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김옥자
연말 불우이웃돕기를 위해 지역 예술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한 작가*의 ‘얼굴(FACE)’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다. 점토를 빚어 석고로 주형을 뜬 얼굴 형상인데 아프리카 원시신앙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느낌이 짙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길쭉하고 거무튀튀한 질감으로 느껴졌으며 토템신앙의 어느 동물을 형상화해 놓은 것 같아 보였다. 푸욱 들어간 눈은 현대인들의 고된 일상과 고독에 절은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얼굴의 낯빛은 수제비 반죽을 얇게 연속적으로 이어붙인 듯해서인지 마치 나무껍질이 살짝 일어난 모양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의 얼굴이 담아내고 있는 다양한 표정과 이미지는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해 본다.
‘얼굴’하면 사전적 의미로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원도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 박물관에서 본 ‘인면토우’의 경우 사전적 의미의 얼굴 모형에 가깝다. 점토를 빚어 만든 이 형상은 얼굴의 전체적인 조형은 펑퍼짐하고 둥글넙적한 얼굴 모형에 눈, 코, 입의 모양을 손바닥 상부 즉 팔목을 잇는 부분으로 지그시 눌러놓은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평면적인 얼굴형에 눈, 코, 입의 모양은 입체감보다는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의 선線만 살짝 있는 것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얼굴의 외적인 상像을 두고 서구적인가! 동양적인가! 하는 표면적인 것을 말할 때가 많다. 잠깐 민담과 문헌을 통해 전래되는 여성의 전통적인 미인의 이미지를 언급해 보자면 이렇다. 얼굴의 형상 안에는 이마와 미간은 넓어야 하고, 입술과 볼은 붉어야 하며, 콧날과 목선線은 가늘어야 미인형에 속한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얼굴의 부분을 더 언급하자면 눈동자, 눈썹, 속눈썹이 검어야 한다고 했다. 남자의 경우 눈빛이 형형하다. 코의 경우는 자연스러우면서 오뚝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콧방울을 가진 코를 선호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입술인데 여자의 입술은 앵두 같은 입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외국 배우를 예로 들자면 얼굴이 매력적인 ‘줄리아 로버츠’의 경우 크고 도톰한 입술 때문에 섹시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프랑스의 표현주의 조각가 부르텔(1861~1929)의 작품 중 얼굴을 표현해낸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죽은 병사들의 얼굴을 조각 작품에 투영시켜 형상화한 것이다. 그 작품에서 본 얼굴은 죽음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사물이나 인물을 표현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만 얼마나 사실적이고 디테일하느냐가 관건이다. 죽음의 고통을 죽지 않은 사람이 표현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작품을 빚는 작가는 예술적인 조형미美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얼굴 형상을 표현한다는 것은 삶의 수많은 변화를 겪은 인물을 작가가 의도한 바대로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조형성 더 나아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깃든 작품을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얼굴은 삶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그 스토리를 가지고 한 사람의 인상印象을 각인시킬 때도 있다. 상대의 낯빛을 읽거나 자신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마주 보는 즉흥적인 행위보다는 역사적 맥락을 부각시켜 얼굴의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얘기다. 그래서 ‘FACE’를 얘기할 때 얼굴을 바라보다. 마주보다. 얼굴과 직면하다 보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위에서 얻은 체면이나 평판, 또는 권력의 이면인 여러 조건의 요소를 얼굴상에 더하는 경우도 많다. 그 예가 메흐메트 2세 왕(오스만제국)의 경우 얼굴에서 초월적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 사람들은 말하기도 한다. 이는 그가 콘스탄티노플 점령* 이후 후대 사람들이 그 인물을 대변하고자 할 때 얼굴의 생김에 역사적 사건을 비춰 그의 얼굴상을 얘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얼굴 성형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서 코로나19 이후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다는 핑계로 용감하게 민낯으로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외모 지상주의 세태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들이 얼굴 성형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았다. 서구적인 이미지와 클레오파트라라도 닮고 싶은 잠재된 욕구를 표출하느라 성형외과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얘기가 끊이질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의 경우도 취업을 목적으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성형 내지는 부분 시술하는 경우를 종종 보고 접하는 일은 이제 흔하디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얼굴에 입체적인 화장법으로 자신의 개성을 연출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모두 얼굴의 이미지를 좀 더 밝고 보기 좋게 관리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하는 일이지 싶다.
사람의 행위적인 요소가 얼굴빛에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언어로 ‘낯간지럽다’.‘얼굴(이) 뜨겁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얼굴의 전체적인 낯빛을 담아내고 있는 표현으로서 문법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행위가 넓게 확장된 느낌임을 알 수 있다. 삶의 이력이 그대로 얼굴빛에 배어 있어서 이는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사회로부터 비참하게 패배한 몰골의 모습을 지닌 자화상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포용력 있고, 수용할 줄 알고, 타인의 존재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너그러운 얼굴의 이미지로 살아낼 것인가 하는 것은 개인이 선택할 몫이다. 하지만 정글 같은 세상에서 자기의 자화상을 어떤 이미지로 각인시켜야 할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덕을 겸비한 적절한 음성적인 언어가 상황에 맞게 따르면 좋겠지만 말이다.
* 파주 미술 협회 안광수 작가
* 동로마 최후의 도시를 둘러싼 이슬람교와 기독교간의 대 격전
* 낯간지럽다- 너무 보잘 것 없거나 염치없는 짓이 되어 남 보기 부끄럽다 얼굴(이) 뜨겁다 - 몹시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다는 언어나 사물의 성질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