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 <元載奎>
○原州元氏侍中公系陰城公后參判公派 22世입니다.
○永川 新寧 老方 入鄕祖 主簿公 <夢士>의 玄孫입니다.
○형제가 넷인데, 막내 <載立>은 兵馬節制使이시니 普賢山기슭인 元新寧山 正覺門中 奉安墓에 奉安하고 있습니다.
○壽職으로 正二品 벼슬에 오르니 父,祖,曾祖까지 贈職 벼슬을 받았습니다.
父贈嘉善大夫漢城左尹兼五衛都㧾府副㧾管 <源泰>
祖贈通政大夫工曹參議 <永淡>
曾祖通訓大夫軍資監正 <進議>
○①別監-觀察使兼巡察使 ②嘉善大夫行龍讓位護軍者 ③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景福宮衛將
○老方內澤西峴戌座(入鄕祖 主簿公 <夢士>의 墓右左에서 移葬-2012.03.30.)
○2012년 7월 7일. 墓碑, 床石, 望柱등 石物 設置
<뒷이야기>
※牒紙를 보면 <古縣面第四花洞里>란 기록이 있고, 흔히 통훈공(通訓公) 휘(諱)<진의(進議)>의 후손을 <화동갈래>라고 하는데, <화동>에 살았기 때문에 불러진 것이라는 전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확인한 결과, <화동>과 <노방>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이곳 먼 곳 <노방>에 묘를 썼는지 의문이 되기도 합니다.
※<노방>에는 <화동갈래> 통훈공(通訓公) 휘(諱)<진의(進議)>의 후손의 묘만 있습니다. 그래서 화동갈래에서 관리함이 바르다고 봅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신녕문중에서는 유일하게 처음으로 높은 수직(壽職) 벼슬을 하시어 가선공(嘉善公) 휘(諱)<재규(載奎)>의 돌아가신 증조(曾祖) 휘(諱)<진의(進議)>, 조부(祖父) 휘(諱)<영담(永淡)>, 부(父) 휘(諱)<원태(源泰)>까지 증직(贈職) 벼슬을 받게 하여 오히려 신녕문중을 빛내 주신 분이므로 묘를 보수하여 비를 세워 모셔야 한다고 봅니다.
○문중에서는 강력하게 다른 곳으로 이장하기를 바라고 있었는 것 같습니다.
※직계 후손은 <하양>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유품으로 교서(敎書), 교첩(敎牒), 첩지(牒紙)가 남아있습니다.(하양 후손 소장)
※수직(壽職) 벼슬을 받은 첩지는 정각문중에서 소장(所藏)하고 있습니다.
※2012년, 3월 30일에 후손이 이장을 하였고, 문중에서는 석물을 설치하였습니다.
<자료 출처>
원종석 지음. ≪원주원씨 신녕문중, 2009≫, p.161-166.
2012.06.09.
원주원씨 대구경북종친회 종사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