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공이 떴다! 부천 중원고등학교
학원 4분의 1 비용으로 실기 준비
성적 4등급 아래로 떨어지면 퇴출
실기와 공부 유기적으로 이뤄져
미술실 미닫이문을 열었다. 여느 교실 두 개를 합쳐 놓은 널따란 공간에 먼저 압도됐다. 그리곤 키 큰 이젤과 수십 점의 미술 작품들, 줄리앙과 비너스, 아그리파 같은 석고상, 각양각색의 물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유명한 화가의 작업실에 온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은 경기 부천 중원고의 미술 교과 특기자실이다.
-
- ▲ 중원고 미술 교과 특기반 학생들
중원고는 몇 년 사이, 어린 미술학도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특목고도 아닌 평범한 일반고가 주목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미술 교과 특기자 육성학교'이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미술을 가르쳤지만 2008년 신입생부터 미술 교과 특기자 전형으로 20명을 뽑았다. 올해는 2.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고붕주(59) 교장은 "사교육비 부담으로 미술에 재능있는 학생들이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며 "학교에서 공부, 미술 실기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1일 찾아간 중원고 미술 교과 특별반의 실기 수업시간. 작품에 몰두한 학생들의 사각사각, 연필 긋는 소리만 들렸다. 소묘를 담당하는 신창섭(39) 교사는 학생들의 손끝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미술 교과 특기자반은 올해로 3년째 운영되고 있다. '사교육 없이는 미술 대학에 갈 수 없다'는 편견이 중원고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현재 36명의 학생 모두가 사교육 도움 없이 오로지 학교에서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3학년 김서현양의 말이다.
"중학교 때까지 미술 공부를 하다가 비용이 부담스러워 그만두게 됐습니다. 학교에 입학해 미술 교과 특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무릎을 탁 쳤죠. 학원의 4분의 1 정도 비용으로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실기 준비까지 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어요."
중원고 미술 교과 특기반의 강점은 교과 성적 관리와 실기 지도가 유기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실기 수업은 정규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소묘, 디자인, 수채화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게 구성돼 있다. 학생들은 '10 and 15' 제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 10은 두 달 동안 적어도 10개의 작품을, 방학 동안에는 15개의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교사진도 막강하다. 과거 미술 입시학원 강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신홍섭(45) 교사의 진두지휘 아래, 각 분야의 전문가 5명을 강사로 채용했다. 학생 대 교사의 비율은 약 6 대 1 정도다. 3학년 박다혜양은 "30~40명의 학생을 강사 한 명이 가르치던 학원과는 확실히 가르침의 깊이가 다르다"고 했다.
교과 성적도 철저히 관리해준다. 목표 대학에 맞춰 담임교사와 실기교사가 함께 학생을 상담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또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퇴출 제도'를 운영한다. 모의고사 성적이 평균 4등급 아래로 내려갈 경우, 미술 교과 특기반에서 수업을 못 듣는다. 2학년 김가영양은 "실기뿐 아니라 교과 성적도 뒷받침돼야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며 "적당한 긴장이 공부하는 데 도움된다"고 귀띔했다.
학생들의 실력을 제대로 알기 위해 미술 교과 특별반을 운영하는 학교끼리 평가 대회를 치른다.
하지만 학교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기까지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했다. 일반고에서 미술 지도를 해서 뭐하겠냐는 질책을 듣기도 했다. 그때마다 교사들은 이를 악물고 학생 지도에 매달렸다. 아직 졸업생을 배출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교과 성적과 실기 능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향상돼 외부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고붕주 교장은 "앞으로 관련 분야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진로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똑같은 학생은 없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진로 지도보다는 학생들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공교육만으로도 얼마든지 미술 입시 지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