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188)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25장 경씨(慶氏)도 기울고 (2)
안영과 북곽자차의 동의를 얻지 못한 경봉(慶封)은 난조와 고채 일족을 치는 일에 다소 주춤했다.
그러나 노포별(盧蒲嫳)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날 밤, 그는 은밀히 형 노포계(盧蒲癸)와 왕하(王何)를 만나 속삭였다.
"경봉(慶封)이 난조와 고채를 토벌하려 계획하고 있소.
이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 먼저 그들로 하여금 경봉을 치게 하십시오.“
"마침내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때가 왔도다.“
노포계와 왕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날 적당한 기회를 보아 노포계(盧蒲癸)는 고채의 집을 찾아갔다.
고채는 경사의 측극 가신인 노포계의 방문을 받고 의아해했다.
"무슨 일이오?“
"긴히 여쭐 말씀이.......“
밀실로 들어갔다.
- 경봉이 고씨와 난씨 일족을 토벌하려 합니다.
고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대는 경씨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그제야 노포계(盧蒲癸)는 그간의 자신들의 속마음을 소상히 밝혔다.
"실은 저를 비롯한 노포별, 왕하 등은 선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경씨 일족에게 거짓 충성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경씨 부자를 처치하는 일은 저희들이 담당할 터이니, 공손께서는 함께 거사할 다른 일족들을 모아주십시오.“
"그대의 그 말 믿어도 되겠소?“
"입술에 피를 바르고 맹세하겠습니다.“
노포계(盧蒲癸)가 맹세하자 고채는 비로소 그의 말을 믿고 손을 세차게 움켜잡았다.
"경봉, 경사 부자가 이제야 천벌을 받게 되는가 보오.“
그때부터 고채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난조와 연락을 취하고 포국(鮑國), 진무우 등에게도 자신의 계획을 소상히 밝혔다.
이렇게 임치성의 가을은 깊어갔다.
노포계(盧蒲癸)는 자신의 음모를 즐기고 있었다.
아니 불안했으리라. 실패할 수도 있지 않은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왕하(王何)와 함께 거북점을 쳐보았다.
- 경씨를 치면 길인가, 흉인가?“
불에 구은 거북등에 금이 나타났다.
거북점은 그 금을 보고 길흉의 징조를 점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징조를 해석할 능력이 없었다.
대범하게도 두 사람은 귀갑(龜甲)을 경사에게로 가져가 보이며 말했다.
"제게 원수를 갚아야 할 놈이 하나 있어 점을 쳐보았습니다.
원수를 갚을 수 있을지 어떨지를 풀이해주십시오."
경사(慶舍)가 귀갑을 들여다보다가 한참 후에 대답했다.
"치면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자네도 피를 볼 것이네.“
경사는 그 원수가 바로 자신인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노포계(盧蒲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만 자기도 피를 볼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반격이 있을 것이다. 조심해야겠다.'
경봉(慶封)은 사냥하기를 좋아했다.
그해 가을도 거의 끝나갈 무렵, 경봉은 또다시 내(萊)땅으로 사냥을 나갈 계획을 세웠다.
그의 일족인 경사(慶嗣), 경유(慶遺) 등이 경봉과 함께 하기로 했다.
아들 경사(慶舍)는 국정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사냥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고채, 난조, 진무우, 포국, 노포계, 노포별, 왕하 등은 즉각 경씨 토벌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에 들어갔다.
- 경봉(慶封)이 내(萊) 땅에 나가 있는 동안 경사를 친다.
마침 상제(嘗祭)가 끼어 있으니 그날 경사(慶舍)를 주살하도록 합시다.
상제(嘗祭)는 수확한 곡물을 하늘에게 바치는 가을 제사다.
추수감사절인 셈이다.
그날은 온 성안이 축제 분위기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온다.
그 틈을 이용해 고씨, 난씨, 진씨 등의 가병을 풀어 태묘를 포위하자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좋습니다.“
그들은 결행 절차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경봉이(慶封) 지명한 사냥의 배행자 명단에 진무우(陳無宇)가 포함된 것이었다.
물론 경봉은 진무우의 동태를 수상쩍게 여기고 그를 포함시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용사들이 많은 반면, 머리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부족한 경봉으로서는 이 기회에 진무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고채와 난조 등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진무우(陳無宇)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 예정대로 거사를 하십시오.
저는 반드시 경봉(慶封)을 떨쳐내고 먼저 돌아와 일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날 저녁 진무우(陳無宇)는 아버지 진수무에게 고했다.
"이번 사냥에 저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해서 진수무(陳須無)는 경씨 일족의 화난을 거의 단정하고 있었다. 불안한 눈길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요즘 다른 일족의 움직임이 수상쩍다.
경씨가 큰 화를 당할 때가 왔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네가 경봉(慶封)을 배행하게 되다니....... 어찌하여 거절하지 않았느냐?“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소자가 사냥을 떠난 후 아버지께서 적장한 핑계를 대어 소자를 불러내시면 무사히 임치성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수무(陳須無)는 예순이 넘은 노인답지 않게 맑은 눈을 들어 아들을 쳐다보았다.
마침내 진무우(陳無宇)는 경봉을 따라 사냥하러 떠났다.
며칠 후였다.
진씨의 가재(家宰)가 내(萊) 땅으로 달려와 진무우에게 말했다.
- 어머니가 위독하십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꾀라는 것을 눈치챈 진무우는 경봉의 처소로 달려갔다.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속히 돌아가봐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경봉의 대답은 엉뚱했다.
"점을 쳐 보아라!“
진무우의 어머니 병세가 어떠한가를 점쳐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호의에서였다.
경봉(慶封)은 점을 쳐서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징조가 엿보이면 위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무우(陳無宇)로서는 낯색이 변할 만큼 놀랄 일이었다.
그는 점치는 복관을 바라보며 속으로 기원했다.
'장차 경씨 일족이 망할 것이라면 흉(凶)이 나올 것이요, 망하지 않을 것이라면 길(吉)이 나오라.‘
이윽고 귀갑(龜甲)에 금이 생겼다. 복관이 그것을 경봉에게 건네줬다.
귀갑을 받아든 경봉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하극상(下剋上)이라니!
이것은 망하는 괘다. 아마 그대 어머니는 회생하기가 힘들겠다.“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은 진무우(陳無宇)는 천연덕스럽게 흐느껴 울었다.
경봉(慶封)이 난감한 듯 위로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네. 어서 집으로 돌아가보게.“
기다렸다는 듯이 진무우(陳無宇)가 밖으로 뛰어나가 수레에 올랐다.
그 황급한 모습을 본 사람이 있었다.
경봉의 조카뻘이 되는 경사(慶嗣)였다.
"잠깐, 그대는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시오?“
경사는 수상쩍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했다.
안으로 들어가 경봉에게 말했다.
"진무우(陳無宇)의 행동이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우리가 도성을 비운 사이 불온한 자들이 변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지금 속히 돌아가면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습니다.“
"의심도 병이다. 더욱이 나의 아들 경사(慶舍)가 도성을 지키고 있는데, 무엇을 염려하리오?"
경봉(慶封)은 이렇게 대답하고 태평하게 사냥 도구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경사(慶嗣)는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좌우 사람들에게 말했다.
"어쩌면 우리 경씨는 이번 사냥 때문에 망할지도 모르겠다. 오(吳)나라쯤으로 도망하여 살면 다행이겠다."
그 시각, 진무우(陳無宇)는 열심히 수레를 몰면서 강을 건널 때마다 배를 모조리 불태웠고 다리를 부서뜨리고 있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