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특구' 어쩌구 하면서 강남 집값 신화를 만든 서울 대치동의 은마아파트는 아이러니하게도 IMF 사태를 촉발시켰다는 한보(건설)가 지었다. 강남에 그만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는 발상 자체가 파격적이었지만, 당시 그 어떤 대기업 건설사보다 앞을 내다본 투자였다.
그 한보가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4남 정한근씨가 해외토피 20여년 만에 붙잡혀 한국으로 돌아와 죄값을 치르는 중이다. 아버지 정 회장이 은마아파트에 못지 않게 '대박'을 낸 곳이 러시아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시베리아 코빅친스크 가스전 투자. 최근 작고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고 김우중 대우 회장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러시아 '올리가르흐' 못지 않게 일찌감치 시베리아 자원 개발에 눈을 돌렸던 정 회장은 늘 4남 한근씨를 데리고 다녔다. 그 두사람을 만난 것은 20여년전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이다. 한근씨는 그때 갓 30대였다. 그가 지난 6월 남미에서 붙잡혀 국내로 송환됐다.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 한보의 러시아 투자 이야기가 조심씩 나오니 옛 기억이 새롭다.
1990년대 중 후반, 모스크바 생활은 쉽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90년대 초 러시아 취재를 다녔던 어려움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당시 한국도 IMF 직전의 흥청망청 호황으로 마지막 불꽃이 타고 있었고, 러시아도 1998년 모라토리엄으로 가는 호황(?)의 끝물 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객관적으로 '러시아에서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건 웃기는 이야기다.
아스라한 그 때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 건 온라인에서 접한 또 하나의 기사다. 1994년 모스크바유학생회(총학생연합회) 초대 회장을 지낸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교, 므기모 국제관계학 박사)가 내년 한소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언론과 한 인터뷰다. 1995년에 모스크바에 부임했으니, 한 회장은 이름만 들었을뿐, 만나지는 않았다.
다만 전임이 모스크바유학생회 활동에 큰 도움을 준 덕으로, 그의 인터뷰 내용속에 신문사가 거론됐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그 정도였으면 소개라도 해주었을 법한데, 안타깝다.
한승범 대표(이하 한 회장)의 말에 따르면 1994년에 이미 모스크바 유학생만 500여명에 달했다. 국내에서 '러시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봄'을 맞았던 시기로 기억된다. 기업도, 언론도, 외교관도, 유학도 '러시아로 가자'였다. 중국 붐에 못지 않았다.
또 하나, 지금은 한 회장이 다닌 '므기모'가 국내에서 러시아 유학파의 대세(?)를 점하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모스크바유학생회 결성 논의가 시작된 1994년에도 모스크바국립대학(엠게우) 유학이 대세였다. 한 회장도 인터뷰에서 엠게우의 양보로 그가 초대 유학생회 회장이 되었다고 했다. 당시 엠게우 유학생회 회장이 김선국씨였다. 기억나는 이름이다.
한 회장과 마찬가지로 모스크바 유학 1세대로 엠게우 법대에서 '러시아 사유화 및 외국인 투자 관련법'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변호사가 됐다. 오래 전에 현지 변호사들과 함께 기업·투자 컨설팅 전문 법률회사를 설립,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고 들었다. 2001년 설립된 모스크바한인회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당시 총학생연합회의 구성은 고문-한상용 공과대학연합, 회장-한승범 므기모, 부회장-김선국 엠게우, 총무-김경도 그네신, 학술부장-김상환 이메모, 섭외부장-김용필 루데엔, 김소영 사범대학, 박성옥 통역대학, 유선희 컨세르바토리, 출범식및 체육대회 준비위원장-김태훈 쉐프킨연극대학교, 준비위원-방주영 통역대학, 편집위원-김영옥 므기모 였다고 한 회장은 말했다.
기억나는 이름들이 꽤 있다. 모두들 무사히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러시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김상환 학술부장은 한국기술벤처재단 김상환 창업센터 센터장, 체육대회 총지휘자였던 김태훈 준비위원장은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가 되었다. 또 체육대회 점심시간에 멋진 공연을 펼친 박신양 쉐프킨연극대 학생은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자 반열에 올랐고, 학회지 ‘더불어’ 김영옥 편집위원은 루터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그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총학생연합회 출범식 겸 체육대회를 재정적으로 도와준 지상사 대표들의 이름 몇몇도 반갑게 들린다. 김수철 대한항공 모스크바 지점장, 이득순 상사협의회 회장을 비롯한 지상사 주재원들. 그가 꼽은 고마운 분들 중에 한국일보도 들어 있다. TST, 한세여행사, 대한일보, FAX러시아(현 겨레일보), 신라식당, 아리랑식당, 한국관, 한양식당 등의 이름도 새롭다.
연합회 설립의 산파 역할을 한 권원순 한국외대 교수, 유영철 국방연구원 박사, 김덕주 국립외교원 교수, 정태수 한양대 교수,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 등의 이름도 낯설지 않다. 바로 모스크바 한인의 역사다. 한 세대가 저물고 다시 시작되는 30년이 흘렀다.
한 회장은 10년간의 유학을 끝내고 돌아와 한국외대와 한양대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했다. 2006년 김문수 경기도지사 사이버팀장을 맡은 뒤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사이 죽을 고비도 넘겼다. 120kg 넘는 초고도비만에 프랜차이즈 사업의 실패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고 한다. 그러나 6개월만에 45kg 감량에 성공(2014년)한 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중의 한사람으로 A채널 쾌도난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국내 처음으로 온라인평판관리 회사를 설립하고, 기업 위기관리 전문 '맥신코리아' 대표와 비영리법인 '한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한승범의 기업위기관리'라는 베스트셀러 책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