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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역의 현재 단계.
미국 인디애나주 제퍼슨빌
1962년 9월 8일 저녁
*소 개*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님의 놀라운 사역은 말라기4장:5~6절, 누가복음17장:30절, 계시록10장:7절, 등등,
성경에 예언된 말씀에 대한 성령께서 입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의 세계적인 사역은 다른 여러 성경 예언들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이 마지막 때에 성령께서 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그의 사역은 신부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켜 휴거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이 메시지를 읽는 동안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비(마음 판=고후3:3)에 쓰이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정확하면서 편집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였지만, 영어 오디오 파일들이
브래넘 형제님이 하신 설교를 있는 그대로 전해 줄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설교한 1,100여개의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통역과 번역이 되어 있으며, www.messagehub.info 에서 다운로드 받고 인쇄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메시지 책자들을 보고자 하시면 한국성서교회 (biblechurch.kr) 를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 책자에 대해서 문의하실 일이 있으신 분들은 이 메일 주소는 biblechurch77@gmail.com 입니다.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바이블 애플 KJV 흠정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매우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길을 따라 많은 교제를 나누고, 멋진 집회를 가졌으며, 동부 해안과
서부 해안을 따라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이곳저곳에서 그리스도인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성회,
연합오순절, 하나님의교회, 포스퀘어 등 여러 교단교회들과 협력하여 훌륭한 집회를 가졌고, 다른 많은 단체들과도
잘 협력했습니다. 오늘날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부흥 복음가 입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볼 때 부흥은 이제 막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저는 교인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말씀으로 불타는 부흥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물론 그들 중 몇몇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제 저는 집에 돌아와 잠시 쉬고 있다가 주님의 뜻에 따라 몇 주 후에 다시 예배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제 친구들에게 이 글을 전합니다. 오늘 밤 여기 성막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 누구라도 이 자리에 참석해서 보셨다면, 오늘 밤 성막은 정말 따뜻합니다. 사람들이 사방이 꽉 차 있고,
실내에 서 있고, 밖에 차나 물건을 가지고 서 있고, 매우 더워서 사람들과 저에게도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제게 주신 사역에 따라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설명해 드리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성막에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봄에 마음속에 떠올랐지만 여기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녹음해서 세계 여러분에게 보내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2년 전, 주 예수님께서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 8번가와 펜 스트리트의 제퍼슨빌에서 150야드
떨어진 곳에, 당시에는 그저 늪지대에 불과했던 이 성막의 초석을 놓으신 날 아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왼쪽 길 건너편에 살았습니다. 결혼하기 전이었죠? 저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주 예수님께서
주춧돌을 놓는 날 아침, 이른 6시쯤에 저를 깨우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동안 침대에 누워 기쁨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주 하나님께서 저에게 설교할 성막을 주실 이 위대한 시간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저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는...이듬해 곧 제 아내가 될, 함께 가던 소녀가 초석을 놓는 날 저와 함께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여기 7번가 위층에 있는 방에 누워 있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누군가 "일어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일어났죠? 그리고 저는 멋진 장소를 보았는데, 마치 계곡에
강이 흐르는 곳 같았습니다. 강으로 내려가 보니 침례요한이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던 곳인데, 사람들이 그곳을
돼지우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는 동안 음성이 저에게 말씀하시며 저를 데리고 올라가셨는데, 저는 이 성막이 지금과 거의 같은
상태인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성막 안에는 지금과 같은 상태로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을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강단 뒤에 서서 "하나님, 성막을 주시니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행복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그것은 너의 성막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주님, 제 성막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다시 성령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한 숲에 내려놓으셨습니다. 숲 아래에는 높이가 20피트 정도 되는
나무들이 평평하게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은 과일나무처럼 보였고 커다란 녹색 통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오른손과 왼손에 빈 양동이가 양쪽에 있는 것을 보고 제가 "이것이 무슨 뜻이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네가 그 안에 심어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오른쪽 나무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뽑아서
오른쪽 양동이에 넣고, 왼손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뽑아 왼쪽 양동이에 넣었습니다. 순식간에 하늘까지 자랐습니다.
그분께서 "손을 내밀어 그 열매를 따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 손에는 부드럽고 잘 익은 커다란 노란
사과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다른 손에는 부드럽고 잘 익은 큰 노란 자두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들을
먹어라, 아주 맛있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에서, 또 다른 하나에서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환상은 <라이프 스토리>나 <선지자, 아프리카를 가다.>라는 책에 아마 기록되어 있을 것 입니다.
그때 저는 두 손 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외쳤어요. 갑자기 불기둥이 나무 위로 내려오더니 굉음과 번개가 번쩍이고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나무에서 나뭇잎이 날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 성막의 모양이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서 있었어요. 그리고 강단이 있을 곳의 끝에 나무 세 그루가 있었는데, 그 세 그루가 십자가모양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가운데 십자가 주위에 자두와 사과가 무리지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
빨리 달려가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이 십자가 옆에 엎드려서 두 팔을 십자가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십자가에서 열매가 제 위로 떨어졌어요. 저는 너무 행복했고 기뻐했어요.
그리고 그분께서 "먹음직하니 그 열매들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불이 빙빙 돌면서 "추수가 무르익었으나 일꾼이 적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가서 여기서 나오면 디모데후서4장을 읽어라. 디모데후서4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자신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거기 서서 얼굴과 손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방 한 구석에서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고 있었는데, 한 시간 이상 환상을 본 게 분명한데 "디모데후서4장"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저는 재빨리 성경을 꺼내 디모데후서4장을 읽었습니다. 지금 당장 읽고 싶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디모데후서4장을
읽으면서 제가 멈췄던 곳, 그리고 제가 이 성막에서 여러 번 설교했던 말씀이 여기인데, 제가 항상 그 부분에서
멈춘다는 것을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디모데후서4장의 처음 다섯 구절입니다. "5는 은혜"의 수입니다.
1.그러므로 내가 하나님 앞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곧 친히 나타나실 때에 자신의 왕국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2.말씀을 전파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
3.때가 이르리니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며 귀가 가려워 자기 욕심대로 자기를 위해 선생들을 쌓아
두고 4.또 진리로부터 귀를 돌이켜 꾸며 낸 이야기들로 돌아서리라.
5.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서 깨어 있고 고난을 견디며 복음 전도자의 일을 행하고 네 사역을 온전히 입증하라.
지난 5월이 되기 전까지 그 성경을 더 이상 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은 저에게 말씀을 전하고 고난을
참으며 오래 참으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건전한 교훈을 참지 못하고 자기 정욕을 좇아
귀가 가려워서 자기를 위해 교사들을 많이 두고 진리에서 돌아설 때가 올 것임으로 충분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가 전도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는 "전도자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는 것을 보세요. 어떻게 말하는지 보셨나요? "이제 너는 전도자로 부름을 받았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의 일을 하라."고 했어요. 보이시죠? 이제 우리는 거기서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제가
온 마음과 최선을 다해 말씀드리자면, 그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바로 그거죠. 그게 30년 전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그분이 제게 주신 모든 비전은 제가 천막 아래 작은 방이나 큰 강당 같은 작은 장소에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역으로 바뀌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제 눈에는 텐트처럼 보였어요.
2~3년 전 기억하시죠? 거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죠? 멕시코에 내려가서 그날 밤 비가 어떻게 내리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제 첫 번째 넓은 사역을 말씀해 주셨어요. 작은 물고기를 잡거나 놓친
것에 대해 기억하시나요? 두 번째는 작은 물고기였어요. 그런데 세 번째 당김에는 실패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아시겠죠?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 저는 항상 제가 하려는 일을 설명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냥 그분이 하라는 대로 하고 그냥 내버려두라고요. 아시죠?
하지만 저는 비밀이 없는 사람이라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다 말합니다. 제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놓치지 않도록 주님이 말하지 말라 하신 것이 아니라면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하려고
노력할 때까지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해요. 아시죠? 한 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가까이서 보고 싶어요.
이제 정확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너를 고발하노니 그의 왕국에 나타나실
때에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자"라는 구절을 잠시 공부해 보겠습니다. 보이시죠? "재판관...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너를 고발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오늘 밤까지 제가 아는 한, 저는 말씀만 전한 적이 없었고,
말씀에 충실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라."는 바로 그 말씀 때문에 많은 핍박과 시련을 겪었고, 많은 소중한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얼마 전에 제가 많은 성도들을 본 환상에 대해서 말한 것을 기억하실 텐데요,
제가 올라가서 그 사람들을 보고 저는 그곳에 있는 수백만 명의 먼저 간 성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은 더 높은 곳에 계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죽으면 바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자, 여러분도 이해하실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바쁘신가요? 그럼 시간을 갖고 최대한 명확하게 설명해드리죠?
우리는 이곳에 3차원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중 하나는 빛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입니다. 토미, 세 번째가 뭔지 기억나요? [누군가 뭔가를 말한다.] 응?
["아톰."] 아톰? [다른 사람이 "시간."] 시간입니다. 맞습니다. 자, “빛, 물질, 시간.” 그리고 우리의 오감은
이 세 가지 차원과 접촉합니다. 우리의 시각은 빛과 접촉하고, 우리의 느낌은 물질과 접촉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과학을 통해 4차원과 접촉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건물을 통해 들어오는 그림, 라디오의 음성,
텔레비전의 그림은 우리의 감각이 그것과 접촉하지 않지만, 그 에테르 파를 포착하여 나타내는 튜브나 크리스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건물 안에는 사람들의 생생한 행동, 공기, 생생한 목소리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로는 보거나 들을 수 없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진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는 유일한 일은, 그들이 그것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저는 과학이 발명해낸 그런 것들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4차원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다섯 번째 차원은 죄인, 불신자가 죽어서 가는 곳입니다. 다섯 번째 차원은 일종의, 음, 끔찍한 차원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6차원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7차원에 계십니다.
이제 보시다시피, 그리스도인은 죽으면 하나님의 제단 아래,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아래, 제단 아래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장소에서 안식을 취합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사람이 악몽을 꾸는 것은 완전히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잠과 각성
사이에 있기 때문에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끔찍하게 몸을 떨고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사람이 회심하지 못하고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살았고
지상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피 없이는 그곳에 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면전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잡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상에서 그의 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지상으로 돌아올 수 없으며 그 사이에
갇혀 악몽에 빠져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하나님의 면전으로 가서 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돌아올 수도 없고 지상에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그는 악몽 속에 있고 심판의 날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끔찍한 일이죠? 그리고 지금 이 환상에서 저는 6차원에 갇혀서 이 아래를 돌아보고 다시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보십시오, 그 시력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것입니다. 그러나 시력은 그보다 더
위대한 것입니다...그곳에서 그들이 가진 시력은 우리의 자연적인 감각이 접촉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한 남자를 바다 속 2마일이나 1마일 깊이에 내려 보냈는데 광선 조명이
꺼져 있는 텔레비전 사진을 보고 있었어요. 해양 생물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그리고 끔찍하게 생긴 물고기가
다가왔어요. 한밤중이었는데 저 아래는 먹물처럼 검었어요. 코에는 인이 묻어 있었고 눈은 없었어요. 먹이를
찾으려면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안내를 받아야 하는데, 눈이 없어서 아래에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은 다른 감각을 통해 먹이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시각으로 저 작은 물고기를
조종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큰 시각으로 먹이를 공급하고 장소를 안내할 수 있을까? 저 물고기가 접촉하는
레이더보다 내 시각이 얼마나 더 큰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저는 “내가 그를 이끌 수만 있다면!”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하나님께 내 자신을 맡길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믿음은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에 네가 보는 것들보다 훨씬 더 우리를 인도하실 하나님의
시력과 감각이 얼마나 더 크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작은 물고기는 수압의 압력을 받아 다른
물고기처럼 물 위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그를 끌어올리면 폭발할 것입니다. 우리가 더 높이 올라가서 폭발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작은 물고기가 여기 올라와서 내가 될 수 있다면, 저 한밤중의 어둠 속에서 다시 저 작은 물고기가
되고 싶을까요? 그는 더 이상 물고기가 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물고기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고,
감각도 더 뛰어나고, 이해력도 더 뛰어나고, 지성도 더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거기에 천만 명을 곱하면
인간이 여기보다 훨씬 더 멀리 있는 저 너머의 신의 현존으로 넘어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병과 부패의 소굴에서 더 이상 이런 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이 있고,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며, 여러분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면 언제든 당신을 데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구속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밧줄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그는 "밧줄, 내가 스스로 빠져나올 수는 있지만 나는 밧줄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밧줄은 바로 그 목적, 즉 물에 빠진 사람을 끌어올리기 위해 거기에 놓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오늘 밤 이곳에
있는 모든 죄인의 머리 위로 지나갈 영생의 밧줄을 매달아 놓으셨고, "이 밧줄로 나오라."는 환영의 표시를 걸어
놓으셨습니다.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 준비는 끝났습니다. 저는 그 밧줄을 선택하고 6차원에 이미 먼저가 있었던
몸이 변화된 성도들을 그 장소에서 만나 보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 세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몸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나의 귀한 형제여,”라며 뜨겁게 안아주었습니다.
그곳에는 죄가 있을 수 없었고, 죽음도, 그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
않았고, 단지 성선이 사라졌을 뿐 간음도 더 이상 있을 수 없었고, 아무것도 오직 사랑만이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여자였고, 남자는 여전히 남자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이...
고등학생인 여러분 중 일부는 진화론에 대해 배우고 있을 겁니다. 저는 진화를 믿지만, 인간이 하등한 종에서
진화했다는 방식은 믿지 않습니다. 그들의 이론은 교배를 시도하면 스스로 번식하지 못한다는 역효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역효과가 났죠? 저는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하시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온 것이 해파리였고,
그 다음에는 개구리, 그리고 그 다음에는 파충류가 나왔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인간의 형상에 점점
더 가까워졌고, 인간은 하나님의 반영이었습니다. 그래서 풀이 풀로, 풀에서 꽃으로, 꽃에서 관목으로, 관목에서
나무로 진화하게 된 것이죠. 왜? 반대편에 서 있는 생명나무의 그림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쪽의 자연적인 모든
것은 저쪽의 초자연적인 것 또는 영원한 것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있는 한,
그리고 우리가 이런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은 죽음과 슬픔이 없는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그런 것을 갈망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는 무언가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그것이 거기 있다고 말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 세월 동안 어리석고 많은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해 하나님과 국민 여러분 앞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이 오랜 세월 동안 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렸고,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이 그날에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그 비전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떻게 그 5절에서 멈출 수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제가 읽은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 장에는 몇 구절이 더 있습니다. 자, 오늘 밤 호텔 방이나 집에서 우리가 해산하자마자
나머지 부분을 읽어보세요. 제가 참고하고 싶은 성경 구절과 참고하고 싶은 메모가 여기 적혀 있으니까요.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인용할 테니 테이프에 적어두세요. 몇 개는 메모하고 싶어도 괜찮아요.
자, 여러분도 알다시피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일을 한다는 것을 믿습니까? 보이시죠?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여러분도 눈치 챘다면, 저와 함께 누가복음4장을 잠시 넘겨보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놀라운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많은 참고 문헌을 언급하지 않기 위해 여기서 잠깐만
저와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4장14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시려면
여기를 자세히 보세요. 이제 주목하세요. “14.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시매 그분의 명성이
주변 온 지역에 두루 퍼지니라. 15.그분께서 그들의 회당들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시더라.
16.그분께서 자기가 자라난 나사렛에 가사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읽으려고 서시니 17.섬기는
자가 선지자 이사야의 책을 그분께 넘겨드리거늘 그분께서 그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라.
일렀으되, 18.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며 포로 된 자들에게 구출을,
눈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자유하게 하며 19.주의 받아 주시는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그분께서 책을 덮어 섬기는 자에게 다시 주시고...눈이 다 그분에게 고정되거늘
21...이 성경 기록이 이날 너희 귀에 성취되었느니라. 하시니”
자, 원하신다면, 참고하고 싶으시다면, 여기 여백의 독서에서 잠깐만 읽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과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이사야61장1~2절에도 있습니다. 자, 그분이 바로 거기서 멈추시고 바로 다음 구절이...
그분의 초림에 적용되었던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두 번째, 다음 구절은 그분의 재림, 심판에 적용되고
있는데, 그는 멈추고 책을 덮었습니다. 스코필드 성경을 읽고 계신 분이 있다면 거기서 각주를 보실 수 있습니다.
보이시죠? 각주, 각주에 표시된 각주를 잘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61장1~2절에 인용된 메시지와 비교하면
여기서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기뻐 받으시는 은혜의 해”를 설교해야 했습니다.
다음 구절은 그분의 다시 오심과 심판이 나옵니다. 보이시죠? 그리고 그분이 어떻게 거기서 멈췄는지 보셨죠?
그리고 저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고 항상 디모데후서4:5절에서 멈췄습니다.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않고
귀가 가려워서 스승을 쌓고 진리에서 우화로 돌이킬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자의 일을 하고 너의 사역을
온전히 입증하라." 보이시죠? 저는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 있는
제 친구들이나 이 테이프가 전달될 땅의 친구들이 제가 말씀에 대한 입장을 취한 이유가 바로 "말씀을 전하라"는
바로 이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어떤 신조나 교파에 얽매이지 않는 이유이며,
말씀과 함께 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른 사람이 다른 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제 사역에 대한 환상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한 번도 그 나무를 건넌 적이 없습니다.
전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삼위일체론자 여러분 모두 하나가 되십시오." 또는 "삼위일체론자 여러분 모두 하나가
되십시오."라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그들 자신의 그릇에 심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삼위일체론자에게도
갔고, 하나 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갔고, 모든 사람에게 갔고, 그 사이에 머물렀고, 그 어느 누구와도 조직하지
않고 그 환상이 말한 대로 형제가 되어 그 사이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저는 양쪽의 열매, 양쪽의 구원을 모두
먹었습니다. 이제 여기 삼위일체론자들이 많이 앉아 있고, 하나 됨도 많고, 다른 것도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까?
그러나 환상의 그 부분이 사실이라면 다른 부분도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얼마나 소란스러워 할 것입니까?
두 열매 모두 십자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보이시죠? 둘 다 십자가 안에 있었고, 모두 함께 모여 있었고, 자두와
배, 복숭아, 자두와 사과가 모두 저에게 쏟아졌습니다. 둘 다요. 모두 하나님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인의 일과 표적이 따르기 때문에 모두 십자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제 조직과 교단들은 그것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거듭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여러분의 경험이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가 참고하고 싶은 성경 구절이 몇 개 있습니다. 조금 후에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제 디모데후서4장6절부터 18절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읽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바울이 디모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바울이 어떻게 말하기 시작하는지 보시면 안타깝습니다.
6.이제 내가 내 자신을 헌물로 드릴 준비가 되었고... 나의 떠날 때가 가까이 이르렀도다.
현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나는..." 잘 봐요 "내..." ...나는 준비되었고, 떠날 때가 가까웠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8.그러므로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9.너는 서둘러서 조만간 내게로 오라. (왜죠? 겉옷을 가져오라? 책들을 가져오라, 특별히 양피지들을 가져오라.)
10.데마는 현재의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났으며...그레스켄은 갈라디아로, 디도는...
그가 젊은 전도자, 젊은 선지자였을 때 모든 사람이 그를 위해 일했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무엇 때문에? 그 시대의 계시된 말씀 때문에.=영생의 말씀)
갈릴리의 젊은 선지자 예수님도 버림받은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은 세상과
그 당시의 모든 종교계로부터 버림받는 그 자리까지 도달합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오천 명을 먹이셨고, 그들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조각으로 가득 찬 바구니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예수님은
말씀과 함께 내려오기 시작하셨고,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너희도 가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그분께서 안수하신 70명의 목사들도 그분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너희도 가려느냐?"고 말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주목할 만한 말을 하셨습니다. “주님에게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진리는 항상 그렇게 버림받을 때가 올 것이고, 반드시 와야만 합니다. 반드시 오겠죠?
그리고 그 때가 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기에 여러 선지자들과 참고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제게도 왔습니다. 마치 없는 것처럼 노력할 필요 없이 여기 있으니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담대히 서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나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나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 세상에! 여기 아래에는 "나는 짐승들과 싸웠고. 그리고 사자의 입에서 구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갔던 일들, 하나님은 그에게 선하셨어요. 그러나 그가 떠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자, 왜 데마처럼 바울과 같은 사역자이자 동료였던 사람이 바울을 떠났을까요?
여러분은 백스터 형제를 잘 알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합니다. 그는 데마에 관한 책을 읽곤 했어요.
"브래넘 형제님, 제가 천국에 가면 제일 먼저 할 일이 뭔지 아세요?"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제가 "뭐요?"라고 물었죠? 그는 "바로 가서 데마가 있는 곳을 찾아서 최대한 세게 때려눕힐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서서 '박스터, 왜 그랬어?'라고 말할 거예요." "모두가 폴을 버렸는데 왜 불쌍한
폴을 버린 거야?"라고 말할거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들이 거기서 싸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저는 백스터 형제가 폴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할 수 있는 한 충성스럽게 설교했고,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셨어요.
그런데 그가 여성 사역자들과 그런 것들에 대해 설교했을 때, 아마 폭발이 일어났을 거예요.
"여자들은 교회에서 침묵을 지키고 말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고, 그는 바로 그때 감옥에 갇혔어요.
주교들 중 몇 명이 뭐라고 말했는지 상상할 수 있나요? "어! 저기 감옥에 있는 저 남자가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 아시겠죠? 그리고 그는 술꾼인 디모데를 데리고 있어요. 그래서 그는 지금 저기서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먹이고 있고, 여기 감옥에 누워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는지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만약...뭐요?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에게서 나오고 당신에게서만 나온다면? 누구든지 자신을
영적인 사람이나 선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쓰는 것이 주님의 계명임을 인정하게 하십시오."
알겠지요?
여러분,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테이프가 전해지고 있는 곳의 사람들이 헤어질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종말의 시간, 제 종착역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그것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내일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누가
그것을 들고 있는지는 압니다. 그래서 제 믿음은 거기에 있습니다. 이제 데마가 그를 버리고 나이트클럽으로
향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데마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훌륭한 조력자였어요. 데마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는 주목할 만한 설교자였고, 교양과 겸손을 갖춘 훌륭한
교양인이었으며, 고도로 세련되고 교육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을
버렸을까요? 그게 문제입니다. 그가 바울을 버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가 나이트클럽에 가고 싶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는 하나님이 바울을 갈라놓으셨다고 믿습니다. 저는 데마의 생각을 좀 들어봅시다.
저는 언덕배기에 앉아서 낮에 생각하다가 "데마가 왜 저 친구를 떠나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주님께로 인도한 그 불쌍한 설교자, 이방인들 사이에서 부흥의 선봉에 선 사람, 참으로 선지자를 왜
떠나려 할까? 아무도 그가 선지자라는 것 외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선지자 그 이상이었으며, 이방인들에게
위대한 능력있는 사도였습니다. 그리고 데마는 바울과 교제했고, 하나님의 영이 바울에게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증명했다면 왜 그런 사람에게 등을 돌렸을까요?
여기서 바울이 "이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한 것을 보셨나요? 이제 데마가 물러서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가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바울에 대해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데마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부유했고, 사람들에게 돈은 때때로 종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캐딜락 세 대가 없으면 영적이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요. 즉, 성공하지 못하면 도시에서 가장 훌륭한 교회가
없으면 사람들이 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기도 거의 그런 상황이에요, 푸그.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교회를
가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너, 너, 너 그런 작은 무리에 합류했어?"라고 말하겠지.
우리 주님께서 머리 둘 곳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그분께서 외투를 한 벌만 소유하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보이시죠? 그리고 그분은... 그분은 그냥 밀려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머리 둘 곳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들도 그분에 대해 똑같이 생각할 수 있었고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이제 저는 데마가 바울의 사역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는 바울에게 주려고 눈을 뽑아 줄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적어도 눈을 뽑아 내게 주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면 바울은 눈이 나빴던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큰 글씨로 썼어요."라고 말했기 때문이죠. 그는 "큰 글자"라고
말했지만, 제가 사전을 찾아보니 "큰 글자로"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는 로마에 있었고 감옥에 있었어요.
천상의 환상을 본 후부터 눈이 괴롭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는...사람들은 바울이 고통 받고, 눈이 괴로워하고,
고통받는 것을 보고 눈을 뽑아 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 세 번이나 고쳐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계시록의 풍성함보다 더 높임을 받지 않으면 마귀의 사자를 보내어 나를 먹게 하려고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꽤 좋아졌다가 다시 그를 때릴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좋아져서 다시 그를 때렸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사역을 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나는 예수와 함께 걸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여기 계실 때 길거리의 사람이 그분과 함께 걸었으니까요.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묻히시고, 승천하신 후 불기둥에서 그분을 보았고, 다메섹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시 돌아와서 바울을 불렀어요, 보세요, 보세요. 그리고 그는 마태, 마가, 누가, 또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큰 사역을 했습니다. 그는 그들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높아져서
'너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만 빼고요. 나는 주님의 부활 후에 주님을 보았다'라고 말하는 것만 빼고요.”
그들은 "우리는 그분과 함께 걸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갈릴리와 나사렛, 그리고 그 지방의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분이 육신이 되기
전의 모습으로 그분을 뵈었습니다. 보이시죠? 그리고 그분은 그 빛 가운데 계실 때 그 상태에서 바울을
위임하셨습니다. 그분은 바울을 위임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여러분 형제들보다 조금 더 높다고 느끼는 것 외에는 마귀의 사자가 내게 주어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는 그것을 내게서 빼앗아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구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바울아, 바울아, 내 은혜가 충분하도다.'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내가 약할 때 비로소 내가 강해지므로
나는 내 약함에 대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보세요, 저는 그것으로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자, 여러분은 이제야 알았습니까? 현장에 있던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역을 한 사람, 불기둥을 타고
오신 예수님을 보고, 그분이 하신 일을 그에게 맡기고, 동일한 하나님과 동일한 능력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표적과 기사로 증명된 바울, 그는 너무 가난해서 외투 하나만 가지고 눈을 뽑을 만한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그들 가운데는 백만장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외투 한 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기 추우니 그 코트를 가져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산골에 있었습니다. 그는 외투가 한 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데마는 높은 지위에 있고, 교양과 학식을 갖추고, 옷을 많이 갈아입는 부자였던 사람에게
"저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눈알을 뽑아 줄 친구가 너무 많았는데도 외투가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폴은 뭔가 잘못됐어요."
오, 그 정신은 세상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돈은 신이 아닙니다. 신은 오직 한 분뿐이죠. 아시겠죠?
하지만 사람들은 당신이 큰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 이 모든 큰 것들, 큰 학교, 큰 것들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다루지 않으세요.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다루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런 일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외투 한 벌을 가지고 디모데에게 날씨가 추워지니 가져다 달라고 말합니다. 그렇군요.
바울처럼 수만 명에게 설교하고 온갖 기적을 행하는 사역을 하고, 불기둥에서 예수님을 보고 사명을 받은 사람,
그런데도 외투 한 벌을 소유한 사람. 데마는 "저런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를 외면했습니다.
바울이 트로아를 향해 설교하고 계실 때, 저 위에 있는 한 남자가 구리 세공사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악당이었어요. 그리고 그는 기독교를 싫어했죠. 그리고 그는 바울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했고, 감옥에
던져 넣었고, 심지어 바울은 디모데에게 "저 사람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여기 데마가 있습니다!
오 하나님, 사람들이 듣게 하소서! 여기 데마가 한 남자와 다투다가 그 남자의 눈을 찌른 사람 곁에 서 있었어요.
자, 그리스도의 교회 설교자 여러분, 이제 외투를 입으세요.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죠,
"내 눈을 쳐라! 내 눈을 때려! 당신은 성령을 받았으니 내 눈을 때려요!"라고 말했어요.
저는 "당신은 이미 장님입니다." 라고 대답했죠. 아시겠죠?
자, 바울은 왜 대장장이의 눈을 때리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똑같은 종류의 영이
데마에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다투었다는 이유로 소경을 때릴 수 있는 사람, 그러고도 돌아서서
성에서 자신의 사역을 망치는 구리 세공인을 내버려둘 수 있는 사람. 의심할 여지없이 데마는
"그는, 그는 모든 은사를 다 잃어버렸다. 그는 맹인을 치는 은사도 잃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영이 여전히 살아서 "형제여, 너는 다 씻겨졌구나."라고 말하는 게 보이지 않나요? 오! 그건 그냥 사람들의
머리 위로 지나가죠.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단지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들은 이해하지 못해요.
이제 데마는...자기가 원해서 그 사람을 소경으로 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먼저 보여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몇 년 전에 제 어머니가 누워 죽어가고 있을 때
"빌, 내 결과가 어때요?"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되었는데, 인간은 애초에 실패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대리인일 뿐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일하십니다. 하지만 항상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슈퍼 슈퍼한 사람들을 보면 멀리하는 게 좋습니다.
보이시죠? 예수님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그분은 "나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대로 일할 뿐입니다. 그분은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시고 나는 그것을 하러 간다. 나는 그것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데마는 그런 사역을 하고 있으면서도 너무 가난해서 외투 한 벌밖에 없는 바울을 보고 디모데에게 외투를
가져다주기를 원했습니다. 외투 한 벌!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처럼 외투 한 벌을 가지고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에게 부와 많은 돈과 물건이 왜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요? 지금 주목하세요. 그리고
그는 자신이 설교한 내용에 반대하는 사람을 향해 "너는 한동안 눈이 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할 때까지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눈이 멀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한 대장장이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한 일을 열
번이나 당하고도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데마는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저 늙은이는 이제 끝났어. 그는 사역을
잃었어." 아니, 아니, 그는 사역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인디언처럼
베푸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래요 이제 주목하세요. 바울은 엘리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산에 올라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도록 불렀고,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물을 불렀고 물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명령하여 제사장 사백 명을 죽이고 목을 베어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한 다음, 한 여자, 즉 한 위선자 여인의 위협에 달려가서 이교도였던 이세벨을 죽였을 것 같지만,
그 여자가 모든 일의 핵심이었고, 그 여자가 모든 일을 일으켰어요. 그가 그녀를 먼저 잡아야 할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일의 방식이 있고 그분의 종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할 때만 일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움직이시는 방식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저는 형제 평의회에 몇 번이나 가서 악수하며
"형제 여러분, 아무 상관없으니 그냥 함께 형제가 되자."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나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하면서도 '말씀을 전파하라.'는 제 사명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목사님들 사이에 서서 "브래넘 형제님, 이모가 여기 계세요. 저는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는 것을
압니다. 가서 이모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세요."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분이 시킬 때까지는 할 수
없어요. 아시겠죠? 아무도 할 수 없었어요. 엘리야도 할 수 없었고 다른 누구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울이...바울과 함께 설교하는 데마가 바울이 거기 누워 있는 앉은뱅이를 보고 말하기를,
"나는 당신이 고침을 받을 믿음이 있는 줄로 압니다. 일어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낫게 해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병자를 고치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친구 데오빌로는 병든 채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바울은 사역을 잃었습니다." 데마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에게 치유의 은사가 있었다면 왜 그토록
신실하게 곁을 지켰던 친구를 치유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내가 그 친구를 아프게 내버려뒀어요. 그리고 저는
코트가 없으니 그 코트를 가져다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조심하세요, 그 대장장이가 방금 도시에서 집회를
망쳤어요. 마을을 떠나야 했어요. 그가 날 감옥에 넣었거든요." 데마는 "도대체 어떤 설교자냐?"라고
말했을 거예요. 어? 그리고 형제여, 오늘날 세상에는 데마의 혼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아시겠죠? 어차피 이해하지 못하니 설명할 필요도 없죠. 알겠죠? 알겠어요?
그리스도의 종은 발자국을 따라갑니다.
여기 집사님 중 한 분, 오늘 여기 계신지 모르겠지만 토니 자벨입니다. 그는 보통 여기 근처에 있죠. 얼마 전에
저한테 와서 여기 오기 전에...여기 와서 말하길 "꿈을 꿨어요, 재미있는 꿈을 꿨어요"라고 했어요.
"천국을 향해 위로 올라가는 꿈을 꿨어요."라고 하더군요. 그는 "어떤 남자가 검은 옷을 입고 오는데 책을 읽고
있었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리고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천국으로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그는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그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그는 조금 더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 검은 옷 입고 찬양을 부르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또 다른 목사였어요.
두 사람 모두 제 개인적인 친구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그리고 좋은 사람이에요. "여기 산 정상은 어느
쪽으로 올라가야 하나요?" 그가 말했죠, '여기 보세요. '저기 저 위에 서 있는 저 작은 녀석 보이지?' 하더군요.
저는 '네'라고 대답했죠." "거기에는 작은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일부 편집됨]
켄터키에서 어떤 사람이 저에 대해 말하면서 "저 사람은 설교자처럼 생겼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농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겉모습은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저 위에 서 있는 게 저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저에게 다가올 때까지
올라가더니 제가 팔을 잡고 언덕 꼭대기에 올라갈 때까지 끌고 갔다고 했어요. 그리고 황야를 통과해야 했죠.
그래서 저는 "토니, 난 당신을 여기 두고 가야 하니까 혼자서 걸어가야 해요."라고 말했죠.
그는 "브래넘 형제님, 여기서부터 제가 뭘 하면 되나요?"라고 물었죠.
그래서 제가 말했죠. "이리 와요, 토니, 저 아래를 봐요. 맨발에 피가 묻은 발자국이 보이죠?"라고 말했어요.
제가 말했죠. "그게 제가 여기까지 걸어온 길이에요. 그냥 계속 가세요." 신조나 어떤 감각이 아니라 성경으로
이어진 피 묻은 발자국,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키는 것이 제가 사람들에게 가리킬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자, 백만장자 친구들과 코트 한 벌을 가진 그 남자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한 남자의 눈을 멀게 하고, 한 남자를
마을 밖으로 내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어요. 병자를 위해
기도하고 친구를 병든 채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데마도 그를 떠났어요.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떠났어요. 모두 그를 떠났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들 모두가 그를 떠났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이 한 번의 모임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모임에서 말씀에 충실할 때, 한 사람이
말씀에 충실할 때, 그들이 그를 떠날 때가 올 것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께도 그렇게 했습니다. 진리를 옹호할 때 사람들은 그를 떠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
성경을 아는 우리 모두가 누가가 의사였고, 바울이 어디를 가든 의사를 데리고 다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데마와
그들 중 몇몇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까? 그리고 신의 치유를 설교하고 그의 친구를 병든 채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외투가 하나뿐이었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를 마을 밖으로 쫓아내게
했어요. 눈먼 사람을 때릴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가 다 나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어! 그는 피 묻은
발자국을 그대로 밟고 있었어요.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어.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고
하셨어. 데마는, 이 현세와 인간의 인기를 사랑했지. "안녕하세요, 데마 박사님. 박사학위 받으신 거 알아요!"
오, 물론, 그들은 그것을 좋아합니다. 예수께서 "회당에 서서 '랍비'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넌 더 많은 저주를 받을 뿐이야." 라고 말했죠. 보이시죠?
자, 우리는 그들이 이 의사가 그를 따르는 것을 보았을 때, 또는 그와 함께 바울이 누가를 데려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는-누가만이 버리지 않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누가는 그에게 잘해줬어요. 그러나 누가는
그에게 형통합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누가가 필요해요." 그리고 이 의사는 어디를 가든지 한 남자를 따라
다니며 하나님의 치유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치유를 전파하는 사람은 불구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강력한 환상을 보고 이루어질 일을 말할 수 있었는데, 자기 동료를 병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백만 달러를 가지고 수만 달러 상당의 건물과 큰 학교와 그런 것들을 지을 수 있었지만 등에 걸칠 외투
하나도 없었습니다. 데마는 "전 그런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는 그냥...저급한 사람입니다. 나는 교단 형제와
함께 올라갈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가 될 곳으로 올라갈 거야." 그런 일이었다면 백스터가 통과한 직후, 그 불쌍한
녀석을 저 모양으로 남겨둔 것에 대해 걸어가고 싶었습니다. 바울이 그 옆에 서 있었어야 했어요. 바울은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영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안 돼요. 아시겠죠? 그러나 그는 그를 그 상태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를 떠났다고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버렸습니다.
내 생각은 어때! 말씀에 충실할 종은 조만간 사람들이 그를 버릴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조금 후에 마치고 싶어요,
너무 오래 붙잡아 두지 않을게요, 아침에는 여기 있어야 하니까요. 항상 하나님의 종이 말씀에 충실하면 모두가
그를 버립니다. 자, 성경이나 역사 속 어디에서든,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말씀에 충실했을 때, 종교계가 그를
버리고 단절할 때가 왔다는 것을 원하시면 어디든 가져가세요. 자,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어보고
니케아 공의회 이전부터 니케아 교부들까지 읽어보면 모든 사람, 모든 성인, 모든 선지자, 말씀에 머물렀던 모든
참된 하나님의 종들은 교회적인 것에 의해 버림받고 버림받았습니다. 바울도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똑같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진실입니다. 당신은 그 곳을 쳐야합니다.
와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역을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손아귀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야 하지만
세상은 그의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아시겠죠? 그런 사람은 사역이나 세상을 자신의 손아귀에 두지 않고
스승의 손아귀에 두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명예를 구하려고 하고, 서로를 명예롭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합니다.
보이시죠? 우리는 우리 가운데 큰 사람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큰 사람도 아니고 작은 사람도 아닌 우리 모두는
작은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 큰 분은 오직 한 분, 우리 주님뿐입니다. 보이시죠? 그런데 우리는 우리
조직을 하나님보다 훨씬 더 크게 만들어서 "이 위대한 거룩한 교회, 저 위대한 거룩한 교회, 저 위대한 거룩한
주교" 등으로 만듭니다. 그런 건 없어요. 그것은 인간의 명예입니다. 거룩한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인 성령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보면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일을 행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버지입니다. 그분은 내 안에 거하시며, 그분은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것은 그분이 아닙니다. 맞아요.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종들을 발견합니다.
이제 제가 잠시 연습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씀에 충실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버릴 때까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개입하여 그의 사역에 면류관을 씌울 때까지 보통 이런 시기에
있습니다. 맞습니다.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우리의 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에 있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말하든, 세상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우리의 소망이 아니며, 세상이 하는 일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저 찬양 너무 좋아요. 나도 찬양하고 싶어요. 항상 찬양하고 싶었어요. 아시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아니하리로다
주여, 내게 기다림을 가르치소서. 주여, 무릎 꿇고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마음에 드는 기도입니다.
"주님의 때가 되면 제 간구에 응답해 주실 것이니,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응답을 기도로
기다리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바로 그겁니다. 성경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주인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참된 종입니다. 성경은 사실이어야 합니다. 그런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돕기 위해
개입하실 때입니다. 엘리야가 버림받았을 때를 살펴봅시다. 왜 그랬을까요? 그가 말씀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회에서, 조직에서, 심지어 국가 조직인 이스라엘
민족 교회에서 파문당했고, 제사장과 모든 사람들이 그를 쫓아냈으며, 바울처럼 외투도 없이 작은 양가죽 조각이나
가죽을 두른 채 산에 올라가 새들의 먹이를 먹었습니다. 네, 선생님. 왜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했기 때문이죠.
여호와의 말씀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두 현대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땅의 영부인 이세벨은 모든 패션과
물건들을 다 가져갔어요. 그리고 제사장들도 거기에 굴복했고 모든 설교자들도 거기에 동조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말씀에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저만 남았는데 저들이 제 목숨까지 구합니다."라고 외칠 때까지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위로를 주시며 "아직 7천 명이 남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자만하지 않았고, 버림받았다 생각했을 겁니다. 그가 집회를 하러 사제에게 올라갈
때마다 그들은 그를 내쫓았어요. "이 광신도야, 여기서 나가! 여기서 나가! 가서 이 일을 해!" 엘리사의 후계자인
엘리사가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그들은 심지어 그 젊은 친구는 대머리였고, 그들은
어린 아이들을 내보내서 늙은 "돌팔이"를 놀리게 했습니다. 두 사람 다 돌팔이라고 하면서 "늙은 대머리! 대머리야,
왜 엘리야처럼 올라가지 않았니?"라고 말했어요. 그들은 그가 올라갔다고 믿지 않았어요. 그렇죠. 아시겠죠?
그냥 돌팔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엘리야는 말씀에 충실했고 검증된 사역을 했어요. 엘리야는 일어섰어요. 그래요.
다니엘은 진실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다니엘서9장, 다니엘서12장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데, 저는 그렇게 믿어요.
다니엘은 말씀에 대한 진정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왕의 오른팔이었지만 말씀에
진실하게 서서 파문당하고 사자 굴에 던져졌어요. 말씀에 진실하게 서 있는 하나님의 사람!
히브리 어린이들은 "나팔 소리와 나팔을 불 때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우리의 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사람은 풀무 불에 던져지리라."는 왕의 선포에 따라 말씀에 충실하여 신상을 등지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다시...그들은 아무리 인기가 없어져도, 사회에서 파문당해도 말씀에 충실했습니다. 그게 마음에 듭니다.
야곱, 또 다른. 그는...오랫동안 집을 떠나있었고, 가족을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부르심에 충실하고 자신의 인도에 충실하게 길을 떠났어요. 그는 그곳에서 잘 지냈지만
하나님은 그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그를 다루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두
개의 좁은 장소 사이에 던져졌습니다. 이쪽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고, 미워하던 형 에서가 군대를 이끌고 그를
만나러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의 작은 시냇가 브니엘 시냇가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상태가
좋았습니까! 그를 미워하는 에서가 군대를 이끌고 그를 만나러 왔고, 여기에는 그의 아내와 두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시냇가 이쪽에 있었고, 그는 좁은 곳에 갇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 땅에 머물러 있었으면 괜찮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고향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신의 축복이 있기를.
그 사람도 변화가 있었군요. 네, 선생님
예수님, 아버지의 말씀에 충실한 예수님 "나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만 행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에 영원히 충실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친구들을 모두 잃으셨던 때가 왔습니다. 그들 모두는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모두 다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분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그분에 대한 신뢰를 잃었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죽은 사람에게 말을 걸고 그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 사건을 정확하게 예언하시고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으신 분이, 수염을 뽑혀 피를 흘리신 얼굴에 군인들의 술에 취한 침을 얼굴에 흘리시고, 머리에 걸레를 쓰고
막대기로 머리를 치시며 '누가 당신을 때렸는지 예언하고 말하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고 하시는 분이 어떻게
법정에 세워질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아!" 하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보세요,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금방 잊어버렸어요! 모세가 홍해 바다에 서서 "하나님이 열 가지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는데, 너희는 아직도 그분이 하나님이신 줄 모른단 말이냐?"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그는 그곳에 내려가서 땅을 치고 땅에 저주를 내렸어요. 개구리, 벼룩, 파리, 모든 것을 가져 왔고, 모든 장자를
죽이는 폭발과 죽음의 천사가 그 땅을 통과했지만 사람들은 홍해에서 그를 따르지 않으려 고했습니다. 얼마나
빨리, 당신의 인기가 높아지자마자...그들은 십만 명, 아니 어쩌면 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오는 이 크고 빛나는
창과 수많은 병거들의 포효 소리들을 보고 "모세, 우리는 거기서 죽었어야했습니다."라고 포기하고 물러섰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그들이 불신 때문에 광야에서 죽게 내버려 두셨다고 말씀하셨어요. "모세, 당신 사역은 이제
끝났어. 넌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보세요,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갈릴리의 젊은 랍비나 선생이나 선지자 예수께서 그 모든 기적과 일들을 행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참으실 수 있었을까? 무덤의 봉인을 풀고 죽은 사람을 영원에서 살리실 수 있는데 어떻게
쇠사슬로 묶어 두실 수 있었습니까? 과부의 죽은 아들에게 말씀하셔서 다시 살리실 수 있고, 무덤에서 죽어 썩은
나사로에게 말씀하셔서 그를 이끌어 내실 수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그분이 서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가 죽었어도 나를 믿는 자는 살아나리라.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그리고 서서 결박을 당하고 얼굴에 침을 뱉고 그분의 입을 열지 않겠습니까?"
제자들은 "그분은 사역을 잃었습니다." 네, 그런 식이죠. 하나님, 이 불쌍한 세상!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것을 말씀하시며 사랑하셨던 열두 제자, 그분의 교회조차도 주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오직 한 사람, 요한만이 주님의 편에 섰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바로 그 시간에,
그분은 결박되어 갈보리로 올라가 조롱하고 침을 뱉으며...그것이 성경을 성취한 줄도 모르고...등을 돌렸습니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성취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십니까?
왜, 라오디게아 교회들이 “나는 부자라,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왜, 이 교파 교회들은 저마다 자신들만이 진리를 가졌다고 말합니까? 그들은 왜 그렇게 할까요?
왜,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워달라고 무릎 꿇고
엎드려서 두 손을 모으고 성령을 채워달라고 기도하는 대신에 차갑게 식은 마음과 교만으로 가득 차게 됐을까요?
성경에는 그렇게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그렇게 합니다. 유다가 자신이 예수를 파는 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바로 왕은 하나님이 그 목적을 위해 그를 일으켜 세웠을 때 자신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지 않고, 자신이 한 일을 하지 않았을 것 같나요? 당연히 아닙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성취되고 있는 성경을 보십시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이르렀고, 말씀은 그렇게 성취되어야만 합니다.
유대인들의 교회는 그분을 버렸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율법학자들, 바리새인, 사두개인, 헤롯당 등 등,
자연까지도 그분을 버렸습니다. 누군가가 버림받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심지어 그분이 창조하신 피조물조차도
그분을 버렸습니다. 달과 별과 태양과 모든 것이 눈을 멀게 했습니다. 제자들까지도 그분을 저주하고 떠났으며,
모든 인간들, 하나님, 자연, 모든 것이 그분을 버렸고, 그분은 그분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홀로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사역을 멈추게 했습니까? 그것이 그분의 사역을 잃게 했습니까? 그분은 사역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이 땅에서의 사역을 완전하게 완수하고 계셨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것은 말씀을 성취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나야 했던 일입니다. 그것은 그것과 함께 가야 합니다. 이제 모든 것이 그분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이 그 현장에 개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아는 사람이라면, 말씀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말씀과 함께 머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말씀은 스스로 펼쳐져야 합니다. 변함없는 말씀은
스스로 펼쳐져야 합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순서대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시대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 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의 충만함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선지자 일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분은 말씀이셨습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그분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연도 그분을
버렸습니다. 모든 피조물, 모든 것, 별, 달, 그리고 그분이 죽었을 때 빛도 그분을 버렸습니다. 그분은 만물의
창조주이셨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분을 버렸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계셨고 세상은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것! 그런데 우리는...회심시키지
않고 개종시키려고만 하고, 우리가 개종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버림받고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아시겠죠?
말씀이 진짜 계시할 때가 오면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 현장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의 생애에서, 그분이 생애 첫 1년 6개월 동안 행하신 권능의 일들, 오, 그분은 얼마나
권능의 분이셨습니까! 지상에는 그분과 같은 분이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분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창조물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모든 것들로부터 조롱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참된 종을 조롱하는 이유는 그것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변태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지금처럼 변태적인 상태로 아름답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되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두 사람이 등에 짊어지고도 포도를 맺을 수 있는 땅이, 변태적인 땅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스도가 오시면 사막이 장미꽃처럼 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회심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메마른 곳이 물에서
솟아나고 땅은 꽃이 피고 꽃이 피게 될 것입니다. 오, 그 때가 올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이 경건한 사람으로
변화될 때, “그분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연” 지금 선택을 한 사람들이 그 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그 어두운 시간, 바위와 하늘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시인은 "나의 구주께서 머리를 숙이고 죽으셨고, 휘장이
열리면서 하늘의 기쁨과 끝없는 날로 가는 길이 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셔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분은 말씀에 충실하셨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분의 사역의 끝이었을까요? 그분의 사역이 끝났나요?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면류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부활절 아침, 부활의 날에 왕관을 씌우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 계신
우리 주 예수님의 사역에 면류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을 버렸기 때문에 그분은 씻어지지 않았고,
그분은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네, 선생님. 네, 선생님. 그분이 왕관을 쓰신 것은 그분이 버림받았기 때문이며,
그분을 죽음에서 살리실 때 반드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조금 전에 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엘리야, 그 불쌍한 늙은 선지자는
광야에 누워 새들이 가져다주는 먹이를 먹어야 했습니다. 마르고 깡마르고 갈색으로 보이는 몸, 옆구리에는 작은
기름 덩어리가 매달려 있고, 수염은 다 빠져 있고, 머리는 햇볕에 그을려서 절름발이가 된 채 이렇게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그 작은 늙은이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뛰고 있었어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끝까지 내려가는 작고 늙고 지친 종을 보셨을 때 그를 실망 시켰습니까?
병거를 내려 보내셔서 지친 종을 태우시며 "에녹처럼 걸어 올라갈 필요도 없고, 그냥 병거를 타고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셨을까요? 맞습니다. 그는 병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사역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렇게 나쁘지 않네요. 그래요. 네, 그는 걸어서 집에 갈 필요가 없었고 피곤해서 그냥 전차를 보내서 데리러
왔습니다. 맘에 들어요. 아멘 불쌍하고, 작고, 늙고, 지친 종을 데리러 집으로 데려다 주셨어요.
그때 다니엘은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서서...사람들이 말하기를, "저 사람은 한때 이 왕국에서 훌륭한 사람이었어.
그는 모든 종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점쟁이들을 데려와서 가르쳤어요." 그리고 메디아-페르시아인들과
그가 한 일들. 그러나 다리우스의 통치 아래서 하나님께 충실했던 것은 다니엘이었어요.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렀고 다른 어떤 것과도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는 "지역 신문에서 봤더니 그의 사역은 끝났고, 며칠
안에 사자 굴에 던져질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연방 교도소나 어디로 가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그를 사자 굴에
던져 넣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다리우스가 모든 언어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다니엘의 하나님은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니 모든 사람이 다니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전한 왕의
마음의 변화로 그의 사역을 봉인하셨습니다. 아멘.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버릴 때, 즉 말씀에 충실한 하나님의 종들을 버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사역에 왕관을
씌우시는 때가 바로 그 때입니다.
네, 느부갓네살의 통치 아래 있던 히브리 청년들이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어떤 형상에도
절하지 말고 숭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 충실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충실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지역 신문, 뉴스 등 모든 매체에 그 내용이 실렸습니다. 그들은 뉴스를 퍼뜨릴 방법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역 신문에 실린 것은 아니었고, 그냥 그렇게 말하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7 배나 더 뜨거운 용광로에서 태운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 전에 며칠 동안 그들은 용광로를
너무 뜨겁게 만들기 위해 모든 재료를 던져 7 배 더 뜨겁고 7 배 과열되었습니다. 100 야드 안에 들어가려면
다 타버렸을 거예요. 하지만 그들은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서 불 냄새도 맡지 않고 바로 나왔어요.
느부갓네살이 "누구든지 이 신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와 그의 자녀를 죽이고 그의 집을 불사르고 둔덕을
만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말씀에 충실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네, 그렇습니다. 말씀에 충실하면 항상 놀라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야곱은, 조금 전에 언급했었죠? 여기 그의 이름이 적혀있어요. 그는 조금 겁쟁이였지만 여기 머물고 있었어요.
그는 형 에서를 두려워했죠? 이런!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과 떨어져 있었지만 그는 항상 그 말씀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은
그를 부르셔서 고향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곳에는 에서가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야곱은
다음날 아침 왕관을 쓰고 사역을 위해 걸어 나갔을 때 '속이는 자'라는 야곱의 이름에서 '하나님 앞에 왕자'라는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나가서 에서를 만나고 그의 도움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멘. 말씀에 충실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렇죠? 그분은 그분만의 방식으로 일을 하십니다. 아시겠습니까?.
많은 형제들이 오늘날 교단 형제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름 하나만 말하면 어디서나 불처럼
타오르죠, 이 사람의 특정 이름을 말하기만 하면요. 결국 그날 주님께서 강가에서 저에게 말씀하셨을 때,
전 세계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고, 그 위대한 전도자들이 모두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형제들과 함께 바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나온 교단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곳에 나와서 이 집회를 열고 교단들과 섞여 있다가 다시 그 교단들 속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라디오, 신문 등 모든 곳에서 많은 호의를 받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들에 대해 좋게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참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저를 버렸어요. 저는 교파 신학이
아니라 주님이 제게 말씀하신 대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라." 그것이 바로 "말씀과 함께 있으라"는
저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형제 여러분, 이 테이프를 듣고 계신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왔을 때 저는 병자를
고치고 환상에 대해 말하고, 분별을 나타내고, 표적을 보여 주는 은사를 나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에 대한 진리를 말했을 때, 여러분은 왜 저에게 등을 돌렸습니까?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 말씀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제 저는 한 곳에 거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는 편지를 항상 받습니다. 얼마 전에 한 통이 왔는데, "브래넘 형제님, 저는 형제님을 가장 신뢰했는데 형제님이
제가 속한 어떤 교단이 타락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당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집회 중 하나에 우리 교단소속의 형제들 25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바로 일어나서 떠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를 버렸지만 한 가지, 그분은 제 곁에 계셨어요...?..저는 그때 강 아래에서 일어난 하늘의 환상에
불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에 충실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제게 신실하셨습니다.
저는 언젠가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제 사역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그분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진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요.
그분이 준비되면 저는 준비된 거죠?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분이 말씀의 옷을 입고 그분의 신부를 말씀의 옷으로
입히고 그분의 의로움을 위해 저의 사역에 면류관을 씌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저에게 면류관을 씌워
주시고, 그 날에 제가 서서 "영광 가운데 오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올라가야 할 언덕이 너무 많아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길을 알려 주시는 분은 무엇이 최선인지 아십니다.
그분은 무엇이 최선인지 아십니다. "우리가 그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 길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분이 남겨 놓으신 그 피 묻은 발자국을 찾으러 가자고요. 친구 여러분, "갈릴리 해변의 모래는
그 이방인의 발자국으로 씻어졌고 거친 파도를 잠재우던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유대에서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독한 나사렛 사람의 길을, 저는 오늘도 기꺼이 따르려고 합니다. 그 길의 끝에 다다르면 그 길의
수고는 지금 겪고 있는 것들과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 그분의 영광을 위해 매진합시다.
제가 읽은 성경의 이 첫 부분에서 주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에 따르면, 저는 어깨를 곧게 펴고 가슴을 내밀고
물결치는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 있던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깨가 구부정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쉰셋의 노인이 되어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날이 갈수록 제게는 더 달콤해 지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을 선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의
소망은 그분의 말씀은 결코 실패할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의 보혈의 의로 옷을 입고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말씀의
의인으로 옷을 입은 그분이 죽으신 교회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말씀 곁에 서서 말씀에 충실하고,
말씀이 제 안에 거하고 제가 그분 안에 거한다면, 그날에 저는 진실하게 지낸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는 이제 아실 것입니다. 왜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제
동료들에게도 "왜, 브래넘 형제는 이제 망했어."라고 말하는지 알겠죠? 아시겠죠? 그래, 다 끝났다고 아시겠죠?
"아, 더 이상 할 일이 없네." 아시겠죠? 글쎄요, 그들은 단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알겠죠?
바울이 "이제 내 시간이 다 되었다."라고 말했을 때 바울의 가장 큰 소망은 순교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소망이었습니다. 혹시 순교자의 책을 읽어 보셨고, 니케아공의회도 읽어 보셨나요?
가장 큰 영광은 폴리캅과 다른 이들이 사자 굴에 들어갔을 때 기쁨으로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그들은 순교자가
될 줄 알면서도 그곳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화형을 당할 때도 그들은 순교자의 영광을 위해 기쁨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울이 도마에 올라 목이 잘린 채로 감옥에서 벽에 난 구멍으로 끌려 내려갔을 때, 저 아래 작은
낡고 지저분한 감옥에 갇혀 있었어요. 저는 거기 내려가서 그걸 봤어요. 저 뒤에 있는 작고 낡은 토굴에 그의
시체를 밀어 넣었죠. 그리고 지금은 그를 성인이나 다른 무언가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같은 사람들이에요! 거기서
그는 걸어 내려갔어요. 그는 말했죠?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은즉 나를 위하여,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아멘. (고린도전서15:55~57, 디모데후서4:7~8)
이제 디모데후서4장6절, 18절까지 내려왔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어떻게 읽힐지 모르지만 저는 그분이 완성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말씀에 충실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사역이 있는 곳입니다. 저는 씻겨 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씻겨 졌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맞습니다. 이제 기도하는 동안 잠시 그분께 고개를 숙여 봅시다.
오늘 밤 왕좌에서 내려오는 작은 밧줄이 있는데 생명줄이라고 합니다. 제가 기도하는 동안, 여기 있는 모든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당겼으면 좋겠습니다. 손을 뻗어 잡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죄인 친구 여러분들?
"브래넘 형제님, 나이가 든다고 하셨는데 그래서..."라고 말하실 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는 이것을 믿었습니다. 제 인생을 전부 바쳤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제 목숨이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만 명의 목숨이 있다면 모두 이걸 위해 바치고 싶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오늘 밤 밧줄이 지나갈 때 잡아주지 않겠습니까? "브래넘 형제여, 나는 그것을 잡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자격을 갖추기 위해 뭔가를 하고 무슨 일을 했는지 결과를 한번 말해보세요. 저도 말하고
싶어요. 제가 합당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가치 없는 존재로 태어났어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여러분을 위해 주어진 구원의 밧줄을 붙잡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의
강에서 익사하고 있습니다. 익사하지 마십시오. 신이 구명줄을 던졌으니 오늘 밤 손을 뻗어 구명줄을 잡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바로 여기 이 책상, 바로 이 자리에서 제가 그날 아침에 말씀드렸던 바로 이 땅 위에 교회를
봉헌했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주춧돌은 여전히 제가 쓴 성경의 한 줄을 들고 저기 놓여 있습니다.
"주 예수님, 당신의 은혜로 말씀에 충실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그것이 다른 때와 똑같이
만들어졌음을 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밤 세계를 여행하고 다시 돌아와 이 성막에 있는데, 작은 초석이 여전히
거기에 놓여 있고 그 안에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주 하나님, 저를 찾으소서. 저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님 방금 전에 실패에 대해 간증했듯이 여러 번 주님을 실망시켰습니다.
하나님, 저는 재빨리 용서를 구합니다. 마음속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최근에 우리가 갈 곳에 대해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 언제쯤 저와 함께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늘 밤 당신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란 것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오면 전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바울과 다른 사람들처럼 바로서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만약 제 간증을 제 목숨으로 봉인해야
한다면, 혹은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 그때 왕관을 씌워주세요. 저에게 면류관을 씌우지 마시고 제가 설교한
사역에 면류관을 씌워주세요, 주님, 그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씀이 부활할 때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한 말씀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작은 교회가 서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제가 말씀을 위해 그 자리에 섰을 때 사람들은 "6개월 안에 이곳은
차고로 변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네빌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집사님들과 이사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 모두는 작은 역할을 맡고 있으며 충성스럽게, 올바르게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오늘 밤 우리와 함께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 그리고 그들이 참여하는 방법은 이 작은 생명줄을
잡고 손목에 감고 마음에 묶고 "주님, 저를 당겨 들어 올리소서."라고 말하면 그들은 금처럼 빛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 그것을 허락하소서. 우리는 그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때가 가까웠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가르친 대로 라오디게아 교회시대가 이제 저물어가고 있으며,
주님의 재림 외에는 다른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직접 오시는 것을 보는
것은 말씀에 대한 큰 면류관이 아닐까요? 저는 여기 서서 "저기 계시네, 어린양이 오셨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기다리던 어린 양을 보라, 바로 그분이시다." 주님은 홀연히 당신의 성전에 오셔서
휴거를 통해 당신의 백성을 데려가실 것입니다. 아버지, 저희를 준비하게 하소서. 주님의 보혈로 저희 마음을
씻어 주소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우리를 순수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소서. 그리고 말씀이
자리 잡고 효력을 발휘하려면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모든 죄인에게 회개를
허락하소서.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을 축복하소서. 주님, 성도들, 이 오래된 귀한 전사들 중 일부는 수년간 조롱과
비웃음, 조롱을 받으며 전선을 따라 싸워왔습니다. 그들은 생명이 있기에 여전히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를 믿었는지 알고 있으며, 주님께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질병을 없애주시옵소서.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 당신께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 제게는 소중한 친구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들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중한 친구들, 사랑하는 친구들, 남녀노소,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을 사랑합니다. 이제 주님,
우리가 말씀에 진실하게 되어 언젠가 슬픔이나 슬픔이 없는 더 좋은 땅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세요.
우리는 곧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오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오늘 밤 여기 있는 불신자를 축복하오니 그가 오늘 밤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여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누군가가 "브래넘 형제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저는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끝까지 가고 싶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 되고 싶습니다. 손을 들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신의 축복이 있기를. 그거 좋네요. 신의 축복이 있기를 "저는 제 길의 끝에서
선한 싸움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나의 도우미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뒤에 계신 아주머니. 그거 좋네요. 그분은 당신을 아십니다.
저는 32년 동안 강단에서 그분에 대해 충분히 배웠고, 이제 그분이 여러분의 모든 움직임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알 만큼 그분에 대해 충분히 배웠습니다. 그분은 참새를 보십니다. 당신의 머리털에도 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냥 손을 들고 진심을 담아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죄 사함을 받기 위해 침례를
받습니다(무엇을 위해?).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간증입니다. 침례를 받으면 여러분의 죄는 사라집니다.
여러분은 죄를 고백했고, 믿습니다. 이제 생명줄이 당신의 마음을 끌어당기며 "순례자, 이쪽으로 오너라. 나와 함께
여행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가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며 내 짐은 가볍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손을 뻗어 구명줄을 잡으십시오.
오늘 밤 여기, 길에 있는 그리스도인 중 오래 전에 시작한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요?
여러분은 이미 시작했고, 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으며, 여전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역이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역에 면류관을 씌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부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역에 면류관을 씌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목사님일 수도 있습니다. 집사일 수도 있습니다.
평신도일 수도 있습니다. 농부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 말씀의 영광으로 면류관을 씌워주시고, 재림하실 때 휴거하셔서 제가 말씀드렸던 그 작은 물고기처럼
저 아래 어둠에서 벗어나 다른 땅으로 데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몸으로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우주비행사들처럼 올라갈 수도 없고요, 가압 탱크에 들어가야 하죠? 그래야만 당신은 압력을 받지 않아요.
하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을 변화시키면 그때는 압력을 받게 되고 휴거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지상의 낡은 감각이 사라지고 십자가의 영광스러운 길로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 하나님,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손을 내미는 이 손들에 감사드립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이 언제라도 실패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실패하더라도 아버지께서 함께하는
옹호자를 빨리 만나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버지, 제가 모든 실수를 저지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와
함께 하는 옹호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은혜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포근한 손길로 감싸 주시고, 내가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피 흘리신 희생이 거기 놓여 있었습니다.
주님, 병들고 궁핍한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모든 병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영광스러운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아래 앉아 있는 우리 혼에 성령이 달콤하게 부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 아버지, 얼마 전 캐나다에서 내려올 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시죠?
"오, 다시 옛날식 부흥회가 열리고 하나님의 성도들만 찬송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 주님, 제 마음이 얼마나 갈망하는지요. 이 성막에 그런 부흥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오, 하나님의 능력이 은혜의 강물처럼 쏟아져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작은 장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이대로 지킬 수 없었지만, 이곳을 영적으로 지켜주신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주님, 제가 아는 한 이 나라에서 가장 영적인 장소가 바로 이곳 8번가와 펜 스트리트에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일반 교회에 들어가면 차갑고 무관심하고, 여자들은 얼굴도 붉히지 못할
정도로 무관심하고, "아멘"이나 뺨에 눈물도 없고, 구원은 없고, 그저 교회에 가입하고 신조를 말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 하나님, 그들의 모든 마음의 제단 위에 불이 지펴지는 달콤하고 따뜻한
곳으로 오십시오. 그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아버지!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감사합니다,
아버지,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 불길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를 함께 축복하소서.
그리고 내일은 안식일입니다. 주님, 아침에 제가 그 카운트다운에 설교할 일이 있다면 도와주세요. 주님,
사람들이 볼 수 있을 때까지 제가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제 그들이 사역의 상태와 현재 위치,
우리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그리고 모든 것이 왜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게 해주십시오.
그들이 5절부터 읽으면서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이제 아버지,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우리 몸에 좋은 안식을 주시고 내일 다시 돌아오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벽 주위에 서서 한 발에서 다른 발로 기댄 이 모든 사람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밖에서 비를 맞으며 창문 주위에
서 있거나 차에 앉아 있는 여성과 남성들, 그리고 위아래로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 그들을 축복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이해했습니까?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디모데후서2장4절, 과 디모데후서4장5절부터 읽으면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그를 버렸을까요? 왜 그들은 오지 않았을까요?
이제 그 사역과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을 비교해 보십시오. 바울의 가르침을 비교해 보십시오.
제가 그날 본 하늘의 장소에서 제가 "바울은 그의 백성과 함께 서야 할까요?"라고 물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들은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저도 바울과 똑같은 말씀을 전했고, 똑같은 복음에 머물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백만 명이 손을 들고 "우리는 그 말씀에 정착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우리가 만날 때까지! 우리가 만날 때까지! 우리가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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