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주영 회장의 빨간 골프공
어느 날 정주영은 롯데그룹 회장 신격호와 골프를 치러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마침 그날은 공교롭게도 눈이 내렸다.
신격호는 눈이 와서 발목이 푹푹 빠질 정도니 골프를 치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서를 통해 연락을 취해 보니 정주영은 이미 골프장으로 떠난 뒤였다.
그날 따라 날씨도 몹시 추웠다. 할 수 없이 신격호는 겨울 내의에 두꺼운 방한복으로 중무장하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골프장은 흰 눈이 쌓여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그러나 골프를 치면 하얀 공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찾기도 곤란한 지경이었다. 신격호는 차를 타고 가면서 골프보다는 오랜만에 차나 마시며 한담이나 즐길 생각을 했다.
그런데 먼저 골프장에 나온 정주영은 골프 치기에 좋은 간편한 옷차림으로 신격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회장님! 이런 날씨에 골프를 칠 수 있을까요?」 신격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왜요? 간밤에 눈이 와서 그렇지 골프 치기엔 아주 좋은 날씨인데요?」 당시 정주영은 70을 넘긴 나이인데도 얼굴에 원기가 넘쳤다.
「눈이 쌓여서 말입니다.」 「아, 염려 마세요. 그래서 내가 눈 위에서도 잘 보이도록 빨간 공을 가져왔거든요.」 정주영은 웃으면서 빨간 골프공을 내보였다.
신격호는 골프를 시작한 지 40년이 넘었다. 그런 그였지만 생전 처음으로 눈밭에서, 그것도 하얀 골프공이 아닌 빨간 공으로 골프를 치는 경험을 했다.
눈은 고사하고 비만 조금 와도 대개 운동 약속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그날 눈 위에서의 골프는 정말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신선하기조차 했다.
정주영은 눈이 와도 골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스케줄을 변경하기도 어렵고, 어차피 그 시간을 비워두면 손해만 볼 것이 뻔한 노릇이라 골프를 강행한 것이었다.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아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눈이 와도 골프를 칠 방법을 생각한 끝에 비서에게 급히 빨간 골프공을 구해 오라고 시킨 것이었다.
아무튼, 눈이 온 날 빨간 골프공을 준비해서 나온 정주영의 그 기발한 발상은 도무지 70대 노인의 머리에서 나온 것 같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이처럼 고정 관념을 깨는 창의력으로 새로운 사업을 많이 일으켰다.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과 정 회장의 박력 넘치는 플레이가 선명하게 기억되는 유쾌한 하루였습니다.」 그날 신격호가 골프를 치고 나서 한 말이었다.
골프를 끝내고 식당에 가서도 정주영은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그렇게 잘 드시니 백 살도 넘게 사시겠습니다.」 신격호는 덕담 삼아 넌지시 말했다. 「아니, 백 살이 뭐요? 한 2백 살은 살아야지.」 정주영은 파안대소했다. ♣ |
첫댓글 정주영 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