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윳따 니까야>의 구성과 내용
■제1권
<쌍윳따 니까야> 제1권의 전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쌍윳따 하늘사람」:8품, 81경
「제2쌍윳따 하늘아들」:3품, 30경
「제3쌍윳따 꼬쌀라」:3품, 25경
「제4쌍윳따 악마」:3품, 25경
「제5쌍윳따 수행녀」:1품, 10경
「제6쌍윳따 범천」:2품, 12경
「제7쌍윳따 바라문」:2품, 22경
「제8쌍윳따 방기싸」:1품, 12경
「제9쌍윳따 숲」:1품, 14경
「제10쌍윳따 야차」:1품, 21경
「제11쌍윳따 제석천」:3품, 15경
이 <쌍윳따 니까야>를 이해하는 데는 부처님의 하루 일과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오전 6시에서 12시까지는 하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여 뭇삶을 도와주고 탁발하고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였다.
그리고 12시에서 오후 6시까지는 대자비삼매(大慈非三昧:mahākaruṇā samā-patti)에 들어 수행승이나 뭇삶들의 괴로움을 살피고 그들을 돕거나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오후의 수면에 들기도 하고 일반사람들을 제도하거나 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했다.
초저녁인 오후 6시에서 밤 10시까지는 수행승들이 방문하면 친견을 허락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한밤중인 밤 10시에서 새벽 2시까지는 하늘사람이나 악마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제도했다.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경행(經行)을 하였으며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는 마음새김을 하며 취침했다.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는 열반에 들어 아라한의 경지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는 대자비삼매에 들어 뭇삶들의 괴로움을 살펴보았다.
제1쌍윳따 「하늘사람 쌍윳따」는 나무나 샘의 님프, 숲과 밭과 들과 가축과 가옥의 수호신뿐만 아니라 도리천을 비롯한 천상계의 여러 신들과 부처님 또는 부처님 제자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이 경들은 최고층의 경전 가운데 하나로 빤데가 이야기하듯이 이를테면 그 첫번째 경에서 ‘머물지도 애쓰지도 않으면서 세상의 집착을 뛰어넘어 열반에 도달한다’는 중도적인 교설을 하늘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잘 반영하고 있다.
제2쌍윳따 「하늘아들 쌍윳따」는 「하늘사람 쌍윳따」와 동일한 맥락에 있으나 대화자인 천신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에는 하늘사람이라고 표현했고 대화자의 이름이 알려지면 하늘아들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나중에 힌두교의 절대신으로 군림한 시바(Siva:sk. Śiva) 신도 하늘아들로 등장해서 대화를 나누고 태양신 쑤리야(Suriya:sk. Sūrya)도 부처님과 일식현상을 두고 신화적인 대화를 나눈다.
특히 여기서 하늘아들로 등장하는 아나타삔디까는 아함경에서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는 죽어서 천상에 태어났으나 부처님이 계신 라자가하에 있는 벨루바나의 깔란다까니바빠에 하늘아들로 찾아와 수행승 가운데 지혜와 계행으로 열반에 도달한 싸리뿟따를 찬양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타계했으나 선행으로 천상계에 태어난 이교도의 제자들이 부처님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제3쌍윳따 「꼬쌀라 쌍윳따」는 꼬쌀라 국의 왕 빠쎄나디(Pasenadi)와의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하늘사람 쌍윳따」과 「악마 쌍윳따」 사이에 끼여든 것은 편집상의 일관성이 결여된 것이긴 하지만, 꼬쌀라 국과 마가다 국의 전쟁에 관한 내용을 담은 역사적인 중요한 기록들을 담고 있고 개인의 미적 가치관의 상대성이나 인과응보 사상 등이 담겨져 있다.
제4쌍윳따 「악마 쌍윳따」는 악마 빠삐만(Papiman)과 부처님의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여기서 악마는 자주 추하거나 매혹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서 부처님을 유혹하며 대화를 나눈다. 악마는 모든 경우에 감각적 쾌락이나 황금, 심지어 권력을 미끼로 부처님을 유혹하는 반대편에 선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의 악마와는 달리 여기서의 악마들은 부처님과의 대조적인 견해를 드러냄으로써 깨달음의 길을 분명히 하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대화의 현장에서 사라지는 소극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제5쌍윳따 「수행녀 쌍윳따」는 출가한 수많은 수행녀들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그린 것으로, 그 갈등은 악마 빠삐만과의 대화로써 등장한다.
예를 들어 여자로서 성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비구니를 조롱하는 악마 빠삐만에게 쏘마라는 수행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법을 보는 자에게 지혜가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남자다, 또는 여자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는 악마일 뿐이리.’
이런 대화를 읽다보면 어느 수녀와 마이스터 에카르트의 대화를 상기시킨다. 에카르트는 자신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었던 한 수녀를 극구 칭찬한 적이 있었다. 그밖에 여성의 출가정신과 세속적인 아름다움, 모성애 등과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제6쌍윳따「범천 쌍윳따」는 당시 인도의 최고신인 범천과 부처님의 대화를 다룬 것으로, 부처님이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유신론적인 영원주의를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경전이다. 특히 이 범천 쌍윳따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부처님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후에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많은 사람에게 설할까 말까 망설이는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증득한 이 법은 심원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여 사념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여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감각적 쾌락의 경향을 즐기고 경향을 기뻐하고 경향에 만족해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도리,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고통이 되고 나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그때 범천 싸함빠띠가 등장해서 진리를 설할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그러한 청원 이전에 여기에 등장하는 싸함삐띠의 독백이 중요하다.
‘참으로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서 머뭇거리며 진리를 설하지 않기로 마음을 기울이신다면 참으로 세계는 멸망한다. 참으로 세계는 파멸한다.’
이는 부처님께서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설하는 것이 다음 순간 세계를 파멸로부터 구원하는데 필수적인 것임을 자각하신 것을 드러낸다.
제7쌍윳따 「바라문 쌍윳따」는 「범천 쌍윳따」가 부처님 당시의 보다 지배적인 종교와의 관념적인 관계를 들어내는 데 비해 당시의 지배적인 종교의 사제였던 바라문들과 신흥종교인 불교와의 실제적인 관계를 나타낸다.
특히 절대신과 사제로서의 우월성을 믿는 제사 중심주의를 숭배했던 바라문교의 사제들에 대한 부처님의 처방은 유명한 쑨다리까 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어라.’
특히 이 쌍윳따의 「재가신도의 품」에는 부처님의 위트 있는 유머로 가득한 경전들이 있다.
어떤 바라문 농부가 탁발하는 부처님을 비난한 ‘그대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드십시오’라는 모욕적인 언사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는다. 믿음이 씨앗이고 고행이 비며 지혜가 나의 멍에에 묶인 쟁기이다.’
그밖에 자꾸만 한 집으로 탁발을 하러 가자 그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했던 한 바라문의 난처한 질문을 부처님께서 얼마나 재치 있게 넘기는가가 우다야경에 나타나 있다.
제8쌍윳따 「방기싸 쌍윳따」이다. 방기싸 장로는 교단에서 유명한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행생활에서의 유혹을 스스로 경계하여 시를 짓기도 했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위대함을 경탄하여 시를 짓기도 했다.
그가 제자들을 거닐고 오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읊은
‘구름이 걷힌 하늘의 달처럼/
오염되지 않은 태양처럼 빛나네/
그대, 위대한 성자 앙기라싸는/
영광스럽게 온 세상을 비추네’
라는 시는 참으로 감동적인 것이다.
제9쌍윳따 「숲 쌍윳따」는 숲이나 총림에서 수행하던 부처님의 제자들이 명상하던 가운데 수행에 방해가 되는 나태한 생각이나 우울한 생각이나 나쁜 욕심이 일어나면 하늘사람들이 나타나서 깨우침을 준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부처님 당시에 벌써 어떤 하늘사람이 다음과 같이 게으른 수행승들을 비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수행승들은 마을에 있는 촌장처럼 스스로를 불만족하게 만들고 다른 집의 재산에 마음을 빼앗겨 자꾸만 먹고는 누워 버리네.’
제10쌍윳따 「야차 쌍윳따」는 부처님 당시의 민간신앙적인 하급 신들과 부처님의 가르침의 관계를 대화로써 엮은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싸누 경이다.
재가신도의 아들인 싸누의 몸 속에 귀신인 야차가 들어가서 싸누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야차는 여기서 저급한 악마적인 신이 아니라 민간신앙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수행을 돕고 수행을 잘하면 수행자를 칭찬하며 돌아다니는 무리를 말한다.
제11쌍윳따 「제석천 쌍윳따」는 항상 정의로운 제석천과 항상 불의를 일삼는 아쑤라가 함께 등장하여 부처님이나 수행자를 예경하고 고무하고 격려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쌍윳따에 등장하는 경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경은 제3품의 ‘추악함’이라는 경이다. 여기에는 추악하고 왜소한 야차와 훌륭하고 단정한 제석천의 변증법적인 관계가 묘사되고 있어 대단히 경이롭다. 야차는 비난받고 혐오를 당할수록 보다 아름답고 장대해져서 제석천처럼 빛나게 되고, 칭찬받고 찬양받을수록 점점 왜소하고 추악해져 볼품없이 꾀죄죄한 야차로 돌아간다는 변증법이 이 경 속에 숨어 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담아갑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