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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강춘수
sella0601@naver.com
부산 출생
신라대학교 대학원 독서치료학 석사
부산경상대학교 겸임교수
글로리아문화정책연구소 대표
‘백남경 수필아카데미’ 수강 중
<수상 소감>
강춘수
꿈만 같다는 말이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 밭에서 뒹굴던 글들이 먼지를 털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신인상을 받게 되니 세상을 다 가진 듯합니다.
「똥주야, 똥주야!」를 쓰면서 엄마란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게 축복이고 딸과 보낸 시간의 소중함이 더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반면 내 진심과는 달리 딸이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마음일까? 내가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했나…, 자책한다면 더 큰 돌을 가슴에 안게 되는 건 아닌지 싶네요. 하지만 딸의 세계는 엄마의 세계보다 훨씬 크고 넓을 것이라 믿으며 나만의 기우이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를 두고 평생 고민을 하며 살았지요. 현실적으로는 잘하는 일을 선택하여 살아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쉰을 넘기며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즈음 백남경 선생님을 만났네요. 선생님의 지도와 문우들의 합평을 통해 깎아지고 다듬어지는 글을 읽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오늘도 문학으로 행복하셨나요?”라는 선생님 말씀에 “네!”라고 합창하는 순간이 진짜 행복했습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살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책을 쓰면 몇 권을 썼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 사연들을 듣고 온 날은 가슴이 아파 못내 뒤척이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세상에 태어나 어쩌면 그리도 치열하게 살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 시간을 버티며 살았는지 수많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고, 손을 잡기도 하고, 안고 같이 울기도 하던 시간 속에서 그들의 삶이 내 마음에 들어왔네요.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들꽃 같은 이야기들이 내 속에서 꽃으로 피어난 게지요. 그 향기가 고와서 사람의 이야기들이 자꾸만 내 마음을 들썩이게 합니다.
사람들 속에 있는 내 이야기를 쓰고, 더불어 내 곁을 지켜 준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가슴을 열어 어렵게 토해낸 비밀 같은 삶들이 허공의 티끌로 사라지기 전에 고운 손 모은 글로 남겨주고 싶습니다. 『에세이스트』가 저에게 그 일을 하라고 기회를 주신 것 같네요.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배워야 함을 알기에 곁을 함께 하는 문우들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또한, 인자한 성품으로 어질게 보아주실 백남경 스승님이 계시기에 감히 용기를 내어 봅니다. 때로는 모진 담금질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에세이스트』 편집부와 글을 선(選)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똥주야, 똥주야!
강춘수
똥주는 딸의 애칭이다. 귀한 자식 누가 샘낼까, 개똥이라 부르라고 했던가. 나는 딸이 참 좋다. 목욕탕도 같이 가고, 미용실도 같이 가고, 옷도 같이 입는다. 집 근처 산책할 때면 팔짱을 바짝 끼고 누구 그림자에 엉덩이가 더 씰룩거리는지 내기하며 걷다가 그만 무릎이 꺾여 웃어대기 일쑤다. 바람이 솔솔 부는 날이면 책 몇 권에 돗자리 들고 공원 한편에 자리를 깐다. 꽃이 피면 꽃이 핀다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 챙겨 입고 같이 나가기가 바쁘다.
어떤 날은 한 침대에서 밤을 새워가며 긴긴 이야기를 나눈다. 입에서 툭 튀어나온 낱말 하나에 허리가 휘어지도록 웃기도 하고, 그 표정이 너무 웃겨 배가 아프도록 파안대소한다. 그래서인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런 꽃놀이패에도 불구하고 나는 딸의 방에만 들어가면 인상 관리가 안 되고 지리멸렬해진다.
며칠 전 나는 딸의 방문을 여는 순간 벼락 맞은 대추나무처럼 몸이 쩍 하고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한 벌의 옷을 입기 위해 여름옷 겨울옷 할 것 없이 옷이란 옷은 죄다 흩어놓았다. 게다가 립밤과 아이라인,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화장품 뚜껑이 열린 채로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각각의 색깔이 담긴 아이섀도는 바닥에 떨어진 충격 탓인지 케이스에서 빠져나와 거의 해체 수준이었다. 전기선이 줄줄이 꼬인 헤어드라이어, 귀고리, 목걸이,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은 빗마다 엉켜있고 축축한 수건에 미역 줄기 같이 흐늘거리는 스타킹까지, 그야말로 폭풍이 지나간 뒤와 흡사했다. 아직도 불빛을 깜빡이며 벌겋게 데워진 고대기는 급기야 딸로 인해 긴 시간 캄캄하고 칙칙했던 그 동굴 속으로 나를 보내고야 말았다.
중학생이 된 딸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잠만 잤다. 딸의 등굣길은 언제나 혼자였다. 집에서 좀 먼 중학교에 배정된 탓도 있었지만 매일 같이 늦잠을 자는 데다 서두르는 법이 없기에 늘 지각생이었다. 거기에 대고 좀 서두르라고 잔소리하면 짜증을 낸다. 학교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툭툭 내뱉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는 엎드려 자고 쉬는 시간에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두가 급식을 먹으러 가는 점심시간에는 밥맛이 없다는 엉뚱한 핑계를 대며 도서관 행이었다.
그해 6월이었던가. 딸은 책을 많이 읽은 학생에게 준다는 다독 상장을 비쩍 마른 팔로 내밀었다. 다독상이라니. 점심을 대신하여 도서관에 죽친 결과인가. 한창 먹고 친구들과 깔깔댈 나이에 혼자 도서관에 있었던 딸. 그날 나는 사람이 슬픔을 참기 위해 눈동자 뒤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느 날 사는 게 재미가 없고 늘 우울해하던 딸이 얼굴만 마주치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다른 나라에 가서 꿈을 찾아보겠다며 떼를 썼다. 땅이 넓은 만큼 꿈도 한껏 펼칠 수 있고 인종이 다양하니 배울 게 더 많을 것이라 했다. 학비에 들어간 돈은 대학을 졸업하면 반드시 갚겠노라며, 딴에는 논리적인 말을 찾아 매일 같이 사람을 볶아 대었다. 그 논리는 제대로 먹혔다. 남편과 나는 꿈을 찾아 떠난다는 말, 반드시 학비에 들어간 돈은 갚겠다는 말에 설득되어 딸이 갑자기 자랑스러워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남편과 내게 황금알을 낳아줄 거위가 죽어버렸다. 오만 원짜리 돈다발이 눈앞에 수북했다. 딸이 미덥지 않아 유학 갈 돈이 얼마나 큰 액수인지 현금으로 찾아다 준 것이다. 성공해서 꼭 갚으라는 말도 잊지 않고 꾹꾹 짚어서 말해주었다. 중 3 하고도 2학기가 되던 때, 딸은 자기보다 더 큰 트렁크를 끌고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 나와 남편은 딸아이 방처럼 텅 비어버린 연금 통장을 저만치 떨어진 휴지통에다 휙 던졌다. ‘투그덩’ 휴지통도 비어 있었는지 동정 없는 메아리를 남겼다. 먼 나라로 딸을 혼자 보냈다는 걱정은 딸이 꿈을 찾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변했다.
감기약을 먹고 자던 나는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딸이 아직 등교하지 않았다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였다. 그렇게 꿈을 찾겠노라고 떠났던 딸은 일 년이 다가오자, 유학은 집안에 돈이 아주 많거나, 죽으라고 목숨을 걸고 공부하는 학생이 온 거더라는 이야기를 전화기에다 쏟아냈다. 한 달 후, 자다가 벌떡 일어나 그 발언을 곱씹어 보기도 전에, 자기보다 더 큰 트렁크를 끌고 얼굴만 예뻐진 채 귀국, 집으로 왔다. 그리고 1교시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임에도 지금 자기 방에서 자고 있는 것이다.
내 속은 펄펄 끓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냐, 도대체 이유가 뭐냐, 우리가 안 해준 게 뭐냐, 뭐가 모자라서 그러냐, 별의별 소리를 질러가며 닭 쫓듯 학교를 보내고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딸아이 방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 전쟁 같은 시간은 언제쯤 끝이 나나, 넋두리가 절로 나왔다. 남의 집 자식은 잘도 크더라만, 나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넓은 땅에 가서 꿈을 찾는다더니 대체 그 호기는 어디 갔냔 말이다. 혼자 쉰 소리를 내뱉으니 참았던 속울음이 꺽꺽 밖으로 나왔다.
눈물이 치료약이다. 꼭 딸의 실눈같이 생긴 가늘고 얇은 바람이 마음 한구석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마음은 착한 딸이지, 속도 깊고. 난들 우리 엄마한테 뭘 그리 잘한 게 있나, 하기야 학교 가서 혼나고 있을 제 속은 오죽할까, 그 많은 돈 까먹고 한국행 비행기 탔을 때는 자기도 제정신이 아니었겠지. 후회한다고 뭔 수가 나는 것도 아니고, 일 년 어린 동급생들이 언니라고 불렀다가 이름을 막 부르는 것도 자존심 상할 일인 게지. 나는 주섬주섬 폭풍이 지나간 딸의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2016년 2월 12일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3년이 30년 같았던 고딩이 드디어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교복이 끼네, 선생님이 이해가 안 가네, 수업은 왜 한 교실에서만 하나, 대학 가서 필요도 없는 과목은 왜 배우나, 별의별 소리를 해가며 지각 반, 결석 반으로 생활기록부가 너덜너덜해진 그 고등학교가 종료되는 날. 아! 어찌 잊으랴, 그날을!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학부모 딱지를 던져 버렸다. 기뻐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네 인생 네가 살고, 내 인생 내가 살면 되는 자유의 날! 이제는 아침마다 안 깨워도 되고, 그 지겹다는 교복 내가 먼저 갖다 버려야지. 내 얼굴엔 웃음꽃이 절로 피고 콧노래도 나왔다. 졸업식장까지 꽃다발을 들고 가는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늘어선 장사꾼의 꽃들을 보며 골든벨을 흔들면 지갑에 든 돈들이 나와 춤을 출 것만 같았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을 선물한 딸 우리 똥주. 사춘기 때 호기를 부리며 말했던 대로 넓은 세상에서 꿈을 찾아 훨훨 날아다니는 승무원이 되었다. 급식을 대신한 책들과 실패한 유학이 자기소개서에서는 신의 한 수였다며 승무원 트렁크를 끌고 세계 공항을 걷는 똥주를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가슴 벅차게 밀려오는 엄마의 기쁨을 딸도 알고 있을까? 그래도 좋기만 하겠어? 힘든 일도 많겠지? 월급을 받아 적금은 잘 넣고 있을까? 학비로 들어간 그 돈을 그냥 모른 척 시치미 떼지는 않겠지? 아니, 엄마니까 수고했다고 돈은 안 갚아도 된다고 해야 하나? 글쎄, 글쎄, 설마, 설마…. 이건 내 적성에 안 맞는다고 사표를 훅 던져 버리는 건 아니겠지?
똥주, 똥주야! 종잡을 수 없는 아이, 내 딸 똥주.
묻고 싶은 말들이 연거푸 나오는 기침처럼 가슴에서 목구멍으로 자꾸만 올라오고 있다.
<심사평>
심사위원 / 박일천
강춘수가 응모한 작품 중에서 「똥주야, 똥주야」를 등단작으로 뽑는다. 똥주는 화자의 딸 애칭이다. 딸의 성장기를 쓴 이야기다. 중학생이 된 딸은 매일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밥맛이 없다고 도서관행이다. 깔깔거리며 지내야 할 소녀 시절에 사는 게 재미없다고 우울해하던 딸이 눈물 뚝뚝 흘리며 큰 나라에 가서 꿈을 찾아보겠다고. 학비에 들어간 돈은 대학 졸업하면 갚겠다고 딴은 논리적으로 부모를 볶아댔다. 화자는 딸에게 설득되어 중3인 똥주를 캐나다로 혼자 유학을 보냈다. 꿈을 찾아 떠난 딸은 1년 만에 “유학은 집안에 돈이 많거나 목숨 걸고 공부하는 학생이 오는 거 같다”라는 전화 한 통을 하고 한 달 후 자기보다 더 큰 트렁크를 끌고 귀국했다. 복학하고도 학교 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방에서 잠만 자는 것이다.
내 속은 펄펄 끓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냐, 도대체 이유가 뭐냐, 우리가 안 해준 게 뭐냐, 뭐가 모자라서 그러냐, 별의별 소리를 질러가며 닭 쫓듯 학교를 보내고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딸아이 방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 전쟁 같은 시간은 언제쯤 끝이 나나, 넋두리가 절로 나왔다. 남의 집 자식은 잘도 크더라만, 나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넓은 땅에 가서 꿈을 찾는다더니 대체 그 호기는 어디 갔냔 말이다. (중략) 그 고등학교가 종료되는 날. 아! 어찌 잊으랴, 그날을!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학부모 딱지를 던져 버렸다. 기뻐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네 인생 네가 살고, 내 인생 내가 살면 되는 자유의 날! 이제는 아침마다 안 깨워도 되고, 그 지겹다는 교복 내가 먼저 갖다 버려야지. 내 얼굴엔 웃음꽃이 절로 피고 콧노래도 나왔다.
누구나 겪었을 아이들의 중등학교 때 엄마와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나타내면서도 행간 사이사이에 유머와 위트를 넣어 글의 진부함을 가볍게 했다. 글의 처음은 딸과 사이좋게 지내는 장면이다. 딸하고 목욕도 가고 옷도 같이 입고 집 근처 공원에 책 몇 권 들고 나가는 걸로 시작된다.
며칠 전 나는 딸의 방문을 여는 순간 벼락 맞은 대추나무처럼 몸이 쩍 하고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중략) 그야말로 폭풍이 지나간 뒤와 흡사했다. 아직도 불빛을 깜빡이며 벌겋게 데워진 고대기는 급기야 딸로 인해 긴 시간 캄캄하고 칙칙했던 그 동굴 속으로 나를 보내고야 말았다.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서 화자의 길고 긴 딸과의 전쟁이 전개된다. 여기서 독자들은 평범을 벗어난 딸의 유별난 행동에 호기심을 가질 것이다.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똥주의 행동을 보며 화자가 되어 아니 세상의 모든 엄마 마음으로 애태우며 딸의 성장기를 단숨에 읽어 내려갈 것이다. 화자가 쓴 또 다른 작품 「갱년기 대학생」에서는 딸, 아들과 함께 대학생이 된 화자가 ‘사이버대학’ 가족 상담학을 배우며 갱년기 우울증을 벗어나 자아를 찾아가는 고해성사 같은 글을 썼다. 화자는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끝없이 책을 읽어 주는 엄마가 되어 책장에 책을 채워 나갔다. 딸이 학교에서 점심때 도서관행은 어쩌면 엄마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자란 똥주가 몸에 배어서 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딸은 그토록 엄마 속을 썩인 상황을 자기소개서에 썼다. 급식을 대신한 책들과 꿈을 찾아서 혼자 1년간 떠난 실패한 캐나다 유학이 신의 한 수가 되어 승무원이 되었다는 아이러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는 비극이 희극이 되고 희극이 비극이 되는 극적인 순간이 자주 등장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이 말은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이다. 창의적 사고는 새로움이 있게 하는 매개로써 고체화하지 않고 다분히 액체적이어야 한다. 본질은 그대로이면서 사실의 토대 위에 액체처럼 시간과 공간이 묶이지 않고 수시로 변한다. 화자는 소설처럼 새로움을 시도하는 맥락으로 글을 쓰고 있다. 딸과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다가 방안을 기겁하게 어지럽힌 딸 방에서 벌겋게 데워진 고대기를 보면서 캄캄했던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힘들게 한 과거 딸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화자처럼 딸 성장기를 소설 쓰듯 시공간을 넘나들며 생생하게 묘사된 장면 제시는 독자들에게 수필의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
강춘수가 제출한 「슬픈 교복」, 「갱년기 대학생」도 상당히 다듬어진 작품이다. 등단을 축하한다. 강춘수 작가가 앞으로 들려줄 독창적인 이야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