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있는 거제도 관광의 일번지... 구조라마을~~~

<구조라마을이란>
거제도의 동남쪽에 자리잡은 구조라마을은 주변에 아름다운 경관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구조라마을은 임진왜란 전후해서 진과 성을 쌓아 왜적을 방어했으며 옛날에 구조라 목장을 두어 가축을 기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본 통신사들이 출발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구조라해수욕장, 수정봉, 구조라성, 유람선선착장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2003년부터 정보화마을로 선정되어 관광객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전체코스: 구조라 마을 한바퀴 : 구조라 유람선 선착장 주차-연화횟집입구 –돌담길-샛바람소리길-등생이 –구조라성-수정봉 조망-군초소 관광로 이동-바닷가 펜션- 조위 관찰소-주차장-약수터-윤돌섬 조망-돌아서 구조라해수욕장-둘레야 체험-주차장 ( 2시간)
A 코스 : 마을정보센타~샛바람소리길입구~ 언덕바꿈공원~ 샛바람소리길~둘레길~구조라 성~ 솟대길~서낭당~수정봉~구조라성
B 코스 : 수협공판장앞 팽나무~ 구조라성~서낭당~구조라성~수정봉~전망대~언덕바꿈공 원~샛바람소리길~마을정보센타
C 코스 : 구조라 조위관측소~ 수정봉~구조라성~전망대~언덕바꿈공원~샛바람소리길~마을정보센타길~마을정보센타
1. 구조라마을 간략하게 소개
주차장주변 |
주차장 |
대규모 주차장 완비, 무료 |
유람선 |
외도.해금강가는 유람선과 내도가는 유람선이 있다.
-외도.해금강코스-20,000~24,000원 홈페이지; http://www.gujora.com/
내도-12,000원, 홈페이지: http://www.명품섬내도.com/ |
먹거리 |
각종식당과 노점상이 산재해 있다. |
특산물판매장 |
팽나무 주변에 있다. ( 멸치 등 해산물) |
숙박업소 |
주차장 주변에 모텔, 펜션, 민박 등이 즐비하다 |
어판장 |
현장에서 싱싱한 고기를 살 수 있다. 동절기7시, 하절기6시 |
수정봉 |
샛바람소리길 |
벽화 /시리대 / 오솔길 /언덕바꿈공원 |
구조라성 |
샛바람소리길-성터돌기-전망대-서낭당-성안 샘터-입구, 구조성은 2013년 새로 복원하였다. |
수정산 정상 |
구조라성을 따라 40분 정도 올라가면 정상이 있다. 전망대가 있어 날씨가 좋으며 대마도 조망이 가능하며 새해 해돋이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출발점은 1) 연화회집 부근 2) 팽나무 주변 3) 조위관측소 주변 |
군초소 체험장 |
정상에서 동쪽방향으로 내려오면 군초소체험관이 있다. |
마을주변 |
조위관측소 |
우리나라조위관측소는 총32개소이며 남해안에는 13개소가 있다. 조위관측소는 주로 저조와 만조를 측정한다. 6시간12분마다 저조와 만조가 교차된다. 즉 물때는 하루에 두 번씩 일어난다. |
방파제 |
연안의 잡어들을 낚는 낚시터의 역할을 한다. |
구조라해수욕장 |
남해안 최대의 백사장이며 여름 ‘바다로세계로’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
한과체험 |
거제도 특화사업의 하나인 한과만들기(한과,조청)를 제조하는 공장이 있어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http://둘래야.kr/ |
구조라초등학교 |
서바이벌게임을 할 수 있으며 2월이면 전국에서 최초의 매화가 피는 곳이다. |
구조라정보화마을 |
구조라 관광어촌·정보화 마을(http://gujora.invil.org)이 있어, 한과만들기/도예체험/스킨스쿠버체험/서바이벌 게임/버기카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
2. 자연환경
구분 |
내 용 |
1 경관 |
거제도 남단부에 위치하며 半島형으로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북쪽은 북병산 줄기의 月浮峰이 북풍을 막아주고, 동쪽은 예구리의 망산이 동남의 거센바람을 막아주고, 남쪽바다에는 내도와 외도가 있어 심한 풍랑을 막아준다. 본동 서쪽은 1km의 백사장이 있어 여름철 ‘바다로세계로’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1972년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편입되어 있다. 그리고 해금강 외도 내도 해상유람선의 출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
2 인구현황 |
구조라리의 삼정.수정마을은 원래 하나의 마을로, 처음에는 甘씨와 張 씨가 살았으나 지금은 강씨와 노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1800~1940 년대에는 인구가 100~200명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으나 도로가 신설되고 관광지화 되므로 현재는 270가구 685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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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명유래 |
옛이름은 項里라 하였는데, 이는 지형이 수정마을과 삼정마을이 장고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라, 구조라>본래 자라의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조라목, 조랏개, 조라포, 목섬, 목리,항리라 하였다. 1470년 거제7진의 하나로 진을 두었으며 1604년 옥포 조라로 진을 옮겼다가 다시 돌아왔기에(1651) 구조라라 한다.
< 水晶마을>구조라 남쪽에 수정봉에 水晶石이 있었다 하여 수정마을이라 하였으며 구조라성(수정산성)이 있다.
<三亭마을>옛날에 세 그루의 정자(亭子)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미조라(彌助羅)마을--U2기지 건설로 마을이 없어졌다. 지세포리 동남쪽 2㎞지점에 지심도(只心島)를 바라보는 갯가에 20여호의 어촌이 있었는데 1981년 한국석유개발공사 제5비축기지 조성으로 모두 이주했다.
○ 구조라마을 ---옛날이 진이 있었으며 진이 옥포로 옮겨 갔을 때의 이름이다.
본래 자라의 목처럼 생겼다 해서 조라목, 조랏개, 조라포, 목섬, 목리 또는 항리(項里)라 했다. 거제의 구조라의 지명유래는 포구의 모양이 조래 (밥 짓기 전 쌀을 이는 도구) 모양이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조선시대초기부터 말기까지 구조라 마을 이름은 항리(項里)였다. 항리란 앞바다의 작은 섬이 물이 들면 섬이 되고 물이 나면 잘록한 바다가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관청이나 진영이 위치한 곳 주위 길목에 위치한 마을을 항리(목실,목마실)이라 불렸다.
○ 조라마을---옥포 여객선 터미널 옆 횟집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본래 나호라 하였는데 ( 나호(羅湖): 호수와 같은 포구) 선조 37년(1604)구조라진을 옮겨왔다가 1651년 다시 돌아갔는데 조라관청이 있는 골이 있어 신조라 또는 조라포라 하였다.
~구조라와 유사한 이름을 가진 마을~
-舊永 : 옛날 영등진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구영(구영등포)라함. (장목면 구영, 둔덕면 영등)
-多大 : 임진왜란 시 이순신 함대가 머물던 곳으로 다대라 불렸으나 부산다대포로 진을 옮긴 후 현 다대를 구다대라 부른다. ( 거제도 다대와 부산 다대포, 거제도는 구다대, 부산은 신다대임)
-舊助羅 ; 옛날 조라를 구조라, 새로운 조라를 신조라 즉 옥포부둣가를 말한다. (신조라는 옥포에, 구조라는 현재의 마을) |
<구조라해수욕장> |
백사장은 1km정도이며 6.25사변 시 UN군 전용해수욕장. UN군이 포로수용소건축 자재로 모래 반출하여 모래반 돌반이 었다. 1980년 해수욕장에 모래를 부어 해수욕장을 개설하여 해수욕객이 모여들어 한 대는 고고장으로 변신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거제의 바다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
<유람선선착장 > |
~~외도, 해금강 유람선~~
구조라유람선사 홈페이지 :http://www.gujora.com/
-코스는 1~6코스 있으나 지금은 2코스만 운행함( 해금강, 외도코스) 외도 하선하여 2시간30분 시간을 준다.
-할인내용: 숙박업소 할인권 3,000원, 거제시민 할인권 3천원
-입장료 ; 유람선 16,000/9,000 +외도 입장료 8,000원=성인 24,000원,
-시간 : 동절기 09:30~오후2시
외도보타니아(외도 해상공원): http://www.oedobotania.com/love/love_05.asp
-성인 8,000원/ 학생군인6,000원/어린이4,000원
-단체할인 20% (학생,군인), 거제시민 50% 활인(신분증제시)
~~내도 유람선 ~
홈페이지: http://www.명품섬내도.com
-출항지 : 거제시 구조라 선착장/ 요금 10,000/5,000원 /시간 15분
-출항시간: 09:00/11:00/13:00/15:00/17:00
-특징: 난대상록수림이 울창한 자연 그대로의 섬이다. 둘레길 완성으로 1시간이면 순회 할 수 있다. 외도 해금강 등이 눈앞에 들어온다. 각종 해산물 채취가 가능하다. 자생동백 군락지이며 낚시가 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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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정보화마을> |
~~구조라 관광어촌·정보화 마을(http://gujora.invil.org), 정보화마을·055-681-2749)
( 한과만들기/도예체험/스킨스쿠버체험/서바이벌 게임/버기카체험 )
구조라 관광·어촌정보화마을(운영위원장 강성순)은 홈페이지를 운영한지가 도내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정평이 나 있다. 따라서 마을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면 수년 전 태풍매미 때 피해와 복구 현황 등 과거와 현재의 마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수백장의 사진들이 게재돼 있다. 또 유람선 관광안내, 특산물 판매, 마을관광, 정보광장 등의 콘텐즈를 담고 있다. 삼정·수정 등 2개마을 2백51가구, 7백50여명이 오손도손 살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인 구조라 마을은 남해안 최고의 구조라 해수욕장을 비롯 외도·해금강·매물도 등 관광명소들이 가깝게 인접, 피서와 바다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최적의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거제시 관광·어촌정보화 마을로 지정된 후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 정보화 교육센터(컴퓨터 11대, 프린트기, 복합기, 빔프로젝트, 홈시어터 등 비치)를 운영하고 있으며 마을에 1백여대의 컴퓨터가 보급돼 있어 어촌속의 가장 살기 좋고 인심 좋은 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조라마을의 자랑
연초 해맞이/정월대보름의 풍어제와 달집태우기/여름바다 축제 ‘바다와 세계로’/추석노래자랑 /폐교를 활용한 테니스, 족구, 배구, 게이트볼/ 컴퓨터를 이용/사랑방 운영과 청소년 공부방 /구조라 매립지 무료주차 / 갯벌 바지락 체험/고기잡이 체험/ 즉석 싱싱한 횟 맛보기/ |
구조라어판장 |
싱싱한 고기를 접할 수 있는 구조라어판장, 055)681-1365/ 경매일시 : 동절기(07:00),하절기(06:00)
일반 소비자들도 현장에서 고기를 살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봄,여름에는 도다리, 광어, 농어, 돔, 쥐고기, 문어, 보리새우... 가을,겨울은 뽈락, 우럭, 돔, 도다리, 광어, 문어 등이 있고 주변에 해년들이 잡아온 해산물도 맛볼 수 있다. |
3. 역사와 문화
거제도 역사 |
내도나 공곶이 유적 등으로 미루어 보아 구조라에는 BC 3,000년경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 |
왜구와 거제 |
일본은 13~16세기에 걸쳐서 한국과 중국을 끊임없이 노락질(공격)하였다. 특히 우왕즉위 14년 동안 378회의 침범이 있었다. 조선군도 1389년 박위가 대마도를 정벌하여 적선 300여척을 격파했다. 그리고 1396년 감사형이 2개월가량 왜군과 싸웠다. 그리고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정지장군이 있다. 정지장군은 28살 때부터 42살까지 무려 14년간 倭寇를 물리치는데 일생을 바치었다.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활동했으며 육지와 바다에서 한번 패하고 모두 승리한 위대한 장군이다. 그리고 1419년 그 유명한 이종무장군이 있다. |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
1419년 상장군에서 삼군도제찰사에 임명된 이종무장군은 임금의 명을 받아 227척의 배와 669명의 병사 16,616명의 잡군을 거느리고 주원방포(거제도)에서 출발하여 1주일 만에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정벌이유는? 첫째 왜구를 우리나라에서 몰아 내는 일, 둘째 쓰시마가 한국땅 임을 입증하기 위해, 셋째 화친하여 조선이 上王의 나라임을 입증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전투의 결과로 거제도는 1271~1422(152년간) 타향살이 하다 환군하는 게기가 되었다.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로 수백년 동안 대마도는 조선의 지배를 받았다. 저구, 어구, 구조라 등지에 집을 지을 대 원목을 대마도에서 가져와 사용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일본과 소원하지만 한일간의 터널은 100년 이내에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서 대마도 49.5km-총연장 231km/ 거제도와 대마도 39km 총연장 209km 100~200조 예상~~~
!!!!독도는 한국땅...대마도도 한국땅.!!! |
구조라
성(城)/진(鎭) |
1425년 지세포에 진을 설치하고 구조라에는 1450년 병선 2척을 배치했다. 1457년부터 성을 쌓기 시작하여 1490년에 완공했다. 그 후 1604년 옥포 조라로 옮겨갔다가 1651년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옛날 조라라 하여 ‘구조라’라 한다. 그리고 진영(鎭營)은 1470년 설치되었다. 구조라 수정 아래 선창마을 뒤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근년에는 복원하여 역사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성종 21년 1490년 석성을 건설하였는데, 좌지(성의 방향)가 동향이었고, 둘레 2천2백 40척 동서길이 1천 9백 62척, 높이 13척, 남북너비 3백30척 보안에 우물 하나를 두었다. 수군만호 1명 배치, 성문사이에 청심각(淸心閣)이라는 성루를 두었다. 소관 군인은 약 280명, 지세포진과 일부 기병을 포함하여 합계 약600명이었다.
조선전기 구조라진의 중요 업무로는, 구조라진 관활 내 모든 공무 처리 및 왜구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고 영전(전답) 관리 및 설치(단종원년 이후)했으며, 수군 훈련과, 본진 군인들로 하여금 윤번하여 후망(망을 보던 것)하였다. 또한 중앙관리의 접대 및 왜인 관리는 물론 봉산(벌목 금지 지정산), 조라목장 관리 및 군사 훈련, 관할구역인 곡곶(谷串,공고지)에서 물사포(勿士浦, 학동)까지 해안경계와 거제도 7목장의 수세상납(收稅上納) 관장을 했다.
조선 성종 임금이 부임하는 조라만호에게 말하기를, “그 지역은 왜(倭)에 가까우니, 마땅히 기장(器仗)을 정제하고 군졸(軍卒)을 무수(撫綏)하여, 비어(備禦)하는 계책을 조금도 해이함이 없게 하라.”하여 당시 구조라진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구조라 만호를 역임한 분은 성종 2년 1471년 유우생(柳偶生), 1490년 만호(萬戶) 조윤침(趙允琛), 선조 25년 1592년 박붕(朴鵬), 선조 32년 1599년 박인로(朴仁老), 1597년 1600년 정공청(鄭公淸), 허인 등이 있다.
성 외부 시설물로는 중종 5년 1510년 삼포왜란 후, 성 머리와 성 밑에 녹각(鹿角)을 설치하고 웅덩이와 말목(末木, 나무를 깍아 그 끝을 뾰죽하게 하여 갱참(坑塹)에 박아 놓는 것) 등을 엄하게 설비하였다.
-갱참(坑塹): 구덩이
-녹각(鹿角): 녹각나무-노각나무( 사슴뿔처럼 보드랍고 황금빛을 가진 아름다운 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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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라 목장 |
거제도에는 9개의 목장을 두었다. 가조도, 칠천도, 산달도, 구천동, 가라산탑포, 구영등, 장목포,구조라포, 지세포 |
구조라초등학교 |
1911년 ; 구조라심상소학교 개교 (주로 일본인 학생)
1999년 9.1 : 일운초등학교로 통폐합 (총 49회 2412명 졸업)
교가
아세아 푸른 벌판 동으로 뻗어 /금수강산 삼천리 반도 이루고
단군님 오랜 역사 우러러보며 /대한사람 길이길이 이어 배우며
우리들은 구조라 어린이로다.
응원가
수정봉 정기는 흰 구름 되고 /어버이 흘린 땀은 오곡 되었다
보아라 푸른 하늘 드높이 날려 /우리들 운동회를 찬양 하 도다
구조라 구조라 나아가는 구조라 /굳세게 받들자 우리 힘으로
출전가(기마전)
씩씩한 용사들 앞장 세우 고 /깃발을 날리며 이기려 간다
우리는 이긴다 이겨야 한다/잘 싸워 이겨라 우리 용사들
~~구조라 청년가 (작고.작사 김광래 독립사상가)~~
<1절>
반도 정기 타고난 우리 청년들
항리에서 태어나서 몇몇해더냐
용감하게 일할 때가 다가 왔다.
승리와 자유 위해 나가 싸우세
<2절>
송죽 같은 일편단심 무엇으로 바꾸랴
우리 청년 역사는 길이 빛나리.
철석같이 굳게 뭉친 우리의 단결
젊은이의 가슴에 피가 끓는다.
(후렴)
항리의 수정봉에 새봄이 오니
일하고 배움으로 부지런 하세
우렁찬 종소리가 높이 울린다.
앞을 다퉁어 일어나세 우리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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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인 이주촌 |
대한민국은 일본으로 수없이 침략을 당하다가 1910년의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되기까지 35년간의 시대를 맞는다. 거제도는 일제강점기(1910~)시점 이전부터 왜구 들이 드나들며 어업을 많이 하였다. 거제도 전역으로 퍼지면서 이주도 늘어났다. 구조라에는 1889년부터 살기 시작하였다. 특히 장승포 지세포 구조라 방면이 많았는데 구조라에는 1914년 32가구 115인, 1920 56가구 304명까지 증가하였다. 그리하여 지세포와 구조라에는 심상소학교가 설립되었다. (구조라 (1910년, 지세포는1908년) 그리고 현병출장소가 설치되고 지세포에는 우편소가 설치되었다. 지세포내 조선인( 157가구 965명), 지세포내 일본인 947가구 343명)이었다. |
설화.전설 |
<얘기1...윤돌섬의 설화>
구조라와 망치 앞바다에 두둥실 떠있는 섬이 윤돌섬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이 곳에 과부 노파가 성이 윤씨인 아들 삼형제를 거느리고 이 섬에 와서 살게 되었다. 마침, 이 때 북병산 및 양지마을에 김망월이란 늙은 어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망월노인은 얼굴이 절세미인이었던 이웃마을 해선이란 해녀와 결혼한 후 해선이가 바다에 나가서 전복, 소라, 미역, 멍게 등을 따다가 시장에 팔아서 생활하면서 정답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해선이가 바다에 나가서 해산물을 따는데, 난데없는 태풍이 불어와서 타고 있던 배는 멀리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본 망월이가
“해선아! 해선아! 해선아!”
하고 불러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날 밝은 밤이면 바닷가에 나와 해선이를 부르다가 달만 멍하니 쳐다본다고 해서 이웃사람들은 망월이라 부르게 되었다. 실의에 빠졌던 망월이가 이 곳 마을에 와서 움막을 짓고 고기를 낚으면서 해선이가 떠나갔던 먼 수평선만 바라보면서 세월을 흘러 보내고 있었다.
이 때 윤씨 삼형제를 데리고 온 늙은 노파가 윤돌섬에서 살게 되었다. 고목봉춘이라더니 양지마을에는 홀아비인 김망월이가 살고 있고, 윤돌섬에는 윤돌의 홀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던 김망월과 노파 할멈은 꽃피고 새 우는 춘삼월 호시절을 맞아 춘정을 못 이기어 양지마을에 사는 망월노인을 찾아가 노정을 달래곤 하였다.
이 윤돌섬은 북병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그 줄기가 간조 때면 물 위에 드러나 윤돌섬에서 양지마을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윤씨 노파가 아들 삼형제 몰래 양지마을 망월노인을 찾아가서 젊어서 못다한 연정을 속삭이게 되었다. 썩돌에 물이 나면 꺼질 줄 모른다더니 늙은이가 서로 만난 사랑의 불꽃은 밤낮을 모르게 꺼질 줄을 몰랐다.
겨울이 다가오자 윤노파에게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간조 때면 육지와 섬 사이에 아련히 드러난 북병산 줄기의 능선 따라 양지마을 망월영감을 찾아가서 연정을 나누곤 하였지만 따뜻한 봄과 시원한 가을도 지나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엄동설한이 되면서부터는 한 달에 한 번 가던 양지마을에도 추운 겨울 때문에 버선을 벗고 간조 때를 기다려 섬과 육지 사이를 걸어가자니 발이 시렵고 추위가 엄습하여 그토록 보고 싶은 망월영감도 만나지 못하고 애만 태우고 있었다.
햇살이 따뜻한 어느 날 버선을 벗고 물 위에 아련히 나타나 있는 섬과 육지의 능선따라 양지마을 망월영감을 찾아가는 애처로운 모습을 본 아들 삼형제가 징검다리를 놓아주어 버선을 벗지 아니 하고도 양지마을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이 섬을 효자섬이라 부르다가 윤씨 삼형제가 살면서 돌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윤돌섬이라 한다
< 얘기 2...망치 송복금>
학동(동부면)학을 한 마리 타고 / 고동기미(螺仇味 수산마을)가서 고동하나 주어먹고 / 망태(일운면 망치)와서 망을 딱 보온께 / 윤돌(윤돌섬)가서 윷을 한방 놀고 / 구조라가서 국을 한그릇 사 묵고 / 지세포가서 쥐를 한 마리 잡아서 / 배숲개(일운면 옥림, 주림포)가서 배를 하나 따 묵고 / 장승포가서 세장을 봐서 / 마산가서 마차를 타고 / 부산을 가논께 부대해서(마음이 부풀어서) / 일본 시모노세끼로 건너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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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방언 |
동숭아 잘 있었나? 누우야, 어디가노? 느거 얼라 엎퍼졌다. 셍이 네는 얄굿데이~ 옴마 밥 안주나! 느거 할바시 노망 안지나? 동숭아, 할마시 요줌도 건강하제~ 그 놈의 영감쟁이 요즘도 술 많이 묵나? |
구조라 샛바람 소리길 |
샛바람소리길은 옛날 밭작물을 재배할 때 거센바람 (셋바람, 동풍)을 방지하기 위해 방풍림으로 조성했던 것이 수십년이 지나 대밭숲으로 형성이 되었다. 한바퀴 두르는데 약30분 가량 걸리므로 유람선 승선하기 전후 짬을 내어 한번 둘러보시길~~~ 코스: 마을정보센타~샛바람소리길입구~ 언덕바꿈공원~ 샛바람소리길~둘레길~구조라 성~ 솟대길~서낭당 |
구조라전래지명 |
-뎅박동: 샛바람 소리길 올라가는 마을을 말하나 그 어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뭐, 덴바람과 관련이 있을까?
-언덕바꿈: 거제도의 지명 중 해변가에 궁둥이와 같이 툭 튀어나온 곶을, 곶(串) 이라하며 갈곶이,공곶이 등이 있다. 이 곶(串)과 반대되는 의미로 바꿈(금,구미)이란 지명을 썼다. 바꿈(금, 구미)이란 바닷가나 강가의 곶이 길게 뻗고 후미지게 휘어진 곶 즉 만을 나타낸다.
-샛바람: 모심기 할 때 부는 東風을 말한다.
-시릿대: 대나무 종류 중 신이대속에는 조릿대, 이대, 신이대, 갓대, 섬대 등이 있는데 아마 신이대(신우대)가 경상도 사투리리로 시리대(시릿대)로 불리어지고 있다고 사료됨.
-애기장: 애장 [愛藏] (아이의 시체가 묻힌 무덤. 또는 아이의 시체를 싼 짚) 옛날 거제에서는 아이가 전염병 등으로 죽으면 아이를 짚으로 싸서 돌맹이가 많은 곳에 아이를 묻어두는 풍습이 있었다. 그것을 애장이라 한다.
-재실; 진주강씨, 광주 노씨 재실
-비문: 강찬인공 선심불망비: 구조라리 입구 로변 48-3번지. 일생을 자선과 봉사
-고지(연못): 옛날 매년 대화재가 발생하던차에 지나가던 도승이 연못을 팔 것을 일러주어 연못을 조성하였다. 그 후부터는 대화재가 없었다고 한다. 매년 동제 시 이 못 (池)에 告祀ㄹ르 지낸다.
-별신굿:지금은 매년 섣달 그믐날( 설날 앞날) 마을회관 뒤편 정자나무 밑에서 제사만 모신다. 별신굿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남해안 별신굿의 모태라 한다. 별신굿은 바닷가 사람들의 안녕과 풍어, 농사짓는 사람들의 풍년을 기원하고 집 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무속 신안이었다.
-대부산(貸付山):일제 강점기 산을 빌려 조림했던 곳. 지금은 마을 공동묘지가 있다.
-서당골; 구조라 성아래 서당이 있었던 곳, 지금은 팽나무 한그루가 있다.
-아리랑고개; 구조라에서 와현으로 가로지르는 고갯길을 걸어가면 구조라 항구에 떠 있는 외도와 내도를 바라보며 아리랑을 불렸다는 곳
-생이잡골(생이집):상여를 보관햇던 곳, 마을마다 구석진 곳이 있어 무서웠던 곳이다.
-바위: 댄바위, 마당바우,농바위, 북바위, 서답바위, 애롬바위,약귀바위, 약물바위,철이바위, 대포바위, 바람바위
-기타:뒷개,서당골,새막골, 새모실마을, 성뒤산, 성안밭, 소나무걸, 앞개, 애고지, 야망끝산, 작은홈골, 찬샘이, 큰내골, 큰들,홈골,큰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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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한국땅 |
대마도는 우리땅 ( 딸강머리앤 답사기)
암 그렇고말고 라며 곧잘 중얼거리시는 할아버지의 특별한 대마도사랑 순간 엉터리 노래 하나가 생각난다
1980년경 가수 정광태가 "독도는 우리 땅 "을 불러 일약 국민가수가 되었다.
이 노래가 좋아서 열심히 따라 부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 있다 .
이 소절을 부르다보면 그만 화가 솟구치기도 한다.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불렀다가 언젠가는 또 이렇게 개사되기도 하였다.
"대마도는 몰라도?"이 부분 정말 속상하다 .
왜 우유부단하고 엉거주춤한 노래로 사람 흥분하게 만드는지 독도만 우리땅이라고 소리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마도 역시 태초부터 우리땅이었다 .
몰라도라니? 이 대목은 일본의 눈치를 보며 대마도는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노래가 아닌가 ,1945년 8월, 광복이 되었고1948년 이승만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니 돌려 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일본에 강제로 빼앗겼던 우리땅이라고 그것도 두번씩이나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미국에 의해 번번이 묵살되어 버렸던 대마도영유권... 지리적으로 보면 대마도는 거제도에서 49.5km로 정말 가깝다. 육로로 따져본다면 거제 고현에서 고성까지의 거리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더라도 대마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속했던 섬이었다. 신라장군 이사부가 지하에서 웃는 것이 아니라 통곡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현재도 대마도 사람들이 아프면 곧장 가까운 부산으로 먼저 달려온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가까운 부산에 와서 치료를 받아야지 먼 오오사카나 시모노세끼로 갈 것인가? 그렇게 먼길로? 대마도의 이웃은 일본열도가 아닌 한반도의 남쪽섬 거제도와 부산이다. 대마도를 다녀 온 사람들이 들려주는 말에 의하면 그곳 사람들은 우리말도 아주 잘 구사하고 있다고 한다. 대마도를 즐겨 찾는 사람들 역시 일본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대마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아야한다. 끝없는 노력으로 되찾아야 할 우리 땅. 구조라 할아버지를 만나서 대마도를 이야기하다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열린 문안으로 등이 꾸부정한 할아버지가 내다보며 미소짓길래 이때다 싶어 얼른 연쇄점 안으로 들어섰는데 할아버지께서도 무척이나 반가워하신다.
"할아버지, 이 집 정말 멋져요 언제 지으셨나요?
작년에 바로 앞집 옥이민박에서
하룻밤 잔 적이 있어요 다음 날 골목길 지나가다
할아버지네 가게를 보게 되었죠. 내부가 오목 조목한 것이 신기하게 보여 들여 다 보며 몇번이고 사진을 찍었는데
할아버지댁 내부구조가 정말 인상적이었가든요, "
"그랬구먼 이 집 , 참 오래 되었지 얼추 100년은 되었을 거야.
자재는 저기 멀리 보이는 대마도에서 가져 와 지은 집이야 "
"참 할아버지, 대마도(쓰시마섬)가 어느 나라 땅인줄 아세요?"
" 대마도, 그야 당연히 우리나라 땅이지 암 당연히 우리나라 땅이고 말고
나 소학교에 다닐 때 책에서 그렇게 배웠어 선생님도 그러셨고.
우리나라 땅이라고 말이야 .
그러니까 대마도에 가서 자재 들여와서 집도 짓고 그랬지
그리고 언젠가 저섬에 가보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는 걸
보라구 얼마나 가까워 헤엄쳐 가도 될것같잖은가? 한창 힘 좋았던 시절은 다 지나가고
이젠 힘에 부쳐 잘 안되겠지만 .,,
우리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그리 생각 해
그럼 대마도가 우리땅이지 누구네 땅이란 말인가? 일본 땅 ? 절대로 아니야
우리땅이라고
우리집을 지을 때 대마도에서 자재를 들여 온 것만 보더라도 그렇지
우리땅이니까 그기서 가져 온 게지...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가슴 뭉클해진다.
할아버지의 대마도 사랑은 이 세상 소풍 끝낼때까지 쭈욱 이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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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구조라 해수욕장 모습

1960년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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