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15.
아미노산인 류신은 근육을 강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보디빌더가 운동 전, 운동 도중, 운동 후에 꿀꺽꿀꺽 마시는 단백질 음료에 류신이 다량 들어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중략) 장기적으로 보면 단백질 음료는 mTOR 경로가 장수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 데이비드 싱클레어 & 매슈 러플랜트, ‘노화의 종말’에서
최근 단백질 음료가 붐이라고 한다. 식품회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신제품이 속속 나오고 있고 이 가운데는 한 병에 단백질이 20그램이나 들어있는 제품도 있다. 왠지 이 기록도 조만간 깨질 것 같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백질 보충제는 보디빌더들이나 근감소증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조식품이었다. 형태도 가루(주로 유청단백질)라 물에 타 먹어야 했고 맛도 없어 먹는 게 고역이었다. 그런데 식품회사들이 뛰어들어 먹기 편하고 맛도 좋은 제품을 내놓으면서 ‘단백질 음료’에 우유나 두유보다 좋은 건강식품이라는 이미지를 입히고 있다. 과거 ‘이온 음료’에 이어 또 하나의 새로운 음료 시장이 탄생하고 있다. 그런데 단백질 음료가 과연 건강에 이로운 것일까.
○ 단백질 부족해서?
▲ 보디빌더는 근육을 더 키우기 위해, 노인들은 근육 감소를 막기 위해 단백질 보충제의 도움을 받는다. 최근 식품회사들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먹기 편하고 맛도 좋은 단백질 음료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2018년 890억 원이었던 국내 단백질 시장이 올해는 3430억 원으로 4배 가까이 커질 전망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당분(탄수화물)이나 지방이 들어있는 음료는 건강에 안 좋다는 인식이 만연한 와중에 유독 단백질만은 오히려 건강을 위해 넣었다는 건 우리 식단에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10월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이지원 교수팀이 학술지 ‘영양’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단백질 섭취량은 전체 칼로리의 14%를 차지한다. 2007~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4만 2192명의 식단을 분석한 결과다. 한국영양학회의 권고안인 7~20%의 딱 중간이다. 보통 섭취 칼로리에서 단백질 비율이 10% 미만이면 저단백질 식단이고 20% 이상은 고단백질 식단이다.
만일 단백질 음료 붐이 일어 전 국민이 하루에 단백질 20g짜리 한 병을 먹는다면 단백질 비율이 18~19%로 껑충 뛸 것이다. 개인별 섭취량은 종형 분포를 보일 것이므로 권고안의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이 크게 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주장대로 건강에 좋은 것이라면 영양학회는 단백질 권고안을 늘리는 쪽으로 개정해야 할까.
국제학술지 ‘네이처 노화’ 1월호에는 이와는 반대되는 방향의 동물실험 결과를 담은 논문 두 편이 나란히 실렸다. 이에 따르면 건강과 장수를 위해 현재 권고안에서 적어도 상한선(20%)을 낮출 필요가 있다. 바꿔 말하면 단백질 음료가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실 단백질 섭취를 줄이는 게 건강과 장수에 좋다는 동물실험 결과는 이미 많이 나왔다. 최근에는 단백질을 이루는 20가지 아미노산 가운데 필수 아미노산인 메티오닌과 가지사슬 아미노산(BCAA), 즉 류신과 아이소류신, 발린의 섭취를 줄이는 게 중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류신의 영향이 크다.
독일 막스플랑크노화생물학연구소 세바스티안 그뢴케 박사팀은 초파리 실험을 통해 류신 섭취 제한이 장수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밝혔다. 즉 류신이 세스트린(sestrin)에 달라붙어 작용을 방해해 TOR 경로가 활성화된다. 그 결과 세포 성장과 분열이 왕성해지지만 대신 노화가 촉진된다. 즉 류신 섭취를 제한하면 세스트린이 제 기능을 해 TOR 경로 활성이 떨어져 오래 사는 것이다.
이어지는 논문에서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두들리 래밍 교수팀은 생쥐를 대상으로 BCAA가 수명에 미치는 효과를 봤다. 즉 단백질 비율이 21%인 사료에서 다른 아미노산 17종은 함량을 유지하고 BCAA 3종만 3분의 1로 줄였다. 그 결과 수명이 수컷에서는 30% 늘어났다. 다만 암컷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한편 BCAA 섭취는 암 발생과 진행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섭취량이 많을수록 암이 많이 생기고 빨리 자란다. 실제 BCAA 섭취를 3분의 1로 줄이자 암컷에서 암 발생률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수컷에서도 약간 줄었다.
단백질 음료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이런 연구결과들이 떨떠름할 것이다. 단백질 음료에서 주장하는 게 필수아미노산 섭취량을 늘리는 것이고(우리 몸이 만들지 못하므로) 그 가운데서도 BCAA를 강조하고 BCAA 가운데서도 류신을 대표로 꼽기 때문이다. 실제 단백질이 20g 들어있는 한 음료는 류신을 2g 함유하고 있다.
단백질 음료가 BCAA를 광고 포인트로 삼는 건 이들 아미노산이 근육 성장을 돕기 때문이다. 세포 성장과 분열을 촉진하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이들 아미노산을 많이 섭취할수록 같은 논리에서 암의 발생 확률이 높아지고 일단 생기면 진행도 빠르다. 게다가 빨리 늙는다. 그렇다면 단백질 음료를 먹을 게 아니라 식단에서 단백질 비율을 오히려 낮춰야 하는 것 아닐까. 실제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 식물 단백질은 무난
▲ 필수아미노산 가운데 가지사슬 아미노산(BCAA)인 류신과 아이소류신, 발린은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BCAA가 TOR 경로를 활성화해 세포 성장과 분열을 촉진하는 신호를 내보내게 한다는 초파리 실험 결과가 나왔다. BCAA가 충분한 먹이에서는 BCAA(특히 류신)가 세스트린 단백질과 결합해 TOR에서 떼어내 TOR 경로가 활성화된다(위). 반면 BCAA 제한 먹이에서는 세스트린이 TOR에 달라붙어 비활성 상태로 만든다. 그 결과 노화가 늦춰진다. / 네이처 제공
지난 2014년 학술지 ‘셀 대사’에는 식단에서 단백질 비율과 사망률의 관계를 분석한 미국 LA 캘리포니아대 발터 롱고 교수팀의 연구결과가 실렸다. 지금까지 660여 회 인용된 이 논문은 단백질 섭취량의 효과가 나이대에 따라 다르다는 놀라운 사실을 드러냈다.
연구자들은 미국의 3기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 Ⅲ. 1988~1994)에 등록한 50세 이상 중노년층 8만3308명을 2006년까지 추적한 사망률 데이터를 조사했다. 이 기간 동안 40%가 사망했는데 원인을 보면 19%가 심혈관계질환, 10%가 암, 1%가 당뇨병이었다(기타10%).
조사 당시 이들이 제출한 식단의 평균은 탄수화물이 51%, 지방이 33%, 단백질이 16%다. 우리나라 사람들(연세대 이지원 교수팀 논문)에 비해 탄수화물 비율이 16%나 적은 반면 지방은 그만큼 더 많고 단백질도 2% 더 많다.
연구자들은 단백질 섭취량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눈 뒤 전체 사망률과 세 질환 사망률을 비교했다. 그 결과 당뇨병 사망률만 저단백질 그룹(10% 미만)에 비해 중단백질 그룹(10~19%)과 고단백질 그룹(20% 이상)이 꽤 높을 뿐 나머지는 단백질 섭취량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 청장중년 나이에 고기나 치즈처럼 고단백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단백질 음료까지 맛을 들였다가는 자칫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연구자들은 등록 당시 중년(50~65세)인 그룹과 노년(66세 이상)인 그룹으로 나눠 다시 분석해봤다. 그 결과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났다. 중년 그룹에서는 고단백질 그룹이 저단백질 그룹에 비해 전체 사망률이 74% 더 높았고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무려 4.3배나 더 높았다. 중단백질 그룹도 저단백질 그룹에 비해 전체 사망률이 34% 더 높았고 암으로 인한 사망률도 3배 더 높았다.
미국인들은 주로 동물에서 단백질을 섭취하는데(16% 가운데 11%) 채식주의자처럼 주로 식물에서 단백질을 섭취하는 사람을 따로 분석한 결과 이런 차이가 사라지거나 크게 줄었다. 식물 단백질은 많이 먹어도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도 식물 단백질에는 필수아미노산의 비율이 동물 단백질에 비해 꽤 낮다. 필수아미노산의 BCAA와 메티오닌이 세포 성장과 분열을 촉진하는 신호분자임을 감안하면 같은 양을 섭취해도 식물 단백질의 효과가 작다. 앞서 생쥐 실험에서 BCAA 3종만 3분의 1로 줄여도 장수와 암 발생 감소 효과를 본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고 식물에는 식이섬유나 피토케미컬처럼 건강에 좋은 다른 영양소가 들어있어 고단백질 식단의 부정적인 효과를 어느 정도 상쇄할 것이다.
참고로 몇몇 단백질 음료는 식물 단백질만 쓴다고 하는데 채식주의자에게는 의미가 있겠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선호한다면 재고해야 한다. 추출한 단백질이라 다른 식물 성분은 없는 데다 ‘밸런스’를 위해 BCAA를 비롯한 필수아미노산을 강화해서 어쩌면 동물 단백질보다 ‘동물성’이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저단백질 식단(10% 미만)의 효과는 나이대에 따라 다르다. 중년(50~65세)에서는 전체 사망률을 낮추고 특히 암 사망률을 크게 낮추지만 노년(65세 이상)에서는 그 반대로 작용한다. 동물실험도 비슷한 패턴이다. 암세포를 이식받은 젊은 생쥐(12주)에게 저단백질 먹이를 주면 암 진행이 느리지만 고단백질 먹이를 주면 암 진행이 빠르다. 늙은 생쥐(24개월)에게 저단백질 먹이를 주면 몸무게가 줄지만 고단백질 먹이를 주면 유지된다. / 셀 대사 제공
○ 나이대별로 효과 반대
논문으로 돌아가서 66세 이상 노인의 사망률을 분석하자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즉 저단백질 그룹에 비해 중단백질 그룹과 고단백질 그룹이 전체 사망률은 각각 0.8배와 0.7배였고 암 사망률도 각각 0.7배와 0.4배였다. 노인들은 단백질을 많이 먹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나이대에 따라 반대결과가 나온 걸까.
먼저 나이가 듦에 따라 인체의 단백질 소화 및 흡수 효율이 떨어진다. 즉 같은 양을 먹어도 섭취하는 아미노산의 양이 줄어들고 비필수아미노산의 체내 생합성 효율도 떨어진다. 그리고 효소와 항체 등 여러 기능을 하는 단백질의 양도 줄어든다. 또 근세포의 노화로 근육량이 줄어 체중이 준다. 고단백질 식단의 중년은 일단 암이 걸리면 진행이 빨라 사망률이 높다면 저단백질 식단의 노년은 치료과정을 버티지 못해 암 사망률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저자들은 논문에서 “대체로 체중은 50~60세까지 늘다가 멈춘 뒤 65세가 넘으면 매년 0.5%씩 준다”며 “이때부터 단백질 섭취를 점차 늘리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치아가 안 좋거나 음식을 제대로 차리고 식사할 형편이 못 돼 갈수록 영양의 질이 떨어지는 노인들에게는 단백질 음료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평소 고기를 즐겨 먹고 치즈 같은 유제품도 좋아하는 청장년층은 안 그래도 단백질이 남아도는데 굳이 단백질 음료까지 챙겨 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몸짱을 만들 욕심으로 먹는다지만 근력 운동을 제대로 안 하면 별 소용이 없다. 업체 광고나 홍보성 기사를 보고 ‘나도 먹어도 돼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솔깃했다면 여기 소개된 다른 시각도 참고해 냉정하게 판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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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동아사이언스