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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137
진흙 구덩이에 던져진 예레미야(렘 38:1-13)
2023-6-18
인생의 위기 가운데서 우리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감당하기 힘든 위기들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깊은 구덩이에 빠져서 헤어 나오기 힘들 듯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특별한 잘못을 한 것이 없습니다. 정직하게 살아가고 말했는데 위기에 빠집니다. 정직한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랬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조용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사람의 손을 사용하여 구출하셨습니다.
우리들 삶에서도 그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예레미야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1. 고위공직자들이 예레미야를 무덤 같은 진흙 구덩이에 던져 넣음(1-6)
1) 고위 공직자 4명이 예레미야를 고소(1-4절)
1) 스바댜, 그다랴, 유갈, 바스훌. 이 4명은 시드기야 왕 때의 고위 공직자들입니다. 이 4명이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성 안에서 바빌론 군대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죽을 것이다. 성 밖으로 나가 항복하면 목숨을 건질 것이다. 이 성은 바빌론 군대에 손에 넘어갈 것이다.”
2) 수십년 동안 예레미야가 하던 말입니다. 고위 공직자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도 그들은 예레미야를 요나단이라는 공직자 집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두껑을 쒸운 웅덩이에 집어 넣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그를 꺼내었습니다. 왕궁 시위대 뜰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감옥에 가두어도 사람들이 예레미야에게 찾아 왔던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는 계속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4명의 공직자는 무지무지 화를 냈습니다. 왕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을 죽이십시오. 그는 성에 남은 군사와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합니다. 사기를 떨어 뜨립니다.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않고 재난을 구합니다.”
그 때는 바빌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 밖에서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성에 남은 군사”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까 군사들 중에는 이미 성을 몰래 빠져 나가서 바벨론 군대에 항복하는 일이 일어 나고 있습니다.
---> 예레미야를 본받읍시다. 사람들이 반대해도 듣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합시다.
3) 4명의 공직자는 애국자들입니다. 바빌론과 끝까지 싸워서 독립을 유지하여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레미야는 반역자라고 비난합니다. 이 비난이 정당합니까?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나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사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바벨론 군대를 이용하십니다. 심판하실 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 줍니다. “노략물을 얻음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 다른 재산을 잃고 바벨론 포로로 갈 것이지만 목숨만을 건질 방법을 말해 줍니다. 성을 파괴하고 불태우지 않고 보존되는 방법을 말해 줍니다. 적게 피해를 당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방법을 말해 줍니다. 바벨론에 항복하면 됩니다.
4) 예레미야는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않고 재난을 구한다는 것도 억울한 비난입니다. 오히려 4명의 공직자들이 백성의 평안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렘 8:11 에서 말합니다.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이들은 자비의 하나님만 원하고 정의의 하나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승리를 주는 하나님만 원하고, 고난을 허락하는 하나님을 원치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만 원하고 훈련하는 하나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 지금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말을 듣기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될 때 까지는 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기 전에는 당신은 문제가운데 있습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탐욕, 교만, 거짓 예배, 성적 부도덕, 그리고 모든 종류의 죄를 짓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로부터 공짜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5) 사람들은 이 진리의 말씀을 싫어 합니다. 예수님도 같은 저항을 받았습니다. 회개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전할 때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배척받았습니다. 그 시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했습니다”(눅 22:2). 예수님이 “백성을 미혹”한다고 비난 했습니다(눅 23:2). 하나님의 적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씀을 배격합니다.
4명의 고위공직자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증오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신저를 죽이려 하였다.
--->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 하시고 죄를 심판하신다는 메시지를 달게 받고 있습니까? 그냥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말만 듣고 싶어 합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죄를 싫어 하십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와 같이 우리를 징벌하십니다. 우리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읍시다.
2) 예레미야를 깊은 구덩이에 빠뜨림(5-6절)
1) 시드기야 왕은 4인의 고위 공직자들에게 말합니다. 5절, “보라 그가 너희 손 안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를 수 없느니라.” 4명의 고위공직자들에게 실권이 있었습니다. 왕으로서 정당하게 권위를 행사하지 않습니다. 그도 예레미야의 말을 듣기 싫어 했습니다. 왕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신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시드기야 왕은 예수님 때의 빌라도 총독과 같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백성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소리 쳤습니다. 사람들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 주었습니다. 마태 27:24 “물을 가져 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 우리는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자기 권한에 있는 책임을 남에게 떠 넘기지 맙시다.
4명의 고관들은 예레미야를 잡아 감옥 뜰의 깊은 구덩이에 넣었습니다. 줄로 달아 내렸습니다. 그 때 개인집에도 물을 저장하는 깊은 구덩이들을 두었습니다. 왕을 호위하는 시위대 뜰에도 깊은 구덩이가 있었습니다. 구덩이는 항아리처럼 위쪽은 좁고 밑으로 내려 가면서 넓습니다. 대개 입구는 직경 90cm정도 됩니다. 그 밑으로 깊이는 각각 다르지만 대개 4. 5m정도 깊었습니다. 빗물을 받아 두거나,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와서 물을 보관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그 깊은 구덩이로 밧줄로 달아 내렸습니다. 마침 그곳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아마 바빌론 군대가 바깥에서 오는 수로를 막아서 물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물은 없었지만 진흙탕이 고여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진창속으로 몸이 빠졌습니다. 아마 허벅지까지는 진창에 몸이 빠졌을 것입니다.
4명의 고위직 관리들은 예레미야에게 칼을 대지 않고 굶어 죽게 만들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또 차가운 추위가 생명을 갉아 먹었을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의 반응에 대해 말해 주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도살장에 끌려 가는 양 처럼 아무 말 없이 고난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였을 것입니다.
--> 우리도 깊은 구덩이 진흙탕 속에 빠지듯한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메어 주신 십자가가 너무 힘들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고난을 견뎌 내기가 힘들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배웁시다. 고요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인내합시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 내는 강인함을 배웁시다.
3) 그 때 아마도 예레미야는 시 69과 같은 기도를 조용히 하나님께 드렸을 것입니다. 시편 69:2는 말합니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14, 15절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4) 우리도 깊은 고난 가운데 사람들을 원망하지 맙시다.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같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에 의해 부당하게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향해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면서 예수님을 못박은 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눅 23:34(신약 138) “아버지 저들을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생명을 맡겨 드렸습니다. 눅 23:46,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 우리도 깊은 고난으로 고통당할 때 이렇게 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내 생명을 당신께 맡겨 드립니다.”
2. 궁중 내시를 통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구출하였다(7-13절)
1) 하나님이 구출하심
불경건한 자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무시당하는 에벳멜렉이라는 내시를 사용하셨습니다. 40년 전 예레미야는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기로 약속하셨습니다(1: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처음에 부름을 받을 때 무슨 위험으로부터 구원받을 지 몰랐을 것입니다. 점차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와서 깊은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사역의 밑바닥을 경험했습니다. 그가 부름 받을 때, 그는 몰랐지만 깊은 구덩이 안 진흙속에 빠져서 죽기를 기다리는 그런 것도 동의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깊은 구덩이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것을 경험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자기 영혼을 맡겨드렸습니다. 그분의 몸은 무덤이라는 구덩이에 놓여 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님을 구원하셨습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졌습니다.
2) 궁중의 내시 에벳 멜렉이 에레미야를 구출
1) 에벳 멜렉은 이디오피아 출신의 흑인이고 노예입니다. 내시입니다. “내시”는 왕의 가까운 측근의 관리를 말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뜻은 여인들을 관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에벳 멜렉”은 고유 명사로서 이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뜻이 “왕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이름도 없고 자기 정체성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가 전파하는 말씀을 듣고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왕궁에서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 그는 즉각 용기있게 행동을 합니다. 자기가 일해야 하는 왕궁을 용기있게 떠납니다. 왕에게 갔습니다. 왕은 예루살렘성의 문에 앉아서 백성들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재판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적인 재판의 건으로 만들어 예레미야를 변호합니다. 정말로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9절에 그가 왕에게 하는 말을 보십시오.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인정하고 말합니다. 예레미야를 참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9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합니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는데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을 것입니다.”
고위직 관리 4명이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이 악하다고 용기 있게 말합니다. 공개된 자리에서 용기있게 말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대비됩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을 자랑하는 유대인 중에는 예레미야를 불쌍히 여기고 변호하는 용기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3) 시드기야 왕은 에벳멜렉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10절에서 말합니다.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왕은 30명이 함께 예레미야 구출작전을 하라고 말합니다. 반대자를 막으면서 구출 작전을 해야 했습니다.
에벳 멜렉은 여러가지 생각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개인으로서 왕의 궁정의 고위 공직자들을 이길 수 있을까? 나도 징벌받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극복하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였습니다. 에벳멜렉이 행동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 이 모범을 기억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요구하실 때 희 망이 없어 보여도 소망합시다. 믿음으로 행동합시다. 어떤 어려움들이 우리에게 오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에 의해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발자국 행동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작은 행동을 통해 일하십니다.
4) 하나님은 에벳멜렉의 믿음과 용기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39:15-18이 말합니다. 이 성에 임할 재난의 날에, “17그날에 내가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 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18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에벳멜렉의 용기는 그의 자연적 성품이라기 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강하고 담대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행할 때 예레미야를 살리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벳멜렉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은혜를 베풉니다.
마태복음 10:41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5) 에벳 멜렉은 섬세하게 예레미야를 배려합니다. 11, 12절,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의 창고로 갔습니다. 낡은 천들과 낡은 옷들을을 가져왔습니다. 예레미야에게 밧줄을 내릴 때 함께 내립니다. 예레미야에게 말합니다.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십시오”
예레미야가 밧줄을 손에 잡고 올라 올 힘이 없는 것을 에벳멜렉은 알았습니다. 밧줄을 겨드랑이 밑에 넣어라고 합니다. 밧줄이 몸을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낡은 천들과 옷들로 완충제로 삼았습니다. 마침내 구덩이에거 끌어 냈습니다.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머물렀습니다.
---> 우리도 이런 섬세하게 남을 배려하는 것을 본받읍시다. 섬세함이 없으면 도와 준다는 것이 상처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든 성도를 구출하듯이 내려 준 밧줄이 오히려 상처를 낼 수 있습니다. 도움받는 사람의 상태와 마음을 잘 헤아리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여 받읍시다.
6)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아리마대 요셉도 예수님의 몸을 잘 배려했습니다.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님을 십자가로부터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었습니다”(막 15:46). 여인들이 예수님의 몸에 기름을 바르려 갔습니다(막 16:1). 하나님 자신도 그 아들, 위대한 선지자 예수의 몸을 돌보았습니다.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7) 에벳멜렉은 예레미야를 자기 집으로 모실 수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집으로 가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4명의 악한 고위 공직자들에 의해 해를 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시위대 감옥에 안전하게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충분히 보이셔서 그를 구출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를 여전히 감옥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단계적으로 하십니다.
--->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한 빛이 우리 위에 비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어려움을 풀어 주시도록 허락해 드리도록 합시다. 지금 주시는 위로에 만족하며 하나님께서 더 풍성히 돌볼 때 까지 인내하며 기다립시다.
8) 에벳멜렉은 비극과 고난, 어려운 선택들과, 심지어 개인적 두려움 가운데서도 선지자와 함께 섰습니다. 용기 뿐 아니라 분별의 지혜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임이 확인되면 신뢰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예수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신약 135). 하나님의 뜻이 확인되면 용기있게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 용기는 믿음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지혜와 용기를 주시도록 우리도 기도합시다.
9) 에레미야는 예수님과 비슷합니다. 슬픔의 사람, 슬픔에 익숙합니다. 자기 백성에게 왔지만 배척당하고 버림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고난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죽음에서 구출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구원이 왔습니다.
10) 예레미야의 구출이야기에서 특이한 것은 예레미야는 침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침묵합니다.
여기에 예레미야의 믿음이 있습니다. 이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를 구출할 것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11) 우리도 위기가 닥쳤을 때, 고요히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우리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만 바라보고 이를 악물고 참고 나갑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일하십니다. 예레미야에게 “너를 구원하리라” 약속하신 대로 행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행하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4:22(신약 212)은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우리는 많은 환난을 통과하여 결국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갑니다. 환난 중의 환난이 죽음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비참한 끝이 아니라 천국으로 들어가는 기쁜 길입니다. 극심한 환난으로 죽을 것 같을 때, 우리 예수님께서 죽음을 지나 먼저 가신 천국을 소망합시다. 천국과 부활 소망 가운데 이 어려움을 참고 견딥시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소명을 다하기 까지는 여기서 생존하게 하실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반대가 있더라도 복음 말씀을 전합시다. 시드기야 왕이 처음 했던 것 처럼 비겁하게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고 비극을 일으키려 하지 맙시다. 예레미야처럼 조용히 하나님을 믿고 바랍시다. 에벳멜렉처럼 의로운 일을 용기있게 행합시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지만 섭리 가운데서 우리가 천국에서 안식할 그날까지는 이 땅의 위기 가운데서 우리를 구출해 주십니다.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며 견디고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