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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6월 5일
단풍잎 붉게 물든 고향으로 돌아가리
따스한 체온으로 느껴지는 강변마을
문명의 가늠대 위 퍼득이는 삶을 두고 돌아가리
어제의 피곤한 몸 훌훌 털고 나서는 집
새벽녘 오금 저린 류머티즘 발목들만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옹송그려 가는 걸까
차라리 공해로 물든 사글셋방 버리고
네온사인 얼룩진 빈 가슴을 버리고
장대숲 흔들리는 고향, 돌아가리 화엄의 숲.
- 이재창 시인의 「新귀거래사 · 1」 전문, (문학사상 2001년 1월호)
*세계환경의 날,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확산과 실천의 생활화를 위해 1972년 오늘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한국 등 110개국 참가해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보호하자”는 슬로건 내걸고 사상처음으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UN Conference on the Human Environment) 결의로 제정, 2020년 주제 ‘생물다양성’ 우리나라의 슬로건은 ‘녹색전환 - 새로운 세계를 열다’ 2019년 주제 ‘대기오염 퇴지 - 푸른 하늘을 위한 오늘의 한걸음’, 2018년 주제 '플라스틱 오염(Beat Air Pollution)', 2017년 주제 ‘Connecting People to Nature(도시와 시골, 극지에서 적도까지)’, 2016년 주제 야생동물 불법거래 막기위한 ‘Go Wild for Life’ 지구상의 다양한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Go Wild)으로 행동하자는 의미, 2015년 주제 'Seven Billion Dreams. One Planet. Consume with Care'(‘현명한 소비, 70억 인구의 지구를 살립니다’), 2014년 주제 ‘당신의 실천, 환경을 지키는 시작입니다.’ 2013년 주제 ‘똑똑한 식습관 지구를 구합니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플라스틱 소비패턴과 폐기물 관리방법 개선되지 않으면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120억t의 플라스틱쓰레기 발생할 것으로 전망, 2015년 발생한 플라스틱폐기물 가운데 79%가 매립되거나 버려졌고 12% 소각, 9%만 재활용
*6.5 의거 기념일: 이란
*식목일: 뉴질랜드
*대통령의 날: 적도 기니
*제헌절 아버지날: 덴마크
*광복절: 세이셸
*인도인 도착일: 수리남
1034년 [음]덕종(德宗) 3년, 제왕들이 참알하는 예를 정함
1047년 [음]문종(文宗) 원년, 법률과 서·산업을 교정하여 합당하게 할 것을 명함
1388년 [음]우왕(禑王) 14년, 회군 장수들이 지장사에서 회의한 뒤 최영 일파를 유배보냄
--여러 장수가 성으로 들어와 지장사(地藏寺)에서 회의한 뒤 최영(崔瑩)을 합포(合浦)로 옮겨 유배하고 송광미(宋光美)는 원주(原州)로, 안소(安沼)는 안변(安邊)으로, 정승가(鄭承可)는 영해(寧海)로, 판밀직(判密直) 인원보(印原寶)는 함창(咸昌)으로, 동지밀직(同知密直) 안주(安柱)는 봉주(鳳州)로, 지밀직(知密直) 정희계(鄭煕啓)는 음죽(陰竹)으로 유배 보내었다.
1402년 [음]태종 2년, 왕이 사신과 연향을 베풀 때 사용하는 음악 등 10곡을 정함
1403년 [음]태종 3년, 경상도의 조세를 육로(陸路)로 운반하게 함
1492년 [음]성종 23년, 편전(片箭)의 모양을 바꿈
1515년 [음]중종 10년, 공신 옹주(성종의 서녀)의 절행을 《삼강 행실 속록(三綱行實續錄)》에 수록하게 함
1519년 [음]중종 14년, 충청도 일대에 집이 흔들릴 정도의 지진이 일어남
1521년 [음]중종 16년, 노산 부인 송씨(단종 비, 정순 왕후)가 죽음
1592년 이순신, 당포서 왜군 대파
1601년 [음]선조 34년, 병조 참의 김시헌(金時獻)이 《주역(周易)》 서문을 지음
1626년 [음]인조 4년, 호패청에서 남정(男丁)의 수가 226만여 명이라고 보고함
1645년 [음]인조 23년, 함경도 회령에서 국경 무역을 실시함
1659년 [음]현종 즉위년, 노비 쇄환을 엄히 하고 말의 매매를 금지함
1704년 [음]숙종 30년, 장죄(贓罪)를 범한 수령은 다시는 수령에 임명하지 못하도록 함
1725년 [음]영조 1년, 경상도에 홍수와 산사태로 민가 500여 호 유실 등의 피해 발생
1732년 [음]영조 8년, 영조가 친히 기우제를 지냄
1741년 [음]영조 17년, 《오례의(五禮儀)》를 수정하여 《속오례의(續五禮儀)》를 편찬하게 함
1744년 [음]영조 20년, 60세 이상은 한림권점(翰林圈點, 예문관 검열을 뽑는 일)에서 제외하게 함
1762년 [음]영조 38년, 가뭄으로 인하여 각 도의 방물·물선 등을 금함
1773년 [음]영조 49년, 《황화집(皇華集)》을 중간(重刊)하게 함
1782년 [음]정조 6년, 궐자패(闕字牌,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나무패)를 새로 만들게 함
1791년 [음]정조 15년, 저자의 점포에서 공물을 바치게 하는 폐단을 금지함
1814년 [음]순조 14년, 물가의 폭등을 유발하는 상인의 농간을 막게 함
1842년 [음]헌종 8년, 수해·한해에 대한 대책으로 이앙(移秧)·도살(屠殺) 등을 금하게 함
1882년 舊軍 푸대접- 임오군란 발발
--임오군란(壬午軍亂)은 1882년 훈련도감에서 해고된 구식 군인들의 13개월 동안 연체된 봉급에 대해 정부가 불량쌀을 지급해 일어난 난이다.
10년 전 실각했던 흥선대원군과 척화파들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중전과 외척 민씨 제거 및 비리 척결, 그리고 일본과 서양 세력에 대한 배척 운동으로 확대시켰고, 전임 선혜청 당상 김보현, 당시 선혜청 당상 겸 병조판서 민겸호, 선혜청 창고지기인 민겸호 수하의 착복 비리와 부정 축재 사실까지 드러나며 관련자들이 살해됐다.
성공하는 듯했던 난은, 중전 민씨를 놓친 데다가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청나라군이 개입하며 진압됐다. 흥선대원군은 톈진으로 끌려가고 척화파들은 제거됐으며, 청나라와 결탁한 중전 민씨가 충주에서 환궁하면서 민씨 외척들이 조정을 완전 장악했다.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들도 조정의 중책을 맡게 됐으며, 난의 진압을 축하하기 위해 과거 시험이 열리며 이완용, 서재필 등이 출사하는 계기가 됐다
1884년 [음]〈조이 수호 통상 조약〉 조인
1888년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경천 출생
1903년 한국계 미국인 작가 강용흘 출생
1913년 〈전염병 예방령〉 공포
1927년 최남선 정인보 등 『조선어사전』 편찬 시작
1928년 이영행˙방용배, 새 정무총감 이케가미를 암살 하려다 실패, 체포.
1928년 최현배 저 우리말본 (제1편) 등 간행.
1928년 〈어린이날 기록 영화〉, 단성사에서 상영
1929년 강상훈등 54명의 고려 공산당 재건계획 탄로
1932년 아산에 충무공 현충사 준공- 영정 봉안
1932년 충남 아산에 충무공 현충사 준공
1933년 현충사에 충무공 영정 봉안
1934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백정기 작고
1935년 초등교육 조사위원회, 1면 2 3교제 실시 10년 계획
1936년 〈조선 오물 소제령〉 공포
1942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박지원 출생
1944년 재미 한족연합위원회(총무 김원용), 워싱턴 사무소 개설
1949년 이승만 정권 국민사상통제 목적으로 좌익계열 전향자로 국민보도연맹 결성
1949년 옹진지구 38선 충돌에서 내습한 북한군 2천여 명 격퇴, 장둔·우치 점령
1949년 서울시 경찰국 산하 사찰과원 440명, 신분 보장 요구하며 사표 제출
1952년 국회, 〈비상 사태 하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 조치령 폐지 법률안〉 통과
1954년 북한대표 남 일, 제네바 회담에서 6개항 통일 방안 제시
1960년 서울지검, 부정선거 혐의로 전 각료 9명, 자유당 기획위원 13명 구속
1962년 국제올림픽위원회 북한가입 승인
1964년 김종필, 공화당 의장에서 퇴진
1964년 6.3사태로 전국대학 휴교
1967년 대한광업진흥공사 발족
1969년 3선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준비위결성, 신민당· 재야 (위원장 김재준 목사)
1970년 한-일 항공업무협정 개정 발효
1972년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제13차실무회담 개최, 본회담의제 최종합의(16일 합의문서 교환)
1972년 신민당 의원들 국회정상화와 비상사태철회 요구하며 가두시위
1973년 정치자금법·정당법 개정안 국회통과
1973년 기간산업 침투 간첩단 사건
1974년 리영희, 『전환 시대의 논리』 출간
1978년 조세희의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
1980년 최규하대통령, 국보위 상임위원 30명 임명
1980년 광주민중항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평양시민 합동추모회 개최.
1981년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발족, 1987년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로 이름 바꿈
1981년 전두환 대통령 남북한정상회담 제의
1981년 국무회의, 주미대사에 류병현 전 합참의장을 임명하기로 의결
1983년 조계종 원로 呑虛 스님 임적
1984년 산림청, 2080년을 목표 연도로 12조원을 투자하는 산림 100년 장기계획을 수립
1985년 노태우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서울올림픽의 남북한 분산개최 반대표명
1985년 제3차 평화통일자문회의 개최. 전두환 대통령, 남북 최고책임자회담 연내 개최 제의
1986년 제130회 임시국회 개회(∼24일)
1986년 국무회의, 「한국전매공사법안」 의결
1987년 변호사 74명, 민주화와 개헌을 촉구하는 성명, 민주헌법운동본부에 참여한다고 발표
1987년 국사교육심의회, 중,고교 국사교과서 개편 방향 확정, 고조선을 최초국가로 명기
1987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 ‘87반공해 선언’ 발표, 핵발전소 건설 중단 등 촉구
1987년 가수·연예인 88명, 시국 성명
1989년 전북 신안군 앞바다서 새우잡이를 하던 해주호 등 무동력선 4척이 침몰, 선원 18명 실종
1989년 문규현신부(천주교 전주교구청 소속)가 미국 유학중 북한 방문
1989년 전국교직원노조 간부 28명 단식 9일 만에 농성 풀고 모두 입원
1989년 부천시 대낮 가스총 강도, 현금차 습격. 은행원 폭행 5000만원 강탈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 수교원칙·상호방문합의
1991년 정일권-정성일 친자확인 소송-정인숙 사건 전모 다시 베일로
1991년 검찰과 경찰, 정원식 총리 폭행사건을 계기로 전대협의장 김종식 한양대 총학생회장 등 검거나서.
199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페미니스트 허정숙 작고
1992년 창원시 임모씨(52) 맹호부대원으로 파병 가려움증이 심해지는 등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 시달려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은 20회 세계환경의 날 기념식 (세종문화회관)에서 환경 보전국가선언을 선포.
1993년 관세청, 10만원 이하의 수입견본품 원형 해치지 않고 면세 통관 허용.
1993년 한국도로공사, 경부고속도로 수원~청원 구간 (100.1km) 개통.
1996년 정부.여당, 군사시설보호구역내의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등 관계법을 개정키로
1996년 재정경제원, 금융제도 전반에 걸쳐 규제완화 차원을 넘어서 대대적인 개편작업에 착수
1996년 제15대국회 개원
1997년 북한 경비정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
1998년 외교통상부, 연내 20개 재외공관을 감축- 주벨기에 공관등 6개 공관을 폐쇄키로 확정했다고 밝혀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영월댐 건설 계획 백지화 발표
2000년 이만섭 국회의장 피선
--민주당 이만섭(8선·전국구) 의원이 5일 제16대 국회의 전반기(임기 2년)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또 한나라당 홍사덕(5선·전국구), 자민련 김종호(6선·전국구) 의원이 국회부의장에 각각 선출됐다.
국회는 이날 오전 재적 의원 273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16대 국회 첫 임시회를 열어 의장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를 실시해, 140표(51%)를 얻은 민주당 이 의원을 의장으로 뽑았다. 한나라당 후보인 서청원 의원은 132표를 얻었다.
2004년 6.5 재보궐 선거 실시
2005년 박찬호 선수 메이저리그 100승(캔자스시티 전)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가 메이저리그 진출 12년 만에 100승 고지에 올랐다.
박찬호는 5일 새벽(한국 시각) 카우프만스타디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로 등판, 5이닝 동안 11안타 6실점(4삼진)의 다소 부진한 피칭을 선보였지만 팀 타선의 폭발로 승리투수가 됐다.
텍사스의 14대 9 승리. 이로써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통산 542번째이자 동양인으로는 일본의 노모 히데오(121승106패·탬파베이 데블레이스)에 이은 두번째 100승 투수가 됐다. 280경기에서 무려 2만 5208개의 공을 던져 쌓은 금자탑이었다.
박찬호는 이날 승리로 생애 통산 100승 73패 방어율 4.22를 기록했다. 그는 “혼자 거둔 100승이 아니라, 팀 동료들의 공격 덕분에 승리했다.”며 “고통과 기쁨을 함께 해준 한국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6년 한-미 워싱턴에서 FTA 1차협상
2014년 KBS이사회 직무수행능력 상실 등의 사유로 길환영 사장 해임제청안 가결, 공영방송 사장 3번째 해임
2015년 한국 현대 자수(刺繡) 예술 선구자, 박을복 여사 별세
--박 여사는 9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투병해 왔다. 그는 ‘여인네 소일거리’로 치부됐던 우리 자수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1915년 개성에서 태어나 이화여전 영문과를 거쳐 일본 도쿄여자미술대학 자수과를 졸업했다. 전통적 품위에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은 작품을 선보이며 1961년 국내 최초로 ‘섬유 개인전’을 열었다. 국전(國展)에 여러 차례 입상하고 국제 기능올림픽 자수부문 직종장과 분과장을 지냈다.
지난달 26일부터 서울 우이동 박을복자수박물관에서 100세 기념전 ‘새벽이슬에 젖은 버선발의 짧은 행보’를 열어 80년 자수 인생을 정리하던 와중에 세상을 뜨게 됐다.
2018년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제1무용수)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춤의 영예)’ 수상
2019년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아시아출신 최초로 메이저리그 개인통산200홈런 기록
2021년 與, “윤로남불‘ 공세...”조국 탈탈 털고 처가엔 도가 넘었다니“
2022년 북, 항모훈련 끝나자 탄도미사일 도발...尹정부 들어 새번째
301년 서진의 황족 사마륜 작고
1640년 중국 청나라 초기의 소설가 포송령 작고
1723년 고전경제학 창시자인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태어남 『국부론』
1783년 조셉 몽골피에와 작크 몽골피에형제, 최초 열공기기구 실험비행 성공
1819년 영국의 수학자 존 카우치 애덤스 출생
1826년 독일 국민가극·낭만파음악의 창시자 독일작곡가 카를 마리아 프리드리히 에른스트 폰 베버 폐결핵으로 세상떠남(40세) ‘마탄의 사수’ ‘무도회에의 권유’
1851년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 판매 시작
1862년 프랑스 안남(베트남)과 강화(사이공 조약)
1878년 멕시코의 혁명가 판초 비야 출생
1883년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출생
1910년 마지막 잎새`, 미국 소설가 오 헨리 사망
--오헨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버러 출생으로 내과 의사인 아버지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어려서 양친을 잃어 거의 학교교육도 받지 못한 채 숙부의 댁으로 보내졌다. 숙부의 약방을 거들고 있다가, 1882년 텍사스주로 가서 카우보이ㆍ점원ㆍ직공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887년 25세 때 17세 소녀 애설 에스티스와 결혼했고 1891년 오스틴 은행에 근무하는 하면서 주간지 `롤링 스톤 (The Rolling Stone)`지를 창간하는 등 저널리스트로서도 활동했으나 적자만 내다가 폐간됐다.
이후 1896년 2년 전 그만둔 은행에서의 공금횡령 혐의로 고소당하자 남미로 도망갔으나 사랑하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아내의 사후 체포됐다. 다행히 숙부의 약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도움이 되어 활동이 다소 자유로운 교도소 내 약제계로 보내졌고 이로인해 그는 필명 `오 헨리` 를 써가며 딸의 부양비를 조달하기 위해 밤 늦게까지 단편 창작에 몰두했다. 결국 이 3년간의 교도소 생활의 체험이 오 헨리를 한 저널리스트에서 미국의 대표적 단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석방 후 그는 뉴욕으로 와 본격적인 작가생활에 들어갔고 `서부의 마음`(1907) `4백만`(1906) 등의 단편집을 발표하며 인기작가로서 지위를 굳혀, 불과 10년 남짓한 작가활동 기간 동안 300편 가까운 단편소설을 썼다. 그는 순수한 단편작가로 따뜻한 유머와 깊은 페이소스를 사용하여 미국 남부나 뉴욕 뒷골목에 사는 가난한 서민과 빈민들의 애환을 다채로운 표현과 교묘한 화술로 그려 놓았다.
그의 작품으로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탁월하게 묘사한 `경찰관과 찬송` `마지막 잎새` `현자의 선물` 등이 있다. 1910년 6월 5일 간경화증으로 뉴욕 종합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1925년 상해서 배외운동 확대. 계엄령 선포
1942년 미국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3국에 선전포고
1942년 미드웨이 해전
--4척의 항공모함과 300척의 군함, 1000여대의 항공기가 동원된 일본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목표는 하와이 북서쪽 1600km 지점에 위치한 미드웨이섬.
6월5일 이른 아침, 항모(航母)에서 발진한 일본 전투기가 미군 비행장을 폭격했다. 그러나 비행장은 비어있었다. 이미 일본군의 암호망이 뚫렸기 때문이었다. 전투기들이 다음 공격을 위해 항모에서 발진을 준비하고 있던 10시20분경, 갑자기 미군 전투기 편대가 구름속에서 급강하하며 항모에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갑판에 줄지어있던 전투기들은 속수무책으로 파괴됐고 아직 치우지 못한 탄약과 연료는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연전연승을 자랑하던 항모였지만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3척이 대파되거나 두동강났다. 불과 6분 만이었다. 미 항모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며 버티던 마지막 1척도 곧 태평양 바다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해전에서 일본군은 항모 4척, 순양함 1척, 항공기 332대가 파괴되고 3500명의 베테랑 군인들을 잃었지만 미군의 피해는 항모 1척, 구축함 1척, 항공기 147대와 307명의 군인 뿐이었다. 이로써 태평양 전쟁의 향방도 미국으로 돌아섰다.
1947년 조지 마셜 미국무장관 하버드대학 연설에서 유럽부흥계획(마셜 플랜) 밝힘
--마샬 미 국무장관이 1947년 6월 5일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유럽부흥계획(마샬 플랜)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2차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경제를 재건, 민주주의 국가들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이루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당시 소련의 도전에 직면한 미국은 전후의 빈곤과 실업, 사회적 혼란으로 유럽에서 공산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을 우려했다.
따라서 마샬 플랜은 `유럽 모든 국가들에 열려있다`는 연설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반소-반공주의를 전제로 서유럽 민주국가들의 경제부흥과 통합을 목적으로 추진됐다. 소련과 동유럽 위성국들이 불참한 가운데 7월에 결성된 `유럽경제협력위원회(CEEC)`에 참가한 16개국이 유럽 경제재건안을 제출했고 미국 의회는 이에 기초해 1948년 4월 유럽부흥계획을 승인했다. 이를 위해 미국정부 내에 특별 설립된 `결제협력국(ECA)`은 폴 호프만의 지휘아래 1952년 중반까지 4년간 약 1백30억달러에 달하는 경제원조를 제공했다.
이 계획의 성공적인 실행으로 유럽의 산업과 농업생산이 회복됐고 재정이 안정됐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서독 등은 이 기간동안에 국민총생산이 15~25%까지 증가했고 화학-기계-철강 등의 산업분야가 빠르게 회복됐다. 먀샬 플랜은 1949년 4월 나토가 발족하는데 경제적 기반이 됐다.
CEEC는 이후 상설기구인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로 대체됐고 이는 1961년 9월 다시 미국과 캐나다를 가입시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발전해왔다.
1948년 베트남 독립협회 성립
1953년 프랑스-중국 무역협정 조인
1956년 티토 유고대통령 소련 방문
1957년 미국 과학자들 핵실험중지 호소
1963년 이란 팔레비정권 시아파 지도자 호메이니 체포
1966년 미국 제미니9호 발사 2시간5분간 우주유영성공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 일어남,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 시나이반도 가자지구 골란고원 요르단강 서안 점령.
흔히 6일 전쟁으로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은 아랍권의 한계를 다시금 보여주었다
3차전쟁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1964)의 출범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스라엘을 향한 팔레스타인인등의 테러가 강도를 더해 가면서 전운이 고조 되었다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은 불구대천의 원수로 아랍권 국가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지지했다
이스라엘이 마침내 전면전 준비에 나섰다
그러자 아랍의 맹주를 자처하던 이집트가 끼어들었다
이스라엘과의 국경선에 병력을 배치하고 티란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선언했다
1967년 6월5일 아침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향해 전격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공군의 맹폭에 이어 지상군이 쏜살같이 시나이반도를 사흘만에 점령했다
전쟁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점령한 이스라엘은 유엔의 정전결의안을 받아들였다
개전 6일 만이었다
1968년 로버트 케네디 미국상원의원 대통령후보 경쟁중 피격(6일 사망)
1972년 제1차 UN 인간환경회의 스톡홀름서 개막
--`둘도 없는 지구(Only one Earth)`를 주제로 한 UN주최의 첫 인간환경회의가 1972년 6월 5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개막됐다. 이 회의는 1968년 제4회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서 스웨덴 정부가 제창한 이후 준비돼온 회의로 세계 112개국에서 약 1천2백여명의 정부대표가 참석했다. 11일간에 걸친 회의는 논란을 거듭했다.
회의장앞은 반전론자들, 공해-오염 피해자들, 고래 남획 근절을 요구하는 이들의 데모로 어수선했다. 그러나 자연에 관한 인간의 인식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훗날 학자들은 이 모임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비유했다. 우여곡절 끝에 참석자들은 마지막날 `지구는 하나`라는 제목의 인간환경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듬해인 1973년부터 사람들은 스톡홀름 회의 개막일이었던 6월 5일을 세계환경의 날로 지정, 1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날로 삼아오고 있다.
1973년 제1회 세계환경의 날
1975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폐쇄되었던 수에즈 운하가 8년 만에 재개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자 폐쇄된 수에즈 운하가 1975년 6월 5일 8년 만에 운행이 재개됐다. 운행 재개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수로가 기능을 회복했다는 점에서 뿐 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이집트의 평화선언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이 해 3월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의 평화를 위한 미 국무장관 키신저의 중재가 실패로 돌아갔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파이잘의 피살로 중동정세는 긴장을 더해갔다. 이런 와중에 수에즈 운하가 재개됨으로 이스라엘과의 긴장이 해소되었고 제5차 중동전쟁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이집트 입장에서는 운하 이용과 관광수입으로 얻어지는 경제 재건과 안정도 한 몫했다.
1981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에이즈환자 발생 첫 보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1981년 6월 5일 AIDS(후천성면역결핍증)을 처음 보고했다. 에이즈는 1950년대 말 아프리카 녹색원숭이에게서 전파됐다는 가설이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에이즈 감염경로는 70%가 성접촉이지만 수혈이나 주사기를 통해서도 쉽게 전염된다. 잠복기를 거쳐 일단 발병하면 이후 평균 수명은 고작 1.8년.
에이즈 바이러스(HIV)는 8~12시간마다 복제를 하고 그때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에이즈는 사회에도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성 개방 풍조는 다소 진정됐으며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적대감은 누그러졌다. `자이언트` 등 명화에서 열연한 미국의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1985년 에이즈로 사망한 사건은 에이즈에 대한 세계인의 경각심을 극적으로 고취시켰다. 미국의 다이빙 영웅 그레그 루가니스도 1994년 에이즈 감염사실을 고백했고, 미국의 농구 스타 매직 존슨도 1991년 에이즈 감염사실을 털어놓고 예방운동에 합류했다.
국내에선 1985년 해외 근로자였던 내국인이 처음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이래 2001년 6월까지 1350명이 에이즈 감염자로 공식 확인됐다
1998년 우주정거장 미르호,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와 마지막 도킹
--6월 5일 새벽 지상 3백90km의 우주.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를 향해 미국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천천히 다가갔다. 오전 1시58분. 마침내 미르와 디스커버리호 사이 ‘최후의 도킹’이 이루어졌다. 도킹 90분 뒤, 미르의 해치가 열리고 양측 우주 비행사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통산 9번째인 이번 도킹을 끝으로 3년째 진행됐던 미르와 미국 측 우주왕복선 간의 만남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제7대 미르호 체류 미국인 승무원 앤드루 토머스를 지상으로 데려오는 것이 디스커버리호의 임무였다. 그동안 미르에 탑재돼 있던 미항공우주국(NASA) 소유 실험 장비도 전부 수거돼 6월 12일 지구로 귀환됐다.
미르의 본체가 우주로 발사된 것은 지난 1986년 2월. 이때만 해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을 통치하던 냉전시절이었다. 이후 12년 간 러시아 우주인들이 번갈아 미르에 머물며 각종 자료수집과 실험 및 연구를 실시해왔다. 승무원 체류용 미르호 본체는 길이 13m, 폭 4m 규모다. 1987∼1996년에 걸쳐 ‘스펙트르’ 등 5개의 모듈이 추가로 발사돼 우주에서 본체와 결합됐다.
지금까지 지구를 모두 6만 바퀴 이상 돈 미르는 예정수명 5년을 훨씬 넘겨 장수하고는 있지만 잦은 잔병치레로 러시아 측을 당황하게 했다. 이번 최후의 도킹을 앞두고도 자동유도장치가 고장을 일으켰었다. 러시아 언론은 미르호의 고장 횟수가 무려 1천5백여 건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미르호는 1999년 8월 28일 마지막 승무원 3명이 지구에 귀환함으로 공식활동을 사실상 마감했다. 그리고 2001년 3월 23일 당초 예상대로 피지섬 인근 남위 40도, 서경 160도의 남태평양에 추락, 15년 생을 마감했다.
1989년 폴란드 총선거 자유노조 압승
2000년 제5회 세계여성대회 뉴욕서 개막
--제5회 세계여성대회(베이징+5) 개막식이 2000년 6월 5일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는 1995년 중국 베이징 대회후 5년 만에 열리는 것이었다. 대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의 정치참여` 등 12개 의제를 중점적으로 다뤘으며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 실태와 함께 개선점 등이 논의됐다.
대회에는 187개국 수석대표들이 참석했으며 이들 중 76.4%가 여성이었다. 10일 폐막을 앞두고 260여개 조항이 `결과문서`로 채택되기까지 이들 대표들은 문화와 전통, 종교에 따라 거의 모든 조항에서 팽팽히 대립했다.
2002년 모질라 1.0이 공개되다.
2004년 로널드 레이건 미대통령 세상떠남(93세)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을 역임한 로널드 레이건이 10년간 알츠하이머로 투병해오다 폐렴 합병증으로 2004년 6월 5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11년 구두장수의 2남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지도자가 아닌 배우로서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자질은 영화배우가 아닌 영화배우 노조위원장으로서 뛰어난 정치력과 지도력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그의 지도력은 1952년 두 번째 부인 낸시 데이비스를 만나 결혼하면서부터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분석적이거나 전략적인 사고를 하지도 못했고, 연설 때는 참모들이 메모 카드에 적어준 내용만을 소화해낼 정도였다.
그러나 의사전달 방식에 탁월한 레이건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TV를 매체로 국민들에게 직접 얘기했고, 종종 자신을 비하하는 즉흥적인 유머로 대중의 마음을 잡았다. 미국 언론은 좀처럼 이미지에 ‘타격’을 입지 않는 레이건을 ‘테플론(Teflon·때가 잘 타지 않는 천)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레이건은 원칙주의자이면서 실용주의자였다. 1983년 3월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를 만큼 증오했지만, 재임 8년간 고르바초프와 5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며 신뢰를 쌓아 결국 퇴임 3년째 발생한 소련 연방 해체의 기초를 닦았다. 두 번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후인 1994년 11월 5일 그는 “내 생애의 황혼으로 이끌어 갈 여행을 시작한다”며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음을 알렸다. 퇴임시 지지율 63%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66%)와 더불어 역대 대통령 중 최고였다
2005년 윌리엄 슐츠 국제앰네스티(AI) 사무국장 미국의 비밀수용소 폭로
--“미국은 관타나모, 바그람 등 전세계에 ‘수용소군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수는 사람들이 그속으로 사라지는 비밀수용소” “변호사나 가족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채 외부연락을 단절시킨 상태로 수감자들을 무기한 구금하고 있으며 일부 수감자는 학대나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살해되기도 한다.”
-- 뉴욕 타임스도 "관타나모 수용소는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공군기지 군 교도소 등 실체가 불분명한 수용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도
-- 2006년2월 유엔 인권위위원회(UNCHR)는 5명의 특별보고관 보고서에서 "미국이 해외에 운영하는 수용시설에 1만4천여명이 불법구금되어 있다"며 즉각폐쇄 촉구
2006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신유고연방)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분리.
2009년 중국 충칭 광산지대에서 산사태
--중국 남서부 충칭(重慶)직할시 우룽(武隆)현 광산 지대에서 2009년 6월 5일 산사태가 발생, 광부와 인근 주민 87명이 매몰됐고 6일 오전까지 이중 26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실종돼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날 사고는 우룽현 톄광(鐵鑛)향 지메이(鷄尾)산에 있는 한 광산이 일부의 오후 3시께 붕괴되면서 산사태를 일으켜 일어났다. 산사태로 100만여개의 돌들이 아래 계곡으로 굴러 광산 3개와 인근의 민가 6채를 덮쳐 87명이 매몰됐다. 산사태 초기에는 전기와 통신이 끊겼으나 구조대가 도착, 구조작업에 들어가 7명을 찾아냈다. 이중 3명은 중상이고 4명은 경상이다.
산사태 원인은 즉각 밝혀지지 않았으나 광산의 무계획적인 채광에 관련이 있을 것이란 의혹이 일고 있다.
2009년 라지브 모트와니 교수 별세
--모트와니 교수는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학생일 때 이들의 멘토 역할을 했던 컴퓨터 공학자다.
세르게이 브린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오늘 우리가 테크놀로지의 한 조각을 사용한다면 거기에는 라지브 모트와니의 일부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래리와 내가 후에 구글의 창업으로 이어질 연구를 시작했을 때 모트와니 교수는 우리를 지지해 주고 지도해 줬다”고 적었다.
모트와니의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기법은 수학적 알고리즘이 구글의 웹 검색에서 이용되는 방식에 영향을 줬으며, 모트와니 교수는 실리콘밸리의 많은 IT 벤처들의 초기 창업과정을 지원한 영향력 있는 투자가이기도 했다.
인도 출신으로 뉴델리에서 성장한 모트와니 교수는 미국에 유학,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컴퓨터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자택에서 밤 늦게까지 일을 하던 모트와니가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어둠 속에 발을 헛디뎌 수영장에 빠져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2011년 페루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좌파 성향의 군인 출신 오얀타 우말라 후보가 승리
2012년 금성 일면통과: 21세기 마지막 금성 일면통과가 시작
2015년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에서 규모 5.9의 지진이 발생해 13명이 사망
2015년 몬테네그로가 29번째 회원국으로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
2016년 스위스 ‘조건없는 기본소득’ 국민투표로 부결(반대율 76.9%)
2018년 미국의 패션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 작고
2020년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의 조던 브랜드 인종차별철폐기금 10년간1억$(1,200억원) 기부
2021년 美 7월까지 성인 70%에 최소 1회 백신접종
2022년 미국의 음악가 앨릭 존 서치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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