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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영삼영일
가정의 달 교회, 교회와 성도, 가정과 가족을 생각하며
220522 행20:28-32 피로 사신 교회 성도 가정 가족
구약의 성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의 정점은 성막 또는 성전의 제단에 바치는 짐승의 피를 뿌리는 제사였습니다. 소, 양, 염소, 비둘기를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번제단 불에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이미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나기 전 유월절 전날 밤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집집마자 장자를 덮쳐 죽어갈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지방에 양의 피를 바르고 죽음의 검은 그림자를 피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 유월절 제사의 규례는 영원토록 지켜야 할 이스라엘의 절기로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주 또는 가끔 성찬식을 갖습니다. 성찬식에서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나누며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는 예수님의 피를 대신해 포도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죄를 씻는 대속의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것을 믿음으로 우리들 믿는 자들은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날은 바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기 전날 밤 유월절 양의 피로 문지방에 뿌리던 유월절 전날밤이었습니다. 애굽의 유월절 전날 밤 양의 피를 뿌려 죽음을 넘기고 생명으로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의 길을 열어간 이스라엘, 그리고 유월절 전날 밤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구원을 얻게 되는 오늘 우리들의 구원 바로 예수님의 피로 주어진 것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는데 성경에서는 피를 생명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게 하느니라”
우리들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에 매달려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를 사하는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대속의 은혜, 구원의 능력이 주어지는 것은 우리들 신앙의 핵심입니다.
현대 중국의 소설에 <허삼관 매혈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허삼관이라는 사람이 모택동 문화혁명기에 가진 것도 없고 벌이도 없고 능력도 없어서 생각해 낸 것이 피를 팔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허삼관이라는 사람이 젊은 시절 좋아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피를 팔게 됩니다. 피를 팔 때에는 가능한 많은 피를 팔기 위해 마실 수 있는 한 많은 물을 마시고 피를 팔게 됩니다. 피는 허삼관이 아내를 얻어 가족을 이루게 해주는 결혼이라는 첫 단추에서 부터 힘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새로 집을 짓고 가정을 세워나갈 때에도 피를 팔아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아들을 낳고 9년이 지난 뒤 첫째 아들이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내가 결혼하기 전 임신한 상태로 자기에게 시집을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식도 아닌 아들이 싸움을 하면서 많은 배상금을 물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 그 아들이 친아버지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하지만 외면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아들을 낳을 때부터 기른 아버지 허삼관은 친자식이 아닌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피를 팔게 됩니다.
다음에 옛날에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와 일을 저지르고 이것 때문에 다시 피를 팔아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기근이 와서 가족들이 굶어 죽게되지 다시 피를 팔게 됩니다.
공장에 취직하는 큰 아들 여비 마련을 위해 다시 다섯 번째 피를 팔게 됩니다.
군에 간 둘째 아들이 속히 제대할 수 있도록 중대장에게 손을 쓰기 위해 여섯 번째 피를 팔게 됩니다.
친아들이 아닌 첫째가 간염으로 상해 병원에 입원하자 일곱 번째 피를 팔게 됩니다.
큰 아들의 친부가 병에 걸렸는데 나을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래로 전해오는 말에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리면 아들이 지붕에 올라가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하면 낫는다는 민간전래 요법이 있어 큰 아들의 친아버지 아내가 울며불며 허삼관 큰아들에게 지붕에 올라가 친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허삼관은 친아들이 아닌 큰 아들이 자기 친아버지를 위해 지붕에 올라가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해주도록 설득합니다. 그러나 큰 아들은 어떻게 지붕에 올라가기는 했지만 자기 친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낳을 때부터 자신을 돌보지 않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몰차게 거절한 친아버지가 이제 자기가 죽게 되니까 살고싶어 도움을 간청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살고있는 허삼관 아버지는 자기를 위해 여러 번 피를 팔아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피로써 자신을 키우고 지켜준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허삼관이 지붕에 올라간 큰 아들에게 이렇게 외쳐댑니다. "네가 네 친아버지를 위해 거기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기도해도 너는 여전히 내 아들이다.... " 이 말을 듣고 큰 아들은 지붕에서 자기를 낳았지만 평생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예전에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보지 않은 친아버지를 위해 큰 소리로 외치며 기도하게 됩니다. 낳을 때부터 돌아보지도 않은 친아버지는 아버지도 아니요 낳을 때부터 자기를 기르고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해 가는 아버지가 자기 아버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피를 팔아가면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허삼관이 한 말이 이렇습니다.
“내가 쉬지 않고 피를 파는 건 이거 말고는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수가 없기 때문이야”
허삼관이라는 사람은 피를 팔아 아내를 얻었고 피를 팔아 자식들의 문제를 해결해나갔습니다. 피를 팔아 내 자식 아닌 아들을 부모 자식간의 관계로 맺었습니다. 피는 못속인다는 말이 있는데 피가 섞어지 않은 아내도 그리고 피가 섞이지 않은 큰 아들도 그야말로 피로 맺어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소설에서 허삼관이라는 사람은 피를 팔아 가족을 만들고 가족을 지키고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정말 피는 물도다 진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 집사람은 헌혈을 여러 번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헌혈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이 들어 헌혈을 하고싶어도 혈압이 높아 헌혈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이 2년 전 수술을 하기 전 병원에서 수혈을 해야 하는데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되고 헌혈이 적어 병원에 피가 모자란다는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또는 두 번의 헌혈 증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헌혈을 할 수 없어서 아들 며느리에게 얘기했더니 아들 며느리가 기꺼이 헌혈을 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물론이요 며느리도 이제 피로 맺어진 관계가 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처럼 피로 맺어진 관계가 있는가 하면 다른 여러 절실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맺어진 관계가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생사를 같이하는 같은 동료 병사들과의 관계를 전우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진짜 사나이’라는 군가는 군생활을 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노래입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이 노래에서 전우는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라고 노래합니다. 허성희라는 여자 가수가 부른 다른 군가 아닌 가요 ‘전우가 남긴 한 마디’에서도 전우가 등장합니다.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야 정말 그립구나 그리워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 정말 용감했던 전우야”
저는 군생활 3년에 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그래도 군에서는 언제나 군생활을 같이 하는 동료들을 전우라고 부릅니다. 만일에 있을지도 모르는 생사를 같이하는 전쟁이 일어나면 주변의 모든 전우들이 그야말로 생사를 같이해야할 관계로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한창 인기리에 상영중인 범죄도시2라는 영화에서 조폭들이 등장합니다. 조폭이란 폭력을 중심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한국에서 쫓겨간 조직 폭력배들이 멀리 베트남에까지 가서 범죄를 저지르고 돈을 쫓고 돈에 팔려 사람을 죽이는데 영화라서 그런지 잔인하기도 합니다. 용감한 한국 경찰이 그곳에까지 가서 이들을 소탕하는 유쾌 상쾌 통쾌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조직 폭력배들에게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을 쫓고 돈에 쫓기는 폭력배들이 마지막 선택하는 것은 배신이요 상대방을 죽이는 것입니다. 같이 일하고 돈을 빼앗앗으면 마지막에 그 남은 돈을 나누지 않고 혼자 차지하기 위해 서로서로를 죽이다 결국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폭력배를 소탕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는 경찰들은 돈에 휘둘리지 않고 너무나 위험한 순간들을 함께 나누며 폭력배 소탕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돈을 쫓아 목숨을 건 사람들이 조폭들입니다. 폭력배를 소탕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 경찰입니다. 그 영화에서는 이 폭력배들이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이는 피를 흘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 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 사도행전 20장 2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뜻은 건물이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주님의 피로 맺어진 성도들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성도들은 주님의 피로 맺어진 영적 관계요 영적 가족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성도들이요 한 주 한 믿음 한 성령 한 세례 안에서 부르심을 받아 하나를 이루어가는 교회요 가족인 것입니다(엡4:3-6). 그러므로 그 어느 것도 우리들을 주님의 피로 맺어진 영적 관계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롬8:35).
우리는 흔히 부부싸움을 칼로 물베기라는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부부관계는 남녀의 애정을 전제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부부싸움 이전에 이미 남자와 여자의 애정관계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부부간의 애정이 남아있다면 어지간한 문제는 알게 모르게 다 해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기도할 때 외에는 분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고전 7:5). 그런데 결정적으로 다른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부는 돌아서면 남남’이라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베기라는데 왜 돌아서면 남남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부부간에 애정이 메말라버렸을 뿐만 아니라 부부가 남남이 되기 전 철천지 웬수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아선 관계도 모두가 다 웬수는 아니요 다만 불편한 관계로 떨어져 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그러나 그것도 여전히 갈라진 관계입니다.
얼마 전 이혼한 영화배우 남녀 부부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이제 나이 70을 바라보는 이 두 사람이 강원도 어느 계곡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다 전남편이 이혼한 아내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이혼한 아내가 못타는 자전거를 가르쳐 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애처럽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전남편이 개울물에서 송사리를 잡아준다고 하다가 그만 물속에 쳐박혀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만일 두 사람이 정상적인 관계였다면 그냥 웃고 지나갈 일입니다. 그러나 전남편은 저와 동갑이고 전 아내는 제 집사람과 동갑입니다. 나이 70을 바라보는 부부가 늙어가면서 놀러나갔다가 물에 빠지고 넘어지고 다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 이혼한 부부가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해주려고 하다가 이런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면 그야말로 우습지만 슬프고 재미있지만 애처롭기까지 한 것입니다. 어찌 이러한 경우에까지 이르렀을까? 무엇이 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카메라 앞에서 이런 보기에도 안타까운 장면을 연출해야 했을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 고통스러운 일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지만 결혼식 때 다짐한 맹세를 왜 파기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를 뛰어넘을 관계로 승화시킬 수는 없는가? 이러한 어려움을 이기고 극복하고 승화시킬 강력한 견인차는 바로 주님의 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가정이 가족이 부부가 성도가 모두 다 육신의 피가 아닌 주님의 피로 사신 형제 자매로 맺어질 때 영적 관계로 아무도 떼어놓지 못하는 강력 본드 이상으로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피로 사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들 월산교회를 피로 사셨습니다. 월산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피로 맺어진 영적 가족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피로 사신 영적 가족입니다. 주를 믿는 내 가정이 그러하고 내 자식이 그러하고 내 부모가 그러합니다. 안 믿는 가족도 안 믿는 이웃도 안 믿는 아내도 남편도 모두가 다 주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주님의 피로 우리 성도들을, 가정과 가족을, 남편과 아내를, 부모와 자식을 지키시고 구원으로 이끄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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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영삼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