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말, 이기고 있는 해태타이거즈의 마지막 수비. 불펜에서 몸을 풀던 선동렬이 등판한다. 외야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듯 다 같이 합창한다. 사~공의 뱃노래,,,(중략) ...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본래 가수 이난영의 비음 섞인 경쾌한 곡이지만 특유의 애조와 비장한 음색을 띤 ‘목포의 눈물’이 야구장에 메아리친다. 예전 해태타이거즈가 승승장구하던 시절 눈에 익은 프로야구 경기장 풍경이다. 목포는 호남을 상징하는 도시이자 한반도의 관문이었다. 평남 진남포와 함께 1897년 외국에 문을 연 목포항은 올해 개항 120주년을 맞았다.
바쁜 일상을 깨고 지난 주말에 모처럼 아내와 함께 나들이 길을 나섰다. 늘 가보고 싶었지만 미뤄두곤 했었던 고장, 목포를 다녀왔다. 우리나라 최근세사가 중층으로 퇴적된 곳이 목포다. 그래서 도시의 단면을 보면 한국 근현대사가 지층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개항이후 왜놈들에 의한 쌀과 면화의 수탈은 목포항의 큰 생채기로 남아 있다.
목포는 예향이기도 하다. 숱한 문인과 예술인을 배출하고 품었던 고장이다. 한국문학에 조금만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박화성 천승세 모자, 차범석, 김현, 김지하를 낳은 목포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목포는 진도 운림산방 허씨 일가들의 중요한 활동무대이기도 했다. 대중가요계의 당대 큰 별이었던 이난영과 남진도 목포 출신이다. 필자처럼 외지인들이 목포에 내리면 목포만의 예술적 분위기와 푸근한 인정이 감지된다. 그런데 외국인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다.
한국을 사랑한 미국인이 여럿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리처드 크리스텐슨이다. 그는 한국 중에서도 특히 전남 목포에 애정을 지녔던 사람이다. 1967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목포에 와서 영어교사로 첫 인연을 맺었다. 1973년 미 국무부에 들어가 주한 미 대사관 부대사를 지냈다. 1994년 카터 전 미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한 적도 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까지 구사했던 그는 한국인 부인을 두었다.
10시간 넘게 걸리는 목포발 서울행 완행열차간 풍경에서 그는 한국인의 인심과 정서에 매료되기도 했다. 정든 고향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가 빈민으로 살면서도 2세들을 위해 다시 월남과 중동으로 나가 돈을 벌었던 한국인을 진심으로 이해했다. 이 한국인들이야 말로 파이오니아(개척자)라고 칭송했다. 리처드 크리스텐슨에게 목포는 푸근한 제2의 고향이었다.
남도의 넉넉한 인심 살아 있는 목포의 중국집
유달산에 올라 목포 신안 앞바다의 섬들을 조망하고 역전 방향으로 내려왔다. 마침 시장기가 도는 점심때여서 식당을 찾다가 ‘태동식당’이라는 허름한 간판을 발견했다. 간판과 달리 정식 이름은 <태동반점>이었다. 식사가 주 메뉴인 전형적인 동네 중국집으로 아담한 식당이다.
메뉴판에 특이한 이름이 보였다. 우동 짜장 짬뽕 등 식사메뉴들 가운데 ‘중깐’이라는 메뉴 이름이 들어있었다. 주인장에게 물어봤더니 짜장면 종류하고 한다. 우리는 중깐(6000원)과 볶음밥(6000원)을 하나씩 주문했다.
먼저 직접 담근 김치와 무김치, 단무지와 양파가 나왔다. 김치는 정성이 들어간 것은 확실한데 맛은 그다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잠시 후 목포식 짜장면 중깐이 나왔다. 기존 짜장면과 가장 큰 차이점은 양배추 등 채소를 아주 잘게 썰었다는 점이다. 짜장 소스에 넣은 채소들은 부산역 앞 <원향재>의 간짜장보다 더 잘게 썰었다. 면발도 가는 소면 스타일로 하늘하늘 했다. 위에는 오이채와 달걀 프라이를 얹었다. 서울 짜장면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완두콩도 넣었다. 중깐은 간짜장과 유니짜장을 합친 복합적인 풍미가 났다.
볶음밥은 즉석에서 볶아줘 불맛이 나 꽤 맛이 좋았다. 겉으로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비주얼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중깐보다 볶음밥이 더 맛있었다. 중식 특유의 불맛이 자꾸만 식욕을 자극해 끝내 탄수화물 절제에 실패했다.
중깐과 볶음밥을 다 먹었다고 식사가 끝난 게 아니었다. 서비스로 탕수육을 내왔다. 공짜는 탕수육 뿐만이 아니었다. 짬뽕까지 서비스로 내왔다. 정식 짬뽕의 2/3 정도의 적지 않은 양이었다. 해물도 넉넉히 들어있었다. 탕수육과 짬뽕에서 남도의 푸짐한 인심이 느껴졌다. 서비스는 탕수육과 짬뽕에서 멈추지 않았다. 음식을 다 먹고 났더니 이번에는 입가심하라며 자양강장제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 전에 화교가 운영하던 식당을 인수해 37년간 지금의 주인장이 운영하고 있다. 세월은 흘렀어도 친절과 인심은 여전하다. 계산할 때 도저히 미안해서 카드를 내밀지 못하고 현금으로 계산했다.
남도 음식은 맛나고 푸짐하기로 정평이 났다. 다만 목포는 예외적으로 비싸고 맛없다고 타지인들은 인식한다. 그러나 잘 찾아보면 괜찮은 명소들이 있다. <코롬방제과>도 그런 곳이다. 새우바게트와 크림치즈바게트로 유명한 빵집이다. 식당을 나와 줄서서 기다렸다가 크림치즈바게트를 샀다. 바게크 안에 크림치즈가 가득 충진돼 크림치즈의 풍미를 느끼고도 남을 정도였다. 아주 맛난 후식이었다. 목포역 주변 상가를 지나는데 한산함 그 자체였다. 한때 돈과 물산의 집산지였던 곳이라고는 믿어지질 않았다. 길가 모퉁이에서 버스킹 자선공연을 하는 중년 듀엣이 열심히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관객은 한 사람도 없고 멀리서 불어온 바닷바람만 휑하니 지나갔다. 지출(2인 기준) 중깐 6000원+볶음밥 6000원 = 1만2000원 <태동반점> 전남 목포시 마인계터로40번길 10 061-243-3351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