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산행(호남의 산)
진안-장수 천반산(646.7m)
죽도와 금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요새지
비단결 같이 곱디고운 금강의 옥류가 휘돌아 가는 천반산 서쪽엔 예부터 천혜의 피서지로 명성이 자자했던 죽도가 있다. 이 산자락의 깎아지른 암벽엔 송판서굴, 할미굴의 애달픈 전설과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한림대와 형제바위, 마당바위, 할미대, 그리고 치성을 드리는 장소인 정상의 감투바위 등 명소들이 즐비하다.
이 산을 동쪽을 제외하고 삼면이 금강에 둘러싸인 독특한 지세와 깎아지른 절벽을 걷는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죽도와 천반산의 자연경관에 반하여 친구들과 머물렀다 해서 죽도선생으로 불렸던 정여립이 아들과 함께 최후를 맞은 한이 서린 곳이다. 그러나 이제 죽도(竹島)의 넓은 모래사장과 자갈밭, 그리고 천연기념물 쏘가리가 노닐던 옥류는 선조들의 예언대로 용담댐이 들어서면서 전설 속의 이야기로 남았다.
백두대간 덕유산 연봉의 끝자락인 장수덕유(남덕유산 서봉)에서 지맥 하나가 남서쪽으로 나뉘어서 삿갓봉과 두루봉을 지나 영구산에서 두 갈래를 친 뒤 남쪽으로 내달리다가 삼면이 금강에 가로막혀 멈춰 섰으니 바로 천반산이다. 물줄기는 남,서쪽은 금강의 원류인 장수 뜬봉샘에서 흘러온 장수천, 동,북쪽은 무주 안성에서 흘러온 구랑천이 산의 서쪽인 죽도에서 합수되어 금강을 이루고, 서해의 금강하구둑에서 바다에 살을 섞는다. 행정구역은 진안군 동향면, 상전면, 장수군 천천면에 경계해 있다.
천반산이란 지명의 유래를 고찰해 보면 퍽 이채롭다. 첫째는 서쪽 산정 1천여 평의 분지가 하늘(天)에서 보면 마치 소반(小盤) 모양이라는 데서 왔다는 설이다. 둘째는 이산 남쪽 가막리에 경주 정씨가 400년 전에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마을 앞 냇가에 있는 '장독바위'가 하늘에서 떨어진 복숭아 형상 즉, 천반낙도(天盤落桃) 형상이라는 얘기가 있다. 셋째는 천반, 지반, 인반의 명당 중에서 이 산은 천반에 해당하는 명당이 있기 때문이란다.
신기 마을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정감록이 예연한 10승지의 한 곳이고, 조선조의 유학자인 유겸암이 겸암록을 통하여 이곳의 지리가 호남의 제일이라고 칭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감록을 통해 이 마을을 발견한, 유불선합일갱유도라는 민족종교를 신봉하는 김대중씨(53)는 지리산 청학동에서 18년간 생활하다가 세속의 물결이 급속도로 밀려들어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1988년 가족을 데리고 천반산 아래 당집 옆 당골로 이주해 왔다. 이곳에서 전통 복색을 하고 장수명륜학당을 여름과 겨울방학 때 열어 인사예절과 사자소학 및 명심보감 등을 가르치고 있다.
가막 마을 가막교를 지나 산행길 초입에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숲을 이룬 아담한 동산에 당집이 있다. 해마다 3개 마을 사람들이 안위를 위하여 당할머니께 제사를 지냈으나 몇 년 전 장마로 무너져 있다.
장수의 5대 명산으로 불리는 천반산은 장수의 북방을 수호하는 수문장이기도 하다. 정상 주변은 동쪽을 제외하고는 접근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다. 장수군과 달리 진안군에서는 이 산에 안내도와 더불어 등산로를 잘 가꾸어 놓았다. 진안군청 김명순 계장에 의하면 올해 등산로와 안전시설을 보완할 예산을 확보했다고 한다. 타 지자체들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이 산은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길이 따로 있어 포수들이 사냥하면서 좁은 목을 지키고 있으면 짐승들이 모두 잡힌다고 한다. 이 산의 넓은 터에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들과 묘소가 있다. 안한기란 이가 그곳에서 30여 년 전까지 기거하였으며, 가뭄이 들면 산 아래 멧작골까지 내려와 식수를 가져갔다고 한다. 400여 평의 평지에는 작은 산석이 나란히 정렬한 듯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마치 부인들이 대오를 갖추어 나란히 앉아 밭을 매는 모습이라서 힐미대라 불린다.
진안의 상징으로 일컫는 마이산에서 태동된 전북산악연맹 마이산악회(회장 정교관)와 자연사랑운동을 펼치는 전북산사랑회(회장 김정길)가 천반산을 함께 올랐다. 마이산악회의 이현 총무(현대자동 차), 유막동 재무(진안군청), 이강문(강문건재사), 김명순(진안군청), 김종식 등반대장(불사조렉카), 이태수(한라관광), 이택노(진안1001안경원) 회원과 전북산사랑의 김동곤 고문, 이영환 등반대장, 서종기, 최병욱(기전여대 교수) 회원과 아들 최진웅군이 대표로 참여, 천반산휴양림에서 산을 일주하고 죽도폭포를 거쳐 장전 마을로 나오는 원점회귀형의 제2코스를 답사했다. 그러나 제2코스는 장마철이면 구량천을 건널 수 없기 때문에 천반산휴양림에 문의하고 산행하거나 제1코스를 산행해야 한다.
진안 상전면에서 동쪽으로 구량천을 따라 달리다가 야트막한 콘크리트다리를 건너면 천반산휴양림이다. 우측의 이정표가 있는 숲길로 들어서자 나무계단과 신선한 공기와 산새들의 합창소리가 산꾼을 반겼다.
노송과 암벽이 어우러진 전망대 풍치
35분쯤 땀을 흘리며 오르자 천반산이 눈앞에 우뚝한 갈림길목이다. 동쪽은 영구산 방향으로 희미한 능선을 따라가다가 가막 마을 외딴집에 닿는 길이다. 200m쯤 오르자 천반산 정상인 깃대봉에 닿았다. 진안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와 삼각점(무주 314)이 있고, 동쪽으로 덕유산과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보일 뿐 조망이 시원찮다. 기념촬영을 한 뒤, 서릉을 걸으면 노송과 어우러진 바위전망대에서 두 귀를 쫑긋 세운 마이산이 다가온다.
바위능선을 밧줄을 잡고 오르면 가막리와 신기리 들녘, 굽이치는 장수천이 한눈에 잡힌다. 곧이어 능선에 말 형상의 마당바위가 있는데, 정여립과 친구들이 이곳에 머물며 윷놀이를 즐겼다는 흔적과 구멍들이 있었다.
식수는 북쪽 장전 마을 앞 구량천에서 구했다고 한다. 깃대봉에서 40분쯤이면 석축을 쌓은 성터 삼거리(576m)에 닿는데, 이장표와 안내판, 표지석, 벤치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북쪽은 죽도천변(3.3km)과 송판서굴(2.1km), 서쪽은 한림대터나 할미굴(1km)로 가는 길이다.
서릉을 타고 가면 곧이어 삼거리에서 남쪽 가막리 임도와 외딴집으로 가는 지름길(1.4km)을 지나 한림대터를 만난다. 내림길의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가막리의 외딴집(0.7km)이고, 북쪽으로 200m쯤 가면 깎아지른 암벽 아래 할미굴이 있다. 이곳은 6명이 기거할 굴과 벤치가 있다. 세종 때 예조판서였던 송보산이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이 산의 송판서굴에 은거하며 내외 금침을 금하며 부인을 이곳에 있게 했다고 한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한림대터를 거쳐 성터 삼거리에 닿는다. 북서릉을 걸으면 북쪽의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구량천이 굽이쳐 흐르고, 좌측 1천여 평에는 화전민들이 머물렀던 집터와 전답 흔적들이 보였다. 불현듯, 초근목피로 연명했을 민초들의 환영이 스쳐갔다.
0.5km쯤 걸어 삼거리에서 서쪽의 가파른 암벽 아래 송보산이 기거했다는 송판서굴에 닿았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샘물과 벤치, 그리고 10여 명이 머물 수 있는 굴에는 사람들이 기도하며 머물렀던 흔적이 있고, 우측에는 작은 굴 하나가 더 있었다. 송보산의 위패는 장수 원장사와 마령 구산사에 있으며, 그곳엔 정여립이 친구들과 머물렀다고 한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서북릉의 뜀바위를 거쳐서 노송과 암벽이 어우러진 전망대에 다다랐다. 조망이 훌륭했다. 멀리에는 마이산, 가까이에는 대덕산, 발 아래는 죽도를 사이에 두고 굽이쳐 흐르며 만나는 장수천과 구량천이 뵌다. 풍덩 뛰어들어 멱 감고 싶은 유혹이 일었다. 전국을 누비는 목포 노적봉산악회와 광주 백계남씨의 리본이 눈에 띈다.
묘소가 줄지어 나타난다. 양측이 모두 깎아지른 바위길이 이어지다가 완만한 능선을 지나면 인삼밭을 지나 죽도폭포 앞에 다다른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물길을 내려고 폭포를 폭파해서 감옥살이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지금은 물막이와 어도(魚道) 공사를 하고 있었다.
구량천변을 따라 동쪽으로 1.5km쯤 걷자 다슬기 잡는 아낙들과 나무에 앉아 있는 왜가리 모습이 정겹다. 눈부시게 하얀 찔레꽃,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와 모내기 한 농경지를 지난다. 냇가를 물막이한 취수보를 건너노라니 차량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냇가를 질주했다. 물이 많을 때나 밤에 차량들이 이곳을 건너다가 종종 빠지기도 한단다. 자연석과 돌탑을 쌓은 전원주택지를 지나면 장전 마을 앞 버스정류소에 닿는다.
*산행안내
제1코스(남쪽 등기점) 가막교-당집-0.5km-외딴집(안내도)-안부-0.7km-삼거리-0.2km-할미굴, 한림대터-0.9km-성터 삼거리-0.5km-서북릉 삼거리-0.3km-송판서굴-0.8km-성터 삼거리-1.2km-깃대봉(정상)-1.2km-성터 삼거리-남쪽 안부-임도-1.2km-외딴집-0.5km-가막교<8km, 3시간30분 소요>.
제2코스(북쪽 등기점) 휴양림-동릉-1.6km-깃대봉(정상)-서릉-1.2km-성터 삼거리-0.9km-한림대터, 할미굴-0.9km-성터 삼거리-0.5km서북릉 삼거리-0.3km-송판서굴, 서북릉-1.9km-죽도폭포 냇가길-1.5km-장전 버스정류장<8.8km, 4시간 소요>.
*교통
접근 드라이브 코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안성나들목에서 나와 49번 국지도로 동향면 소재지를 지나 약 6km 더 가면 천반산휴양림이 나온다. 가막리로 가려면 동향면 소재지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남하, 오봉리에서 국도를 버리고 우회전해 약 5km 들어서면 된다.
전주 방면에서는 26번 국도를 타고 진안을 지나 언전 교차로에 다다른 다음 우회전해 49번 국지도를 타고 약 8km 가면 천반산휴양림이 나온다. 가막리로 가려면 진안에서 계속 26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오천리 삼거리에서 급하게 좌회전해 큰 고래를 하나 넘어서면 된다.
군내버스편
천반산휴양림은 진안에서 상전 경유 동향행 버스 이용.
가막리는 진안에서 오천리~가막리 경유 천천행 버스 이용.
*먹거리
천반산가든,찜질방(063-432-7316):사설 휴양림인 천반산휴양림이 직영한다. 자연산 매운탕 30,000원이며, 냇가에서 낚시와 물놀이도 할 수 있다. 황토찜질방은 5인 1실 40,000원(1인 추가시 5,000원), 찜질방 1인당 4,000원.
월랑정(063-433-3419):진안 중앙초교 옆에 있는 이 식당은 마이산악회 회원이 운영하며, 진안명물 애저(1다리) 40,000원, 한방오리탕 35,000원, 오리주물럭과 오리소금구이 25,000원이 주메뉴다.
글쓴이:김정길 수필가, 향토지리연구가. 전북산사랑회 회장. 대산련 전북연맹 기획정보이사. 저서 <전북 100대 명산을 가다> 등.
참조:천반산과 천반산자연휴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