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멜로디와 코드만 가지고 저렇게 열정적인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저런 빠른 템포에서 말도 안 되는 속사포처럼 안정적이게 나오는 저 끊임없는 음들은 뭐지? 걷잡을 수없는 혼란, 그리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구, 그런데 무섭다는 마음. 그러던 중 공석인 피아노에 코드 좀 읽고 피아노 조금 친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막 쳤다. 완전 후렸다.
그런데, 어라? 뭐지? 박수를 받네!!! 흥이 났다. 와~~ 이게 내가 잘하는 건가봐…. 너무 신났다. 이런 멋진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완벽한 축복이었다. 그리고 다음곡 체로키(Cherokee). 트럼펫 주자 클리포드 브라운의 동생인 리치 브라운의 인트로를 연주해 보라고 한다. 알리가 없다. 연주전에 '이러 이러한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피아노만 나오는 인트로를 엉망으로 치고 나니 머리가 멍해지고 온몸이 나무토막같이 굳어져 버리고 그 다음부터 펼쳐지는 속주는 '오 마이 갓!!!'. 머리로 세고 발로 구르고 별 짓을 다해봐도 도대체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는 거다. 신이 가혹하셔서 이런 벌을 내리시는 구나. 나는 그런 혹독한 망신을 당하고 연습을 하고 또 연주를 하러가서 망신을 당하고 박수 받고 실패하고를 반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클럽의 사장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다음 주 부터는 나오지 말라고 하신다. 그렇다. 짤린거다. 그렇게 스물두살의 어린 마음은 이태원의 밤거리에서 통곡을 하며 사장님을 미워하며 집에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나온다. 그런 그 소녀는 재즈를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유학길에 오른다. 멋진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란 간절한 소망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배장은 서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