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 명장면] 20. 교상판석(敎相判釋)
교리의 眞義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출발
1. 교상판석이란
‘부처님 가르침을 분류 해석’…남북조시대 시작
교상판석(敎相判釋)은 글자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敎相)을 분류하여 해석하는 일(判釋)로써, 교판(敎判) 혹은 교상(敎相) 혹은 판교(判敎) 혹은 교섭(敎攝)이라고도 부른다. 궁극적으로는 인도불교의 본질에 관한 일종의 포괄적인 사상체계를 마련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로, 지역마다 혹은 시대마다 역사적으로 등장했던 다양한 견해들에 관한 검토와 이론화의 산물이다. 이는 불경과 그에 따른 이론들을 여러 범주별로 나누고, 한편으로는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합하여 그들 상호 간의 유기적인 관련성을 이해하려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원시적 형태의 교상판석과 그에 대한 근거들은 인도의 대승불교 스님들의 저작 및 대승불교의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말하는 교상판석은 중국의 남북조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에 여러 종파적 성격의 불교들이 발달하면서 각 종파들마다 불교경전에 의거하는 나름대로의 교판의 방법과 체계를 마련하게 되었다. 따라서 교상판석은 어쩌면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레 불교종파의 성립과 그 발전에 따라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의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설법한 시간순서에 따라 경전을 분리했고, 규기는 삼교팔종, 법장은 오교십종을 내세웠다. 최근 동국역경원에서 완간한 한글대장경은 일본의 신수대장경의 분류체계를 따랐다. 신수대장경은 대승.소승불교의 경율론 삼장을 구분해 편찬하고 있다. 사진은 동국역경원 안중철 씨가 한글대장경을 열람하는 모습.
2. 교상판석의 발단
나중엔 종파간 우월성 확립-교의선양 수단으로
중국에서 교상판석이 행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중국불교가 전래되는 과정의 특성에 있을 것이다. 애당초 인도에서는 부파불교나 대승불교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발전 속에서 자연스레 교리가 이론화됐기 때문에 굳이 따로 불교의 교리를 체계화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인도불교가 발전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여러 가지 불경과 그에 관한 이론들이 한꺼번에 도입.소개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들은 여러 불경들 혹은 이론들 사이에 서로 모순되는 교리를 발견하게 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교상판석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특히 인도에서 들여온 불경과 그에 관한 여러 이론들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전파되면서 그 속에 있는 다양하지만 어떤 때에는 모순되는 것 같은 견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불교의 교리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데에서 시작됐던 것이다.
3. 교상판석의 전개
오시팔교-삼교팔종-오교십종-오교판 등 대표적
중국의 교상판석의 방법에서 대표적인 것들은 천태종의 지의가 확립한 오시팔교(五時八敎)의 교판, 법상종의 규기(窺基)가 세운 삼교팔종(三敎八宗)의 교판, 화엄종의 법장(法藏)이 세운 오교십종(五敎十宗)의 교판, 종밀(宗密)이 세운 오교판(五敎判) 등이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신라시대의 원효(元曉)가 세운 사교판(四敎判)이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천태종(天台宗)의 지의(智)는 수(隋)나라 이전의 ‘남삼북칠(南三北七)’로 명명되었던 학자들의 교상판석을 종합하여 ‘오시팔교(五時八敎)’로 정리했다. 여기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설법을 다섯 시기(五時)로 나누었고, 교화방법의 형식과 내용의 특징을 각각 넷으로 나누어 여덟 가지 교의(八敎)로 구분했다.
지의의 오시팔교의 교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오시(五時)란 석가모니가 설법한 시간적 순서에 따라 경전을 분류한 것으로서, 화엄시(華嚴時), 아함시(阿含時), 방등시(方等時), 반야시(般若時),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를 말한다. 화엄시(華嚴時)는 깨달음을 얻은 직후 21일 동안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한 시기이다.
아함시는 그 후 12년 동안 아함경을 설법한 시기이다. 방등시는 다시 8년 동안 유마경, 능가경, 무량수경 등과 같은 방등부(方等部)의 경전들을 설법한 시기이다. 반야시는 그 다음 22년 동안 반야경을 설법한 시기이다. 법화열반시는 최후의 8년 동안 법화경을 설법하고 열반에 들기 직전에 열반경을 설법한 시기이다. 팔교(八敎)는 화법사교(化法四敎)와 화의사교(化儀四敎)로 나누어져 있다. 전자는 중생의 소질과 능력에 따른 분류로서, 삼장교(三藏敎) 또는 소승교(小乘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를 말한다. 반면에, 후자는 석가모니가 중생에게 설법하고 중생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따른 분류로서,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不定敎)를 말한다. 팔교는 또한 오시와 관련된다. 화엄시에는 돈교, 비밀교, 부정교, 별교, 원교가 포함된다. 아함시에는 점교, 비밀교, 부정교, 장교가 포함된다. 방등시에는 점교, 비밀교, 부정교, 장교, 통교, 별교, 원교가 포함된다. 반야시에는 점교, 비밀교, 부정교, 통교, 별교, 원교가 포함된다. 법화열반시에는 돈교나 점교도 아니고 부정교나 비밀교도 아니라 완전한 원교이다. 이러한 오시팔교의 교판은 지의의 관점에서 종파의 특징을 보여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법상종의 규기는 삼교팔종(三敎八宗)의 교판을 세웠다. 삼교는 아함경과 같은 소승의 가르침인 유교(有敎), 반야경과 삼론(三論)과 같은 가르침인 공교(空敎), 화엄경, 해심밀경, 법화경과 같은 가르침인 중도교(中道敎)로 되어 있다. 팔종은 아법구유종(我法俱有宗), 법유아무종(法有我無宗), 법무거래종(法無去來宗), 현통가실종(現通假實宗), 속망진실종(俗妄眞實宗), 제법단명종(諸法但名宗), 승의개공종(勝義皆空宗), 응리원실종(應理圓實宗)이다. 이 교판 역시 규기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화엄종의 법장이 세운 오교십종(五敎十宗)의 교판은 다음과 같다. 오교는 교상(敎相)에 따른 분류로서, 아함경 계열의 소승교(小乘敎), 해심밀경 계열의 대승시교(大乘始敎), 능가경과 승만경 등의 여래장 계열의 경전을 포함하는 대승종교(大乘終敎), 유마경을 중심으로 하는 돈교(頓敎), 화엄경을 포함하는 원교(圓敎)를 말한다. 십종은 종(宗)의 의미에 따른 분류로서, 아법구유종(我法俱有宗), 법유아무종(法有我無宗), 법무거래종(法無去來宗), 현통가실종(現通假實宗), 속망진실종(俗妄眞實宗), 제법단명종(諸法但名宗), 일체개공종(一切皆空宗), 진덕불공종(眞德不空宗), 상상구절종(相想俱絶宗), 원명구덕종(圓明具德宗)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교판 역시 법장 나름대로 불교교리에 관한 접근방식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밀의 오교판으로는 인천교(人天敎), 소승교(小乘敎), 대승법상교(大乘法相敎), 대승파상교(大乘破相敎), 일승현성교(一乘顯性敎)가 있다.
4. 한국의 교상판석
원효 ‘사교판’ 종파성 배제하고 실천 측면 중시
한국에서 특히 신라시대의 원효대사가 했던 사교(四敎)의 교판상석은 상당히 독특한 면모를 보여준다. 원효는 법공(法空)과 보법(普法)을 기준으로 하여 석가여래의 설법 전체를 삼승(三乘)과 일승(一乘)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전자를 별상교(別相敎)와 통교(通敎)의 두 가지 교의로, 후자를 수분교(隨分敎)와 원만교(圓滿敎)의 두 가지 교의로 나누었다. 삼승별교(三乘別敎)는 사제교(四諦敎), 연기경(緣起經) 등을 말한다. 삼승통교(三乘通敎)는 반야교(般若敎)와 해심밀경 등을 말한다. 일승분교(一乘分敎)는 영락경(瓔珞經), 범망경 등을 말한다. 일승만교(一乘滿敎)는 화엄경과 보현교(普賢敎)를 말한다. 삼승이 함께 배우는 것을 삼승교라 하며, 그 중에서 아직 법공(法空)에 밝지 못한 것을 별상교라 하는 반면에, 법공을 두루 설하는 것을 통교라 한다. 그리고 이승(二乘)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을 일승이라 하는데, 그 중에서 아직 보법(普法)을 다 드러내지 않은 것을 수분교라고 하는 반면에, 보법을 완전히 밝힌 것을 원만교라고 한다. 여기에서 말한 법공은 객관적 세계가 불변의 실재로서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공(空)라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에, 보법은 모든 존재가 상입상시(相入相是)함을 의미한다. 원효의 사교판에서도 다른 교판들과는 달리 영락경, 범망경 등과 같은 대승보살(大乘菩薩)의 실천윤리를 설법한 경전을 반야경이나 해심밀경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5. 교상판석의 의의
종파적 입장 한계…시대적 지역적 특성화 ‘지표’
결론적으로 말해, 교판상석은 본래의 불교 즉 인도불교의 역사적 모습을 사실 그대도 해석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러나 지역별 혹은 시대별, 이를 테면 중국 혹은 한국 불교의 역사적 시대적 위치에서 종파적 사명감을 갖고서 진행되었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여러 종파들의 특수한 혹은 독자적 입장이라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것은 또한 종파별로의 비판적 의식을 갖고서 불경을 검토하여 이론적 체계를 세워온 과정이자 결과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불교교의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각 시대나 각 지역에서 불교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면서도 불교문화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일환으로도 성립되어왔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현재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교판상석은 불경과 그에 따른 이론적 해석의 방법을 통해서 시대적 혹은 지역적 불교의 특성화의 지표를 보여준다 할 수 있겠다.
김연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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