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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천국 요10:28-29 15:5-6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유명한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 다리의 이름은 금문교입니다. 골든게이트브릿지라고 하는 금문교는 1937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완공될 당시로서는 금문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였고 그 수려한 경관도 세계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던 다리입니다. 이 다리를 건설하는 것은 큰 공사였기 때문에 두 단계로 나뉘어서 공사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다리의 절반을 공사하는 동안 추락사고로 23명이나 목숨을 잃게 되면서 안전문제가 사회에서 심각한 이슈로 부각이 되자 안전하게 공사를 진행하기 위하여 그때 샌프란시스코시는 당시로서는 작은 액수가 아닌 10만 달라를 들여서 그 다리밑에 안전장치로 그물받이 안전매트를 설치하였던 것이 두 번째 공사단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공사를 하다 떨어져도 생명에 지장이 없도록 안전하게 그물받이를 설치를 해 논 것입니다. 나머지 두 번째 공사에서는 10명이 추락하였지만 그물받이 덕분에 모두가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건져야할 대단히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머지 절반공사가 훨씬 더 어려운 난공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첫 번째 단계공사에 비해서 더 적은 인원이 추락했었는가 입니다.
물론 경험 축적의 원인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다리 아래 그물받이가 설치해 있어 나는 떨어져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라는 마음에서 오는 안정감에 대한 확신때문이라고 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안정감이 이처럼 주요하다는 것은 위험한 길을 걸어가는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이치입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발병한지 거의 일년이 지났는데 확진자가 1억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2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만도 확진자는 8만명 정도이고 사망자는 1400명 정도이다. 사망자들 중에는 나 코로나 걸려 죽으면 어떻게 하지?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사망한 자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입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즉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느냐 안믿느냐는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4:23)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인류의 소망되신 예수그리스도
우리들은 인생을 살면서 생로병사를 다 겪고 있습니다. 마치 봄에 씨를 뿌려 싹이 나서 큰 숲으로 자랐다가 가을이면 낙엽이 떨어져 쓸쓸해 보이다가 겨울이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다가 봄이면 새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서 인생도 한번 이 세상에 왔다가 죽은 후에는 다시 사는 것을 소망합니다. 자연은 계절에 따라 반복적으로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지만 인간은 한번 죽으면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으며 심판에 따라서 영생으로 사느냐 영벌로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방금 위에서 잠언말씀중에서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있는 생각은 입을 통해 나오고 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 마음에서 있었던 것들이므로 입으로 무슨 말을 해야할까? 말에 씨가 있다고 하듯이 입으로 선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그런 사람은 소망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고 소망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행복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지금 배부르고 위험하지 않으면 행복할지 모르지만 우리 인간들은 현재 만족만으로는 행복하다고 할 수 없고 앞으로도 아니 죽음이후 까지도 행복하다고 믿어야 정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종교를 갖게 되는 것은 종교치고 다 죽음이후 내세까지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즉 신을 믿는 것은 인생들이 건너는 다리아래 설치한 안전 그물망과 같은데 이 안전그물망이 찢어지거나 약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인생이란 다리를 건널 때 가장 완전한 안전받침대라는 것임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 중에서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교야 말로 정말 이 땅에서는 물론 내세까지 아니 영생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우리를 향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 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지고 가는 인생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와서 내 말을 믿고 쉼을 얻으라는 말씀아닙니까? 누구든지 주께로 오면 인생의 무거운 짐이 가벼워지고 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길을 가는 인생에게 이보다 더 복된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질병, 가난, 이별, 사망 같은 내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무거운 짐들이 있는데 우리 주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의 무거운 짐을 그분에게 맡기면 우리 마음이 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짐은 죽음의 이별입니다. 죽음을 해결한 분은 인류역사상 오직 예수님 밖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우리 곁에 계시면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죽었던 자들을 살려주셨던 기적은 기적 그 차체 였으며 마지막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장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부활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종교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처럼 죽음을 극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죽었으면 죽음으로 끝났지 다시 살아나신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으면 다시 살아서 영생한다는 믿음과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꿈과 소망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영광받으시고자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사탄은 인간을 미혹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 사탄을 따르도록 죄의 수렁에 인간을 빠뜨렸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 값을 사탄에게 지불하고자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세상에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한길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죄사함 받는 길 이외엔 다른 길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분이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구원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기만이고 헛된 노력에 불과 합니다.
이런 복된 소식을 들으면 누구나 예수님을 믿을 것 같지만 사탄은 거짓의 아비이므로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미혹하므로 예나 지금이나 진리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보다는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로 가는 자들은 극히 적고 수많은 사람들이 넓은 문을 통해 넓은 길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이 자리에 나온 것만으로도 우리는 정말 대단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창세 이후 이 세상엔 수많은 종교가 있어 왔지만 우리 기독교처럼 인간의 죄사함과 구원받는 것을 알려주는 종교는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교 이외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우리 마음가운데 믿어야만 죄 사함 받아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원자이며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받는 것 이외엔 다른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도의 갠지스강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씻고자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그 더러운 강물을 떠서 먹거나 몸을 씻으면 죄가 없어진다고 하여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강으로 찾아옵니다. 우리 같으면 전혀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거기까지 먼 길을 온 사람들은 너무 진지하게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내 백성이 지혜가 없어서 망한다고 하셨는데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 멸망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읽으면 지혜와 명철을 얻게 됩니다. 사물을 분별하게 되고 이 세상과 내세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도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고백하였을 것이고 내 일생 다 바쳐서 주님께 헌신하겠다는 각오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더 가깝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믿음을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늙고 낡을지라도 영혼은 절대로 죽지 않기 때문에 영혼이라고 하며 육체가 사망한 후에도 이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우리 신앙생활은 결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기를 처음 낳아 기르면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젖을 잘 먹고 잠을 잘 자면 어린 아가는 눈에 띄게 쑥쑥 자라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아가가 잘 자라지 않는다면 그 부모는 너무 걱정이 클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나와 예배드리면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여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으면 주님에 대한 사랑이 더 뜨거워져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도 우리 마음속에 있어야하고 주님께 드리는 찬양도 주님께 간청하는 기도도 또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도 더 뜨겁게 한다면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증표가 될 것입니다. 왜 그렇냐 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렇게라도 나타내는 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인지 한번 보겠습니다.
2.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을 약속하셨다.
인간이 이 땅에서 삶이 끝나면 과연 우리는 어디서 살게 되나?
인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죽음 이후에 대해 고민해 왔다. 영생은 인간이 소망하는 복이다. 이 복을 소유한자는 세상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정복한 예수님만이 이러한 복을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는 이 땅에는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일4:13) 그분께서 자신의 영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이로써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생명이 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다시말하면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느냐 안계시냐는 바로 내가 영생을 얻었느냐 멸망을 당하느냐를 구분하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종교적인 행위를 많이 하였더라도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내 마음속에 없으면 그 사람에게는 구원도 없고 영원한 생명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느낌이 아니라 내 경험이 아니라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모시고 있는가 라고 하는 사실에 근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셨다면 우리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그는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그 마음속에 흔들림 없이 소유하고 계셔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이 구원의 확신에서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느낌에 따라 자신의 종교적인 행위에 따라 어떤 때는 구원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구원을 받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흔들리는 신앙생활로 인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성장에 이르지 못하고 바로 영적 어린아이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전감의 확신이 없어서 금문교 공사를 하다가 23명이 떨어지었듯이 만약에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적어린아이 상태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경험한다는 것은 바로 내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시고 살다가 후에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을 한다는 말입니다.
(요일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게 하려 함이라.
인간에게는 영생이 있다는 것은 인류의 소망이며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구원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신 것인가?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이 맞나? 이런 의심이 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서 손으로 짚어 가면서 읽으면 의심이 물러가고 구원받은 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이고 또 하나님의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의심없이 하나님 잘 믿는 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믿음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베드로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말씀하였을 때 베드로가 뭐라고 하였습니까? 주님이 죽으면 죽는데 까지 가겠다고 큰 소리 쳤지만 막상 주님이 무리들에게 체포되어 가야바 법정에 섰을 때에는 나이 어린 여종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3년을 공생하면서 예수님의 기적을 수없이 경험한 베드로도 주님을 부인했는데 하물며 우리들도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정말 하나님이 계실까 그 하나님은 내가 믿고 있는 성경의 하나님과 동일하실까? 한번 사는 인생 혹시 내가 잘못 짚은 것은 아닐까? 괜히 고생만 하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인생은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일까 라고 하는 의심이 생길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불신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일어나지만 주님을 온전히 믿으면 이런 근심들은 구름이 쉬 사라짐같이 우리 마음에서 떠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콩나물에 물을 주면 쑥쑥 자라듯이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성장하느냐하면 마치 주가지수 그림을 보면 상승할 때도 수없이 하락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상승곡선을 그리듯이 우리들의 믿음도 의심과 신뢰를 거치면서 점점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특별한 은혜를 받으면 그 때는 죽으면 죽으리다 하고 믿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때때로 의심의 먹구름이 몰려온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비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지듯이 의심과 고난의 길을 간 후에는 우리의 믿음이 시험을 치루었던 것처럼 한 단계 올라갔다고 생각하면서 주님께 더 가까이 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범죄한 죄인을 어떻게 구원하시는 가를 말씀하고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믿도록 성령님이 증거하고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죄 안짓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요? 그럼에도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대속의 제물로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 문제로 예수님 앞에 나오면 용서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실 수 있지만 단지 불신앙의 죄만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예수님을 거부한 불신앙의 죄는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으라는 것인데 그 아들을 거부한 사람들은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수단 방법가리지 않고 인간으로 하여금 영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예수님과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증거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응답해주시는 것이고 마귀는 성경말씀을 증거로 대적하면 물러가는 것입니다.
3. 구원의 확신은 기록된 말씀만을 믿는 것이다
종교개혁자인 마르틴루터도 종교개혁을 하는 중에 하루는 마귀가 루터에게 와서 네가 지었던 죄목을 읽어보라고 하였을 때 정말 자신이 지었던 죄가 필름같이 지나갔을 때는 너무 부끄러웠지만 요한일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사하실 것이라는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고서 종교개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였듯이 그 누구라도 신앙생활을 하다가 신앙생활이 흔들릴 수 있어도 말씀을 믿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성도님들이 자신의 신앙생활에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의심의 먹구름이 우리를 에워싸서 안절부절하는 성도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때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흔들려 먹구름이 찾아올 때 여러분은 두 사람중의 한 사람을 선택하여 따라나가야 합니다. 미스터 필링씨 미스터 감정씨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미스터 필링씨 미스터 감정씨를 따라간다면 내 느낌에 의해서 내가 구원을 받았는가 구원을 받지 못하였는가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견고한 신앙가운데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느낌에 신앙이 근거하기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그러한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으면 정말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 것 같고 정말 하나님이 나만 사랑해주시는 것 같고 위로 한참 올라가지만 그러다가 조금 게으른 것 같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임무를 다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완전히 또 추락하는 것입니다.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기 때문에 결코 그는 발전할 수도 없고 앞으로도 높이 올라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심의 구름이 다가올 때 우리는 결코 미스터 감정씨 나의 감정에 의거해서 구원을 확인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따라나가야 할 두 번째 사람은 미스터 섹트씨 그러니까 미스터 사실씨를 따라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내 느낌에 의해서 날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여 나의 신앙을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내 느낌과 상관없이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드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히브리서 6장 17절에 있는 말씀 우리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히6:17) 하나님께서도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자신의 계획이 불변함을 더욱 풍성히 보여주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써 확증하셨나니.
성경은 사실만을 기록한 하나님의 언약책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자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이 변하지 아니할 것을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기록된 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이 세상도 천지도 사라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의 구원을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흔들릴 때 여러분 감정 따라가지 마시고 이 사실의 확신에 근거하여 내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점검받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16절의 말씀을 한번 읽겠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함인 것 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감정과는 상관이 없이 여러분의 느낌과는 절대로 상관이 없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고 선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있는 말씀도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로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이 이르지 아니하노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앞으로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가 아니고 이미 영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마음가운데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느낌에 근거해서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구원받았다 하면 구원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구원이 흔들릴 수 없음을 우리가 분명히 깨닫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우리가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4. 믿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해야 한다
믿음이라는 영적자산이 있어야 천국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는자만 천국에서 영생하는 것입니다.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가 우리가 죄를 지으면 다시 뺏았다가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 주셨다가 빼았다가 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구원은 우리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일컬어 성도의 견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면 누구도 우리의 구원을 빼앗아 갈 수가 없다. 그 이유가 그 다음 귀절에 나옵니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우리는 아버지 손안에 있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우주만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으니 그 아버지는 창조한 우주만물보다 더 크신 분 아니십니까? 우리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있는가? 라고 우리에게 성경은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하나님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그 하나님 아버지 손에 잡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하나님 아버지는 결코 우리를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구원을 생각할 때에 구원은 하나님의 손과 우리 손이 맞잡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놓으면 우리의 구원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 곧 우리의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잡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번 잡으신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결코 놓지 않으시겠다고 하는 말씀을 믿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롬8:35-39)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러한 근거는 성도를 의롭다 선언하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의롭다함의 근거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음을 소개하며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님 때문에 누구도 우리를 해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둘째는 그 어느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성도의 삶에 대해 설명합니다(35-39절). 의롭게 된 성도라 할지라도 세상으로부터 오는 고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모든 송사에 있어 권능으로 성도를 보호해 주심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결코 우리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한 가정이 참으로 귀한 로얄파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골목진흙탕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고 그에게 하얀샤쓰에 빨간나비 넥타이를 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멋드러진 터치드레스를 입혀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또 그 진흙탕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그 아들을 끄집어 내서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고 하얀샤쓰에 새로운 톱쉐터를 입혀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제 정신이 아니라 또 진흙탕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 진흙탕에 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를 수차례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아들의 문제는 진흙탕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이제 자신이 갖고 있는 죄책감이 더 큰 문제입니다. 아 우리 아빠는 이제 나에게 새로운 옷을 안 주실 거야 우리 아버지는 늘 새로운 옷을 주시는데 나는 왜 진흙탕에 들어갈까 아빠 아들이 아닌가봐 라고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이제 끝났어 더 이상 새로운 기회가 없을 것이야 라고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등장하고 있는 아빠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 아들은 우리들입니다. 목욕을 하고 옷을 입혀주시는 것은 용서 죄씻음 그리고 구원을 의미하며 신학적으로 이것을 칭의라고 얘기합니다. 이 아들이 아무리 진흙탕에 들어간다고 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다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끝까지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도의 견인이라고 얘기합니다. 문제는 이 아들의 반복되는 죄로 인해 다음과 같은 고민에 빠진 것입니다. 나를 또 깨끗하게 해주실까? 이번에도 나를 또 용서해 주실까? 내가 하나님이라면 나는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데 그 하나님이 또 나에게 기회를 주실까? 문제는 그 아들이 평생을 진흙탕과 목욕탕을 오가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어디를 가야합니까? 로얄파티를 가야합니다. 그곳에서 귀한 분들과 교제를 나누고 마음껏 누리고 좋은 음식을 먹고 마음껏 즐기고 아름다움과 기쁨을 누려야하는데 그는 진흙탕과 목욕탕을 왔다갔다 하는데 온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원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느낌이 아니라 자신의 성령의 체험을 통해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하나님의 백성 맞나 내가 하나님의 자녀 맞나 이런 질문은 그만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되었더니 주님의 권세를 가지고 마귀들과 싸워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더욱더 놀랍고 거룩한 고민가운데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의 확신 흔들릴 수 없는 구원의 확신 반석과 같은 믿음과 같은 믿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님들에게는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죄들을 정리해 버립니다. 왜냐하면 그 죄가 너무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얄파티 가는데 결코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정리하도록 생각과 행동이 변화되어갑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결국 그 죄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들은 죄를 짓긴 하지만 너무 불편해서 결국 그 죄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예배 열심히 참석하게 됩니다. 또 기도의 응답에 놀라운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5.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누려야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사랑하는 삶은 이세상에서 시작하며 천국가서 완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우리들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4절에 있는 말씀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요15:4) 내 안에 거하리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십니다.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게 붙어 있어야 하듯이 우리들도 예수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가운데 가정과 일터속에서 풍성한 열매를 원하십니까? 그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에게 붙어 있다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말씀과 기도 그리고 찬양과 예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습니다. 주님 앞에 나와서 솔직하게 내 신념을 내려놓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온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러한 찬양과 예배와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면 놀라운 응답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아름다운 주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장7절의 말씀도 우리 한번 읽습니다.
(요15:7)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렇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증표 기도하며 응답을 받는 아름답고 놀라운 경험들이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간증은 대단한 것 같지만 빙산의 일각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이 말씀을 확실히 믿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놀랍고 풍성한 기도의 응답이 우리 삶 가운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가요?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그 전지전능하시고 우주가운데 거하시는 만군의 주 하나님이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십자가의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고 그 확신가운데 주님을 바라보며 신뢰가운데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이미 소유했습니다. 죽으면 천국에 가고 이 땅에 남아 있는 한 주의 일을 할 것이라는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증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목숨같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을 지상에서 누리는 천국은 곧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고 부활의 소망이 있어야 하고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분명한 신뢰가 있을 때에 우리는 천국생활을 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확신가운데 사는 성도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요? 난 여러분들이 그 확신가운데 지상에서 누리는 천국을 함께 누리게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런 승리의 삶을 세 가지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 복음을 제시합니다. 이 복음가운데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내 마음가운데 인격적으로 영접해 주신 사실이 있는 가를 확인해주기 바랍니다. 영접했다면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성경에 근거하여 믿으시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두 번째는 나는 과연 어떠한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나의 구원은 흔들릴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선 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떨어져나갈 수 없다는 그러한 마음 확신을 소유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런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감동하여 이제 기쁨으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의의 길을 걸어가야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확인하여야 합니다. 나를 그토록 사랑하신 십자가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 심장이 뛰어야 하고 내 피가 끓어야 합니다. 그 감동을 받으셔야 합니다. 주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 나의 기쁨이고 내 인생의 아름다운 행복인 것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들은 그 포도나무의 가지입니다. 가지된 우리들은 예수그리스도께 붙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삶의 열매를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중심 예배중심의 생활 이것은 우리의 믿음의 행보를 크게 격려하고 힘을 주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은 도대체 어떤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100세에 난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서 받치라고 했을 때 한마디 항의한번 하지 않고 드렸을까? 그에게는 죽은 자도 다시 살릴 수 있는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순종할 수 있었고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도대체 어떤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자굴속에 던져졌을 때에도 무릎 끓고 기도를 할 수 있었을까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분명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분께선 분명히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그을리지 않았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바울은 유라굴라라는 태풍이 몰아쳤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는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다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무사히 항해할 수 있었음을 믿어야 하고 그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음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난 여러분들이 더 이상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흔들리지 말고 이미 얻은 구원을 견고하게 붙들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행복 다니엘의 행복 사도바울의 행복을 누렸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시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