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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신 사람
열왕기상 19:15~21
오늘 본문 말씀은 선지자 엘리야가 낙심한 채 호렙산 동굴에 틀어박혀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셔서 위로와 용기를 주신 후에 그의 사역 후반기에 해야 할 일들을 명하시는 대목입니다. 이 말씀 중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시 북 이스라엘 왕 아합과 그 아내 이세벨 왕비의 악독하고 강력한 바알 숭배 운동과 맞서 싸우다가 힘에 겨워 있는 선지자 엘리야를 도와 줄 동역자요 그의 제자가 될 사람 하나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엘리사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의 신앙 개혁 운동을 이어받아 그 사역을 완성할 수 있기 위하여 어떤 다른 방도를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새로운 사람을 발탁하여 세우신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행하시고자 하실 때에 언제나 가장 중요하게 여겨 행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을 찾아 세우는 일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종살이할 때 그들을 구출해낼 방도로 하나님께서는 천군 천사를 애굽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다른 나라의 군대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왕자로 살다가 광야로 가게 하여 그곳에서 목자로 40년 동안 묵묵히 훈련받게 하셨던 한 사람 모세를 불러서 달랑 지팡이 하나 가지고 애굽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나이가 차서 120세가 되자 하나님은 그를 이을 충성스러운 믿음과 순종의 사람 여호수아를 예비하셨다가 들어 쓰셨습니다. 엘리 제사장 가문이 부패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눈물과 기도의 여인 한나가 낳은 어린 소년 사무엘을 세워 이스라엘을 이끌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이 변질되어 하나님을 배신하자 하나님은 베들레헴의 어린 목동 다윗을 준비해놓고 그를 불러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믿음으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엘리야 대신에 하나님 백성들을 영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하여 엘리사라는 젊은이를 이렇게 준비하시고 그를 불러 손에 붙들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행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서도 하나님은 어떤 조직이나 세력이나 재물이나 사상을 통하여 일하기보다는 하나님은 진실되고 충성스러운 인격의 소유자를 통하여 일하시곤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는 인류 역사가 바꾸어지는 것이 사상과 철학과 어떤 세력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훌륭한 인격자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세종 대왕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에 이렇게 대한민국의 문화가 단단한 토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순신이라는 충성스럽고 지혜롭고 의로운 한 인간에 의하여 나라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미국과 세계의 정치사에서도 아브라함 링컨이라는 한 사람에 의하여 노예해방 운동이 확실하게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히틀러라는 악한 자가 유럽을 집어삼키려고 했을 때에 저 영국 정치계에 자유를 신봉하는 한 강인한 투사였던 처칠이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 문명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 그 때 한 인물을 통하여 복된 방향으로 역사의 전환점이 세워질 수 있도록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서도 하나님은 사람을 택하시고 그를 붙들어 쓰셔서 그의 일들을 이루어가시곤 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베드로를 비롯한 하나님의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일꾼들을 부르시고 그 일을 시작하셨으며, 지성과 영성을 갖춘 강인한 인격의 사람 사도 바울을 택하시고 부르시어 일세기만에 로마 제국 전체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확산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후에 이방 나라의 철학과 문화 속에서 교회와 복음이 공격을 당할 때에 뛰어난 지성을 가진 변증가 어거스틴을 불러 세워서 사도 바울이 증거한 은혜의 신학을 보존하고 이것을 굳건하게 세우도록 일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은 루터, 캘빈, 그리고 요나단 에드워드 등 위대한 인물들을 세워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그의 나라의 비밀들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이루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그의 계획하신 바를 이루고자 하실 때에 언제나 그의 일에 합당한 사람을 찾아 구하시곤 하십니다. 예레미야 5: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온 유다에 온갖 죄악이 가득하고 하나님을 저버린 악행이 허다하므로 심판의 도구로 바벨론 군대를 바람처럼 데려와서 심판하시려고 하셨지만 한편은 그 마음에 그 백성을 향한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가득하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그 백성들을 용서해줄 이유를 찾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읍 중에 하나님 마음에 맞는 충성스럽고 진실하고 의로운 사람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그 사람을 이유로 삼아 그 성에 대한 심판 계획을 철회할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없었기에 결국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완전히 파괴되고 말게 됩니다.
동일한 사상이 이사야 59장 15절 이하에도 나옵니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고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이사야 59:15~18)
여기서도 하나님은 악이 만연된 선민 유다의 세태를 보시고 악을 떠나는 자마저 탈취당하는 그 모습을 안타까워 보시면서 그 일을 막을 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중재자로 나서서 기도하며 간구하는 사람이 있는가를 찾으시는데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일하실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하시고자 하실 때에 사람을 찾으시곤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찾으신 자를 준비시키어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위하여 그의 손으로 붙들어 힘있게 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돕고 그의 뒤를 이어서 북 이스라엘 왕국의 영적 부패 상황을 개혁시키고 그 망국의 길로 가는 이스라엘 왕국을 구해낼 일꾼으로 하나님께서 엘리사라는 청년을 찾으시고 그를 불러내어 엘리야 선지자의 제자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의 부르심과 그 후의 그의 활동과 사역에 대한 열왕기 기록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시고 부르신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많은 아름다운 인격의 모습이 보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엘리사는 부요하고 평안한 삶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했습니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거느리고 그의 집의 종들과 함께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엘리사의 집은 24마리의 큰 소들이 있었고 겨릿소들이 끄는 쟁기만 열두 개나 있을 만큼 넓은 논밭을 가진 큰 부자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그가 밭을 갈 때에 엘리사의 몸에 겉옷을 던지자 곧장 그 날 한 소를 잡아서 동네 잔치를 벌이고 다음날 엘리야를 따라 곧장 떠났습니다. 엘리사는 자기의 평안한 삶에 안주할 수 있었으나 고생살이가 눈에 선한 하나님의 종의 길로 부름받을 때 아무런 불평도 없이 즉각 나섰던 것입니다. 이처럼 엘리사는 하나님의 뜻이면 그 어떤 것도 불순종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하나님 앞에 주저없이 온전히 순종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또한 엘리사는 섬기는 자였습니다. 그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에 부름받았을 때에 그가 곧장 스승인 엘리야처럼 갈멜산에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또한 하늘에서 물을 내린 것과 같은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스승 엘리사를 섬기는 자로 부르심받은 것만으로 족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오늘 21절 말씀에 보면,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들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엘리사 선지자가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리워간 후에 모압과의 전쟁에 종군 목회자로 조용히 따라나섰을 때에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 군대가 광야에서 물이 없어 다 죽게 될 위기를 맞아 해결책을 찾을 때에 한 왕의 신하가 엘리사 선지자를 왕에게 소개할 때에 이르기를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열왕기하 3:11)
고 하였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를 언제나 곁에 따르면서 그를 도와 수종 드는 것을 자기의 본연의 일로 알고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스승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가 그 곁에서 한 일은 이처럼 항상 사소한 일들, 손을 씻도록 물을 대령하여 물을 붓는 일, 밥 차려드리는 일, 심부름하는 일, 지극히 사소한 일들만 했으나, 그런 일에 대하여 한번도 불평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엘리사는 그 성품이 주님처럼 늘 겸손히 섬기기를 힘썼기에 후일에 하나님께서 그처럼 많은 은사와 능력을 그에게 맡기셨던 것입니다.
또한 엘리사는 스승 엘리사의 영적 감화 감동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습니다. 엘리야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 올라갈 때에 스승이 그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엘리사는 스승에게 대답하기를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열왕기하 2:9)
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사는 스승이 떠나는 마당인지라 스승을 이어서 맡겨진 영적인 사역을 감당해야 할 책임감이 마음에 가득찼습니다. 그래서 스승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엘리사는 스승을 통하여 행해진 성령의 사역을 자기가 갑절로 행할 수 있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사실 이 일은 스승 엘리야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속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가 스승에게 구했던 이 간구의 내용은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간 후에 지상에 홀로 남은 엘리사의 생애 속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스승보다 더 많은 기적과 이적을 일으켰고 왕과 백성들 가운데 오고가면서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많은 기도를 했고 그 결과 나라를 침범하는 적들을 여러번 막아내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귀하게 쓰임받기를 갈망하였고 그 소원은 그대로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 쓰임받기를 간절히 구한 그의 순수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또한 엘리사는 개인적인 이득보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과 영혼 구원을 더 소중히 생각하였습니다.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많은 선물을 가지고 와서 자기 문둥병을 고쳐달라고 왕에게 요청했을 때에 이스라엘 왕은 이 요청이 어이가 없었고 이 불가능한 일을 해달라는 요청은 전쟁의 빌미를 삼으려는 술수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왕은 통탄하며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왕에게 전갈을 보내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말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많은 선물들을 실은 호화로운 사절단을 이끌고 선지자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나와보지도 않고 자기 사환을 시켜 요단강에 가서 그 강물에 일곱 번 씻으면 그 몸이 회복되어 깨끗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지자는 사람에게 아첨하지도 않고 요란스런 사절단의 행렬에도 눈길한번 주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화가 난 나아만이 고향 땅에 있는 아람 나라 강물이 더 깨끗하니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종들이 간절히 말려서 나아만이 사마리아에서 멀리 떨어진 요단강까지 가서 몸을 담궜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곱 번째 몸을 담그고 일어서니 놀랍게 그 몸의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놀라고 기쁜 나아만 장군이 다시 사마리아의 선지자 집에 와서 자기는 이제 이스라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안다면서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정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맹세로써 아무 것도 받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다만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흙을 노새 두 마리에 실을 만큼 달라고 청하고 그 흙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만 번제물과 희생 제사를 드리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갈 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물욕을 못 이기고 선지자 몰래 뒤 따라서 나아만으로부터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챙겨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선지자가 그 사환을 불러서 책망하기를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중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로 나아만에게 문둥병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엘리사 선지자는 자기의 이름을 높이고 자기의 명예를 높이고 재물을 얻어 일신상의 부요함을 누리는 것보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과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과 그의 고국 이스라엘이 아람나라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해진 일을 더 소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이런 저런 모든 점들을 볼 때 참으로 엘리사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그를 빚으신 수고에 합당하게 잘 행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엘리사라는 잘 준비되고 닦여진 사람이 없었다면 북 이스라엘은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 한 사람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심으로 그 나라가 이른 패망을 면하고 바알 숭배가 약화되는 등 영적 개혁의 일부분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존재가 그처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데 너무나 중요한 도구가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가 우리가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가, 어떤 권력을 쥐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어떤 자리에 있는가, 어떤 직분을 갖고 있는가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가 훨씬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2:16 말씀에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고 하였는데, 참으로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맡아 너끈히 감당할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로 마음을 쓸 일은 바로 기발한 방법을 찾는 것보다, 어떤 세력을 모으려는 것보다, 더 많은 재물과 재능들을 갖추려는 것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쓰실 만한 그릇이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인격과 생각과 성품의 그릇이 되어가는 것이 가장 간절한 우리의 삶의 목표와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역대하 16:9 말씀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일꺼리가 많고 일할 곳도 많고 들판에 추수할 곡식들도 많은데, 일꾼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사방을 두루 둘러 찾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옛날에 저희 아버지, 어머니가 농번기 때에 일하고 늦게 돌아오셔서 우리 집 일을 하는데 일꾼이 부족하니 그 늦은 밤에 다시 동네로 나가 놉을 얻으러 가곤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속이 타시는지 아버님이랑 어머님이랑 마루에 앉아 얘기하다가 컴컴한데 대문밖으로 다시 나가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오늘날도 세상에는 일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없어서 우리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와 세상에서 일할 사람을 찾아 오밤중에 찾아나서고 계신 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시대에 일꾼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자가 됩시다. 농번기 때에는 일을 잘하는 일꾼들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이 느리고 부족한 사람도 여기 저기서 데려가려고 애를 쓰곤 합니다. 이처럼 이 시대 하나님께서는 일꾼의 자질이 많이 부족하고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붙들어 다듬어서 쓰시고자 하시므로, 우리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 부족한 우리라도 하나님께 내어드려서 성령께서 우리를 다듬어서 쓰실 수 있도록 합시다. 성령님께 우리 자신을 자꾸만 내어드려서 그가 쓰실 수 있도록 우리를 빚어주시기를 간청합시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 구주께서 행하신 가장 큰 일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는 데 희망을 가집시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를 진심으로 믿음으로써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이천년 전에 이미 죽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안에 주님이 사시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늘 유혹에 흔들리고 넘어가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대하여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죽었고 세상이 또한 우리에게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세상이 우리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꼭 붙들고 나 자신이 십자가에 죽었음을 늘 기억합시다. 옛 사람이 살아나려고 하면 다시 믿음으로 십자가를 붙들고 나를 죽이고 세상을 죽이는 작업을 계속합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늘 구하도록 합시다. 엘리사가 스승이 세상을 떠날 때에 갑절의 성령의 영감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성령이 우리를 온전히 다스리시고 충만히 우리 안에 역사하시면 우리도 지금과 달리 더 능력있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냉랭한 마음이 뜨거워지고 세상의 더러움들이 다 태워져버리고 되고 다른 영혼들까지도 성령의 불을 붙이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엘리사의 생애를 고찰해보면 그가 자주 갈멜산에 올라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거처가 있는 사마리아에만 있지 않고 그는 수넴을 거쳐서 갈멜산에 자주 올라가곤 했습니다. 수넴 여인의 집에 자주 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수넴 여인이 자기 아들이 죽었을 때에 곧장 그 날 오후에 나귀를 타고 쉬지 않고 달려간 곳도 바로 갈멜산에 있는 선지자의 거처였습니다. 엘리사는 그곳 갈멜산에다가 거처를 마련해놓고 그곳에서 기도의 삶을 살곤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갈멜산 정상에서 스승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고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또 일곱 번 기도하여 하늘에서 장대비를 내려서 삼년 기근을 끝내버렸고 바알 선지자 450명을 처단한 승리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 기도의 자리를 엘리사 선지자가 줄곧 찾아서 기도하였기 때문에 엘리사 선지자는 스승 엘리야를 이어서 성령의 위대한 사역자로 하나님의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그래서 성령의 불을 받아서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성령의 뜨거움으로 주의 일을 하고 어둡고 차가운 이 세상을 성령의 불로써 환히 밝히고 더러움을 정화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서 그에게 다듬어지고 잘 준비되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분량껏 잘 감당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을 돕고 살려내고 장차 주님 앞에 가서 칭찬과 상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