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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초록교육연대 회지에 올리기 위하여 전남 장흥으로 김영효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새벽 6시에 행신역에서 출발한 호남선 ktx 열차는 광명에서 김광철 대표님을 태우고
광주 송정리에 8시 34분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광주가 겨우 2시간도 안되어서 갈수 있다니 너무 놀랍고 고속철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ㅋ~
광주에서 장흥까지는 버스로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장흥터미널에는 김영효 선생이 마중 나오셔서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사실이지 인터뷰를 하자면 사전 준비가 철저해야 하는데, 바쁜다는 핑계로 그냥 내려갔고, 김 선생님도 올해 2월 정년을 하신 탓인지 스스로 회고하듯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가 주셔서 진행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김영효 선생은 전교조 제2대 전남지부장, 조직부장을 역임하였고, 조직의 귀재로 널리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최근에는 공립형 대안학교를 세워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만 선정해서 3년간 가르치다가 정년하셨습니다. 또한 오래 전부터 산중생활을 하시면서 폐자재를 활용하여 손수 오두막을 건축하시고 친환경적인 삶을 살고 계실 뿐만이 아니라, 명상적인 삶을 실천하고 있는 분입니다.
김영효 선생은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 장수마을 산속에 홀로 살고 있습니다.
산중생활을 시작한지는 15년쯤 되었고, 이곳으로 옮겨온 지는 7년쯤 되었다고 합니다.
이 오두막집은 4년전 10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10달에 걸쳐 손수 지은 것입니다.
물은 계곡물을 마시며, 전기도 안 들어와 지붕에 조그만 태양광 전지로 겨우 독서할 정도의 불빛을 얻고 있을뿐입니다.
방안은 매우 어둡고 엘이디등 몇 개로 겨우 책을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방바닥은 아직 따스한 온기가 있었습니다.
오두막 옆으로는 계곡물이 흘러갑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계곡물 위로 평상을 설치하여
여름날에 발을 담그면서 더위를 식힐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늘막을 쳐야겠지요. ㅋ
오두막 뒤로 보이는 산들.
왼편은 사자산 줄기이고, 오른편은 일림산 줄기이며,
그 가운데를 넘어가면 제암산이 나온다고 합니다.
집 앞으로는 저수지가 2단으로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작은 저수지를 내려가면 훨씬 방대한 수량을 담고 있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장수마을인가 봅니다. 역시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수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30여년 묵밭으로 지내온 터를 들춰내니 이렇듯이 옛 텃밭 자리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주변의 나무를 베어내고 집을 짓고 텃밭도 일구어 채소를 길러 먹을 수 있겠습니다. ^^
광대나물인가요?
남녁이라 오다보니 진달래도 다소곳이 얼굴을 내밀고 동백은 활짝 개화하여 손님을 맞이했는데,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ㅉ~
창고로 쓰고 있는 헛간
개불알풀꽃
화덕
부엌과 세간살이들
방으로 오르는 입구에 피어난 제비꽃
김 선생께서 손수 방문객들을 위하여 밥을 짓고 있는 모습
지난 세월을 회고하며 이야기하느라 밥을 다지어놓고도 시간 반을 더 말씀하셨습니다.
아래에 요약 정리합니다.
"집을 지으면서 한옥이란 지붕의 무게로 눌러서 지탱하는 구조이고, 서양집은 기초를 튼튼히 해서 지붕은 가볍게 하는 구조라 서로 원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 집의 지붕에는 흙과 왕겨, 소금, 숯 등을 넣어서 올렸는데, 가느다란 서까래목을 대들보로 썼더니 다들 쉬이 무너질거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서까래목 3개로 만든 대들보는 아직도 건재하다.
무엇보다도 산속의 추위를 견디려면 난방이 중요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적이 많아 온기가 오래가는 구들 방식을 고안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도자기 굽는 가마가 불을 한 번 지피면 20일씩 간다기에, 구들장 아래에 도자기 가마속 같은 구조를 만들어서 불을 지폈더니 3일간 보온이 지속되었다.
최근에는 구들장 잘 놓은 것이 알려져 지인들의 요구에 따라 이곳 저곳 구들장 놓기 알바 혹은 봉사를 하고 있다. 아주 힘든 노동이라서 극한직업으로 분류되는 일이지만 다행히 잘 견뎌내고 있다. 내일은 신안군 압해면의 고이도 섬에 들어가 외국인노동자휴게소를 짓는 봉사를 가야 한다. "
교직에 있으면서도 노동을 일상적으로 하였으며, 해직 시절에는 광고간판을 업으로 하였고, 최근에는 구들장 놓기의 달인(?)이 되어 손이 성할 틈이 없다고 한다. 일반 교사의 손과는 너무도 달라서 한 컷 찍었습니다.
대학에서 핸드볼 선수로 뛰다가 허리를 다쳐서 6게월간이나 누워지내다가 절간에 들어가 스님에게 호흡법도 배우고 일도 하면서 조금씩 건강을 회복했고, 다시 무보수 트레이너로, 선수로 뛰면서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광주에서 카퍼레드까지 했다하니 요즘으로 치면 국제대회 금메달을 쟁취한 것에 버금갑니다. ^^
이후 교직에 발을 붙이고 체육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국대회 끝나자 20여일 밤샘공부로 순위고사에 붙었다고 하니 그 집중력에 탄복했습니다.
2시가 훨씬 넘어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손님을 배려해서 백미를 약간 섞은 현미밥을 꼭꼭 씹어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혼자 사시는 분치고는 반찬이 많다고 했더니, 외국인 노동자들과 같이 먹으려고 조금 넉넉하게 준비했다고 하십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나서 대안학교 청람중학의 운영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대안학교 청람중학교의 첫 수업은 공동체 수업으로 시작해서 산행, 야영, 취사, 캠프 파이어 등의 활동을 통해서 학생 스스로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자각하도록 만들고, 2주차는 2박 3일간 무인도 체험을 떠나고, 3주차는 등반 활동, 4주차는 소감문 쓰기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걷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시 하여, 심지어 입학식을 2박 3일간 해남에서 84km를 걸어서 학교로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ㅋ~
이는 걷기 명상과 닿아 있는 것으로 걸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준다고 하겠지요. 걷는데 익숙해진 학생들은 토요일 외출 때에도 걸어서 수 십 킬로 떨어진 읍내로 다녀온다고 합니다. ^^
그리고 절 수업, 마음 공부, 목공예 등을 시켜 융합교육에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김 선생님의 교육론에 대해 질문했더니, 1. 불가능한 것을 시켜라! 하십니다.
"안 해본 것을 시켜야 성취감도 생기고 도전의식과 용기가 생긴다. 다 알고 있는 것은 흥미를 유발하기 어렵고 성취감도 낮다."
청람중 초기에 세부적인 프로그램도 없이 야외활동을 시작해서 다른 교사들의 반발도 많이 받았지만, 학생들이 의외로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지론에 많이 동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청람중에 배정된 학생들의 공통점은 '무기력'이다. 그들에게 용기와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동기유발은 '불가능한 것을 시켜라'에서 찾았다." 이는 김 선생의 자녀들이 아직 어릴 때도 이미 시험해 본 것이었고,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면서 살아온 체험의 결산이라 할 수도 있겠다.
" 예를 들면 청람중학에서 수련할 때 '레펠타기'를 시키면, 다들 처음에는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지만 동료들이 타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타게 되고 바로 커다란 성취감을 느끼는 것을 보았다. 요즘에는 기숙사에도 레펠을 설치하여 학생들이 놀이감으로 즐긴다."
두번째 교육론은 "사제동행" 입니다.
"청람중에서는 학생이 교칙을 위반하면 교사도 같이 벌을 받는다."
교육과정에서 '무인도 체험'을 가면, 교사와 학생이 동일한 조건에서 생활한다고 합니다.
먹을 것과 잠자리까지 동일한 조건으로 함께 고생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 실천해 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이 교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교칙을 지키려고 하며,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가 쌓이게 됩니다.
그 결과 오히려 교사가 감동받고 가슴 셀레는 등굣길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매우 즐거워 하십니다.
처음에는 교칙도 없이 교문을 열었는데, 교사, 학생, 학부모회(1달에 1번)를 통하여
학생들 스스로 교칙을 정하고,
그것도 오히려 일반학교 보다도 더욱 엄격한 룰을 만들어 준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데, 전날 지리산을 다녀온
다음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아침운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자기와의 싸움이며, 의지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됩니다.
올해 첫 졸업생들이 나갔는데, 이들의 소감은 한 마디로
(에지간 해서는)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하네요. ^^
김 선생님의 반려견. 순딩이다~
빈집을 지키는 백구는 사람을 보고도 짓지도 으르렁대지도 않는다.
김 선생님은 1978년에 교직에 들어와 교육운동 교사운동에 발을 담그면서 본격적인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86년 교사협의회 준비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론적인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보다 앞서서는 80년 5.18을 겪으면서 세상에 관심을 두게 되었으며, 역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제침략사를 공부하면서 일제로 공출되는 곡식들이 달구지 도로를 따라 목포항으로 이어지던 길을 답사하고, 동네 노인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친일적이 세상살이 모습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직 시절, 광고간판을 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1989년 무안지회장으로 와해된 조직을 재건하였고,
91년에는 전남지부장이 되어서 아예 지부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조직 재건에 발벗고 나서서 80% 이상 조직을 재건해 내었다고 합니다. 거의 가정을 버리고 헌신한 덕분이었지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사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합니다. ^^;;
다행히도 자식들이 잘 성장해주어 고맙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큰 자제도 교직에 있으며, 둘째는 헬스 트레이너 겸 격투기 선수라고 하네요~ 아마도 부전자전이겠지요~~ㅋ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김영효, 김광철 두 사람은 광산 김씨로 항렬도 같은 형(용띠)과 아우(말띠) 사이임을 발견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나름의 강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스스로 실천하는 추진력을 소유하고 있지요.
가만히 보니, 눈과 눈썹이 닮았습니다. ㅋㅋㅋ~
해가 기울자 계곡 바람이 차가워집니다.
우리는 더이상 어두워지기 전에 청람중으로 이동했습니다.
청람중학교는 장흥이 아니라 강진군에 있다. 페교를 리모델링해서 4년 전에 개교하였다.
체육관, 멀티미디어실, 강당이 있는 건물 앞에서
청람중 교사
운동장이 탁 틔여 있어서 전망이 좋고 가슴도 크게 열 수 있는 곳이다.
정말이지 학교 부지로는 끝내주는(?) 곳이랍니다. ㅋ~
교사로 들어가 교실과 복도를 들러보았습니다.
체력단련실을 목공실로 바꾸어 학생 교육의 터전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학생들 스스로 필요한 의자와 책상도 만들자, 정말 성의껏 조심스레 만들어 갔으며 소중하게 사용하게 된다고 합니다.
뒤로 돌아가니 목공실 내부가 볼 수 있도록 유리벽이 설치되었는데, 기계와 공구가 다양하게 교실 한 칸을 채우고 있습니다.
( 하필이면 이때 베터리가 다 되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ㅠㅠ)
학생들이 직접 만든 평상 3개를 붙여서 카페로 쓰고 있다. 각 층마다 하나씩 제작되어 있다.
절 수련하는 방.
학생이 교칙을 어기면 이곳에서 사제동행으로 벌칙으로 절 수행을 한다.
1배에 5분, 20배에 1시간이 걸리는 절이라고 하니 궁금하고,
학생들도 교사들도 제일 어려워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집중력이 결여되어 있는 학생들에게 매우 좋다고 권한다.
연중 365일 개방되어 있는 도서관
학교에는 학생 개인용 침낭, 공용 텐트, 취사도구 등 산행에 대비한 장비를 일체 갖추고 있어서 사전에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
일반 교실 모습
학교를 둘러보고 말씀을 들으면서 이곳 학생들은 참으로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폭력적이거나 무기력한 학생들만 데려다가 용기를 심어주고 자심감을 찾아주고 공동체 의식을 불러넣어주어 서로를 보듬으면서 기다려주는 인내심을 배우고 ...
이러한 학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정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과정을 실천하고 있는 청람중학교 입니다. 이곳에선 교사들조차 깨달음을 얻으며 감동받고 감동을 나누는 진정한 배움의 공동체라고 하겠습니다.
산중 생활 15년 째를 맞이하고 있는 김영효 선생은 "환경은 운동이 아니라 생활"이라고 한다. 스스로 지켜야할 덕목을 정해서 몸소 실천하고 있다. 고기 안 먹기, 술 안마시기, 비누 샴푸 안쓰기, 세제 안쓰기...
선생은 10년을 주기로 커다란 격변을 거치면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10대에는 집안이 어려워 독립하여 고학을 했고
20대에는 핸드볼 대학 선수로 뛰다가 부상을 당하여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으나 극적으로 부활했으며
30대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며 정치 사회에 눈이 뜨고, 교육운동 실천하였으며
40대에는 원동력의 하나였던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자신을 공격함을 알고는 마음 공부를 시작하고
50대에는 마음 공부를 깊이 하고자 산중에 들어가 생활하기, 영적 체험 수련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하루 인터뷰로는 김 선생님을 제대로 알기가 어려워 한 3일은 함께 지내면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말했고, 선생님께 자서전이라도 쓰셔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위와 같이 말씀하시면서 앞으로 또 어던 일이 닥칠지를 모르겠고, 어떤 깨달음을 얻을 지 몰라서 쓸 수가 없노라 하시더군요. ㅋ~
최근의 화두는 "1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1년같이"로 정했다고 합니다.
장흥 바닷가에서 키조개무침으로 저녁을 들었습니다.
장흥 바다는 키조개 양식으로 유명하다는군요.
식사 후에는 우리를 광주 송정리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차 안에서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송정에서 9시 40분 케티엑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인터뷰에 쾌히 응해주신 김영효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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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궁 실장님, 글과 사진을 보니, 김영효 선생님 찾아갔던 기억이 확 다가오네요.
이걸 근간으로 '초록교육이 만난 사람'에서는 더 자세하게 풀어 주실 거죠.
이번 김영효 선생님(문중 형님뻘이 됨을 확인하여 더욱 반가웠습니다) 만나서 그 전에 들었던 것보다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어 좋았지만 시간이 워낙 부족하더군요.
함께 사흘 밤낮을 먹고 자면서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맛배기로 이렇게 정리한 글을 보니 더욱 반갑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