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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마태복음 11:1–6, 누가복음 7:18–23 (참조: 이사야 29:18–19, 35:4–6, 61:1–2, 시편 146:7–8, 마가복음 6:17–20)
핵심 명제: 광야의 거인 세례 요한마저 덮친 마케루스 지하 감옥의 어둠과 실존적 회의(쉬 에이 호 에르코메노스)는, 심판의 도끼와 불을 기대했던 인간적 메시아관과 은혜·치유·대속으로 먼저 침투해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점진적 구속 경륜 사이의 신학적 긴장에서 기인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책망 대신 이사야의 메시아적 표적 성취를 선포하심으로써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호스 에안 메 스칸달리스데 엔 에모이)”를 향한 영원한 위로와 확신을 부여하신다.
1. 서론: 광야의 사자를 가둔 마케루스의 칠흑 같은 지하 감옥
요한복음 3장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거룩한 자기 소멸을 선언했던 세례 요한(6강). 그의 쇠함은 낭만적인 은퇴나 안락한 퇴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살을 에는 쇠사슬과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 감옥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절은 요한의 처지를 매우 비장하게 묘사합니다:
"요한이 옥에서(호 데 요안네스 아쿠사스 엔 토 데스모테리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펨프사스 디아 톤 마데톤 아우투)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쉬 에이 호 에르코메노스, 에 헤테론 프로스도코멘)" (마 11:2–3)
(1) 마케루스 요새(Machaerus, 히브리어 미크와르 מִכְוָאר)의 역사적 실체
위치: 사해 동편, 현재 요르단 영내 해발 1,100미터의 험준한 현무암 산봉우리에 세워진 요새이자 궁전.
배경: 주전 1세기 하스몬 왕조의 알렉산더 얀네우스가 건설하고 헤롯 대왕이 난공불락의 군사 기지 겸 호화 별궁으로 개축한 곳입니다.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 XVIII. 5. 2)』에서 세례 요한이 바로 이 마케루스(Machaerus) 요새의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참수당했다고 명확히 기록합니다.
환경: 위층에는 헤롯 안디바와 헤로디아의 음란한 연회장이 있었고, 그 지하 깊은 암반 속에는 사막의 지열과 습기,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캄캄한 지하 감옥(데스모테리온)이 있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유대 광야의 칼바람을 마시며 자유롭게 포효하던 광야의 사자가, 이제는 팔다리에 차꼬를 찬 채 벽에 묶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흑암에 갇힌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옥 벽을 뚫고 들려온 예수의 소식은 요한의 영혼을 격렬한 혼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예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해 불벼락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의 압제자들과 불륜을 저지른 헤롯 안디바를 권좌에서 끌어내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무엇보다, 감옥에 갇혀 죽어가는 당신의 선구자 요한을 향해 단 한 번의 구출 작전도 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는 그저 갈릴리의 촌구석을 돌아다니시며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마 11:19), 병자들의 손을 잡고 계실 뿐이었습니다.
선지자의 가슴속에서 피눈물 나는 회의가 솟구쳤습니다:
{Σὺ\ εἶ\ ὁ\ ἐρχόμενος,}\quad \mathbf{ἢ\ ἕτερον\ προσδοκῶμεν;}
{“쉬 에이 호 에르코메노스, 에 헤테론 프로스도코멘!”}
{“정녕 오실 그분이 당신이 맞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전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제7강은 마케루스 요새의 역사적 비극,
세례 요한의 종말론적 메시아관과 예수의 사역 양식 사이의 신학적 간극,
원어 호 에르코메노스(ὁ ἐρχόμενος)와 헤테론(ἕτερον)의 의미,
예수께서 제시하신 이사야 35장과 61장의 메시아적 암호 해독,
걸려 넘어짐을 뜻하는 스칸달리조(σκανδαλίζω)의 경고와 축복,
그리고 고난의 감옥에 갇힌 성도의 의심을 품으시는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심층 해부합니다.
2. 신학적 충돌: 요한의 '심판 메시아'와 예수의 '치유 메시아'
요한의 회의는 믿음의 단순한 파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구약적 예언의 지평’과 ‘신약적 성취의 방식’ 사이에 발생한 거대한 신학적 긴장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아 대망과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사역의 대조
| 비교 범주 | 세례 요한이 선포한 메시아 (마 3장) | 예수 그리스도가 펼치신 사역 (마 4–10장) |
| 사역의 상징 | 도끼(악시네), 키(프튀온), 꺼지지 않는 불(퓌르) | 빛, 긍휼, 만지심, 가르침, 병 고침, 상한 갈대 보호 |
| 사역의 톤 | 타협 없는 심판과 정죄, 도륙과 분리 | 죄인과 식사하심, 용서와 회복, 자비와 평화 |
| 대상의 심판 | 독사의 자식들을 즉각 타작마당에서 불태움 | 원수를 사랑하라 명하시고, 이방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심 |
| 의인의 운명 | 의인은 모아 천국 곳간에 들이심 | 가장 의로운 선구자 요한은 감옥에서 버려져 방치됨 |
| 구속사적 시점 | 초림과 재림의 동시적 단일 사건화 | ‘이미(Already)’와 ‘아직 아니(Not Yet)’의 종말론적 간격 |
[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적 원근법 (Prophetic Perspective) ]
산봉우리 A (메시아의 초림: 고난과 은혜) ───┐
├─> 멀리서 볼 때 두 산봉우리가 겹쳐서 '단 하나의 산'으로 보임
산봉우리 B (메시아의 재림: 심판과 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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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시대의 실제 전개 (역사의 골짜기)
[ 초림 (Incarnation) ] ───> 십자가, 대속, 복음 전파, 은혜의 해 (현재)
│
▼ 수천 년의 교회 시대 (은혜의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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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림 (Parousia) ] ──────> 알곡과 쭉정이의 분리, 심판의 도끼, 꺼지지 않는 불 (미래)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였기에, 메시아가 오시면 ‘은혜의 구원’과 ‘악인에 대한 종말론적 심판’이 동시에 단번에 폭발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심판의 칼을 휘두르기 전에, 먼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셔야 하는 ‘고난받는 어린양의 초림’을 먼저 성취하고 계셨습니다.
요한은 이 구속사의 시간표(Timeline)의 신비를 감옥의 어둠 속에서 아직 다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3. 핵심 헬라어 강해: 쉬 에이 호 에르코메노스(Σὺ εἶ ὁ ἐρχόμενος) (마 11:3)
감옥 문틈으로 제자들을 불러 세운 요한의 입술에서 떨어진 질문은, 그의 전 생애를 건 질문이었습니다:
{Σὺ\ εἶ\ ὁ\ ἐρχόμενος,} {ἢ\ ἕτερον\ προσδοκῶμεν;} {Sy ei ho erchomenos, ē heteron prosdokōmen})
{“쉬 에이 호 에르코메노스, 에 헤테론 프로스도코멘!”}
{“당신이 진정 성경에 약속된 ‘오실 그분(호 에르코메노스)’이 맞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전혀 질적으로 다른 메시아(헤테론)’를 기다려야 합니까!”}
(1) 호 에르코메노스 (ὁ ἐρχόμενος): 오실 그이
현재분사형으로, 시편 118편 26절("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자여, 바라베쿠 하-바")과 다니엘 7장 13절에 기초한 ‘메시아를 가리키는 고유한 기술적 칭호(Technical term for the Messiah)’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증언했던 예수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묻고 있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증언했던 그 메시아가 당신이 맞다면, 왜 역사는 여전히 악인들의 손에 휘둘리고 있습니까? 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지체되고 있습니까?"
(2) 헤테론 (ἕτερον) vs 알론 (ἄλλον)
헬라어에서 '다른 것'을 가리키는 두 단어의 차이는 결정적입니다:
알로스 (ἄλλος): '동일한 종류의 또 다른 하나 (Another of the same kind).'
헤테로스 (ἕτερος): ‘본질과 성격이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 (Another of a different kind).’
요한은 '알론'이 아닌 ‘헤테론(ἕτερον)’을 썼습니다!
질문의 충격적 깊이:
*"예수여, 당신처럼 가난한 자나 고치고 죄인들과 식사나 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우리가 성경을 통해 고대해 왔던 ‘철장을 쥐고 악을 심판할 전혀 다른 종류의 강력한 메시아(헤테론)’*를 우리가 다시 찾아 나서야 한단 말입니까!"
4. 예수님의 응답: 이사야의 예언을 통한 메시아적 암호 해독 (마 11:4–5)
예수님은 요한의 도발적인 질문에 대해 "내가 메시아다, 아니다"라고 단순한 말로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요한의 제자들을 현장으로 이끄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포ρευ덴테스 아팡게일라테 요안네 아 아쿠에테 카이 블레페테)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튀플ロイ 아나블레푸신 카이 콜로이 페리파투신)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레프로이 카다리존타이 카이 코포이 아쿠우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카이 네크ロイ 에게이론타이 카이 프토코이 유앙겔리존타이)" (마 11:4–5)
이사야서의 6대 메시아 예언과 예수님의 성취
예수님의 이 답변은 구약 이사야서에 기록된 종말론적 메시아의 절대적 징표 4개 본문을 정확하게 교직해 내신 신학적 답변이었습니다:
[ 1. 맹인이 봄 (튀플로이 아나블레푸신) ] ──────> 이사야 29:18, 35: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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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못 걷는 자가 걸음 (콜로이 페리파투신) ] ─> 이사야 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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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못 듣는 자가 들음 (코포이 아쿠우신) ] ────> 이사야 29:18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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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병환자가 깨끗해짐 & 죽은 자의 부활 ] ───> 이사야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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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가난한 자에게 복음 전파 (유앙겔리존타이) ] ─> 이사야 61:1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τυφλοὶ\ ἀναβλέπουσιν\ καὶ\ χωλοὶ\ περιπατοῦσιν,}
{λεπροὶ\ καθαρίζονται\ καὶ\ κωφοὶ\ ἀκούουσιν,}
{καὶ\ νεκροὶ\ ἐγείρονται\ καὶ\ πτωχοὶ\ εὐαγγελίζονται׃}
예수님은 요한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요한아, 이사야 두루마리를 기억하라!
메시아의 가장 본질적인 표적은 로마 군대를 학살하는 정치적 피바람이 아니다.
메시아의 진짜 도래의 증거는 ‘사탄의 저주 아래 신음하던 병든 자들이 치유되고,
죽은 자가 부활하며, 영적으로 파산한 가난한 자들에게 하늘의 복음이 선포되는 것’이다!
보라, 내가 지금 그 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하고 있지 않느냐!"*
5. 생략된 한 구절의 신비: 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을 빼셨는가?
누가복음 4장 18–19절과 이사야 61장 1–2절을 대조할 때, 학자들을 전율하게 만드는 놀라운 디테일이 발견됩니다.
이사야 61장 1절에는 분명히 다음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그런데 마태복음 11장 5절에서 예수님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전하신 목록에는,
정작 감옥에 갇혀 있는 요한이 가장 듣고 싶어 했을 조항인 ‘포로 된 자의 석방(갇힌 자의 놓임)’이 의도적으로 생략되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구절을 빼셨습니까?
요한의 육체적 해방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
예수님은 요한에게 헛된 희망고문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은 감옥 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방식으로 구원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구약의 마지막 선구자로서, 피를 흘려 머리가 잘리는 ‘순교의 제물’로 자신의 사명을 완성해야 했습니다.
참된 해방의 본질:
진정한 해방은 감옥의 벽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비록 육신은 차디찬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영혼이 의심과 절망의 사슬에서 풀려나는 것’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6. 핵심 헬라어 강해: 스칸달리조(σκανδαλίζω) —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 (마 11:6)
이사야의 메시아적 표적들을 열거하신 예수님은,
마케루스의 요한의 심장을 정조준하는 성경 최고의 영적 경고이자 축복을 던지십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카이 마카리오스 에스틴 호스 에안 메 스칸달리스데 엔 에모이)" (마 11:6)
{καὶ\ μακάριός\ ἐστιν\ ὃς\ ἐὰν\ μὴ\ σκανδαλισθῇ\ ἐν\ ἐμοί׃}\quad (\textit{kai makarios estin hos ean mē skandalisthē en emoi})
{“카이 마카리오스 에스틴, 호스 에안 메 스칸달리스데 엔 에모이!”}
{“그리고 ‘나 때문에(엔 에모이)’ 걸려 넘어지지 아니하는 자(스칸달리스데)는, 참으로 복이 있도다(마카리오스)!”}
스칸달론(σκάνδαλον)의 3대 영적 의미
[ 1. 스칸달론의 원뜻 ] ──────> 짐승을 잡는 덫의 '미끼 막대기(Trigger stick of a trap)'
발로 건드리는 순간 덫이 쾅 닫히며 뼈를 부러뜨리는 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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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엔 에모이 (ἐν ἐμοί) ] ───> "나 때문에, 나로 인하여"
예수가 행하시는 방식이 내 상식과 기대에 맞지 않아 예수께 걸려 넘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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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마카리오스 (μακάριος) ] ─> 내 생각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방식을 끝까지 신뢰하는 자가 누릴 천상의 복
스칸달리조 (σκανδαλίζω): 걸려 넘어지다, 실족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덫에 걸려 파멸하는 상태입니다.
예수라는 거치는 돌 (벧전 2:8):
사람들은 예수가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을 때,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을 때,
자신이 그려놓은 메시아 상과 일치하지 않을 때 ‘예수라는 존재 자체에 걸려 넘어져 시험에 듭니다’.
3. 요한을 향한 거룩한 도전:
*"요한아, 내가 네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도끼를 휘두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너를 당장 저 지하 감옥에서 건져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의심하거나 실족하지 말라!
네 좁은 시야를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의 계획을 믿고,
끝까지 나를 신뢰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7. 구속사적 절정: 겟세마네의 침묵과 십자가의 고독한 밤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알렉산더 화이트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마케루스 요새 지하 감옥에서 세례 요한이 겪었던 고독과 의심의 밤을,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침묵 앞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독의 가장 깊은 인간적 모형으로 해설합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을 보십시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케루스의 세례 요한과 골고다의 예수 그리스도 대조
| 구분 | 마케루스 감옥의 세례 요한 (마 11장) | 갈보리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복음서) |
| 고난의 장소 | 사해 절벽의 어두운 지하 감옥 (데스모테리온) | 온 세상의 수치를 당하는 골고다 십자가 사형대 |
| 영혼의 탄식 |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다른 이를 기다립니까" |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 버려짐의 신비 | 감옥 문이 열리지 않고 침묵 속에 남겨짐 | 열두 군단 천사가 오지 않고 철저히 홀로 버려지심 |
| 고난의 이유 | 메시아의 길을 닦은 선구자의 대가 | 온 인류의 죗값을 치르시는 속죄양의 대가 |
| 최종 승리 | 흔들림을 극복하고 순교로 사명을 완수함 |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 |
세례 요한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진리를 외쳤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 문은 열리지 않았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보다 만 배나 더 억울한 자리,
단 하나의 죄도 없으신 온 우주의 창조주께서
인간들의 손에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살점이 뜯기시며
십자가에 벌거벗겨 매달리시는 ‘절대적 유기의 흑암’ 속으로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출을 경험하지 못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독생자를 향해 침묵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이사야 53장 10절의 증언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흠향할 제물(아샴, 속건제물)로 삼으셨음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그 캄캄한 감옥에서
홀로 버림받으시고 죽임당하셨기에,
오늘 마케루스 감옥 같은 고난과 의심의 흑암 속에 갇혀 있는 저와 여러분은
결코 영원히 버림받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고독과 버림받음의 무게를 친히 겪으셨기에,
오늘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흔들림과 한숨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찢기신 가슴으로 끌어안아 주시는 것입니다!
8. 목회적 적용과 묵상(1) 고난의 감옥에서 찾아오는 '의심과 회의'를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로 가져가라
믿음이 좋은 사람도 감옥에 갇히면 흔들립니다.
암 선고를 받고, 자녀가 무너지고, 사업이 부도나며,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을 만날 때,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가? 왜 나를 건져주지 않으시는가?"
의심의 구름이 영혼을 덮칠 수 있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 칭송받던 요한도 마케루스 감옥에서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위대함은, 그 회의를 품고 세상으로 도망치거나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고,
‘그 질문을 그대로 들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직행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쉬 에이 호 에르코메노스(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정직하게 질문하십시오.
당신의 아픔과 혼란을 감추지 말고 기도로 토해내십시오.
주님은 당신의 정직한 부르짖음을 결코 내치지 않으십니다.
(2) 내 상식과 기대의 틀을 깨고 '하나님의 구속사의 방식'을 수용하라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향해 나만의 각본을 써놓고 강요합니다:
"하나님, 이번 시험에 반드시 합격시켜 주셔야 합니다.
이번 주 안에 감옥 문을 부수고 홍해를 갈라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으실 때 실족합니다(스칸달리조).
내 좁은 안목의 감옥을 깨뜨리십시오!
예수님은 요한의 기대처럼 헤롯을 불태우지 않으셨지만,
눈먼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온 우주를 구원하는 더 거대한 십자가의 역사를 이루고 계셨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고난이 지속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손을 놓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저 너머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영혼을 영원한 알곡으로 빚어가시는 가장 완벽한 섭리의 퍼즐을 맞추고 계십니다.
(3)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는 음성을 붙들라
신앙의 가장 높은 성숙은,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기적을 베풀어 주실 때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내 몸이 차디찬 마케루스 감옥 바닥에 그대로 누워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속삭임을 들으십시오:
"마카리오스 에스틴 호스 에안 메 스칸달리스데 엔 에모이(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향해 삐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향해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십시오.
비록 감옥 문이 열리지 않고 순교의 이슬로 사라질지라도,
주님을 향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하늘의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9. 결론: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를 향하여
마태복음 11장 6절에서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장엄한 답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 소경이 보며 문둥이가 깨끗해지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리고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을 가슴에 담고
다시 마케루스 요새의 어두운 감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제자들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의 눈가에는 거룩한 슬픔과 경의가 교차했습니다.
군중들은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보라! 저 위대하다던 세례 요한도 감옥에 갇히더니 결국 의심에 빠져 비틀거리는구나. 한낱 실패자에 불과하구나!"
그러나 주님은 흔들리는 당신의 종 요한을 비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떠나자마자, 예수님은 군중을 향해 돌아서사
온 천하가 뒤집어질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영적 찬사를 터뜨리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리고 이어지는 성경 최대의 역설적 선언: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옛 언약의 최고봉과,
새 언약의 신비!
제8강: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와 천국의 지극히 작은 자 —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분기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