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반하다]평범한 30대 주부 민경 씨 물에 빠진 할머니를 구하다
작성2023년 02월[Vol.119]
지난해 12월 <경남공감> 메일을 통해 거제시의 보도자료 하나를 접했다.
바다에 빠진 할머니를 구한 의인을 표창했다는 내용이었다.
구조자는 네 살배기 아이를 둔 30대 주부였다.
인명구조 사례는 더러 있지만, 구조자가 주부인 경우는 드물다 싶어 사연이 궁금했다.
글 박정희 사진 김정민
거제 가배항 근처 굴 따던 할머니 물에 빠져
지난 1월 초, 사고가 일어났던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 가배항 부근에서 용감한 시민 이민경(38) 씨를 만났다. 지난해까지 장사도를 오가던 유람선 선착장이다.
“지난해 11월 20일이었어요. 그날은 모든 상황이 참 희한했습니다. 그날따라 시어머니를 만나려고 이모님이 직장동료들과 한적해진 이곳을 놀러 왔고요. 시어머니는 그들과 선착장 대합실 2층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창밖을 내려다보셨답니다. 그때 한 80대 할머니가 바지선 모양의 개인 장비에 몸을 싣고 선착장 부근에서 굴을 따는 걸 보셨고요.”
이때까지만 해도 민경 씨 시어머니는 그저 ‘할머니가 굴을 따시네’라고 생각했고,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무심코 또 창밖을 내다봤는데, 굴 따던 할머니가 안 보였다. 자세히 보니 허우적대고 있었다. 민경 씨 시어머니 일행은 부랴부랴 2층에서 내려와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나밖에 구할 사람이 없구나’ 판단 물에 뛰어들어
그 시각 마침 민경 씨는 그날따라 일찍 마친다는 남편(장사도 유람선 근무)과 시어머니 일행을 만나러 이곳에 도착했다. 어딘가로 향하는 시어머니를 봤고, 따라서 가본 곳엔 할머니가 까무룩 가라앉고 있었다. 주위에 남자들이 몇 명 있어서 그들이 구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수영을 할 수 없는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민경 씨가 나섰다. 시어머니는 할머니를 구해야 한다 싶으면서도 염려스러웠다. 민경 씨는 “저러다 할머니 돌아가시겠어요”라며 신발을 벗었다.
“잘하지는 못해도 수영은 할 수 있으니까 뛰어들었습니다. 솔직히 찰나지만 혹시 못 빠져나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했어요. 구하려고 들어갔다가 못 나오는 익사 사고도 흔했으니까요. 이후 선착장 CCTV에 찍힌 걸 보니 제가 망설임도 없이 신발을 벗고 있더라고요. 조금 놀랐습니다. 초 단위로 생각이 스쳤구나 싶었어요. 당시 할머니는 이미 물을 너무 많이 먹고 의식이 없어 축 늘어져 무거웠습니다.”
구조 후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심폐소생술, 할머니 살려
할머니를 물에서 구한 민경 씨는 시어머니와 땅 위로 올려 눕힌 뒤
119를 기다리며 심폐소생술을 열심히 했다. 한 번도 실전에서는 해보지 않았으나 망설일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아이 유치원 체험 교육 때 보고 들은 것이 있었고, 얼마 전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다시 한번 유튜브를 꼼꼼히 봐둔 게 도움이 됐다. 할머니는 물을 많이 토해냈고,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가끔 그렇게 굴을 따곤 하셨대요. 그런데 그날 뜻하지 않게 사고가 났던거죠. 할머니는 더 오래 사실 운명이셨나 봐요. 모든 게 아귀가 딱딱 들어맞았으니까요. 만일 시어머니가 사고를 목격 못 했다면, 제가 집에서 30분 거리인 이곳을 운전해 오면서 신호를 하나라도 더 받아 1~2분 늦게 도착했다면, 제가 수영을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이후 할머니는 진주의 병원으로 옮겨져 의식을 되찾았고, 할머니 가족은 감사의 인사를 했다. 거제시는 지난해 12월 민경 씨에게 표창패를 수여했다.
“살면서 누군가를 구할 일이 있을까 늘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할머니가 무사하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저 자신도 대견했고요. 자신을 지키고 남을 구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딸아이에게도 꼭 수영을 가르쳐야겠어요.” 민경 씨는 딸 채이(4)와 가배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