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연구] 욥기서 1-3장 - 욥의 고난과 좌절
주님의 시선
복음을 잉태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욥기는 하나님의 징계와 인간의 성화와의 연관과 더불어, 다시 오실 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리는 현 시대의 복잡한 조건과 맞서고 있는 성도들에게 전적인 순종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호에 울타리 안에서 분복을 누리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지만 사을 경건자의 평안을 시샘하여 어찌하든지 훼방 놓을 구실을 찾아낸다.
1. 경건자의 분복(욥1장)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가 사랑하는 자에게 부여해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분께 사랑을 드리는 자는 마땅히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욥의 행복은 어떠한가? 그리고 이러한 행복은 무엇으로 인해 오게 되었는가? 그러나 엄청난 축복을 누리던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잃고 만다. 이 고난이 누구로 인해 왔으며, 그 고난 가운에 욥이 취한 행위는 무엇인가?
1) 욥의 경건
옵은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 일컫음 받을 만큼 하나님과 사랑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대단한 복을 누리는 사람이었다 사랑스런 아내와 건강하고 충실한 열 자녀에 둘러싸여 늘 잔치를 벌이며 즐거워한다. 그 뿐인가? 그이 소유는 멀리 보이는 지평선이 울타리가 될 정도로 주변의 것이 거의 다 그의 것이었다.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모든 행복의 조건을 이상적으로 누리는 그의 모습은 동화 같이 아름답고 부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욥이 모두에게 흠모 받을 만큼 큰 복을 받은 것은 바로 그가 정직과 순전의 예복을 입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자" (욥1:1, 8)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한 가운데 사탄은 그의 이런 모든 복을 순식간에 빼앗아 버린다. 그러나 욥은 불평이나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 중에도 여호와를 찬양하는 믿음을 가졌다(욥1:20-22).
2) 완전한 경건
모범적으로 체계가 잘 잡힌 가정은 성스러운 학교와 같다. 이 작은 학교에서 다져진 교육은 사회의 장에서의 큰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욥은 복스럽게 풍성한 잔치를 베풀어 주는 것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잔치 후에 반드시 성결의 의식을 행하였다.
그것은 그가 자녀의 종교 교육에도 경건한 부모로서의 최대한의 의와 본을 보인 증거이다. 욥은 어느 절기에만 한다든지 나중에 하겠다는 등의 미루는 습관의 작은 죄도 용납지 않고, 신속한 실행과 변함없는 완전한 경건을 유지하였다.
욥의 의와 행복은 그의 이러한 흠잡을 데 없는 경건한 자세에 기인하고 있다.
2. 사탄의 공격(욥2:1-10)
파괴자, 참소자, 비난자인 사탄은 하나님의 은총의 젖줄에 시기함의 가위질을 하려고 끈질기게 노력한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욥1:9)라며 하나님이 욥만을 지나치게 복 주시다는 비난으로 하나님을 격동시킨다.
마침내 사탄은 매우 신속하고 잔인하리 만큼 철저하게 욥에게 더 큰 재난을 준다. 그 재난이 무엇이며, 그의 아내까지 욥에게 어떤 고난을 주는가?
1) 사탄의 제2차 공격
그렇게도 무참한 공격을 받은 욥은 과연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의인답게 의연하게 대처한다. 오히려 그는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찬송의 향연을 올려 보냈다. 분명코 이 점에서 사탄은 패배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탄은 자기의 패배를 부인하고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는 일(욥2:4)까지 허락을 받아내고야 만다. 그것은 욥이 재산과 자녀만 잃었지 가장 욥 자신의 생명인 육신은 멀쩡한 것을 보고 그 육신을 치겠다는 것이다.
그 후 욥의 피부에는 처참한 악창이 발생하여 순간의 고통이 아닌, 장구한 고통으로 이어진다. 그래도 그는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2:5)는 사탄의 예언을 빗나가에 하는 의연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자 사탄은 욥에게 단 하나 남은 또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 폭탄적인 선언을 하도록 충동질한다. 그 아내는 "그리도 순전을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2:9)고 당돌하게 제안한다. 참을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 점점 약해져 가는 욥의 의지에, 사랑하는 아내의 말은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욥은 어리석은 여자의 말로 치부하고 여전히 순전을 견지한다.
2) 욥의 신앙
욥은 모든 제물과 자녀를 잃은 시련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었으나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육체의 병과 아내의 배반은 도저히 참아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욥의 굳건한 신앙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한다.
3. 위로와 탄식(욥2:11-3:26)
아내마저도 떠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멸시받는 처지의 친구를 욥의 세 친구들은 찾아온다. 그의 친구들이 욥을 어떻게 위로했으며, 욥이 자신에 대해 어떤 탄식을 했는가?
1) 자신에 대한 탄식
욥의 몰락의 소식을 듣고 함께 찾아온 친구들은 욥의 몰골을 보고 통분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자기의 겉옷을 찢고,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칠일 칠야를 말없이 욥의 옆에 같이 앉아 있었다. 그 후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기까지 한다(욥3:1). 이것은 모든 고난과 재앙에 대해서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저주였다.
2) 진정한 신앙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성도들에게도 환난과 고난의 시험을 허락하신다. 이는 성도들의 신앙을 더욱 연단시켜 견고케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시므로(고전10:3)이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다.
욥의 고통을 능가할 만한 것은 겟세마네에서의 주님의 고통 이외에는 없다. 내적으로 고결하고 악에 대해서 완전히 떠난, 사랑하는 자가 받는 고통을 보시는 하나님은 슬픈 분노를 가지신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의 고통이 극복될 때까지 우정 어린 침묵의 응원을 보내 주신다. 십자가상의 주님께서 침묵했듯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는 그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섭리를 바꾸신다 해도 불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본문 해설
1. 고난
1) 악인의 고난
일반적으로 악인은 자기의 악한 행실과 범하는 죄로 인하여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된다(신31:17; 시32:10; 전2:32; 사32:10).
특히 악인은 많은 슬픔을 겪게 되며 일평생 근심하는 수고를 하게 되는데, 밤에도 쉬지 못할 정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되며, 출애굽 사건에서도 바로를 비롯한 하나님의 대적들이 자신의 강퍅함으로 고난받게 되자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영광이 되었다(출14:4).
또한 하나님은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즐거워할 때 저를 비웃으신다(시37:12, 13; 잠1:26, 27).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출원한 고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돌이켜 회개하거나 스스로 겸비하지 못하고 도리어 더욱 강퍅해지기 때문에 이러한 악인의 태도는 더욱 큰 재앙을 초래하기도 한다(신30:7; 느9:28, 29; 시55:19; 잠1:30, 31; 슥2:9; 7:11, 12).
2) 성도의 고난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시므로 설사 필요한 연단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가 연단을 잘 이겨 성공하도록 도우시며, 애초에 감당할 만한 시험만 허락하신다(시46:5, 7; 사43:2). 그 밖에 하나님은 환난날에 피난처와 산성이 되시며(시27:5, 6; 사25:4; 렘16:19), 위로자와 구원자가 되시는데(시34:17; 렘31:13; 고후1:4, 5), 때문에 그의 백성들을 도우시고 위로해 주신다(마11:28-30; 딤후4:17).
이렇게 필요한 연단으로 고생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시50:15), 긍휼이 여기시며 두려움과 죄의 수렁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시23:4; 사49:13). 또한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시며 우리를 감찰하사 그의 날개 밑으로 숨겨 주신다고 하셨다(시9:9, 10; 시27:5; 시31:7).
2. 목적론적(Teleological) 윤리
목적론적 윤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모든 존재는 선이라고 하는 일정한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는데 각각의 행위에 대한 목적은 다르다 할지라도 지고선(the hightest good)은 행복에 있다' 라는 주장이 효시가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후에 에피큐러스(Epicurus) 학파나 밴담(J. Bentham), 밀(J. S. Mill) 등의 공리주의에 영향을 주었는데, 결과에 대하여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이러한 윤리는 객관적, 보편적 선을 강조하는 의무론적(Deontological) 윤리와는 대조적으로 주관적인 요소가 강하게 개입될 수 있는 이론이다.
목적론적 윤리의 약점은 결과만을 중시함으로 실용주의나 공리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또한 의인이 받는 고난이나 정직한 삶에서의 고난 등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예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강론하신 팔복도 이 윤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3. 정직(Honesty)
우리의 본이 되시는 주님은 정직하신 분이시며(신32:4; 시25:8), 그의 판단과 행사 그리고 그의 교훈이 정직하시다(시19:8; 시119:137; 렘9:24). 또한 그의 말씀과 가르치는 도가 정직한 데(사45:19; 호14:9)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도 정직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정직한 그의 백성들을 기뻐하시며(대상29:17), 정직은 의인과 성도의 징표요 의무이기 때문이다(시1:1-3; 고후13:7). 정직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시33:1),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시107:42), 생명을 구하며(잠12:6), 여호와를 경외하여 악한 행위를 삼가한다(잠14:2; 잠16:17; 잠21:29).
이렇게 정직한 성도는 복을 누리게 되는데,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되며(시11:7), 하나님의 좋은 것을 누리고(시84:11), 구원을 선물로 받고, 주와 함께 거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시7:10; 시15:1, 2). 그 밖에도 기도 응답을 받게 된다든지 영광과 존영을 누리게 된다(시64:10; 사33:15-17).
4. 유대인의 교육
1) 초기 이스라엘의 교육
먼저 유목 및 농경 시대에는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마치 친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인식되었다. 또한 가족은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구성 단위로서 가장은 종교적인 권위와 지도력의 중심이 되었다.
때문에 가정은 유일한 교육 기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왕국 시대에는 민족들간의 분열과 동맹이 생김으로 그들을 지도할 왕권이 필요했으며, 왕권이 강화되면서 종교적 의식도 수반되었다. 또한 급격한 문화변동이 일어났는데, 소위 예언자의 학교에서 핵심적인 교육들이 행해졌다.
2) 후기 이스라엘과 신약 시대의 교육
포로기를 보내는 백성들의 의식은 자연히 미래에 대한 소망이 극대화를 이루었는데, 종교 교육의 교재였던 율법서가 교재로 주로 사용되었다.
한편 그리스도 시대의 교육도 전통적인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는데, 주로 스승이 가르치는 내용을 암기하는 데 주력했으며 계사의 통달과 해석이 유일한 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