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시집속에 없고 삶과 언어와 일상 속에 있다.
진짜 좋은 스승은 세상, 사람, 자연이다.
흔히 노자의 無爲를 不爲(아무것도 아니함)로 오독하기 쉬우나
오히려 그 반대인 無不爲이다.
인위(作爲)의 배격으로 읽으면 어려움이 없다.
노자는 곧잘 도를 樸(통나무)에 비유하는 데,
이는 마름(制) 이전의 상태이므로 아직 무명(無名)이다.
마름(인위. 작위)이 시작되면 비로소 이름이 있게 된다.
制 절제하다 마르다 누르다 만들다
쉽지 않지만 일관된 平靜心으로 도덕경을 읽을 필요가 있다.
아전인수격으로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면 모순에 빠지기 쉽다.
이점을 늘 경계한다.
道常無爲 而無不爲
(도상무위 이무불위)
도는 언제나 무위이나 하지않음(不爲)이 없다.
侯王若能守之(후왕약능수지)
제후나 임금이 이를 능히 지킨다면
萬物將自化(만물장자화)
만물은 무릇 스스로 화(化)한다.
(化 되다, 교화하다, 가르치다, 본받다, 달라지다)
化而欲作(화이욕작)(저절로)
화(化)하는 데도 (무슨 일을) 하려는 욕심이 생기면
吾將鎭之以無名之樸
(오장진지이무명지박)
나는 오히려 무명의 통나무로 이를 진정(鎭靜)한다
無名之樸(무명지박)
이름 없는 통나무는
夫亦將無欲(부역장무욕)
어떠한 경우에도 욕심이 없다.
( 夫亦將는 직역하면 '무릇 또한 오히려'이다. 夫와 將은 모두 동일한 의미(=무릇)이거나 그 이상(將, 오히려)다.
이를 亦으로 연결하여 강조하였으니 '어떠한 경우에도' 로 의역이 가능할 듯.)
不欲以靜(불욕이정)
고요함으로 욕심을 없애면
天下將自定(천하장자정)
천하는 무릇 스스로 바로 선다.
이름 없는 통나무로 욕심을 없애니
욕심이 없으면 고요하게 되고
천하는 저절로 제 자리를 잡는다.
將 장수, 장차, 문득, 무릇, 오히려
定 정하다, 바로잡다, 다스리다, 평정하다, 편안하다, 평정되다
鎭 진압하다, 누르다, 진정(鎭靜)하다
욕심내지 않음으로써
고요하게 되고
세상은 저절로 제자리를 정해서
순조롭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