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산, 바람 불어 나무숲 젖히기 기다려 카메라 셔터 눌렀다
ㅇ 멀리 보이는 산과 산, 매혹의 발광
ㅇ 산은 공유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점유되는 것을 이따금 본다.
그리고 그것을 점유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나는 안다.
ㅇ 산에서 돌아올 때 륙색은 산으로 갈 때보다 무거워야 한다. 그 속에 가득한 아름다움으로.
――― 오오시마 료오끼치(1899~1927),『산장, 모닥불, 꿈』 (김영도,『하늘과 땅 사이』에서)
▶ 산행일시 : 2014년 8월 9~10일(토, 일), 맑음, 시원한 바람
▶ 산행인원 : 21명(중산, 드류, 히든피크, 한계령, 대간거사, 남당, 버들, 온내, 산정무한,
가자산, 스틸영, 상고대, 사계, 송주, 메아리, 신가이버, 해마, 제임스, 승연,
가은, 우보)
▶ 산행시간 : 7시간 1분
▶ 산행거리 : 도상 12.1㎞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와 상고대 님 승용차에 분승
▶ 시간별 구간
06 : 30 – 동서울 출발
08 : 53 – 홍천군 화촌면 성산리(城山里) 백이동, 산행시작
10 : 12 – 492m봉, ┼자 갈림길
10 : 40 – 말골고개, 임도
11 : 20 ~ 11 : 52 – 720m봉, 점심
12 : 00 – 729m봉
12 : 48 – 753m봉
13 : 00 – 안부, Y자 임도
13 : 56 – 벙커고지(773m봉)
14 : 50 - △916.0m봉
15 : 20 – 임도
15 : 54 –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楓川里) 유아 숲체험장, 산행종료
1. 야영 마치고 서울로 향하기 전에 찍은 기념사진, 단체사진은 항상 어렵다. 상고대 님 사진
은 하는 수 없이 붙였다.
▶ 산행(백이동 ~ △916.0m봉 ~ 풍천천)
좋은 일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리스어로 ‘칼레파 타 칼라(Kalepa ta cala)’라고 한다. 이문열
씨가 그리스시대 작은 도시국가인 아테르타의 번영과 몰락을 그린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오
지산행이 매년 혹서기에 한차례 실시하는 1박2일 야영산행이 어느덧 6회째다. 오래전에 야영
지로 오대산 부연동 부근을 선정하였으나 태풍 할롱이 심술부리는 통에 부득이 다른 곳으로
변경해야 했다.
홍천 가리산 자락 풍천천의 이만한 골짜기를 드디어(?) 찾아낸 상고대 님의 수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오지산행의 야영지 조건은 맞추기가 매우 까다롭다. 다수인원 알탕에 적합한 수
량성과 유곡성, 산행지의 오지성과 식생성, 여러 동 텐트의 수용성, 차량 진입의 용이성 등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이번 주말이 피서 고비여서 경춘고속도로가 막히지 않을까 한 염려는 기우였다. 톨 게이트에
서 잠깐 줄서다가 막힘없이 달려 동홍천IC를 빠져나오고 56번 도로로 홍천강 지천인 풍천천
을 거슬러 오른다. 풍천천이 심산유곡이다. 왼쪽은 결운리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자지봉(紫芝
峰, 499.5m) 넘어 대룡산(大龍山, 899m)을 향하고, 오른쪽은 성산리(城山里) 지명에서 보듯
이 수많은 준봉들이 성곽처럼 에워싸고 있다.
가락재휴게소 지나고 풍천교 직전에서 오른쪽 비포장 임도로 쭉 들어가면 ‘유아 숲체험장’ 안
내판 옆에 철문이 열려 있다. 들어간다. 잣나무숲속 파고라와 평상, 화장실 등을 갖춘 너른 터
가 나온다. 오늘 우리의 야영지다. 이렇듯 비처(秘處)일 야영지를 자세히 소개하는 이유는 ‘유
아 숲체험장’이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이어서 오늘 말고는 아무나 무단으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서둘러 짐 풀고 산행들머리인 백이동으로 이동한다. 중간말 가기 전 Y자 계곡 가운데 능선을
잡는다. 히든피크 님이 앞장서서 길 뚫는다. 길 지키는 뱀에게 비키게 하고 풀숲 헤쳐 개천을
징검다리로 건넌다. 곧바로 칡덩굴 우거진 비탈진 사면 오른다. 심심산골이다. 여느 산에서 좀
처럼 볼 수 없는 산도라지가 자주 보인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골에 백도라지’ 라
는 민요도 있지 아니한가.
인적 없는 잡목숲 된 한 피치 오른 능선마루에 뚜렷한 등로가 앞서 가기에 기분이 약간 언짢아
지려고 하다가 그 등로가 이내 자취를 감추자 다시 희희낙락한 표정들이다. 시원한 바람이 세
게 불어대 가을 분위기를 성큼 느낀다. 엊그제 말복과 입추를 지나서인가? 아니면 태풍 할롱
의 선물인가? 의견이 분분하다.
426m봉 넘고 한동안 느긋하다가 한바탕 바짝 올라 492m봉. ┼자 갈림길이 나 있는데 좌왕우
왕한다. 왼쪽으로 우르르 내달았다가 뒤돌고, 세 갈래 능선 가운데로 우르르 쏟았다가 뒤돌고
(다수는 트래버스 하고), 맨 오른쪽 능선이 맞다. 이런 데서 헤매다니 얼척 없어 웃고 만다. 쭈
욱 내린 안부는 임도가 지난다. 건너편 절개지가 절벽이라 왼쪽 산모롱이로 돌아가서 오른다.
긴 오름이 이어진다. 능선에 서면 시원한 바람이 등 떠민다. 720m봉 벗어나 휴식할 겸 하산완
료 예정시각(16시) 계량하여 이른 점심밥 먹는다. 길은 외길. 북진했다가 729m봉에서 북서진
한다. 오른쪽 나무숲 사이로 멀리 가리산(1,050.9m) 암봉의 위용을 살피고 바람 불어 나무숲
젖히기 기다려 카메라 셔터 누른다.
2. 야영지 도착
3. 산행 첫 휴식
4. 산행 중 조망, 공작산
5. 산행 중 조망, 구절산
6. 공작산
7. 가리산
8. 벙커고지 가기 전 휴식
9. △916.0m봉을 향하여
10. 왼쪽 멀리는 연엽산, 오른쪽은 대룡산
길 좋다. 711m봉 대깍 넘고 753m봉. 쉴 때마다 술추렴한다. 얼근한 것이 산을 가급적 힘들게
가는 방법이다. 안부는 Y자 임도가 교차한다. 등로 주변 산재한 구덩이는 6.25 전사자 유해발
굴지다. 773m봉. ‘벙커고지 전투기념’ 안내판이 있다. 6.25 당시에는 800고지였다가 현재는
778고지로 정정하였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773m봉이다.
“한국전쟁 이듬해인 1951년. 중공군의 춘계 2차 공세를 맞아 美 제2사단 38연대 3대대는 5월
17일부터 5월 19일까지 벙커고지 일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 진내사격과 역습으로 진지를
고수하여 중공군이 홍천 방면으로 더 이상 진출하지 못하고 공세 종말점을 맞이하여 방어작전
으로 전환하게 하였으니 여기 그 위대한 공훈을 흠향하며, 당시 美 헤인즈 대대장을 비롯한
38연대 3대대 전우들의 희생정신과 감투정신을 이 땅에 전함과 아울러 전몰장병 영령들의 명
복을 빕니다. 2006년 5월 27일. 제11기계화보병사단 장병 일동”
경향신문의 1991년 6월 4일자 「中國이 본 韓國戰」시리즈 기사의 일부다.
“……이로써 중공군의 제2차 춘계공세는 그들이 공격을 개시한 지 5일 만에 끝나고 美8군은
또다시 재진격을 개시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
5일간에 걸친 이 격전에서 국군 제3군단을 해체의 치욕으로까지 몰고 가게 했던 縣里전투와
美 제2사단의 제38연대 3대대가 끝까지 사수함으로써 美 제10군단이 적의 돌파구 확대를 저
지하고 전선을 고수하는 데 크게 공헌한 이른바 「벙커」고지 전투는 좋은 대조를 이루는 전
투로 꼽힌다.”
‘밀리터리 리뷰’의 2008년 6월 24일자 「다시 쓰는 6.25전쟁사 <3>」에 의하면 당시 미 제3
8연대 3대대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대대장의 완벽한 사전준비가 한몫 했다. 헤인즈 대대장은
진지 구축에 23만여 장의 마대와 철주 6000개, 철조망 385롤을 사용했다. 이 전투에서 헤인
즈 대대장과 부대대장은 물론 작전장교와 중대장 2명까지 전사해 지휘부가 붕괴된 상황에서
도 철수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진지를 고수했다.
여기에서 그 처절했던 전투가 벌어졌다. 묵념!
오른쪽으로 직각방향 꺾어 북진한다. 땡볕에 노출된 벌목지대를 잽싸게 지나고 산개하여 872
m봉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변발한 산릉이 이어진다.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916.0m봉까지
내쳐 오른다. 삼각점은 하늘 가린 울창한 숲속 등로 옆에 있다. ┼자 방위표시만 판독할 수 있
다. 직진하는 길이 뚜렷한 건 늘묵고개 지나 가리산으로 가는 길이어서다.
아쉽지만 뒤돌아선다. 하산. 서진한다. 인적 뜸한 잡목 숲 헤친다. 능선마루로 계속 진행했더
라면 훨씬 수월할 것을 벌목한 사면 쓸어 임도로 얼른 내리려다 절벽인 절개지와 맞닥뜨려 된
고역을 치른다. 그리고 임도. 구절산에서 연엽산, 노두봉, 대룡산으로 이어지는 장릉이 장관이
다. 내일 이른 아침의 광경은 또 어떨까? 다시 와보리라 다짐하고 내린다.
간벌한 나무숲 헤치며 내리면 또 임도다. 이번에는 잣나무숲 가파른 사면을 쏟아 내린다. 사면
에는 술 담그기 알맞게 설익은 잣송이 다닥다닥한 가지가 부러져 널렸지만 주체하기 곤란하여
다 놔두고 간다. 산기슭 가시덤불숲 뚫어 임도 나오고 야영지인 유아 숲체험장이다.
11. △916.0m봉을 향하여
12. 참취꽃
14. 하산, 멀리는 대룡산
15. 능선마루로 곧장 가는 편이 나았다
16. 멀리 가운데는 연엽산
17. 멀리 왼쪽은 연엽산, 오른쪽은 대룡산
18. 멀리는 대룡산
19. 잣나무숲 급사면 내리기 전
▶ 야영
우선 땀이 식기 전에 알탕한다. 아침에 의외로 대기가 소슬하여 제대로 알탕 맛을 볼 수 있으
려나 했는데 물에 드니 더없이 상쾌하다. 여름 산행의 이유이기도 하다.
조별로 먹을거리와 텐트를 준비했지만 금방 흐트러진다. 다 내 조고 내가 들어가 잘 텐트다.
남당 님이 멀리 당진에서 가져온 소라로 술맛 돋우고 나서 취사현장에 덤빈다.
나는 휘발유 버너인 콜맨을 가져왔다. 1년 넘게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에어펌프가 영 시원찮
다. 코펠 가득 밥을 짓는데 물의 양, 불의 강도 등 참견하는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된다. 그래서
밥이 고슬고슬하니 썩 잘되었다. 땅 파고 숯불 피워 석쇠 걸고 오리고기, 쇠고기, 돼지고기, 소
시지, 고등어, 장어 굽느라 부산하다. 소주가 대병으로 10병이 넘는다. 가은 님이 냉 생더덕주
조제했다.
산속은 금방 어두워진다.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요즘 흥행하는 ‘명량’으로 시작하
여 국내외 영화에 대한 평론이 주류를 이루다가 느닷없이 왜 터키가 우리와 형제나라인가 그
역사적 근원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오간 주장이 아리송하다. 삼황오제 이래 현재까지
중국사를 훑었고 몽골지방 돌궐족의 생멸을 살폈으며 한단고기에서 설파하는 우리나라 상고
사를 경청했는데도 그렇다. 취한 탓이다.
밤이 깊어짐에 따라 한 두 사람씩 잠자리에 들고 밤 11시가 넘었을까 네 사람 정도 남았을 때
까지 왜 터키가 우리와 형제나라인가에 대해 결론은 나지 않았다. 나는 해마 님의 부축을 받아
(부축 안 해도 괜찮았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에 둘러보니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다. 뒤치다꺼리는 해마 님 몫이다. 화장실 물청소하고 주변에 흘린 밥 한 톨
까지 줍는다. 대간거사 님이 해마 님의 공덕비를 세우자고 한다. 적극 동의한다. “일찍이 해병
대를 제대하고 ……”로 시작하는 문구로. 그런데 그걸 새길 마땅한 돌이 없다.
<추기> 한밤중에 산골 울리는 코고는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3시였다. 밖에 나가 물 한 대접
들이켜고 잠을 청했으나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잠깐 졸았을까 5시 반이었다. 늦었지
만 연엽산, 대룡산 장릉 보러 임도 조망처를 갔다. 혼자였다. 어제 가팔랐던 내리막이 더 가파
른 오르막이었다. 목적지 임도가 가까울 무렵 가까운 숲속에서 꽥꽥하는 소리가 연속해서 위
압적으로 들렸다. 멧돼지일 거라 생각하니 뒷머리가 쭈뼛 서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무슨 메시지일까? 새끼와 함께 있으니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신호일까? 그냥 뒤돌아갈까?
고지가 바로 저긴데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갔다. 여차하면 피할 아름드리 잣나무 보아
두며 슬슬 도망가다시피 갔다. 조망처인 임도. 대해 고도로 기대했던 연엽산은 어제 하산할 때
와 다름이 없다. 대룡산은 구름에 가렸다.
20. 오리고기 굽는 중
21. 오리고기 굽는 중
22. 오리고기 굽는 중
23. 먹을거리 준비하는 중
24. 오지산행을 위하여!
25. 이튿날 아침 임도에 올라 조망
26. 이튿날 아침 임도에 올라 조망, 왼쪽은 연엽산, 오른쪽 대룡산은 구름에 가렸다
27. 이튿날 아침 임도에 올라 조망
28. 이튿날 아침 임도에 올라 조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