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테살 2,9-13; 마태 23,27-32
지난 토요일부터 마태오복음 23장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일곱 개의 불행 선언을 하십니다. 마태오복음 5장에서 여덟 개의 행복선언을 하셨는데, 이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 불행 선언의 말씀은 매우 가혹하게 들리기도 합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 전체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즉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어느 정도 마태오복음이 쓰일 당시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원후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뒤,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철저히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써 유대교를 재건하려 노력했는데요, 그들은 이러한 노력에 방해가 되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척 박해했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을 경계하기 위해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마태오복음은 23장에 모아 일곱 가지 불행 선언으로 엮었습니다.
그들로부터 온갖 반대와 박해를 겪던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이 말씀들로 인해 위안을 얻을 수도 있었는데요, 박해와 소외 속에서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하고 혼란스러워하던 중에, ‘그들이 틀린 것이다’라는 말씀을 주님께서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지도자들이 그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 되기도 합니다.
이 복음에 대해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마태오복음 23장이 서양에서 유대인들을 박해할 때 근거로 많이 사용했던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또 복음서 집필 당시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복음은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불행 선언의 말씀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민수기 19장(16-22절)에 따르면 사람의 뼈나 무덤에 몸이 닿는 이는 일주일 동안 부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무덤은 봉분을 하지 않아 밖에서 무덤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가 없었으므로, 회칠을 해서 이것이 무덤임을 표시했습니다. 회칠은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은 이것과 접촉하면 부정하게 된다는 표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이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십니다.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찼다는 것인데, 그들이 위선자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불행 선언은 가장 심한 말씀인데요, ‘너희는 살인자의 후손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조상들이 잘못해서 처형해 버린 위인들의 무덤을 속죄하는 뜻에서 단장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증언한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신의 죽음에 대한 암시로 생각됩니다.
어제 세례자 요한의 수난 기념일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 말씀을 읽으며, 무거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수난을 자초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헤로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세례자 요한, 그리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고발로 말미암아 로마 제국에 의해 처형되실 예수님. 그런데 같은 일이 오늘도 반복되고 힘 있는 이들에 의해 여전히 의인들이 반대 받고 박해 당하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 2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에 걸쳐서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을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위선자라는 단어가 7번 나옵니다. 그리고 ‘눈먼’이라는 단어가 5번 나옵니다. 그중에는 ‘눈먼 인도자’라는 단어가 두 번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이 단어들에 함축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길도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눈을 떠야 하고,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