(貫珠)를 쳤고, <파한집(破閑集)>에는 ‘표일하여 먼지를 벗어났다.(飄逸出塵)’라고 했으며,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는 함련은 ‘조금 가볍다(稍佻)’하고 경련은 ‘아주 빼어나다(神逸)’라고 했다.) <동문선>에는 경련 대구 끝 구절을 삼량인(三兩人)으로, 미련 출구 끝 글자를 처(處)로 적었다. 수련은 이궁의 위치와 빼어난 경관을 묘사한 것이다. 강가에 우뚝 솟아 밤하늘에 깨끗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함련은 서강의 나룻배와 궁궐의 기와를 동적 이미지와 정적 이미지로 대비시켰는데 좀 가벼운 느낌이다. 경련은 궁궐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인데, 푸른 버들에 싸인 집과 달빛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그려서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게다가 파격적인 평측법인 요체까지 구사했으니 빼어나게 잘 되었다는 찬사를 받을 만하다. 미련은 궁궐 주변의 봄 달밤 정경이 마치 신선경 같다는 뜻을 설의법으로 강조하면서 게다가 시치미를 뚝 따고서 꿈인지 생신지 모를 정도라는 과장을 맵시 있게 처리했다. 그의 솜씨가 대단함을 알겠다. 그는 이러한 문장의 재능으로 임금(인종)의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묘청 등과 뜻을 합쳐 여러 신앙을 아울러서 민족이 지향해야 할 지표를 제시하고, 북방으로 민족의 힘을 뻗쳐나가야 한다는 원대한 뜻을 펴려고 하였으나 현실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邊山蘇來寺 (변산 소래사)
古逕寂寞縈松根 天近斗牛聊可捫 浮雲流水客到寺 紅葉蒼苔僧閉門 秋風微凉吹落日
고경적막영송근 천근두우료가문 부운유수객도사 홍엽창공승폐문 추풍미량취낙일
山月漸白啼淸猿 奇哉厖眉一老衲 長年不夢人間喧
산월점백제청원 기재방미일로납 장년불몽인간훤
적막한 맑은 길에 솔뿌리가 얽혔고. 하늘이 가까워 북두 견우성이 잡힐 듯하네.
뜬구름 흐르는 물 길손이 절간에 이르니, 단풍잎 푸른 이끼에 중은 문을 닫았구나.
가을바람 산들산들 지는 해에 불고, 산 달이 차츰 훤한데 잔나비 울음 맑게 들린다.
기특도 한지고 긴 눈썹 저 늙은 중은, 한평생 인간의 시끄러움 꿈조차 안 꾸누나.
[감상] 이 시는 전라북도 부안의 변산 소래사를 찾아가서 지은 칠언율시로 원(元)운이다. <동문선(東文選)>에는 제목을 ‘변산 소래사를 제목으로(題邊山蘇來寺)’라고 하였다. 수련은 소래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적막한 길에 솔뿌리가 얽혔고, 별이 가까울 만큼 높은 산에 위치해 있다고 했다. 출구(出句)는 사실적인데, 대구(對句)는 과장된 느낌이다. 함련은 시인의 방문이다. 뜬구름 흐르는 물 같은 나그네가 절에 이르니, 단풍 들고 이끼 낀 절간에서 중은 문을 닫았다고 했다. 출구는 떠도는 나그네를, 대구는 문을 닫은 중을 대비시켜 보인다. 경련은 절 주변의 저녁 해와 잔나비 울음이다.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 그리고 가을바람과 달빛 등이 뒤엉킨 복합적 심상을 보여준다. 잔나비는 한시에서 관습적으로 쓰였을 뿐 실제로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련은 중의 초속적(超俗的) 삶에 대한 부러움이다. 자신은 나그네처럼 떠도는데, 늙은 중은 인간 세계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살아가고 있다고 감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